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경자년 새해 아침, 오시영의 “눈물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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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경자년 새해 아침, 오시영의 “눈물이야기”
  • 오시영
  • 승인 2020.01.03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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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전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오시영 전 숭실대 법대 학장 / 변호사 / 시인

경자년 쥐띠, 새해가 밝았다. 우리 모두는 밝아오는 새해, 무언가 새로운 다짐을 한다. 매년 성공하지 못하는 금연이나 금주, 또는 운동을 열심히 해서 기필코 살을 빼겠다거나 등등 무언가 좋아하는 것을 멀리하거나 싫어하는 것을 가까이 하겠다며 다짐을 한다.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을 멀리 하거나 가까이 하지 않으면, 다시 말해 고통을 참지 않으면 새로운 얻음은 불가능하다. 쥐의 영특함과 생존보존의 치열함을 우리 모두 배워야 할 것이다. 좋은 게 좋은 세상에서 정말 하기 힘든 것, 정말 하고 싶은 것을 고통 속에서 하면서 또는 참음으로써 올 한 해 또 보람 있게 살았으면 한다. 불과 며칠 전이지만, 까마득한 옛날 일처럼 느껴지는 일, 공직선거법과 고위공직자수사처법이 국회에서 우여곡절 끝에 새롭게 개정되거나 제정되었다. 공직선거법의 주요쟁점은 선거연령이 만18세로 낮아지고 부분적이지만 연동형비례대표제의 도입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18세 청년들에게 선거권이 주어졌다는 것은 고등학교 3학년 중 6분의 1 정도가 올 4월 실시되는 총선에서 투표권을 행사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만 18세가 되는 학생 중 1-2월생은 2월말에 졸업하여 대학생이 될 것이어서 종전과 달라질 것이 없고, 3-4월 출생 학생들이 총선 투표권을 처음으로 가지게 될 것이고, 그 이후 출생한 고3 학생은 투표권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고등학생 중의 일부와 대학교 신입생 중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하던 4분의 3 가량이 투표권을 행사할 것이어서 18세 청소년 53만 명 가량이 새로운 투표권자로 유입됨에 따라 선거지형에 어느 정도의 변화가 찾아올 것은 분명하다.

필자가 궁금한 것은 고등학교 3학년 중 6분의 1 가량이 투표권을 가지게 되면, 그것이 과연 문교 행정 등 교육계에 어느 정도 파급력을 미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여태까지 정치에서 무풍지대였던 고등학교에서 18분의 1 정도의 학생들이 투표권을 행사하게 될 때 그 18분의 1은 나머지 18분의 17에 해당하는 고교 1, 2학년생과 나머지 3학년 학생들에게도 정치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나비효과를 가져올 것이고, 오히려 투표권자와 비투표권자로 차별화된 선거연령이 고등학교에 더 많은 정치적 바람을 불러일으켜 정치를 통해 주장해야 할 권리의 중요성을 보다 크게 각인시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는다. 고교에 민주주의의 기본인 투표권 행사를 통해 학생들이 투표권의 위력을 실감할 것이고, 이를 통해 촉발될 학교민주화는 현재 고등학교에 내재되어 있는 많은 비민주적 학사행정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그리고 비례연동제를 통해 일정 비율의 정당지지율을 확보한 군소정당의 의원수가 늘어나게 되어 소수당을 지지했던 국민들의 사표(死票)가 방지되고, 다당제가 실현됨으로써 상호 합의와 화해를 통해 정치가 한 단계 성숙해지는 계기가 될 것으로 예측된다. 연동비례제의 약점이라 할 수 있는 비례한국당이나 비례민주당을 만들어 거대 정당이 정략적으로 비례 국회의원을 독식하겠다는 이상한 정책이 추진되고 있으나, 이 역시 국민의 지혜로운 판단을 통해 꼼수가 통하지 않는 선거제도가 정착될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공수처법이 통과되었다. 불과 25명의 검사로 구성될 공수처이지만, 공수처는 판사와 검사 및 경무관 이상의 경찰에 대한 수사권과 기소권을 갖는다. 물론 수사권은 대통령부터 청와대를 비롯한 일정 고위직 공무원들에 대해서도 수사한 후 기소 여부는 다시 검찰청으로 이첩하여 검찰청 검사가 결정하겠지만, 공수처의 존재만으로 고위 공직자들의 비리 예방 효과는 크리라 기대된다. 하지만 여태까지 기소독점주의 원칙에 의해 검사만이 갖고 있던 기소권을, 그래서 범죄검사에 대한 검사의 기소권 행사를 엄청 자제하거나 무력하게 만들었던 검찰의 기소권이 이제 공수처에 의해 직접 감시 및 행사강제의 대상이 되었음은 거의 천지개벽에 가까운 변화를 가져오리라 예상된다.

특히 검사의 독직사건, 뇌물사건이나 부작위처분권의 남용에 의한 편파적 불기소 등 그 동안 베일 속에 가려졌거나 은폐되었던 수많은 검사에 의해 저질러졌던 범죄사실들이 만천하에 공개될 처지에 놓임으로써 검사의 기소권 행사가 보다 투명해질 개연성이 높아졌다. 검사에 의해 불이익이나 편파수사를 당했던 수많은 피해자들의 진정이나 고소 등이 팥죽 끓듯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 번도 다른 기관에 의해 수사를 받아본 적이 없는 검사들이 피의자신분으로 공수처 검사들 앞에서 수사를 받는 그림을 상상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그들이 수사의 주체에서 수사의 객체가 될 수 있게 됨으로써 평등한 법집행을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새해 아침 문득 필자의 저서 민사집행법에 수록된 서문 “눈물이야기”를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어진다. “사막도 눈물을 흘릴 때가 있다. 낙타의 눈물을 먹고 사는 사막은 그 눈물을 모아 오아시스를 만든다. 선인장의 가시로 우리의 심장을 찌르고, 그만 서러워 울라고 다독거리기도 한다. 사막의 눈물은 우리에게 어머니의 품으로 오고, 절망의 모서리에서 푸른 하늘로 오기도 한다. 우리네 삶은 나의 눈물로 시작해서 너의 눈물로 끝이 난다. 아니 그대의 눈물로 시작해서 나의 눈물로 마무리한다. 눈물은 신이 인간에게 내려준 향기로운 구원의 합장이다. 박토를 옥토로 가꾸는 신의 보살핌이다. 기뻐서 울고 슬퍼서 운다. 기뻐서 우는 게야 박수라도 칠 수 있지만, 슬플 때 눈물마저 없다면 어떻게 살 수 있으랴. 아마도 숨통이 막힐 게다. 신은 그 숨 막힌 절망의 암흑 사이로 생명을 주고자 눈물의 길을 낸다. 실존하는 자 어찌 눈물을 외면할 수 있으랴? 눈물은 신이 베푼 최후의 사랑이다. 우리의 눈물은 신의 마지막 발자국을 붙잡는 간절한 기도이다. 낙심의 강가에서 울부짖는 울음소리는 하늘문을 열고, 죽음의 기로에서 흘리는 눈물은 하늘 사다리를 엮는다. 하늘은 그 눈물 기도로 원수의 마음밭을 가꾸고, 장미의 가시로 그의 영혼을 뚫어 붉은 피 흐르게 한다.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함께 불쌍한 게 우리네 삶이다. 주어야 할 자의 교활한 미소가 선한 받을 자를 울리고, 냉혹한 받을 자의 웃음칼이 주어야 할 가난한 자를 눈물짓게 한다. 강제집행의 창을 두드리는 자 모두 함께 슬플 뿐이다. 양자 사이에 소통을 위한 뜨거운 눈물은 어디에도 없다. 막막한 바다가 출렁거릴 뿐이다. 어디로 발을 내디디랴?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자 어찌 인생을 논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지만, 강제집행을 당해보지 않은 자 어찌 인생의 밑바닥을 안다고 할 수 있겠는가? 끼니 이을 것 없는 자의 안방으로 붉은 고지서 날아들고, 차가운 비바람 몰아치는 광야로 내쫓김을 당하는 게 강제집행의 슬픈 자화상이다. 순탄한 인생, 가족들과 행복한 미소 속에 살다 어느 순간 사소한 실수로 이 같은 참담한 지경을 당할 수 있는 게 우리네 인생이다.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고, 기대하지 않았던 불청객의 방문 앞에 망연자실해지는 게 강제집행의 처절한 현주소이다. 국가공권력의 행사 앞에 약한 자, 국민은 아무런 힘이 없다. 그토록 보호받고 살 줄 알았던 법의 보호가 예리한 칼날 되어 자신의 목을 겨눌 때 심장이 멈추고 온 몸이 부들부들 떨려올 뿐이다. 세상은 잔인한 폭풍의 바다, 난파선을 만들어낸다. 어디에 몸을 의탁하랴? 낯선 타인의 거리에 홀로 서 있는 막막함을 누가 알랴? 그 마지막 순간, 오직 그대의 눈물만이 함께 할 뿐이다. 눈물만이 최후의 구원일 뿐이다. 실컷 울어야지, 그래야 사니까......(후략)”

올 한해, 우리는 많은 눈물 흘릴 일이 있을 것이고, 웃음 지을 일이 있을 것이다. 많은 국민이 많이 웃고 행복한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그러면서도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눈물이, 따뜻한 눈물이 함께 했으면 한다. 민사집행법, 강제집행법 저서를 집필하면서 법이론을 쓰면서도 그 마음속에는 강제집행을 당하는 자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반대로 받아야 할 것을 제대로 받지 못해 함께 망해가는 자의 강제집행을 행하는 마음은 또 얼마나 고통스러울까를 생각하면서, 강제집행의 이중적 고통을 생각하며 쓴 서문이 저 “눈물이야기”이다.

2020년, 경자년이 밝았다. 흰쥐의 해를 맞아 선호도 조사를 통해 밝혀진 한자성어로 직장인은 만사형통(18.9%), 구직자는 무사무려(無思無慮17.6%), 자영업자는 마고소양(麻姑搔痒·19.5%)을 각각 1위로 꼽았다고 한다. 무사무려는 장자(莊子)편에 나오는 무사무려시지도(無思無慮始知道)에서 온 말로 “아무런 선입감이나 고정관념 없이 허심 담담한 가운데, 비로소 인간의 지켜야 할 도리를 깨달아 알게 된다”는 뜻이다. 직업을 구하는 이들에게 좀 낯선 사자성어 같지만, 자영업자가 고른 마고소양은 “능력을 가진 사람의 도움으로 자기의 원하는 바를 뜻대로 이룬다”라는 의미로, 자영업자의 간절한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사자성어라 하겠다. 하지만 원래 마고소양은 마고라는 선녀가 채경이라는 관리가 품은 불경함을 꾸짖는 고사를 기록한 신선전의 마고편에 수록된 말이다. 즉 마고라는 선녀는 손톱이 새의 발톱처럼 생겼는데, 이를 본 채경이라는 관리가 자기 등이 가려울 때 긁어 주면 참 시원하겠다는 생각을 했고, 이를 간파한 방평이라는 다른 선녀가 채경을 붙잡아 채찍으로 체벌하여 혼을 낸 뒤 어찌 선녀에게 불경한 마음을 품을 수 있단 말이냐며 꾸짖었다는 데에서 유래된 말이다. 마고소양이 품고 있는 꾸짖음을 당하는 경우를 항시 마음속에 새기고 자영업자들이 사업에 조심을 다 하여 좋은 열매를 맺게 되기를 기도해 본다.

올 4월에는 개정된 공직선거 법으로 새로운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지고, 기존 선거와는 다른 형태의 새로운 입법부가 들어설 것이다. 많은 국민들이 기성 정치인들에 대해 환멸에 가까운 불신을 드러내고 있는바, 새로운 인물들이 많이 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에는 국민들이 후보자들에 대해 더 많은 정보가 제공될 정보전달방법이 발달해 있고, 거짓이 난무하는 가운데 거짓을 잠재울 진실이 제공될 개연성이 더 높아졌다. 새로운 지형의 정치제도를 통해 한 단계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마련되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경제가 안정되고, 모든 국민이 물질적으로 커다란 어려움을 겪지 않은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하지만 경제전망이 그리 낙관적이지 않은 것이 우려되기는 하지만, 이제 고도성장에 따른 낙수효과는 우리 경제 규모 및 체질에 비춰볼 때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으므로, 경제적으로 부족한 부분에 대한 복지의 강화 및 국가재정의 효율적 운영을 통해 새로운 경제패러다임을 만들어내야 할 것이다.

올해는, 무엇보다도 극단적 진영 논리에 의해 거의 저주에 가까운 미움과 반복이 거듭되고 있는 국민 정서가 순화되었으면 한다. 촛불세력과 태극기부대로 상징되는 두 집단의 극단적 대치상황이 하루아침에 해결될 것 같지는 않다. 거기에 확대 재생산되는 가짜 뉴스와 그 가짜 뉴스에 대한 분별력 잃은 편향적 맹신은 더욱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 특히 유튜브에 대한 신뢰가 거의 10% 가까이에 이른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우려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유튜브가 진실을 전달할 때도 있지만, 오락프로가 아닌 정치적 견해를 밝히는 유튜버들이 지지율을 높여 경제적 이익까지 함께 취함으로써 “꿩 먹고 알 먹고”를 아무런 책임 없이 누리고 있는 것도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와 함께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하겠다.

이러한 모든 갈등의 중심에서 우리가 마지막으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 한 방울의 힘”이다.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사람은 마지막 악함의 길에서 걸음을 멈춘다. 하지만 2020년에 과연 얼마나 많은 이들이 눈물 한 방울의 의미를 곱씹으며, 타인에 대한 연민, 약한 사람을 향한 배려심을 발휘하며 살아갈 것인지, 어떻게 갈등과 분열을 통합과 화합으로 이끌어갈 것인지, 집단배려의 사회가 과연 올 수 있을 것인지 염려스럽다. 필자의 연배가 되면, 부고 연락을 받는 일이 아주 빈번하다. 참으로 열심히 앞만 보고 살아온 망인의 생전 모습을 떠올리며, 간혹 드는 생각은 “무엇 때문에 저렇게 앞만 보고 저렇게 달려갔을까?” 하는 생각이다. 정초에 필자는 “눈물이야기”를 다시 한 번 꺼내 읽으며 시작하려 한다. 눈물이 있는 곳에 사람이 있다.

오시영 전 숭실대 법대 학장 / 변호사 / 시인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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