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국회의원 특권 폐지와 기대하는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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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국회의원 특권 폐지와 기대하는 리더십
  • 신희섭
  • 승인 2019.11.29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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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br>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20대 국회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2020년 4월 15일. 21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다. 20대 국회가 과연 무엇을 했는지. 무엇을 어떻게 변화시켜야 할지. 평가와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국회의원들도 스스로 자정 노력을 보이는 모습을 보이고는 있다. 하지만 선거 직전의 이런 움직임이 얼마나 진정성이 있을까? 지난 역사를 아는 시민들은 회의적인 시각일 수밖에 없다. ‘국회무용론’이나 ‘국회의원을 100명으로 줄이자’는 주장은 현재 대한민국국회에 대한 신뢰도를 보았을 때 무시할 수만은 없는 주장이다. 국회는 2003년부터 실시한 국내 여론조사 기관들의 신뢰도 조사에서 늘 꼴찌였다. 2018년에 실시된 OECD조사에서도 대한민국 국회는 꼴찌의 불명예를 차지했다. 지금 국회는 아니지만, 2009년도 『포린 폴리시』는 전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국회 5곳을 선정했고 그중 한국 국회가 첫 번째로 소개되기도 했다.

그런 국회가 내년에 다시 구성된다. 그래서 20대 국회에 실망한 유권자들은 21대 국회가 바뀌기를 원한다. 여러 가지 요구들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국회의원들이 가진 특권을 폐지하는 것이다. 국회의원의 수당, 9명이나 되는 보좌진. 이외에도 국회의원에 지급되는 100여 개에 이른다는 특혜들.

이런 특혜 중에 가장 빨리 폐지할 수 있는 것이 ‘불체포특권’이다. 이 특권은 국회의원의 ‘면책특권’과 함께 국회에 제공된 대표적인 특권이다. 불체포특권은 현행범이 아닌 경우 국회의원은 ‘회기 중’ 체포와 구금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과거 민주주의가 자리 잡지 못한 시절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을 행정부나 사법부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권리였다.

이 불체포특권에 대해서 폐지 혹은 제한을 하자는 주장이 꽤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왔다. 여기에는 3가지 논리가 있다. 첫째, 과거와 달리 민주주의가 자리 잡은 상황에서 불체포특권은 그저 국회의원을 보호하는 ‘방탄’막으로 사용될 뿐이라는 것이다. 둘째, 외국에도 제한 사례들이 많다. 영국, 미국, 독일, 일본의 경우 국회의원 불체포특권을 제한해왔다. 이것은 불체포특권이 만들어지던 1600년대 영국이나 1800년대 미국의 시대 상황과 현재가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우리보다 민주주의가 빨리 발전한 국가들에서 제도의 악용을 우려해 수정하고 있다는 점은 귀 기울일만하다. 셋째, 공정성이 시대의 중요한 가치관이 된 시점에서 국회의원에게만 이런 특권을 부여할 공익적 가치가 특별히 높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오래 사용된 제도인 만큼 반론도 있다. 첫째, 제도 취지가 아직도 유효하다는 것이다. 여전히 제왕적 대통령이라 칭해지는 행정권력으로부터 국회를 보호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둘째, 체포만을 피하게 함으로써 국회의원의 의사 진행을 방지하는 제도기 때문에 그냥 두어도 된다는 입장이다. 다른 사법 절차나 형사 절차는 진행되는 것이기 때문에 국회의원이 반드시 체포 구속된 상태에서 죄의 유무를 따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셋째, ‘무죄 추정의 원칙’에 반한다는 것이다. ‘무죄 추정의 원칙’이라는 대원칙에 따르면 국회의원도 응당 무죄로 추정될 수 있다. 게다가 도주 우려가 크지 않기 때문에 체포하여 구속된 상태에서 재판을 받을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오래된 제도라는 점과 제도의 취지가 강압적인 행정부에 대해 국회의원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라는 점에서는 유지하자는 입장을 그냥 내치기는 어렵다. 하지만 시대가 달라지고 있고 제도가 원취지보다 악용되고 있다면 오래된 제도라도 손을 볼 필요가 있다.

국회의원들이 스스로 불체포특권을 비롯한 특권을 내려놓는다면 이러한 이론적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 국회법에서 불체포특권을 제한하거나 폐지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국회의원들이 스스로 몸을 낮추고 지배자(master)나 통치자(ruler)가 아니라 지도자(leader)가 되려 한다면 어떤 시민이 국회의원들을 조롱하고 비아냥대겠는가!

하지만 더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국회를 향해 무엇을 해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당신들은 이것을 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이 상황이다.

이 상황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지도자에게 무엇을 기대하는가? 지성, 용기, 도덕성, 공감력 등등. 이들 가치는 시대 상황에 따라, 그 국가가 처한 상황에 따라 중요도가 달리 평가된다. 그러니 사회적으로 합의점을 찾기 어렵다. 게다가 요구조건이 많아지면 이를 실현해낼 사람을 찾는 것은 ‘인간계’에서는 불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지도자가 최소한의 조건만이라도 지키기를 바라는 시민들이 많다. 이번 국회에 기대할 것이 없다면 앞으로의 국회는 최소한 이것만이라도 해주면 좋겠다는 최소적 기준. 이런 관점에서 지도자에게 바라는 이 시대의 최소적 기준은 “사리사욕을 채우는 행동만 하지 말라는 것”일지 모른다. 사리사욕을 추구하지 않으면 세상과 사람들이 보이기 때문이다.

로마의 킨키나투스(Lucius Quinctus Cincinnatus)는 이런 관점에서 특별한 모범이 될 수 있다. B.C. 458년 로마가 이민족의 침입을 받아 위기상황이 되었을 때 이 위기를 극복해달라고 원로원과 집정관은 그를 ‘독재관(Dictator)’으로 선출하였다. 이 직책은 비상상황 시 위기 극복을 위해 1명의 최고 지도자에게 6개월간 ‘절대 권력’을 사용할 수 있게 한 특별한 것이다. 국가의 위기 극복을 위해 흔쾌히 독재관이 된 킨키나투스는 리더십을 발휘해 15일도 안 되어 이민족의 항복을 받고 위기를 극복하였다. 5개월도 더 남은 상황에서 그는 ‘독재관’ 자리를 벗어버렸다. 그리고 자신이 일하던 밭으로 돌아갔다. 20년 뒤 다시 반란이 일어났을 때도 그는 독재관직을 맡아 반란을 극복했다. 이때도 위기가 끝나자 바로 자신의 밭으로 돌아갔다. 유혹적인 절대 권력을 버리고 농부의 삶으로 간 것이다.

국가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있을 때 홀연히 나타나 자신의 최선을 다하는 자. 그리고 사리 사욕 없이 농부의 자리로 돌아가는 자. 그런 사람이 우리가 원하는 지도자가 아닐까! 국가위기 상황에서 먼저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가는 자. 권력이 있는 자리에 연연해하는 자. 이들은 우리가 국가 지도자의 자리에서 보고 싶은 군상들은 아닐 것이다.

머지않아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올 것이다. 새로운 계절이 오듯이 새로운 지도자들도 나타날까!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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