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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코로나바이러스와 박사방의 범죄자들, 지혜로운 마스크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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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코로나바이러스와 박사방의 범죄자들, 지혜로운 마스크할머니
  • 오시영
  • 승인 2020.03.26 18:5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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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전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오시영 전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천국과 지옥은 병존한다. 똑 같은 시간, 똑 같은 장소에서 똑 같은 사람이 천사가 되었다가 악마가 되는, 반대로 악마이다가 천사가 되는 세상을 우리는 맞닥뜨리고 있다. 슬프게도 어느 순간 내가 악마이고 네가 천사였다가, 네가 악마이고 내가 천사가 되는 세상을 우리는 지금 살아가고 있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하지만, 마음이라는 것이, 그 보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것이 우리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어서 스스로 천국과 지옥의 강을 수시로 건너게 만들뿐만 아니라, 가면놀이 게임의 주인공이 되라고 우리를 등 떠민다. 눈앞에 펼쳐지는 것이 끝없는 사막이요, 발아래 밟히는 것이 뜨거운 용광로이며, 뒤에서 쫓아오는 것이 하이에나 떼이니 답답할 노릇이다.

변종바이러스로 인한 코로나19감염병사태와 조주빈이라는 한 젊은이의 일탈에서 비롯된 컴퓨터세계에서의 소위 “박사방, N번방 성노예성착취범죄”가 대한민국을 격랑의 소용돌이로 내몰고 있다. 코로나감염병은, 눈에도 보이지 않은 그 작은 변종바이러스가 온 세계를 올 스톱시키고 있다.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해 보면, 이 변종바이러스사태 이전에 우리는 얼마나 “급하지 않은 현실을 절체절명의 위기로 착각”하고 살았던가? 필자는 염려를 별로 하지 않는 편이다. 어려서부터 신앙생활을 해서인지 모르겠으나, 심하게 걱정에 사로잡히기보다는 문제가 생기면 차례차례 해결해 나가고, 해결되면 좋고 해결되지 않으면 그것이 한계임을 인정하는 버릇이 있다.

신약성경 마태복음 6장은 필자에게는 참으로 소중하게 인식되는 성경말씀이다. 좀 길지만 6장 25절부터 마지막 34절까지를 인용하면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 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 하고 길쌈도 아니 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라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위 염려하지 말라는 성경 말씀을 곡해하면 “모든 것을 손 놓고 방치”하라는 요설이 주장될 수도 있지만, 저 성경말씀의 근본취지는 염려에 사로잡혀 쓸데없이 우왕좌왕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고 “오늘을 성실하게 살면 내일 염려될 일을 만들지 않는 지혜로운 일생”을 살아갈 수 있다는 교훈을 배우라는 것이라 할 것이다. 코로나바이러스사태가 발생하기 전에 수많은 지식인들, 정치인들이 최고 이슈로 생각하며 매달렸던 것들이 무엇이 있었을까? 북한의 핵문제도 있었을 것이고, 이란을 비롯한 중동사태가 있었을 것이고, 경제양극화로 인한 소득불평등 문제 해결을 둘러싼 끝없는 탐욕의 싸움도 있었을 것이다. 끝없는 전쟁과 죽음에 대한 공포, 가지지 못한 황금덩어리에 대한 갈망과 탐욕이 우리를 사로잡아 휘둘렀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런데 코로나바이러스사태가 심각해지자 위와 같은 “금방이라도 지구 종말의 촉매제가 될 것 같았던 국제적 이슈들”이 자취를 감추고 가장 사소한 바이러스보다 더 사소한 일들이 되어버리는 현상을 바라보며, 지혜롭다는 인간이 얼마나 잘못된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저주의 세계를 헤매고 다녔는가 하는 자괴감마저 든다. 현실의 최대 이슈는 코로나19사태의 해결로 집약될 수 있다. 이 문제를 둘러싸고, 가장 한 마음이 되지 못하고 두 개의 마음으로 쪼개져 이전투구하고 있는 대표적인 나라가 우리 대한민국이 아닐까? 그 이면에는 여전히 못된 버릇, 내 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이분법적 사고가 자리 잡고 있고, 내 편이 아닌 자가 잘못 되어야 내가 어부지리를 취할 수 있다는 못된 심리가 발동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 스스로 되돌아보는 성찰이 필요하다고 본다. 코로나19사태의 국내 최대 이슈는 마스크공급과 외국인국내유입차단정책의 시행 여부였다. 두 현상을 지켜보며 참으로 완급을 구별하며 사는 게 어렵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이 와중에 지혜로운 어떤 할머니가 “마스크를 직접 만들어 다른 사람에게 선물”하였다는 기사가 보도된 적이 있다. 갑자기 5천만 국민이 마스크 수요자가 되다 보니 마스크공급이 부족할 수밖에 없어 일시적으로 마스크품귀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었다. 모두들 마스크 한 장을 사기 위해 긴 줄을 섰고, 몇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다행히 마스크를 산 이는 그나마 나았지만, 허탕 치는 이들조차 있었다. 그 마스크공급부족현상을 악용해 폭리를 취하겠다며 마스크를 매점매석하는 이들도 나타났고, 발생 초기에 소량의 마스크를 중국에 수출한 것을 두고 그로 인해 마스크가 부족하다고 아우성을 치며 정부를 비판하는 이들조차 있었다. 지금도 그러한 논조를 지속하는 일부 언론사의 집요함조차 보인다. 참으로 “초라한 어깃장”이다. 전 국민이 소비하는 마스크물량에 비하면 초기 수출물량은 조족지혈에 불과한 아주 적은 물량이다. 확률의 세계를 무시하는 이들은 무식한 자들이고, 그들을 지도자로 삼거나 동료로 두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마스크가 부족하면 우리 각자가 마스크를 직접 만든 할머니가 되면 된다. 마스크물량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을 치는 자, 몇 시간씩 줄을 서서 마스크를 사겠다며 불평불만을 하는 자는 저 할머니의 지혜를 본받아야 한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지혜로운 이는 어느 위대한 정치지도자나 철학가도 아닌 바로 저 마스크를 직접 만든 할머니였다. 자신이 소비할 것을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덤으로 몇 개 더 만들어서 다른 사람에게 기부하는 저 자비로움, 저 지혜와 자비앞에 폭풍우도 잠잠해 질 것이고, 세상의 모든 아우성도 잠잠해지지 않겠는가? 가족들이 둘러 앉아, 구입한 마스크제작용 천(입지 않은 낡은 옷을 가지고도 만들 수 있지 않겠는가?)을 재단하고 바느질하며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예쁜 나만의 마스크를 만들어 착용할 수도 있지 않은가? 둘러보면 천지에 천이 있고, 가위가 있고, 바늘도 있고, 실도 있고, 사람도 있고, 시간도 있지 않은가? 이러한 무실역행(務實力行)의 정신과 실행이 바로 실학사상이고, 저 성경말씀이 가르치고자 하는 근본이 아니겠는가? 무실역행의 가장 본이 되는 삶을 사신 분은 바로 저 마스크를 직접 만든 할머니이고, 칭찬을 아끼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오랫동안 혼자 해 보았다.

초기방역대책을 잘못 세워 코로나가 전국으로 확산되었다며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문재인대통령은 묵묵히 대통령으로서, 정부와 국가를 책임진 공직자로서 공무원들을 잘 지휘하여 대처하였고, 헌신적인 의료진들과 봉사자들의 노력으로 코로나사태를 잘 진정시켜 나가고 있다고 본다. 물론 지옥을 만들고자 하는 이들은 여전히 코로나지옥이라고 아우성을 치며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고, 실패분위기를 조성하고, 절벽으로 추락하는 불안분위기를 조성하려 억지를 부리지만, 그대에게 묻는다, “그대는 이번 사태 때 비판에 열을 올리는 것 말고 마스크 한 장이라도 직접 만들어 본 적이 있는가?”, 아니면 “참혹한 방역현장에서 단 한 시간이라도 헌신하며 봉사해 본 적이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말을 멈추고, 손을 멈추고, 펜을 멈추라.

조주빈이라는 젊은 청년의 텔레그램을 이용한 여성 성노예착취사건은 우리를 경악케 한다. 겉으로 보기에 멀쩡한데, 하는 행동은 괴물인 이 젊은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다. 컴퓨터시대, 인터넷시대, 동영상시대에 나타나는 인간바이러스현상이 아닐까 싶다. 인간이 스스로 바이러스가 되어 컴퓨터에 침입하여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최대의 악행을 저지르는 인간바이러스시대의 도래를 본다. 거기에 회원으로 가입한 사람이 수만 명에 이르고, 가입하려고 엄청난 액수의 돈을 기꺼이 지불하고, 끼리끼리 모여 히히덕거리며 어린 여학생들과 여성들을 성적 가학의 대상으로 삼아, 스스로 그 여성들을 성노예라고 명칭하며 집단가학을 가한 사람들이 넘쳐났다니 아연실색할 뿐이다.

성은, 신이 인간에게 준 선물이다. 상대방을 존중하고 애정과 합의를 통한 성은 그래서 소중하고 가치 있다. 그러기에 존경이 필요하고, 행복이 필요하다. 그런데 소위 “박사방”이라는 이름의 텔레그램 프로그램을 이용한 성착취 이용자들은 전혀 그러하지 아니한 집단성가학행위를 자행한 악마들일 뿐이다. 문재인 대통령마저 아연실색하여 저들의 범죄행위를 발본색원하라고 엄명을 내렸고, 특히 공직자들이 있다면 엄하게 수사하여 가중 처벌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경찰과 검찰이 전면적으로 수사에 나섰다니, 어느 정도 실체가 밝혀질 것이고, 그들이 비밀스러워 들키지 않을 것이라며 행한 착각된 일탈들이, 오히려 비밀스럽기 때문에 일망타진될 수 있는 한 울타리 안의 미꾸라지들이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필자도 변호사이지만, 대한민국 사법부는 “물리력 가해행위”를 “정신적 가해행위”보다 무겁게 처벌해 온 관행이 있다. 직접 주먹으로 사람을 폭행하고, 직접 타인의 물건을 절취하고 하는 등등의 범죄를 무겁게 처벌해야 한다는 “보이는 사람과 재물에 대한 침해행위”를 중대한 범죄라고 생각하고 무겁게 처벌하려는 습관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실재 초임판사 때부터 재판장인 부장판사에게 배우는 것이 그러한 오래된 관행에 대한 인식의 습득이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보이지 않는 정신과 인격에 대한 침해행위”의 후유증이 훨씬 중요해졌다. 사람들의 교육수준이 높아져 명예와 인격에 대한 가중치가 높아지고, 초상권과 행복추구권에 대한 인식이 강화됨에 따라 사소한 말 한 마디로 인한 상처가 평생 마음에 남아 우울증이나 조현병 시초가 되기도 하고, 악몽에 시달리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특히 성적정체성이 확립되기 전의 어린 청소년시절의 성적 학대나 피해는 한 인간의 인격을 평생 동안 지배하는 치유될 수 없는 바이러스의 후유증으로 남기 마련이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그러한 정신적 가해행위, 집단적 언어폭력이 가능한 사회가 되고 말았다. 전자문명의 발달로 익명의 가해자가 넘쳐나고, 불특정 다수의 피해자가 양산되는 지옥이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같은 때, 같은 장소, 같은 사람이라도 천사가 될 수도 있고 악마가 될 수도 있음은 우리에게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자유의지를 발동시켜 천국을 지향할 것인지, 지옥을 지향할 것인지를 선택할 수가 있다. 착한 일을 하고 살기도 짧은 시간에 왜들 이렇게 악한 마음으로, 악한 영으로, 악한 행동으로 자기를 좀먹고, 타인을 좀먹고 살려 하는지. 하기야 인간이 얼마나 어리석은가?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해진 것은, 북한의 핵보다 코로나바이러스가 현실적으로 훨씬 더 무섭다는 것, 전쟁의 후유증보다 코로나바이러스사태로 인해 인적, 물적 교류의 단절로 나타나는 경제적 손실이 훨씬 더 커 수많은 자영업자와 하루 벌어먹고 사는 소시민의 가정경제가 파탄 나고 있다는 것,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발 벗고 나서야 한다는 것, 모든 것은 시기,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가 인식하고 대한민국정부가 이를 극복하기 위해 각종 재정정책을 시행하려 할 때 딴지를 걸기보다는 격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인간 말종 바이러스들이 넘쳐나는 세상, 그 악한 세상에서 “마스크를 직접 만들어 선물하는 지혜로운 할머니”가 계시다는 사실에 위로를 받는다. 당신, 불평할 시간에 당신만의 유니크한 마스크 하나 만들어 보시면 어떨까? 두 장 만들어 나 하나 주면 더 좋고.

오시영 전 숭실대 법대 학장 / 변호사 / 시인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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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2020-03-29 14:35:18
학원강사 오씨는 좌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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