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업 변호사의 법과정치(148)-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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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업 변호사의 법과정치(148)-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
  • 강신업
  • 승인 2020.02.07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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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업 변호사, 정치평론가
강신업 변호사, 정치평론가

조선시대 정치사에 기라성 같은 정치인들이 명멸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굵은 족적을 남긴 정치인을 들자면 정암(靜庵), 퇴계, 율곡, 우암이다. 먼저 중종반정으로 출사한 정암 조광조는 높은 이상을 갖고 조선을 요순시대와 같은 태평성대로 만들고자 했던 정치인이었다. 비록 그의 정치실험이 갈등 관계에 있던 공신들의 모함을 받아 기묘사화로 좌절되었지만, 그의 높은 뜻은 이후 조선의 사림파에 전수되어 조선을 관통하는 정치이념이 되었다.

퇴계 이황은 조선 성리학의 기초를 세우고 나아감과 물러남의 의미를 알아 한 단계 높은 정치적 품격을 구현한 정치인이었다. 퇴계는 20세에 주역을 독파한 후 성리학에 대한 집중적 연구를 통해 심오한 학문 세계를 이루었다. 그의 정치이념은 공자의 유교적 이상사회를 현실에서 구현하는 것이었다.

율곡 이이는 조선 중기의 유학자이자 정치가로 현실·원리의 조화와 실심(實心)·실공(實功)·실효(實效)를 강조하는 무실사상(務實思想)을 제시하고 조선 사회의 제도 개혁을 주창했던 개혁가적 정치가다. 율곡은 서얼제도 폐지, 남녀차별 폐지 등 사회개혁을 주창하고 대동사회(大同社會)라는 평등지향적 사상을 전개했으며, 그 외에도 10만양병설로 대변되는 군사개혁 등 부국강병책을 제시했다.

우암은 후세의 학자들에 의해 송자라고 불릴 정도로 주자학에 밝았고 예학에 능했다. 우암은 조선 후기 가장 영향력이 높았던 정치가이자 학자로 조선을 예(禮)의 나라로 만들고자 했다. 조선후기 사림에서 그의 영향력은 대단한 것이어서 그는 조선왕조실록에 무려 3000번이 넘게 등장한다.

위 4명의 조선의 정치인들은 각기 주장하는 바가 같지 않고 정치적 이념과 그 이념의 현실적 실천 방법과 정도는 달랐으나, 어쨌든 분명한 것은 그들의 전 생애를 통해 일관성을 보여주었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길 수 있었던 이유는 시류에 부유하지 않고 올곧은 신념과 지조를 갖고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려 노력했기 때문이다.

사람이 한 평생을 살며 한 순간도 흐트러지지 않고 일관된 행보를 보이기란 쉽지 않다. 처음엔 똑바로 걷다가도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갈지자걸음을 걷는 게 인생이다. 처음엔 독립운동을 하다가 어느 순간 일제에 부역해 이름을 더럽힌 정치인들을 우리는 너무도 많이 알고 있지 않는가.

역사는 반복된다지만 지금 이 순간도 예외는 아니다. 많은 정치인들이 일관된 행보를 보이지 못하고 갈지자걸음을 걷다가 자신의 명예를 더럽히고 한 순간 나락으로 추락하고 있다. 처음엔 대단한 국민의 지지를 받으며 나타난 신진 정치인도 어느 새 흙탕물을 뒤집어 쓴 채 그저 그런 정치인이 되기 십상이다.

그런가 하면 윤석열 검찰총장은 현역 정치인이 아님에도 어느 대선주자적합도 조사에서 기라성 같은 정치인들을 물리치고 이낙연 전 총리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이것은 그만큼 현역 정치인들에 대한 실망이 크다는 것이고, 그만큼 본받을만한 정치인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정권의 갖가지 방해와 압박에도 불구하고 일관된 행보를 보이는 윤석열 총장에 대한 기대와 응원의 의미도 있음은 물론이다.

서산대사(西山大師)는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라는 시를 지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에 대해 일찍이 하나의 지침을 주었다.

踏 雪 野 中 去 (답설야중거)
눈 내린 들판 한가운데를 걸어갈 때에는

不 須 胡 亂 行 (불수호란행)
발걸음을 함부로 어지러이 걷지 말라.

今 日 我 行 跡 (금일아행적)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국은

遂 作 後 人 程 (수작후인정)
반드시 훗날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백범 선생은 서산대사의 이 시를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고 일관되고 지조 있는 삶을 살았다. 백범 선생이 38선을 넘으며 이 시를 읊었다는 일화는 매우 유명하다. 이 시를 쓴 백범(白凡)의 친필이 현재 청와대 여민관에 백범 선생의 존영과 함께 걸려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눈 내린 들판이다. 그런데 앞장 서 걸어가는 정치지도자들의 발걸음은 마냥 어지럽다. 뒤따르는 국민들은 자기 우두머리를 따라 우왕좌왕, 좌충우돌이다.

강신업 변호사, 정치평론가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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