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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삽질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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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삽질의 가치
  • 안혜성 기자
  • 승인 2020.02.07 17: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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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저널=안혜성 기자] 오늘은 오랜만에 만화책 이야기를 한 번 해볼까 한다. 이번에 소개할 작품의 제목은 ‘80세 마리코’다.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겠지만 주인공은 80세의 코다 마리코씨다. 일본은 만 나이를 사용하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 나이로는 생일이 지났는지 여부에 따라 81세 마리코씨 또는 82세 마리코씨 되시겠다.

마리코씨는 사별한 남편과 함께 지은 집에서 아들, 손자 부부에 증손자까지 함께 살고 있다. 작가라는 직업도 있다. 최근에는 체력도 떨어지고 아이디어도 좀처럼 떠오르지 않아 젊은 시절부터 연을 맺어온 문예지에 에세이를 연재하는 정도긴 하지만 말이다.

여기까지 보자면 다복하고 안정적인 환경에서 굉장히 부러운 노후를 보내고 있는 것 같은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마리코씨의 글을 유일하게 실어주던 문예지는 출판업계의 전반적인 불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쇄신을 단행했고 마리코씨는 각광받고 있는 젊은 작가에게 지면을 뺏기고 만다. 게다가 가족들은 늘어난 식구와 변화된 생활패턴에 맞게 집을 개축하고 싶어하는데 마리코씨의 존재가 부담이 된다.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무너져버렸다. 아니 어쩌면 오래 전부터 상황은 달라지고 있었는데 애써 모른 척 묻어두었던 문제들이 결국 터져버리고 만 것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일까지 잃었으니 이제 가족들에게 더 부담만 될 것이다. 마리코씨는 고민 끝에 쪽지 한 장을 남겨두고 가출을 단행한다.

현실은 가혹했다. 80세 할머니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안전하게 쉴 수 있는 작은 방 한 칸을 얻으려고 해도 가족의 보증이 필요하다고 하니 말이다. 오롯이 혼자가 된 마리코씨의 세상은 차가운 거절로 가득했다. 다시 가족에게 돌아갈 수 없었던 마리코씨는 24시간 운영하고 개인 공간이 마련돼 있는 인터넷 카페에 들어가 보기로 한다.

다른 세대의 문화를 접하는 즐거움과 잠시 쉬어갈 수 있는 피난처를 찾은 안도감도 잠시, 안타까운 사연으로 버려진 고양이 한 마리를 거두게 되면서 마리코씨는 다시 길 위에 나앉게 된다. 독자의 입장에서도 걱정스러울 정도로 대책이 없는 상황인데 마리코씨는 좌절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배우고 편견 없이 사람들을 대하며 마리코씨는 모험 같은 매일을 살아간다.

마리코씨의 모험을 따라가다 보니 웹서핑 중에 읽었던 글이 떠올랐다. 정확한 문구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의미가 더 중요하다는 측면에서 간단히 소개하자면 ‘삽질의 가치’에 대한 내용이었다. 흔히 무의미한 혹은 무가치한 노력을 하는 것을 두고 “삽질 한다”고 표현한다. 하지만 글쓴이는 “삽질도 의미가 있다”고 했다. 직접 삽질을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 분명히 있으며 그 삽질로 일가를 이루지는 않더라도 반드시 언젠가는 또 어딘가에 삽질을 하면서 배웠던 것들, 느꼈던 것들이 도움이 될 때가 있다는 것.

“삽질 한다”는 표현은 수험생들이 종종 느끼는 감정과도 통하는 부분이 있다. 공부를 하다보면 문득 ‘잘못된 방향으로 공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든다. 한 발 더 나아가면 ‘만약 시험에 합격하지 못한다면 지금 하고 있는 공부, 노력들이 모두 삽질이 되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정말 그럴까? 아마 마리코씨라면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것이다.

마리코씨는 일도, 집도, 가족도 잃었다. 80년간 쌓아온 모든 것이 무너진 것 같지만 그것들은 외형적인 것들뿐이다. 어차피 형태가 있는 것들은 모두 사라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마리코씨가 80년이라는 시간을 살아오며 쌓아온 경험, 노력, 생각, 감정 등은 고스란히 마리코씨 안에 남아 모험을 이어갈 수 있는 강력한 힘이 돼 주고 있다.

삽질에도 가치가 있다. 반드시 무언가는 얻게 될 것이다. 그러니 손익계산은 저쪽에 밀어두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잠시 잊고, 80세 마리코씨처럼 씩씩하게 모험을 즐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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