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코로나가 쏘아 올린 커다란 공 : 유가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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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코로나가 쏘아 올린 커다란 공 : 유가 전쟁
  • 신희섭
  • 승인 2020.03.13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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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일상의 많은 부분이 바뀌고 있다. 위생관념, 공공장소 방문 예절, 가족과의 시간, 종교행사방식 등등. 그뿐만 아니라 국제관계에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흡사 유가 전쟁처럼, 유가 분야에서 전운이 감돌고 있다.

논리는 이렇다.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중국의 생산 활동이 줄었다. 세계에너지 수입 1위 국가인 중국의 생산 활동 감소는 에너지 수요의 감소로 이어졌다. 이 추세는 상당기간 지속할 것이라는 예측이 우세하다. 에너지 수요의 축소는 원유의 감산 필요성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정작 감산이 필요한 석유수출국기구(OPEC)국가들과 비OPEC국가들이 모인 OPEC+에서 원유감산 합의에 실패한 것이다. 2020년 3월 6일, 감산 합의의 중심축인 OPEC의 대부 사우디아라비아와 비OPEC 산유국의 패자인 러시아가 합의 불발로 그간의 협력이 깨진 것이다.

양 국가의 신경전이 갈등상황을 ‘유가 전쟁’상황으로 몰고 가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현재 하루 970만 배럴의 생산량을 1230만 배럴까지 늘리겠다고 발표하며 선공을 날렸다. 그러자 러시아가 하루 50만 배럴을 증산하겠다고 반격했다. 이에 사우디는 1300만 배럴까지 늘리겠다고 재차 공격을 퍼부었다. 여기에 아랍에미리트도 30% 증산으로 한발 담갔다.

유가가 추락하고 있다. 합의 무산 소식과 함께 북해산 브랜트 유의 가격은 30%나 빠졌다. 3월 9일엔 배럴당 31달러까지 떨어졌다. 2월 20일 59불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유가 폭락이 확연히 드러난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의 겁쟁이 게임(chicken game)이 한동안 지속할 것으로 예상하는 많은 기관은 유가가 20불 선까지 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 상황은 2014년 유가 전쟁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러시아의 크림반도 점령을 계기로 시작된 경제제재에 더해 러시아를 압박하고자 한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협공으로 유가전쟁이 시작되었다. 전쟁 전 배럴당 100불이었던 유가가 2016년에는 28불까지 떨어졌다. 재정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에너지 가격이 폭락하자 러시아는 국가운영 자체가 휘청거렸다.

아직 전쟁상황으로 단정하기는 이르지만, 현재 상황을 이론적으로 분석하면 재미있다. 셰일가스와 셰일오일이 나오기 전까지 미국은 에너지 시장에서 시장 지배적 공급자는 아니었다. 그런데 셰일 혁명이 터졌다. 미국은 현재 하루 1300만 배럴을 생산하는 세계 1위의 생산자가 되었다. 소련 붕괴 후인 1990년대 러시아가 OPEC국가들 위주의 에너지 시장에 뛰어들어 양강 구조를 만들었다. 2010년대 셰일추출 기술발전으로 미국이 가세하자 3강 구조가 된 것이다. 이것은 국제정치학의 ‘3극(tripolarity)’과 비슷하다. 물론 OPEC에 속한 국가들이 여럿이라 정확히 3개의 국가로만 분석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지만, 전통적으로 생산 1위였던 사우디아라비아와 가스 분야의 최고인 러시아에 미국까지 가세한 것으로 보면 3파전 즉 3극 구조로 단순화할 수 있다.

국제정치학자인 랜덜 스웰러는 3극(tripolarity)을 체계화했다. 3개의 행위자가 어떤 배열을 하게 될지에 따라 국제관계의 양태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현상타파를 원하는 2개의 국가가 합세하여 1개의 현상유지국가를 위협하는 경우를 가정해보자. 이 상황은 현상타파 국가가 1개 있으면서 2개의 현상유지 국가를 위협할 때보다 전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커진다. 한편 2개의 현상타파국가가 위협을 해도 1개의 현상유지 국가의 국력이 월등히 강하면 위협은 억제될 수 있다. 정리하자면 강대국이 2개인 양극에서는 양자가 상호견제를 하지만 강대국이 3개인 경우는 ‘힘의 크기’나 현상유지와 현상타파라는 ‘국가의 성향’에 의해 다양한 경우의 수가 생긴다.

이 논리로 볼 때 유가 전쟁의 3파전은 복잡하다. 양강구도일 때보다 관계가 만들어질 경우의 수가 많다. 2014년 유가 전쟁 때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손잡고 러시아를 공격했다. 2017년 이후 사우디아라비아는 에너지 분야에서 러시아와 손을 잡고 미국에 대항해왔다. 중동에서 사우디아라비아는 시아파 국가들의 위협을 미국이란 동맹국을 통해 해결해왔던 전통에서 이탈한 것이다. 에너지 분야에서 미국의 시장지배에 대응하기 위해 과거의 적을 현재의 친구로 만든 것이다. 현재 윤곽을 드러내고 있는 ‘유가 전쟁’은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가 각자 시장지배력을 확대하고자 싸우는 것이다.

양국 싸움에 미국이 유탄을 맞고 있다. 현재의 기술 수준에서 셰일 원가는 배럴당 40불 미만으로 낮출 수 없다. 유가가 30불이나 그 이하로 하락하면 미국의 셰일 업자들은 도산한다. 더 큰 문제는 셰일산업의 구조다. 사우디는 아람코라는 국영기업이, 러시아도 가즈프롬이라는 국영기업이 주도한다. 국가가 직접 나서 유가 전쟁의 피해를 막아줄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의 셰일산업은 민간이 운영하며 특히 중소기업들이 하고 있다. 자본력이 떨어지는 민간업자들이 유가 하락의 파도를 직접 몸으로 맞서야 한다. 실제 러시아는 이 싸움에 대비하여 자금을 상당히 비축해두었다. 5년까지도 버틸 여력이 있다고 한다. 사우디아라비아도 국가재정에 차지하는 비중 때문에 부담은 되겠지만, 실질적인 통치자이자 왕위계승이 임박한 빈살만 왕세자 입장에서 유가하락은 미국과 러시아에 강력한 한 방을 먹일 수 있는 카드다. 또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는 민주주의국가가 아니기에 출혈경쟁을 충분히 버틸 수 있다. 버티기 어려운 국가는 민주주의국가인 미국이다. 미국 주식시장이 바로 휘청거리는 것이 그 증거다. 올해 재선까지 겹쳐 있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세일 산업의 위기는 정치적 부담이 크다.

3파전의 승부는 ‘버티기’에 있다. 유가 전쟁에서 누가 더 오래 버틸지 즉 누가 먼저 항복할지에 달린 것이다. 그리고 버티기에서는 3자가 어떤 모습으로 ‘결합’할지가 핵심 변수다. 미국은 셰일을 통한 안정적 에너지공급이 경제부흥의 핵심이기에 이 싸움에서 사력을 다해야 한다. 경쟁력이 약해진 제조업을 부활시킬 기회를 셰일가스와 셰일오일이 선사하기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가장 낮은 가격에 원유를 생산할 수 있다. 하지만 국가재정에서 원유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고, 최근 상장한 아람코의 주식가격이 하락하기 때문에 이 게임에서 오래 버티기 어렵다. 러시아는 유가가 낮아지면 2014년처럼 국민에게 국가가 제공할 서비스와 혜택을 극단적으로 축소해야 한다. 이것은 21세기 새로운 차르(czar)인 푸틴에게 부담이다. 이 게임의 핵심 키(key)는 결국 국가안보를 미국에 의존하는 사우디아라비아가 러시아에 어떤 입장을 택할지에 있다.

코로나 사태는 세계가 얼마나 촘촘히 연결되어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지리와 자원이 중요한 시대에 새로운 변수가 되고 있다. 코로나 사태가 예상하지 못한 거대한 공을 하나 쏘아 올렸다. ‘유가 전쟁’이라는.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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