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미국-한미관계의 어려움 : 미국 패권체제와 일방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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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미국-한미관계의 어려움 : 미국 패권체제와 일방주의
  • 신희섭
  • 승인 2020.01.17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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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한미관계는 어렵다. 그리고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방위비 분담금 조정, 호르무즈 해협 파병, 북한 핵 문제에 대한 이견조율, 한미동맹과 미일 동맹 사이의 관계 조정 등등 산적한 문제들이 많다. 북한의 핵 능력 증대, 중국의 경제적 부상과 해군력 증강, 중국과 러시아의 결탁 가능성 등등 앞으로 부담이 될 사안들도 줄줄이 대기 중이다.

한미관계의 어려움을 해결해보겠다고 한 이전 정부들의 선제적 노력 들은 별로 성과를 보지 못했다. 김대중 정부의 납북화해협력 정책과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허브론-동북아균형자론과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평화프로세스가 그랬다. 이번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조정자외교 역시 아직 큰 결실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다. 이들 정책은 우리가 먼저 외교적 조치를 통해 주변의 외교환경을 바꿔보겠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왜 이러한 선제적 노력들은 성과를 잘 내지 못할까? 실패의 반복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반복’했다는 것은 ‘구조의 무시’가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 또한 구조를 극복할 수 있다는 ‘신념’ 혹은 ‘자신감’이 가세했을 가능성 역시 크다.

현재 국제정치 ‘구조’의 핵심은 패권에 있다. 논리적으로 보면 패권은 외부의 견제 세력이 없는 상태다. 외부적 ‘견제 부재’는 국내정치가 패권국의 행동을 결정하게 만든다. 국내정치의 외교 규정.

물론 기존 제도들의 구속력이나 외교적 관성도 있다. 하지만 이런 요인이 국내정치의 규정력을 뒤집기는 어렵다. 견제가 없고 국내정치가 대외관계를 규정하다 보니 패권 국가는 과잉확장(overstretch)을 하거나 과소확장(understretch)을 하는 일이 빈번하다. 너무 많은 군사적 개입과 너무 적은 경제적 지원의 결합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패권체제에서 국내정치가 정말 중요한지는 탈냉전기 미국 정부들의 외교행태가 입증해준다. 클린턴 정부의 다자주의 협조주의 외교. 조지 W 부시 정부의 일방주의 개입주의 외교. 오바마 정부의 다자주의 외교. 트럼프 정부의 미국 우선주의 일방주의 외교. 이들 정부는 패권체제라는 공통된 특징에도 불구하고 전혀 다른 외교정책을 펴왔다. 바뀐 것은? 대통령 개인과 소속정당뿐.

패권 국가 미국은 ‘행동의 자유’를 가진다. 강자의 특권인 ‘행동의 자유’의 다른 말은 무책임이다. 다른 국가들의 눈치를 안 보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이때 미국 국내정치는 ‘행동의 자유’의 방향과 범위를 규정한다. 게다가 운 좋게도 미국의 지정학은 다른 나라는 가질 수 없는 수많은 자유를 추가로 선물했다. 외부 침략 걱정이 없다. 자급자족이 가능한 크고 부유한 경제구조를 안겨줬다, 식량과 에너지를 아쉬워할 필요가 없다. 미국을 새로운 로마제국으로 만들 수 있는 이러한 조건들이 실제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미국을 패권 국가로 우뚝 서게 했다.

그런데 미국 국내정치에서는 보호주의의 요구가 강하다. 이것은 미국의 상대적 경제력 약화와 특정 산업군의 붕괴 때문이다. 1945년 미국의 대외의존도는 4%에 불과했다. 그러나 미국의 대외의존도는 점차 높아지고 있다. IMF와 OECD의 2009년 통계에 따르면 미국의 GDP에서 수출은 7.5%를 차지했고 수입은 8.5%를 차지했다. 2018년 Bloomberg에 따르면 미국 GDP에서 수출은 13.9% 수입은 18.5%를 차지한다. 물론 아직도 미국은 GDP의 69.4%가 소비인 만큼 내수시장이 중요한 국가지만 그만큼 다른 국가와의 교역이 증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치열한 경쟁을 의미한다. 치열한 경쟁 뒤에는 수많은 시장 낙오자들이 있다. 이들은 아주 강력하게 미국 정부에 보호주의를 요구하고 있다. 트럼프를 누가 당선시켰는지를 보라.

미국의 국내정치에서 보호주의가 강화되는 다른 요인이 있다.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미국의 비중이 줄어들고 있다. 제조업을 기준으로 1945년 2차 대전이 종결될 시기에 미국은 전 세계 48%에 달했다. 그러나 Blomberg의 2018년 통계에 따르면 미국은 전 세계 GDP의 22%에 불과하다. 유로 지역(Euro Area: 유로를 사용하는 국가들)이 17%를 차지하고 있고 중국이 13%에 달한다. 이들은 미국에 필적하는 경쟁자는 아니다. 하지만 경제적 관점에서는 미국이 압도적인 국가도 아니라는 것이다. 1944년 브레턴우즈 체제를 만들 때처럼 미국은 여유롭지 못하다.

미국의 외교정책은 ‘비일관성의 일관성(consistency of disconsistency)’으로 표현할 수 있다. 비일관적 태도가 일관된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알기 어렵다. 외부적으로 견제되지 않고, 변화무쌍한 국내정치가 대외관계를 규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측 가능성이 크지 않은 것이다.

낮은 예측 가능성이 한국 외교정책을 어렵게 한다. 한미관계는 투키디데스의 “강자는 할 수 있는 일을 하지만 약자는 그들이 해야만 하는 일을 감내해야 한다. (while the strong do what they can and the weak suffer what they must).”라는 명제가 너무나 잘 들어맞는 것이다. 미국은 조선을 국가로 승인한 첫 번째 서양국가지만 조선을 첫 번째로 버린 서양국가다. 미국은 대한민국을 수립하게 해준 국가지만 한편 1949년 맥아더 연설과 1950년 애치슨 선언에서 한국을 방위선에서 제외한 국가이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미국은 누구보다 재빨리 달려와 주었지만, 동맹체결에는 난색을 보였다. 한국군이 미국을 도와 베트남의 밀림에서 전쟁을 수행하던 1969년. 미국은 닉슨선언으로 아시아에서 손을 떼겠다고 했다. 그리고 1971년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기도 했다. 반대로 레이건 정부 시절 한미동맹을 최우선으로 여기기도 했다.

이런 역사를 교훈 삼아서 한국이 ‘정책 자율성’을 가져보려는 외교적 노력들이 있었다. FTA들을 통해 경제적 의존도를 낮추어 보려는 노력이나 중견 국가 모델에 기초하여 기여외교와 공공외교로 한국의 발언권을 높여보려는 노력도 있었다. 그러나 하위정치영역에서의 노력 들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안보정책은 우리가 마음먹은 대로 잘 안 된다. 힘의 정치가 강대국 편이기 때문이다. 힘의 정치를 초월해 보려는 ‘신념’과 ‘자신감’들은 권력 정치가 작동하는 순간 그 힘을 잃어버려왔다.

체념하고 숨만 쉬면서 있을 수도 없다. 내가 믿는 신념과 가치관을 쫓아 운신의 폭을 넓히는 것도 쉽지 않다. 그렇다고 권력 정치의 상황만 주시하는 것은 한국인들에게 맘에 들지 않는다. 힘은 부족하지만, 머리가 좋은 한국인들은 이런 어정쩡한 상황이 성에 찰 리 없다. 그러나 어떻게 하겠는가? 무엇을 변화시키기에 우리는 “아직” 권력이 약한 것을.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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