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코로나 바이러스 : 실체와 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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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코로나 바이러스 : 실체와 심리
  • 신희섭
  • 승인 2020.01.31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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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새로운 바이러스가 공격하고 있다. 이번은 코로나바이러스다.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코로나바이러스가 폐렴 환자를 빠르게 늘리면서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빼앗고 있다. 그런데 바이러스의 확산속도보다 더 빠르게 공포가 확대되고 있다.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번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는 크게 두 가지 경향을 보여준다. 첫째, 바이러스의 공격 주기가 빨라지고 있다. 둘째, 바이러스의 위협이 전통적인 군사위협보다 더 실체적이며 더욱 현실적이다.

첫째. 바이러스의 공격 주기가 빨라지고 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공격이 빈번해지고 있다. 1976년 에볼라 바이러스가 수단에서 발생했다. 치사율이 90%에 이를 정도로 치명적인 이 바이러스는 2014년 서아프리카에서 다시 발생해 전 세계적으로 만 3천 명 이상을 사망하게 했다. 2019년 콩고를 다시 공격한 이 바이러스는 1,676명의 목숨을 집어삼켰다. 2002년 사스(SARS)가 중국 광둥과 홍콩에서 발생해 다시 전 세계를 공격했다. 900명 이상이 이 공격에 사망했다. 2009년 신종인플루엔자가 멕시코에서 발생했다. 유럽과 아시아로 빠르게 퍼진 이 바이러스는 1만 8천 명 이상의 목숨을 빼앗았다. 2016년 모기를 숙주로 하는 지카 바이러스가 브라질에서 퍼져 신생아 소두증과 뇌신경 장애를 유발했다. 그 사이 2015년 한국에서는 중동호흡기증후군의 공격으로 38명이 사망했다.

물론 바이러스의 공격이 정확한 주기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은 사실이다. 원인은 여러 가지다. 바이러스의 변종화와 진화. 다양한 숙주확보. 여행확대와 교통기술 발전에 따른 확산속도 증대. 이런 추세들은 질병 연구자들이 가장 끔찍하게 생각하는 ‘판데믹(Pandemic: 대역병)’이 멀지 않았다는 전조로 해석되기도 한다.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슈퍼 바이러스의 출현과 수억 명 이상의 사망자 발생이란 묵시록적 예언.

둘째, 바이러스의 위협은 ‘실체’적이며 ‘현실’적이다. 1918년 1차 대전 중 서부 전선에서 발생한 ‘독감’으로 1년이 채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 2천만 명이 사망하였다. 1년 넘게 지속한 ‘스페인 독감’으로 총 5천만 명이 죽었다. 추산되는 수치지만 사망자 수는 가히 엄청난 것이다. 1914년에 시작하여 1918년에 끝이 난 1차 세계대전으로 사망한 사람은 1200만 명 정도 된다. 1939년 시작하여 1945년에 종결된 2차 대전의 사망자도 6천만 명 정도 된다. 인간이 인간에 대해 적대감을 가지고 어마어마한 양의 폭약을 사용해 살상한 것과 비교해보면 바이러스의 파괴력이 얼마나 막강한지 알 수 있다. 인류 역사에 있어서 스페인 독감은 중세시대 유럽에서 2천 5백만 명(당시 유럽 인구의 1/3에서 1/4 정도로 추산)을 사망하게 만든 흑사병과 함께 ‘판데믹’에 해당할 수 있다.

바이러스의 공격이 ‘실체’적이라는 것은 해석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공격하는 바이러스가 있고, 퍼 나르는 숙주가 있으며, 그로 인한 막대한 피해자들이 있다. 이것은 그저 두려움이란 이름으로 머릿속에서 만들어지고 상상된 것만은 아니다. 이에 더해 바이러스의 공격이 ‘현실’적이라는 것은 단지 ‘개연성’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것은 전통안보와 비교해보면 명확하다.

탈냉전 이후 어떤 국가가 다른 어떤 국가의 공격을 받아 사라진 경우는 없다. 국가 간 전쟁도 거의 없다. 계획된 폭력과 훈련받은 사람들에 의한 무력공격 대부분은 내전에서 발생한다. 그래서 평화로운 시기의 사람들에게 미사일의 공격을 받거나 총알이 날아다니는 전쟁과 무력공격은 ‘개연성’의 세계에 해당한다. 실제 일어날 경우가 어느 정도 될지를 그저 관념적으로 따져보게 되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평생을 살면서 미사일 공격을 받을 확률이 어느 정도나 될지. 하지만 바이러스는 주기적으로 공격한다. 실제 이미 나를 공격했을 수도 있고 앞으로도 나를 공격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바이러스의 공격이 바로 사망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전통적인 무력공격이 가져오는 살상력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이 부분에서 바이러스는 개인적인 ‘안전(safety)’과 사회와 국가의 ‘안보(security)’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든다. 국가를 중심으로 군사력과 경제력 차원에서 국제관계를 보는 현실주의 입장에서 ‘안보’는 실체적이며 의도를 담고 있는 ‘위협(threat)’ 차원에서 다뤄진다. 개인적 안전보다는 국가안보가 중요하다. 반면에 국가와 비국가 행위자 그리고 생태계까지를 포괄하는 자유주의 이론에서 ‘안보’는 개연성이 있고 의도가 없는 경우를 포함하는 ‘손상(damage)’ 차원에서 다뤄진다. 개인적 차원의 안전이 국가적 차원의 안보와 다르지 않다.

여기서 오해하지는 마시라. 바이러스 때문에 현실주의의 안보관이 의미 없게 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다른 형태로 안전과 안보에 대한 도전이 생기고 있다는 것이다. 질병이 그저 위생만의 문제는 아니다. 물론 감기와 같은 바이러스는 늘 있었던 것인데 너무 과한 해석이라는 비판도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빈번해진 바이러스의 공격은 그저 며칠 앓아누우면 되는 감기와는 ‘치명성’에서 다르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 있다. 개인적인 ‘안전’이나 국가적 ‘안보’는 위협을 가하는 ‘실체’와 이것을 받아들이는 ‘심리’가 동시에 작동한다. ‘실체’가 있지만, 이것을 어떻게 ‘심리’적으로 해석하면서 받아들이는지는 별개의 문제가 될 수 있다. 바이러스의 공격이 있던 때를 생각해보라. 바이러스와 감염된 환자들이라는 실체와 이것을 받아들이는 공포가 똑같았던 것은 아니다. “그렇게 겁먹을 필요가 있어?”라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유비무환이지”라고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다. 한편 마치 자신에게 곧 닥친 일처럼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바이러스가 퍼진다고 하여 특정 지역의 식습관이나 생활방식이 바뀌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한번 발병된 지역과 차단된 삶을 살수도 없다. 비행기가 바이러스를 가장 넓게 그리고 가장 빠르게 퍼뜨린다고 하여 비행기를 안 탈 수도 없다. ‘실체’ 차원에서는 그저 감염되지 않도록 예방하고 발 빠르게 백신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심리’ 차원에서는 공포와 두려움을 확대 재생산할 필요는 없다. 특히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고개를 드는 인종주의적 적대감, 국수주의적 공격성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 역사를 보라. 생각보다 인간은 강하다.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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