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위성정당’의 등장과 한국 정당정치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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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위성정당’의 등장과 한국 정당정치의 미래
  • 신희섭
  • 승인 2020.03.26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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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br>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21대 총선이 3주도 채 남지 않았다. 하지만 많은 것을 삼켜버린 코로나 때문에 총선 역시 큰 관심을 못 받고 있다. 이런 와중에도 눈에 띄는 것이 있다. 바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위성 정당’의 등장이다. 더욱이 필자가 더 걱정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위성 정당 이후 한국 정치’다.

전략적으로 볼 때 코로나 사태에 의한 무관심이 4월 15일 총선을 준비하는 정당들에 득일지 해일지는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정당들은 유권자들의 적당한 무관심이 한편으로는 고마울 수 있다. 왜냐하면, 한국 유권자는 선거를 ‘공약을 이행했는지’나 ‘성과’에 따른 ‘회고적 투표’를 통해 다시 한 번 권력을 넘겨주는 도구로 이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이론가 제인 맨스브리지(Jane Mansbridge)의 이론에 따를 때 한국 유권자는 ‘대표들의 공약(Promissory representation)’이나 ‘대표들의 임기 중 성과(Anticipatory representation)’에 기초하여 투표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이념이나 지역 ‘정체성을 확인하는 투표(Gyroscopic representation)’를 한다. 기분 나쁠 수 있겠지만, 한국 유권자들은 마치 ‘회전추(gyroscope)’처럼 선거를 늘 정체성을 확인하는 의식(ritual)으로 활용해왔다.

2019년 12월 국회는 누구도 상상하기 어려운 아이디어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도를 만들었다. 다른 나라 정치학 교과서에도 실릴 법한 이 제도는 선거 전문가들도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다. 상식을 뛰어넘는 이 제도의 속내에는 ‘무엇인가’ 있다. 실제 ‘준연동형’비례대표제를 도입할 때 논리적 근거가 되었던 ‘소수자 보호’와 ‘비례성’은 이제 중요한 기준이 아니다. 그저 각 정당의 의석수를 늘리기 위한 수단에 불과할 뿐이다.

‘위성 정당’을 만드는 것이 부끄러운가? 정파 싸움에 관심이 없는 시민들은 한없이 부끄럽지만, 정치인들은 별로 그런 것 같지 않다. 그 이유는 굉장히 단순하다. 내가 안 하면 상대방에게 이득이 된다. 내가 해야 할 이유는 바로 “내가 안 하면 나에게 손해가 되기” 때문이다. 말장난 아니냐고? 상식에 눈 감으면 이것은 절대 말장난이 아니다. 현실 정치이며 권력정치의 민낯인 것이다.

하지만 반론도 있다. ‘위성정당’ 거부에 대한 반론 1. 규범 말고 현실 정치의 의석(권력)을 보아야 한다. 서브 논리 1. 촛불이 만들어준 시대정신을 구현하려면 우선 권력이 있어야 한다. 서브 논리 2. 아직 지지도가 높은 문재인 대통령이 정국운영을 지속하려면 의석이 더 있어야 한다.

‘위성정당’ 거부에 대한 반론 2. 상대방이 위성정당을 만드는 판에 내가 안 만들면 나만 손해다. 서브 논리 1. 여당도 어차피 위성정당을 만들거나 정당연합을 구축한다. 서브 논리 2. 거대 야당이 위성정당을 만드는데 우리라고 별수 있나.

정치인들이 위성정당을 만들며 더 많은 ‘의석수’와 더 많은 ‘선거보조금’을 계산할 때 부끄러움은 온전히 시민들의 몫이다. 그럼 그냥 4년에 한 번 부끄럽고 말면 되는 것 아닌가!

진짜 문제는 정당정치에 대한 후폭풍(blowback)이다. 한국정당들은 제도적으로 취약하다. 위성정당의 등장으로 기존 정당 내 지도력은 더욱 쇠약해질 것이다. 정당은 유권자들과 더 유리될 것이다. 내부 응집력이 약한 현 상황에서 정당은 앞으로 모래알 조직처럼 될 것이다.

실제 그런지 추세를 보자. 큰 틀에서 보면 최근 총선들은 대통령을 둘러싼 논쟁이었다. 19대 총선, 친이 vs. 친박. 20대 총선, 친박 vs. 진박. 21대 총선, 문재인 대통령지지 vs. 반대.

위 사례들은 한국 정당정치의 민얼굴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정당이 ‘정책’과 ‘가치’가 아닌 대통령이란 ‘인물’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것이다.

정치학자 키(V. O. Key)의 이론 틀은 이 현상을 분석하는 데 있어 유용하다. 그는 정당을 ‘조직으로서의 정당(party in the organization)’, ‘정부로서의 정당(party in the government)’, ‘유권자들 속의 정당(party in the electorate)’의 3가지 기능으로 분류하였다. 한국정당은 2002년 원내정당화란 정치개혁 이후 ‘조직으로서의 정당’ 차원에서 스스로 약화를 선택했다. 게다가 한국정당은 유럽의 ‘대중’정당들처럼 ‘유권자들 속의 정당’ 차원에서 유권자와 밀착되어 있지 못하다. 그러니 정당이 오로지 집중하는 것은 ‘정부’에 접근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권력이 대통령에 집중된 상황에서 모든 정치적 경쟁은 대통령 선거의 전초전일 뿐이다. 대권을 향한 치열한 경쟁 속에서 기성 정당은 신규정당의 진입을 저지하며, 자기들끼리 선거보조금을 나누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현실적인 ‘제도’ 차원에서도 ‘준연동형’비례대표제도는 한국정당이 향해가고 있는 미국식 ‘원내정당’과 일치하지 않는다. 미국식 원내정당은 ‘정당제도의 약화’를 지향하는 데 비해 유럽식 비례대표제도는 ‘정당제도를 강화’하고자 한다. 역사적으로 비례대표제는 유럽에서 소수를 대표하는 정당에 의석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니 한국정당들이 지금 ‘준연동형’비례대표제도를 사용해 위성정당을 만드는 것은 그들이 지향하는 원내정당의 운영방식하고도 맞지 않는다. 덧붙이자면 정당들이 사회 내 소수의견을 반영하기보다 과거 재벌들의 문어발식 경영방식을 계승한 것에 불과하다. ‘준연동형’비례대표제를 악용한 위성정당의 지향점은 결국 한 석이라도 더 의석을 늘리고, 정당이 받을 수 있는 선거보조금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이는 키가 분류한 3가지 기능의 균형을 포기하고 오로지 ‘정부로서의 정당’만을 강화하는 기형적 형태로 가는 것이다.

현재 한국정당들이 위성정당을 통해 21대 총선에서 재미를 볼 수도 있다. 성공했다고 치자. 과연 나라의 주인인 국민은 이것을 ‘정당’하다고 생각하겠는가! 명분 없는 이합집산은 ‘조직으로서 정당’의 위상을 땅에 떨어뜨릴 것이다. 게다가 국민의 현실을 개선하거나 한국이 나갈 방향을 제시하는 ‘유권자들 속의 정당’은 더욱 요원해질 것이다. 유권자에게 외면 받게 될 정당의 미래는 명확하다. 정당 그들만의 마이웨이.

그래서 관심을 못 받는 ‘21대 총선’보다 ‘21대 총선 이후’가 더 걱정된다.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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