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봉사(奉仕)의 이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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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봉사(奉仕)의 이중성
  • 송기춘
  • 승인 2020.01.31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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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춘 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송기춘 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학부학생들과 함께 라오스에 봉사활동을 다녀왔다. 라오스 하면 ‘꽃보다 청춘’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하여 널리 알려진 방비엥이나 루앙프라방 등을 떠올리지만, 학생들이 활동한 지역은 씨엥꽝이라는 곳이다. 라오스에서 제일 가난한 지역 가운데 하나이고, 베트남 전쟁 시기에 미국 CIA가 저지른 비밀전쟁(1964-1973)의 상흔이 아직도 생생한 곳이다. 작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항아리평원(Plain of Jars) 방문자센터는 당시 라오스에 2억7천만 개의 폭탄이 투하되었다고 설명한다. 9년 동안 매 8분마다 폭격이 이뤄진 셈이다. 관광지인 방비엥 시내 한복판에 있는 공터는 당시 폭격기가 뜨고 내리던 미군 비행장이었다. 이때 투하된 폭탄 가운데 30%인 8천만 개가 불발탄이라고 한다. 이 불발탄은 아직도 터지고 또 발굴되고 있다. 호치민 루트에 집중된 폭격과 불발탄은 아직도 라오스 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봉사란 국가와 사회 또는 남을 위하여 헌신하는 일이라고 한다. 많은 것을 가진 이들이 가지지 못한 이들에게 베풀거나 기부하는 것을 봉사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나는 봉사활동을 가기 전에 학생들에게 이런 당부를 한다. 우리는 대단한 것을 하러 가는 것도 아니고, 많이 가져서 없는 사람들에게 뭘 주러 가는 것도 아니다, 라오 사람들은 우리가 주는 거 없이도 잘 살 수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우리가 필요해서 서로 나누고 서로 기쁨을 누리고자 하는 것이라고. 실제 뭔가 주려고 갔다가 더 많은 것을 얻어 온다고 말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교수들도 그렇지만 변호사들도 그 직업적 사명의 하나로 사회봉사를 든다. 전문지식을 통하여 사회적 필요에 부응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회봉사에는 우월한 지위에서 베푼다는 의식이 자리잡는 경우가 많고, 하면 좋은 것이지만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닌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양질의 전문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자체가 최대의 사회봉사라고 말하기도 한다. 사람이란 모두가 제 각각의 삶을 살아가니 전문가 집단이 다른 사람이나 집단에 대해 무엇인가를 해 줘야 할 의무는 없다.

전문가 집단의 사회봉사는 사실 매우 이기적인 것이기도 하다. 전문가 집단이 자기 집단의 사회적 가치를 확인하고 높이는 역할을 함으로써 자신 또는 집단의 명예를 증진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식과 영업의 독점과 우월적 지위에 의한 사회적 비난과 반감을 누그러뜨리고 전문가 집단으로서 사회적 인정을 얻어 사회적 지위를 공고하게 하는 데 기여하는 것이다. 부자들의 사회봉사나 기부도 같다. 허구적인 자유의 결과로 감당하고 살아야 하는 현실의 모순을 적절하게 위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부 잘 하는 것이 사람이 선해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라오스의 관문인 왓타이국제공항은 일본이 지원하여 건설되었다. 수도 비엔티안의 시내버스는 일본 ‘국민’이 기증한 것이다. 메콩강변 제방 축조는 한국이 지원하였다. 시골에도 한국의 봉사단체에서 지원하여 건설된 건물이 적지 않다. 필요한 곳에 적절한 지원을 하는 일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무상지원은 거저 주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무상원조를 통하여 다른 투자의 바탕을 만들고 국가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이용하여 그 국가 기업의 마케팅을 촉진한다. 도로 건설을 지원하고 시장을 넓힌다. 중국은 라오스를 관통하여 방콕에 이르는 고속철도를 건설하고 있다. 중국 자본이 넘쳐흐른다. 우리 학생들의 봉사활동이 한국어, 과학, 위생교육이나 태권도나 K-Pop, 사물놀이 등 한국문화 교류 정도에 그친다고 해도, 이것은 크게는 문화와 시장의 교류와 확장이라는 차원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

라오스는 아픔의 땅이다. 하지만 스스로 아픔을 치유하는 힘을 가진 땅이다. 씨엥꽝 지역에는 발굴된 폭탄으로 집의 기둥을 세우거나 가게 장식을 한 곳도 적지 않다. ‘칼을 갈아 쟁기를 만드는’ 게 평화의 상징이라면 라오 사람들이 폭탄을 장식으로 만드는 위대함을 보여준다. 추락한 미군비행기로도 알루미늄 숟가락을 만든다.

송기춘 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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