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범 변호사의 '시사와 법' (48)-갈팡질팡 직권남용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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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범 변호사의 '시사와 법' (48)-갈팡질팡 직권남용 판결
  • 신종범
  • 승인 2020.02.28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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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범 변호사
신종범 변호사

안태근 전 검사장은 2010년 한 장례식장에서 서지현 검사를 성추행한 이후 2015년 검찰 인사를 총괄하는 법무부 검찰국장으로 근무하면서 서 검사를 통영지청으로 발령 내 인사상 불이익을 줬다는 혐의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로 기소되었다.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은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특정 문화·예술계 인사들에 대한 지원을 배제한 혐의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로 기소되었다.

임성근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는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수석부장으로 재직 시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행적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는 칼럼을 쓴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의 명예훼손 사건의 재판장에게 선고 전 중간 판단 성격으로 해당 칼럼이 허위라는 것이 입증되었다는 점을 밝히라고 요청하는 등 3건의 재판에 불법적으로 개입한 혐의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로 기소되었다.

조현오 전 경찰청장은 이명박 정부시절 천안함 사건, 연평도 포격사건, 검경 수사권 조정 등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사건 관련하여 경찰관 1,500여명을 동원해 정부 또는 경찰에 유리한 댓글을 작성해 여론을 조작한 혐의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로 기소되었다.

위 각 사건은 모두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로 소위 권력기관의 수장 또는 최고위직 공무원들이 기소된 사건들로 올해 법원의 판결이 선고된 사건들이다.

안태근 전 검사장 사건의 경우, 제1심과 제2심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를 인정하였으나, 대법원은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하였다. 대법원은 “안 전 검사장이 서 검사를 여주지청에서 통영지청으로 발령내는 과정이 검사 전보인사의 원칙과 기준을 위반해 직권남용죄에서 말하는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때'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 며 “검사 인사에 관한 직무집행을 보조 내지 보좌하는 실무 담당자도 그 범위에서 일정한 권한과 역할이 부여돼 재량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사건의 경우에도 제1심과 제2심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를 인정하였으나, 대법원은 원심을 파기하고 환송했다. 대법원은 김 전 실장 등이 정치적 견해 등을 이유로 정부 지원을 배제한 것은 ‘직권남용’에 해당하지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직원 등이 문화체육관광부에 명단을 송부하고 사업 진행 상황을 보고한 행위 등이 “의무 없는 일”에 해당하는지 다시 판단하라고 했다.

임성근 부장판사 사건의 경우에는 제1심이 판결이 있었는데, 결과는 무죄였다. 담당 재판부는 임 부장판사의 재판 개입에 대해 “지위나 개인적 친분 관계를 이용해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는 위헌적 행위”라고 밝히면서도 형법상 직권남용죄가 성립하려면 “공무원이 직무권한에 속하는 사항에 관해 위법·부당하게 권한을 행사”해야 하는데, 재판 관여 행위 자체가 형사수석부장판사의 일반적인 직무권한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죄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조현오 전 경찰청장은 제1심 판결이기는 하지만, 유일하게 ‘유죄’ 판결(징역 2년)을 받고 법정구속되었다. 담당재판부는 “조 전 청장이 정부 정책과 경찰 조직을 옹호하려 경찰관들이 신분을 숨기고 포털 댓글 작성과 트위터 활동을 하게 해 직권을 남용했다”고 밝혔다.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때”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형법 제123조). 즉 “직권을 남용하여”,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권리행사를 방해한 경우”에 성립하는 범죄이다. 이를 각 사건에 어떻게 적용하느냐에 따라 판례의 결론이 달라졌다.

안태근 전 검사장 사건과 김기춘 전 비서실장 사건의 제1심, 제2심은 모두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가 성립한다고 보았지만, 대법원은 이와 달리 이들의 지시행위(서 검사를 포함한 검사 인사안 작성, 리스트 송부 등)가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때”에 해당하지 않는다거나(안태근) 그에 해당하는지 다시 판단(김기춘)하라고 파기환송하였다.

임성근 부장판사의 경우에는 “직권을 남용하여” 라는 부분이 문제되었다. 제1심 법원은 임 부장판사의 재판 개입 행위가 당시 임 부장판사가 맡고 있던 형사수석부장의 ‘일반적 권한’이 아니므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즉, “직권”(재판에 개입할 권한) 자체가 없기 때문에 남용도 있을 수 없다는 논리였다. 다만, 조현오 전 경찰청장의 경우에 제1심 법원은 경창청장이라는 “직권을 남용하여” 부하인 경찰관들에게 여론조작이라는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였다”라고 유죄 판단하였다.

일반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위 사건 모두 최고위공직자들이 그 지위를 이용하여 저지른 불법행위로 보이는데 왜 재판부 마다 판결이 달라지는 것인지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 같은 법조인들이니까 혹은 제식구니까 감싸주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만도 하다. 재판부는 법리에 따른 판단이라고 하지만, 재판부마다 판단이 다르니 어느 법리가 맞는 것인지도 모를 지경이다.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갈수록 떨어지는 이유를 이 판결들에서도 보게 된다.

신종범 변호사
법률사무소 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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