법학계 및 법조계에는 매년 이맘때면 반복되는 화두가 있다. 또 논쟁도 치열하다. ‘신규 변호사를 어느 정도 배출할 것인가’ 그래서 ‘변호사시험 합격자 수를 몇 명으로 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도마에 오른다. 기성 법조계는 “법조계 불황 및 취업난” “법조인 포화상태” 등의 이유를 들며 신규 변호사 배출을 축소하려고 하고 법학전문대학원 학생 및 교수들은 “법률서비스 부족” “로스쿨 교육 황폐화” 등을 주장하며 신규 변호사 배출 확대로 맞서고 있다. 제9회 변호사시험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고 있는 어느 로스쿨 출신 예비 법조인이 ‘처음 마음’이라는 필명으로 투고해 왔다. 이에 원문을 게재하며 본지는 특히 법조인양성제도에 대한 어떤 의견이든 열려 있음을 밝힌다. - 편집자 주 -
- 2020. 4. 7. 한 신문 칼럼을 읽고 드리는 편지 -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한다(변호사법 제1조 제1항)”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1학년 1학기, 법조윤리 수업 서두에 이 조문을 접하며 여타의 일반적인 직업과는 구별되는, 변호사의 ‘사명’에 감탄했던 기억이 납니다. 변호사는 세속에 속해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어딘가 성직자의 성품도 지향하는, 품격 있는 매력적인 직업이라고 생각하며, 더욱 가열차게 공부를 했습니다.
같은 학기 상법 수업에서도 변호사는 상인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례에 대해서 배웠는데, 이 역시 변호사가 여타 직업들과 구별되는, ‘공공성을 지닌 전문직’이라는 의미이겠지요.
그러나 2020. 4. 7. “로스쿨, 수술할 때 됐다”는 칼럼을 읽고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코로나19로 변호사업계가 굶어죽을 지경이다. 그러므로 변호사 배출 수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은 논리의 비약도 심할뿐더러, ‘대한민국 변호사’를 대표하는, 협회장님의 품위 있는 글이라고 믿기에는 너무나 사사로웠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해 전 국민이 마음을 모아 고통을 분담하고 있는 이 때, 정말 ‘대한변호사’ 협회장님이 쓰신 글이라고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작성자를 확인해 보기도 했습니다.
회장님, 공사로 다망하시겠지만 식사시간 등 잠시 시간이 허락되신다면 잠시 인근 구청 보건소를 방문해 보실 것을 권해드립니다.
지금 일선 공무원들, 의료인들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코로나19의 국내 종식을 위해 불철주야 감염의 위험을 무릅쓰고, 최전선에서 온몸을 내던져 사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고위 공무원들은 고통분담 차원에서 일제히 본인의 급여 상당액을 사회에 환원하기로 결정하기도 했습니다. 하루 종일 방호복을 입느라 얼굴에 진물이 나 반창고를 붙인 간호사의 모습은 감동입니다. 코로나 환자를 진료하다가 감염되어 숨진 어느 노(老)의사의 뉴스도 들려옵니다.
공무원들, 의료인들은 이렇게 국난극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대한’ 변호사협회장님은 지금 정녕 무엇을 염려하고 계십니까?
회장님, 잠시만 시간을 더 내어주셔서 인근 음식점, 체육시설 등 자영업자들의 사업장도 방문해 보실 것도 권해드립니다.
그들은 손님들의 최근 급격하게 줄어든 발걸음, 자발적 혹은 반강제적인 휴업 등으로 생계의 어려움에 직면해 있습니다. 그들은 (칼럼의 익명의 20년차 변호사의 푸념과 달리) ‘진짜’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선량한 임대인들은 사지에 내몰린 임차인들과의 고통분담을 위해 자발적으로 ‘임대료 안 받기 운동’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들은 법령상 어떠한 부가적인 공공성도 요구받지 않는데도 말입니다. 그들의 조용하지만 위대한 양보에 마음 한켠이 숙연해집니다.
코로나19로 인해, 변호사들이 정말 이렇게 어렵습니까? ‘대한’ 변호사협회장님은 지금 정녕 무엇을 염려하고 계십니까?
협회장님, 약간의 시간이 더 허락된다면 로스쿨이나 변호사시험학원을 살펴보실 것도 권해드립니다.
1회 87% 합격률의 자격시험으로 출발한 변호사시험이 이후 정원제로 운영되어버린 탓에, 차츰 누적인원이 증가되어 유급자, 졸업시험탈락자, 평생응시금지자(소위 오탈자)를 제외하고도 응시자 대비 절반이 탈락하는 시험이 되어버렸습니다.
로스쿨 초기보다 훨씬 더 많이 공부하고 더 높은 점수와 실력을 갖추고도, 다른 이유도 아닌 ‘법조 시장의 수급 상황을 고려하여’ 시험에 낙방하고 1년에 수백, 수천만 원에 달하는 고액의 사교육에 내몰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 중 상당수는 사회생활을 경험하고 로스쿨 석사과정까지 밟느라 사회 복귀도 불가능한 고령의 수험생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연이은 낙방으로 생계 문제, 육아 문제 등의 이중고 삼중고를 겪으며 가정이 파탄 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안팎의 여러 문제로 재학생보다 졸업생이 시험에 합격하기는 더 어렵습니다. 수험에 대한 중압감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람들도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회장님께서 아주 약간의 시간의 시간을 더 내어 주셔서 주변 동료들을 돌아보신다면, 초창기 기수 변호사님들께서 믿음직한 중추 변호사로 훌륭하게 성장하여 함께 일하고 있음을 확인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변호사로서 자격이 충분한 수험생 수백 명이 다른 이유도 아닌, ‘법조 시장의 수급 상황을 고려하여’ 탈락자가 되고 있습니다. 과연 작금의 사태는 정의롭습니까?
정녕 변호사업계는 ‘코로나19로 인해’, 기백명의 합격자수를 늘이고 줄여 숨통을 유지해야 할 만큼 어렵습니까? 그렇게 허약한 시장입니까? 그리고, 변호사님들께서 수험생들의 숨통을 죄어야 살만큼 어렵습니까?
전 세계적 위기 상황에서, ‘대한변호사’ 협회장님의 국난극복을 위한 ‘공공성을 지향하는’, ‘품격 있는’ 행보를 기대합니다.
어느 예비 변호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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