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한국의 보수는 무식하다, 진보라고 다르겠는가마는
상태바
오시영의 세상의 창-한국의 보수는 무식하다, 진보라고 다르겠는가마는
  • 오시영
  • 승인 2019.11.22 10:40
  • 댓글 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시영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오시영 전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한국의 보수는 무식하다. 감히 무식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까닭은 보수주의자들조차 진정한 보수가 무엇인지 그 개념을 명확히 알지 못한 채 막연히 보수라는 말을 남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시월 24일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TBC방송 주최의 ‘2019 대구경북상생 포럼’이 개최되었다. 한 달 가까운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 포럼 참석자의 “지금까지 보수가 무엇인지 우리에게 가르쳐 준 사람이 없지 않습니까?”라는 질문형 서술의 한 마디는 보수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명언 중의 명언이었다. 보수를 주장하며 자칭 보수주의자인 선도적 위치의 지도자조차 “보수”가 무엇인지 여태까지 육십 평생 배워본 적이 없고, 보수의 개념을 명확히 가르쳐준 이가 없었다는 솔직한 고백 앞에서 보수의 민낯을 만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의 보수는 “자유”를 보수의 최고 가치로 치고 있다. 그런 면에서 보수주의 정당이라고 자처하는 제1야당 자유한국당은 당명으로 “자유”라는 단어를 대문 앞에 걸어놓고 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자, 어찌 자유가 보수의 최고 가치가 될 수 있겠는가? 왜냐하면 자유야말로 보수가 가장 적대시하는, 싫어하는 철학적 명제이기 때문이다. 보수가 무엇인지 판단하려면 자칭 보수를 최고 가치라고 주장하는 보수주의자 내지 보수주의 정당의 행동을 통해 형성된 관행을 보면 된다. 왜냐하면 사람은 행동을 통해 자신의 사상을 표출하고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기 때문이다. 즉 입으로 떠드는 가치와 실재 행동으로 나타내는 가치가 불일치할 때 우리는 이율배반적이라고 한다. 그리고 두 가치 중 결국 행동을 통해 보여지는 가치를 그의 진정한 가치라고 이해한다. 입으로 아무리 “착하게 삽시다.”라고 떠들더라도 실재로는 “악하게 사는 사람”을 어찌 우리가 착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국어사전은 보수를 “새로운 것을 적극 받아들이기보다는 재래의 풍습이나 전통을 중히 여기어 유지하려고 함”이라거나 “보전하여 지킴”이라고 그 뜻을 정의하고 있다. 결국 보수주의는 이러한 보수의 가치, 즉 전통적이고 권위적이며 기득권층의 이익을 지키려는 가치를 추구하는 주의라고 정의내릴 수 있다. 그러한 보수의 가치 속에 “자유”라는 반동적 가치가 차지할 공간은 없다. 왜냐하면 자유는 기존의 가치가 추구하고 있는 지배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려는 본질적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까닭에 보수는 “자유로부터 비롯된 저항”을 허용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보수주의자라고 주장해 온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이명박, 박근혜 정권 시절은 자유와는 거리가 먼 “독재적 지배이데올로기”가 강하게 작동되던 시대였음을 우리는 생생히 기억한다. 본능적으로 보수는 수직의 가치체계, 좋게 말해 중앙집권적 지배체제를 선호한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최고 정점의 유일권력자에서 시작되는 피라미드 구조의 십부장, 백부장, 천부장 조직을 통해 상부의 유일가치가 확장되는 조직체계를 갖추고 있다. 그러기에 절대 왕정 국가나 이를 대체하는 대통령중심제 국가에서 권력을 독점하는 세력이 주창하는 가치이기도 하다.

그런 보수주의 정당인 자유한국당이 당명에 자유라는 말을 쓰면서 보수의 최고 가치를 자유라고 주장하며 자신들이 그 자유를 수호하는 집단인 듯이 설쳐대는 것은 왠지 낯설다. 양복에 갓을 쓴 형국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필자가 수없이 말했지만, 자유한국당은 그 출발점이 전두환 독재정권의 민정당(민주정의당)이다. 이름을 아무리 바꾼들 A가 B가 될 수 없다. 다시 말해 아무리 이름을 바꾸어도 가족관계등록부(호적)는 같을 수밖에 없고, 주민등록원본 또한 같을 수밖에 없다. 동일인이기 때문이다. 한 번 만들어진 가족관계등록부나 주민등록부가 이름이 바뀌었다고 새로이 작성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주소 변경되듯이 이름이 바뀌었다고 기록될 뿐, 같은 사람임을 부정할 수가 없다. 그런 연유로 민주정의당에서 시작된 자유한국당은 마치 자신의 전신인 독재정당과 다른 정당인 것처럼 행동한들 그것은 가면일 뿐이고 본질은 어디로 가지 않는다. 즉 태생적으로 독재의 유전자를 잉태하고 있는 자유한국당이 아무리 자유를 입으로 부르짖지만 실재 행동은 여전히 자유하고는 거리가 먼 것이 사실임을 부정할 수가 없는 것이다. 황교안 대표나 나경원 원내대표가 자유를 부르짖으며 자유를 지키겠다고 주장하는 모습들이 낯설게 느껴지는 까닭이기도 하다.

유럽의 보수는 1789년의 프랑스대혁명에서 구체적 이념화되었다고 평가된다. 앙시엥레짐, 즉 구체제를 허물겠다며 시민계급이 “자유, 평등, 복지”를 내세우며 지금 프랑스 국기가 된 삼색기를 흔들기 시작했을 때, 구체제를 지키기 위해 귀족봉건영주와 당시 사회적 지배이념으로 작동하고 있던 기독교가 하나가 되어 새로운 진보세력을 잠재우는 과정에서 보다 구체화되고 세력화된 가치체계가 바로 보수주의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보수주의는 어떻게 형성되었다고 할 것인가? 그것은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수밖에 없다. 현재 대한민국의 입장에서 앙시엥레짐은 조선왕조의 지배이데올로기에서 비롯되고 있기 때문이다. 소위 유교사상에 기반한 사림(士林)과 유림(儒林)으로 상징되는 양반계급이 지배계급으로 조선의 자본을 독점하여 농업사회였던 조선의 거대한 지주계급을 형성하였고, 그들은 조선의 부(富)뿐만 아니라 사적 린치가 허용되는 지배 권력까지 독점하였던 것이다. 그러한 지배이데올로기는 상것이나 일반백성은 단지 통치의 수단이었고, 자신들의 부를 축적하는 도구로 기생하는 자들이었을 뿐이었고, 자신들의 시혜에 그저 굽신거리며 감사해야 하는 노예근성에 찌든 아랫것들이었을 뿐이었다.

그들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대부분 친일 부역세력이 되어 자신들의 부와 권력을 유지하였고, 해방 후 반민족행위자처벌이라는 친일세력 축출의 위기를 이승만 정권의 보수세력지지 필요성을 등에 업고 빠져나왔을 뿐만 아니라 6ㆍ25 전쟁과정을 통해 오히려 자신들을 공격하던 진보세력을 멸하게 되는 행운까지 겹치면서 전쟁 후 자본주의체제로의 전환과정에서 기존에 형성되어 있던 지주자본을 적절히 산업자본화하면서 현재의 안정된 지위(?)를 확보할 수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이러한 보수의 기득권층화, 자본 세력화는 그들의 지배이데올로기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열악한 경제 환경에 필연적으로 노출될 수밖에 없었던 최저소득층과 상대적으로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한 현재의 노년층세대에 대한 사상적 노예화를 가능케 하였다고 보인다. 사상적 노예화라는 극단적 표현을 쓸 수밖에 없는 까닭은 오랜 기간에 걸쳐 주입된 가치관에 의해 형성된 한 인간은 합리적 가치판단을 통한 자유로의 탈출이 불가능하게 되고, 조건반사를 보이는 세뇌된 맹목적 행동주의자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17일 자유한국당 싱크탱크라고 할 수 있는 여의도연구소장직을 수행하고 있는 3선의 김세연 의원이 “20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동시에 “자유한국당 해체”를 주장하여 커다란 정치적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현재의 자유한국당으로서는 내년 20대 총선에서 필패할 수밖에 없고, 자유한국당이 내부적으로 좀비정당이 되어 자생력을 상실하였을 뿐만 아니라, 내부적으로 견제와 균형이 이루어지지 않고 당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전혀 변화의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며 자유한국당이 소멸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의식 있는 이들은 그의 이러한 극단적 주장이 “자유한국당의 현실”을 헤쳐 나가기 위한 절박한 외침이었음을 깨닫고 자유한국당이 이에 대해 긍정적 태도를 보이기를 촉구하였지만, 자유한국당은 아니나 다를까 “마이동풍” 내지 “우이독경”식으로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내부총질을 가하고 있다며 그의 충정을 깔아뭉개기에 급급하고 있다. 무언가 죽는 줄 모르고 죽어가고 있는 자유한국당을 살려야겠다는 그의 우당충정은 메아리 없는 해프닝이 되어 절실했던 그의 호소가 오히려 희화화되어버리는 형국, 그게 자유한국당의 현실임을 다시 한 번 국민에게 보여주고 말았다.

지난 수요일, 갑자기 황교안 자유한국당 당대표가 청와대 앞 광장에서 무기한 단식을 하겠다고 선포하였다. “문재인 대통령의 좌파독재정권을 끝내고, 패스트트랙으로 처리될 예정인 공수처법과 연동비례제선거제도를 도입한 국회법 개정”을 저지하겠다는 결기를 내보인 것이다. 하지만 그의 결기는 관련법규에 의해 야간에 청와대 앞 광장에서의 단식농성이 허용되지 않아 국회로 옮겨야 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모든 게 어설프다. 과연 그가 며칠간 단식을 할지 지켜 볼 일이지만 그리 오래 가지는 않을 것 같다. 왜냐하면 그러한 행동이 그의 생리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의 보수는 조선의 유교를 대체한 기독교와 접목하여 명목을 유지하려 한다. 기독교계 지도자들 역시 정치권력과 야합하여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고 정치세력화를 통해 기득권을 더욱 공고화하려고 한다.

자유와 진보의 가치를 추구하는 진보주의자들에게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영역이다. 기독교사상, 즉 예수의 사상이 무엇인가? 그는 공생애를 시작할 때 사탄의 세 가지 시험을 이겨내었다고 누가복음 4장은 기록하고 있다. 첫 번째가 빵의 유혹이다. 40일 금식했던 광야에서 사탄은 예수에게 “네가 하나님 아들이거든 이 돌로 빵을 만들어보라”고 유혹한다. 배고픈 예수는 단호히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 것”이라며 인간의 탐욕보다는 진리가 우선한다고 설파하였다. 두 번째가 권세와 영화의 유혹이다. “나에게 절하면 세상의 모든 권세와 영광을 주겠다.”고 유혹하지만, 예수는 “주 하나님만을 섬기라”고 대답하며 하나님으로 상징되는 공의가 우선함을 내세우며 세상의 권세와 영화의 유혹을 이겨낸다. 세 번째가 예수의 능력자 증명 요구 시험이다.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면 천사들이 지켜줄 것 아니냐며 자신의 위대함을 세계만방에 보이라고 요구하지만, 예수는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며 그 유혹 또한 이겨낸다. 이처럼 예수, 즉 기독교사상은 세상의 물욕과 권력 및 영화로움에 대한 집착, 자신의 신격화(지배이데올로기의 화신(化神))에 대한 경계를 통해 가지지 못한 자, 낮은 자, 병든 자를 돌보라는 것이다.

열렬한 기독교신자로 알려진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예수의 진정한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진정한 가르침에 따라 예수의 행함을 실천하여야 할 것인데, 가만히 보면 그의 행태는 사뭇 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어 의아할 때가 종종 있다. 한국의 보수는 전통주의 내지 권위주의에 기반하고 있다. 전통주의 내지 권위주의는 과거 한국인들이 추구해 온 가치에 기반한다. 그 가치는 자유도 아니고 평등도 아니고 더군다나 복지도 아니다. 오직 자신들의 기득권 지키기이고, 부의 공고화이고, 자신들의 지배이데올로기에 대한 맹목적 충성의 요구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러한 행동들이 누적적으로 반복되어 왔기 때문이다. 입으로 부르짖는 가치와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는 가치가 상호불일치하고, 언제나 가진 자의 편에 서고, 강자의 편에 서며, 없는 자에게 갑질하고, 약자를 무시하는 행태를 보여 왔기 때문이다.

‘2019 대구경북상생 포럼’ 참석자의 말을 다시 한 번 상기한다. 지금까지 보수가 무엇인지 우리에게 가르쳐 준 사람이 없어, 보수가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입으로만 보수, 보수라고 외쳐댔던 보수의 현주소를 이제 보수는 “모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보수의 진정한 가치”로 채워 넣어야 한다. 대수술을 해야 한다. 그 대수술의 첫 단추를 김세연 의원의 “당 해체 수준의 대수술”로 감행해야 한다. 하지만 황교안 대표는 가던 길을 계속 가겠다며 단식이라는 반대 행동을 하고 있고, 나경원 원내대표는 지소미아 파기라는 국가 자립이라는 정부 노력을 깎아내리면서 50억불이라는 미국의 무리한 방위비분담요구에 대해 국익을 위한 한 마디 항의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보수가 무엇인가? 나라의 자존심을 지키고, 국가의 안보를 튼튼히 하며, 국민들의 아픈 곳을 만져주며, 굶주리는 영혼이 있으면 이를 위로하며, 손을 내미는 따뜻함이 아닐까 한다. 어휴, 진보라고 뭐 얼마나 다르겠는가? 부족한 인간에게서 완벽을 바라는 필자가 이상할 뿐이다.

한국의 보수는 무식하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배워야 한다. 진정한 보수가 무엇인지를, 그리고 국민에게 말해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보수라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오시영 전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4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윤진한 2019-11-22 14:51:19
한국은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나라.불교는 한국 전통의 조계종 천민 승려와 주권없는 일본 불교로 나뉘어짐.1915년 조선총독부 포교규칙은 후발 국지적 신앙인 일본신도(새로 만든 일본 불교의 하나).불교.기독교만 종교로 인정하였는데,일본항복으로 강점기 포교종교는 종교주권 없는상태.부처는 브라만교에 대항해 창조주를 밑에 두는 무신론적 Monkey임.일본은 막부시대 불교국이되어 새로생긴 성씨없는 마당쇠 천민 천황이 하느님보다 높다고 주장하는 불교 Monkey나라.한국은 헌법전문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보장되어, 일본에 선전포고한 상태가 지속되는 나라임.

윤진한 2019-11-22 14:52:26
생경하고 급격하게 새로 생긴 마당쇠 천민 천황이 세운 일제 강점기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에 남겨진 패전국 일제 잔재며, 마당쇠 천민 학교며, 부처 Monkey.일본 Monkey를 벗어날 수 없는 불교.일본Monkey 천민학교로, 한국 영토에서 축출해야 되는 대상임. 한국 영토에 주권이나 학벌같은건 없이 대중언론에서 덤비며 항거하는 일제 잔재에 불과함. http://blog.daum.net/macmaca/2632

홍어씨발 2019-11-28 21:26:33
전라도는 산수가 쏠리고 인심이 험하다 - 세종대왕 -

윤진한 2019-11-22 14:53:38
한국사와 세계사의 연계가 옳음.한나라이후 세계종교로 동아시아의 정신적 지주로 자리잡아온 유교전통.

한국의 Royal대는 성균관대. 세계사 반영시 교황 윤허 서강대도 성대 다음 국제관습법상 학벌이 높고 좋은 예우 Royal대학.최고제사장 지위는 황사손(이원)이 승계http://blog.daum.net/macmaca/2575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