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강원도 선거구 획정에서 읽는 한국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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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강원도 선거구 획정에서 읽는 한국 정치
  • 신희섭
  • 승인 2020.03.06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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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며칠 전 서울양양고속도로를 이용해 강원도를 다녀왔다. 평일 오전이라 차들이 별로 없었다. 코로나 사태까지 가세해 도로는 한적하다 못해 얼마간 한 대의 차도 볼 수 없는 지경이었다. 운행 중인 차 중에는 작은 화물차들이 간간이 있었다. 서해고속도로처럼 큰 트럭도 별로 없다. 그만큼 강원도 쪽에 산업시설이 없다는 증거다. 서울양양고속도로는 주말 여행객들이 찾을 때만 막힌다. 이는 강원도가 생산보다는 관광과 같은 소비를 중심으로 경기가 돌아간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강원도의 인구는 2020년 2월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통계를 기준으로 153만 9천 명 수준이다. 같은 기준상 경기도 인구수 1,326만 5천 명과 비교하면 1/9수준이다. 제주도 인구 67만 명보다는 많고 충청북도의 159만 8천 명보다는 조금 적다. 면적으로 볼 때 경상북도(19,028㎢) 다음으로 16,873㎢나 된다. 우리나라 전체 면적이 99,720㎢이니 강원도 면적은 남한 전체 면적의 17%를 차지한다. 비슷한 인구를 가진 충청북도는 7,407㎢의 면적으로 강원도의 1/2도 안 된다. 결론은 넓은 면적대비 인구가 적다는 것이다.

인구 관련 요소들을 좀 더 보자. 강원도의 인구밀도(명/㎢)는 2018년 기준 90명으로 전국에서 가장 낮다. 가장 높은 서울의 1만 6천 명과 크게 비교된다. 인구증가율은 2018년 국가통계를 기준으로 –0.1%이다. 인구증가율은 세종시가 12.9% 증가로 가장 높고 서울은 –0.7%로 밑에서 2위고 대전이 –1.0%로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도별로 인구가 준 곳은 강원, 전남, 경북에 불과하다. 대도시에서 이주하여 위성 도시화하는 추세로 볼 때도 강원도의 인구는 빠지고 있다. 대체로 전국적으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전제에서 출산율을 보자. 2019년 8월 기준으로 국가통계 포털 사이트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평균 출산율은 0.977명이다. 서울이 가장 낮은 0.761명이고 가장 높은 곳은 세종시로 1.566명이다. 강원도는 1.067명으로 경기도 1.002명과 전북의 1.044보다 높지만 다른 도들보다는 낮다. 인구 관련 통계가 말하는 것은 넓은 면적에도 불구하고 강원도에 대한 인구 유입요인이 적다는 것이다.

그런데 웬 강원도? 선거구 획정 때문에 강원도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한다. 지난 3월 2일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는 이번 4월 15일 국회의원 선거의 선거구 획정 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 획정 안에서 전국적으로 가장 눈에 띄는 선거구가 있다. 속초, 철원, 화천, 양구, 인제, 고성의 6개 군이 합쳐진 선거구가 나온 것이다. 이번 선거구 획정이 인구 기준 하한선을 13만 6천 500명으로 잡고 상한선을 27만 3129명으로 잡다 보니 벌어진 결과이다. 강원도는 총 8개의 선거구를 가지고 있다. 선거구 평균 인구수 20만 4847명을 기준으로 할 때 153만 명의 강원도에는 8개의 선거구가 있다. 8개 선거구 중 기존에는 춘천과 강릉이 1개, 원주가 2개의 선거구였다. ‘동해시·삼척시’, ‘태백시·횡성군·영월군·평창군·정선군’, ‘속초시·고성군·양양군’, ‘홍천군·철원군·화천군·양구군·인제군’이 남은 4개의 선거구였다. 그런데 이번에 춘천의 선거구가 2개로 분할되면서 원주의 2개 선거구를 제외한 5개의 선거구가 4개로 조정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속초시·고성군·양양군’과 ‘홍천군·철원군·화천군·양구군·인제군’의 두 개 선거구가 하나로 합쳐진 것이다. 그중 양양은 강릉과 같은 선거구가 되고 홍천은 태백이 빠진 ’횡성군·영월군·평창군·정선군’에 속하면서 6개의 군이 거대한 하나의 선거구가 된 것이다. 이 선거구를 지도에서 보면 강원도 북부에 거대한 하나의 벨트처럼 보인다.

당연히 불만들이 많다. 생활방식이 다른 영동과 영서가 한 선거구로 묵인 것도 문제다. 문화를 토대로 한 지역 정체성도 문제다. 이 넓은 선거구에서 선거를 치르는 것이 얼마나 어렵겠는가! 전형적인 게리맨더링의 소지도 있다. 여야에서도 비판이 많지만 가장 강력한 영향을 받는 강원도 정치인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선거는 제도이다. 선거는 경선과 공천을 둘러싼 입후보 방식, 투표방식, 선거구의 크기, 당선자 확정방식으로 구성된 제도들의 묶음이다. 이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선거구 획정’이다. 이론적으로 볼 때 선거구 획정은 유권자의 선호가 결과로 만들어지는 데 중요하다. 따라서 ‘1인 1표 1가치의 원칙’을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한다. 한편으로는 ‘인접성(contiguity)’, ‘밀집성(compactness)’, ‘행정경계의 반영’이라는 기준도 충족해야 한다. 단순화하자면 대의민주주의에서 ‘대표’를 선발할 때 선발하고자 하는 유권자들의 범위와 기준에 관한 문제인 것이다.

여야는 다시 합의해서 선거구를 최종적으로 결정할 것이다. 결과가 부분적으로 변경될지 모른다. 그러나 큰 틀에서 선거구 획정 전체를 변경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 부분에서 주목할 것이 추세이다.

한국은 가장 빠른 속도의 초고령화로 가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을 보인다. 수출의존형 경제는 거대기업을 중심으로 하고 있고, 거대기업이 몰린 도시를 중심으로 경제는 돌아간다. 이런 추세로 가면 대도시와 위성도시에 더 많은 사람이 몰리게 될 것이다. 지방인구는 더욱 희박해질 것이다. 앞으로는 더 넓은 지역을 하나의 선거구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미래에는 도(道) 단위의 경계조차 무색해질 수도 있다. 도시의 과도한 대표성과 지방의 과소한 대표성은 불 보듯 뻔하다.

물론 이런 우려에 대해 반박도 가능하다. 우선, 전국 선거인 대통령선거나 지역 단위의 지방선거가 대표성을 보완한다. 또한, 비례대표제도를 통해서 부족한 기능적 대표성을 채울 수도 있다. 게다가 지역 경계성이라는 것이 앞으로도 계속 의미가 있을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선은 정치적으로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장치이다. 국회의 역할 중 지역 대표성 기능은 여전히 가장 중요한 기능 중 하나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변화하고 있는 정치지형에 맞는 제도변경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식 상원 제도와 같은 도별 정체성을 반영하는 제도가 될 수도 있다. 좀 먼 미래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북한과의 통일을 고려하면서 각 지역의 불균등한 인구 분포를 전국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제도를 모색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인구의 변화. 정치 제도는 이러한 추세를 반영해야 한다. 21대 국회에서는 한국 사회의 구조 변동을 좀 더 반영해주면 좋겠다.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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