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공간삭제와 계급재구성 : 코로나 사태 이후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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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공간삭제와 계급재구성 : 코로나 사태 이후 정치
  • 신희섭
  • 승인 2020.03.20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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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br>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코로나 사태의 장기화로 개인적으로는 몸과 마음이 지쳐가는 느낌이다. 나아가 개인의 문제를 넘어 교육·의료·종교 등 우리 일상의 시스템도 비록 잠정적이지만 눈에 띄는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이런 와중에 다음 설명하는 몇 가지 인상적인 장면을 통해 필자는 한 개의 큰 흐름을 읽을 수 있다고 본다.

첫째, 공교육을 담당하는 학교는 물론, 사교육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서비스 역시 온라인강의로 수업을 대체하였다. 현실 공간에 사람들을 모아놓고 교수하던 방식이 온라인을 통해 직접 대면 없는 수업으로 변화된 것이다.

둘째, ‘사회적 거리두기’를 통해 사람 간 대면 방식과 의사결정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일상생활을 윤택하고 부드럽게 해주는 친목 모임 정도야 뒤로 미루면 된다지만, 적시에 이루어져야 할 조직 내에서의 의사결정은 그럴 수 없다. 그러다 보니 거대조직에서나 활용되던 화상회의 방식이 소조직에서도 사용되는 실정이다.

셋째, 재택근무. 요즘 재택근무로 돌아선 사람들이 많다. 운영체계가 잡힌 회사들은 재택근무 방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오죽하면 시스템이 잘 되어 있는 경우엔 업무 강도가 더 높다는 불만까지 나온다. 물론 강도가 높다고 불평을 하는 것이 코로나 사태로 인해 무급 휴직이나 권고사직을 당하는 이들과 비교하면 사치일 수 있다.

이 장면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공간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오프라인상 현실 공간이 사라지고 온라인 공간이 대체하는 것이다. 정의하자면 ‘공간의 삭제와 공간의 재구성’이라 할 수 있다.

코로나 사태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코로나 사태 이후를 이야기하는 것은 지나치게 앞서가는 것일 수는 있다. 하지만 이 사태가 길어질수록 ‘공간의 삭제와 재구성’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 이번 COVID-19 확산을 막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인간 상호 간 접촉을 줄이는 것이다. 상호 간 접촉의 기피가 우리 현실에서 실체적인 공간을 삭제하고 있다. 백화점, 쇼핑센터, 영화관을 보라. 대신 인터넷을 통한 구매, 가정에서의 VOD 서비스가 이 공간을 대체하고 있다.

여기서 좀 더 나가보자. 코로나 사태의 장기화는 온라인상 조직운영방식변화의 촉매가 될 것이다. 위의 사례인 학교, 학원뿐 아니라 기업들처럼 온라인화가 가능한 많은 조직이 공간의 효용성, 시간의 효율성을 높이려 할 것이다. 점차 온라인 공간의 대체율은 비약적으로 높아질 것이다. 또 보완용 컴퓨터 운영체계들이 급속도로 개발될 것이다. 기업은 건물의 몇 개 층을 줄일 수도 있고 아예 건물 자체를 사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 관리 차원에서 얼마나 유혹적이겠는가! 게다가 인간을 대체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다. 이에 더해 인간 상호접촉을 피하라고 압박하는 현재 위기상황은 과거 노조나 시민단체 그리고 언론 눈치를 보던 기업들의 손을 들어줄 것이다.

모든 분야가 똑같이 영향을 받을까? 그렇지 않다. 이점이 현 추세의 핵심이다. 공간재구성의 차이.

현 상황을 다시 보자. 재택으로 돌아설 수 있는 직종이 있는가 하면 절대로 재택이 안되는 직종이 있다. 은행과 건설현장을 대비해볼 수 있다.

‘공간재구성’은 ‘계급재구성’으로 이어질 것이다. COVID-19 사태는 울리히 벡의 ‘글로벌 위험사회’를 그대로 보여준다. ‘초연결성’이란 현대 사회 특징의 어두운 면이 COVID-19 확대와 관련되어 있다. 누구나 다 위험(risk)에 노출되어 있다. 하지만 위험에 대처하는 방식에 따라 새로운 계급이 재편될 것이다. 위험에 노출을 피할 수 있는 계급과 위험에 대한 노출을 피하기 어려운 계급으로.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면 온라인 공간을 활용해서 위기상황을 버틸 수 있는 계급과 온라인 공간을 활용해 위기상황을 버티기 어려운 계급으로 구획될 것이다. 물론 완벽한 계급 구분이 어려울 수 있겠지만 계급화의 추세는 생각해볼 수 있다.

층위 개념인 ‘계층(stratum)’과 달리 ‘계급(class)’은 대립을 전제한다. ‘주인 vs. 노예’나 ‘자본가 vs. 노동자’처럼 계급은 대립적 개념이다. 물론 바이러스가 계급을 구분할 리 없다. 하지만 바이러스에 대처하는 방식과 자원보유 여부로 계급은 구분된다. 핵심은 온라인을 활용하여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는 사람들과 이것이 어려운 사람들로 구분되는 것이다. 이때, 온라인 사용 여부는 문제가 아니다. 온라인과 관련해 더 중요한 것은 소득의 ‘안정성(stability)’과 직업 자체의 ‘생존가능성(viability)’이다. 현 상황에 맞춰 분류하면 재택근무가 가능하고 임금이 유지되는 그룹과 오프라인상에서 소득감소의 직격탄을 맞은 그룹이 될 것이다.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세계 경제 주체 모두 충격을 받지만, 그 충격 속에서 직업 자체가 버틸 수 있는지와 소득의 축소가 상대적으로 적은지는 크게 차이가 난다. 그런 점에서 바이러스와의 전쟁 이후 계급 구분은 확연해질 것이다. ‘온라인 공간의 생존가능성이 높은 계급’은 육체적 위험에 접할 확률이 낮고 경제적 위험에서 버텨낼 경제적 능력은 높다. 반면에 ‘오프라인 공간의 생존가능성이 낮은 계급’은 육체적 위험에 노출될 확률이 높고 경제적 위험에 버텨낼 능력은 낮다.

‘온라인-오프라인’ 공간의 재구성과 ‘육체적 위험-경제적 위험’이라는 두 가지 요인이 결합한 새로운 계급 구분은 정치적으로 매우 참담한 결과를 만들 것이다. 공간, 생명, 인간의 존엄성의 모든 부분에서 투쟁이 극단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간 계급투쟁의 역사는 새로운 계급의 탄생과 그에 따른 계급투쟁이 무자비했다고 증언한다. 만약 공간을 재구성하면서 새로운 계급이 탄생하고 그에 따라 계급투쟁이 발생한다면, 이것은 이전 계급투쟁보다 더 극단적으로 될 것이다. 생산수단의 보유만이 아니라 공간의 활용까지 포함하니 말이다.

그렇다면 코로나 사태를 잘 버텨낸 뒤 우리의 다음 과제는 명확하다. 이러한 계급대립이 극화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안전판(safety net)’을 논의하고 구축하는 것이다. 코로나로 고통받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암울한 미래 그림을 이야기하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안타깝다. 하지만 사회변화를 예측하고 걱정하는 것은 공부하는 이의 책무다.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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