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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국회의원 ‘무노동 무임금’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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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국회의원 ‘무노동 무임금’ 원칙
  • 신희섭
  • 승인 2019.11.22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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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br>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특별히 일하지 않아도 매일 40만 원을 받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진정 ‘신의 직장’ 아닌가!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닌 우리 ‘국회’ 이야기이다. 내년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일하지 않는 국회의원에게 ‘고액 수당’ 지급이 마땅한 일인지 열띠게 논의 중이다.

2019년 6월 7일 한 가지 재미있는 여론 조사가 나왔다. YTN이 의뢰한 리얼미터의 조사에 따르면 “국회의원에 대한 ‘무노동 무임금’원칙을 적용하자”에 찬성하는 유권자가 80.8%나 된다. 이 조사에 따르면 매우 찬성자가 57%, 찬성하는 편이 23.8%에 해당했다. 모름이나 무응답인 8.3%를 제외하면 반대 측은 10.9%에 불과했다.

유권자들 다수는 일하지 않는 국회의원이 고액의 수당(과거 세비로 표현)을 받아가는 것이 불만이다. 아니 화가 난다. 현행 국회법을 보자. 국회의원이 국회의장의 허가나 결석신고서를 제출하지 않고 결석하는 경우에도 ‘수당’과 ‘입법활동비’는 그대로 받는다. 다만 ‘특별활동비’를 감액할 수 있다. 만약 회사로 치면 특별한 이유 없이 결근하지만, 특근비만 제외하고 월급과 판공비는 그대로 받는 격이다. 그러니 열 받을 수밖에.

“일하지 않는” 국회의원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이 높은 것을 잘 알고 있는 국회의원들 몇몇이 세비를 반납한 적이 있다. 2008년 한나라당 초선의원들 33명의 1인당 평균 770만 원 반납. 2012년 새누리당의 6월 수당 13억 6천만 원 반납, 2016년 국민의당 국회의원 38명들의 이틀 치 수당 2872만 원 반납, 2018년 정세균 국회의장의 4월 세비 1040만 원 반납, 가장 최근인 2019년 7월에는 민병두 의원이 세비반납 릴레이 버스킹을 시작하기도 했다.

이런 몇몇 노력에도 불구하고 유권자들은 냉담하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수당반납이 기부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일하지 않았다면 수당은 당연히 지급되지 말았어야 한다. 그런데 이 부당하게 수취된 수당을 의원이 호기롭게 기부한다. 이렇게 생색내는 것이 꼴 보기 싫다. 둘째, 무노동 무임금의 원칙이 의원 ‘개인’에게 맡겨져 있지 제도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노동 무임금 원칙이 적용되는 노동자 관점에서 이 원칙을 만든 국회는 스스로 지키지 않으니 얼마나 부조리하겠는가!

눈을 돌려 다른 국가들의 사례를 보면 화가 더 치밀어 오른다. 의회정치가 발전한 유럽 국가들의 경우 일하지 않는 국회의원에 대한 압박과 처벌수준이 굉장하다. 프랑스가 대표적이다. ‘민주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프랑스 의원은 월 3회 이상 불출석 시 의정 활동비의 25%가 삭감된다. 한 회기에서 공개투표에 1/3을 불출석하는 경우엔 수당의 1/3이 감액된다. 만약 1/2을 불출석할 경우 수당의 2/3를 못 받는다. 프랑스는 수당 처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의원이 상임위원회에 결석할 경우 상임위원 자격을 박탈한다. 더 나아가 허가 없이 2달 이상 본회의에 결석할 경우 아예 의원직을 박탈해버린다. 역시 화끈한 프랑스답다.

프랑스처럼 수당으로 처벌하는 국가들이 있다. 유럽의 벨기에는 상습 불출석 시 월급의 40%를 삭감한다. 스웨덴은 결근 시 급여지급을 금지한다. 프랑스처럼 의원직 제명이라는 강수를 두는 국가들도 제법 된다. 포르투갈, 인도, 터키, 호주, 스리랑카가 일정 기간 결석 시 의원직을 제명한다. 영국은 국민소환제까지 있다. 국민투표를 통해 의원을 해임할 수 있다. 정치인에게 얼마나 큰 불명예인가!

물론 무노동 무임금 원칙에 대한 반대주장도 있다. 크게 두 가지 논리가 있다. 첫째,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이지 노동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국가를 대표하는 헌법기관인 국회를 노동자와 같은 잣대로 보면 안 된다는 것이다. 둘째, 국회가 ‘당 대 당’으로 대립하는 정쟁의 상황은 무노동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유권자가 야당에 기대하는 것이 견제와 균형이라면 국회의 공전은 정치적 행위이지 노는 것이 아니라는 논리이다.

이에 대한 반론을 펴보겠다. 첫째 주장에 대해 우선 국회의원과 유권자 사이에 대한 관계인 ‘소세계(Microcosm)이론’으로 반박하겠다. 국회의원은 유권자를 담아내는 작은 우주와 같은 것이다. 대표기관인 국회는 사회 내 유권자들의 계층, 직업, 성별, 세대 등을 있는 그대로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국회의원은 유권자와 유리된 별개의 특권층이 아니다. 의원의 존재 이유는 권력확보와 특권향유가 아니다. 유권자를 대표하고 대변하는 것이다. 그런데 국민의 ‘대표’가 일해서 생계를 유지하는 유권자와 다를 수 있겠는가!

첫째 주장에 대해 유권자와 국회의원 사이의 ‘권한 위임’에 대한 논리를 통해 반박해 보겠다. 유권자가 국민의 대표에게 권력을 넘겨줄 때 유권자는 지역 이익이 아니라 국가 전체를 위해 활동하라고 대표에게 권한을 맡긴다. 이 입장이 ‘신탁(trustee)설’이다. 반면에 유권자는 정확히 자신들의 이익을 반영해 달라고 대표에게 권력을 위임한다. 이 입장이 ‘위임(delegate)설’이다. 한편 정당정치가 강화되면서 유권자는 대표 ‘개인’이 아니라 ‘정당’에 권력을 위임한다는 ‘유사대리설’이 있다. 한국에서 유권자들은 소선거구제에서 작은 지역구 단위로 투표한다. 이것은 국회의원에게 자신 지역구의 이익을 보호할 뿐 아니라 국가 기관으로서 국가이익을 지켜달라는 유권자의 권한 위임이다. 국가 전체 이익이나 지역 이익을 위해 행동하라는 것이지 믿고 맡길 테니 맘대로 하라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비례대표제도는 정당투표를 하니 비례 국회의원 역시 정당에 주어진 자율성을 자신을 위해서 사용할 수 없다.

둘째 주장의 반박은 훨씬 쉽다. 국회는 왕과 국가권력에 대항해 국민의 입장을 관철하라고 만들어진 투쟁의 장이다. 제도적인 차원에서 투쟁이 보장된 공간이다. 그러니 제도적인 투쟁이 아닌 장외투쟁을 해야 할 논리적 근거는 빈약하다. 국회의 장외투쟁은 노사합의 시 이것이 맘에 안 든다며 노동조합이 하는 장외투쟁 전략과 같다. 스스로 노동조합의 전략을 따랐다면 노동조합에 요구하는 무노동 무임금을 국회는 스스로 지켜야 한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이번 국회에서도 무노동 무임금을 촉구하는 안들이 속속 제안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안들 역시 과거 국회처럼 흐지부지될 것이 뻔하다. 모든 권력이 그렇듯이 자승자박은 불가능하다. 스스로 하지 못하니 누군가가 이를 강제해야 한다. 그래서 서슬 퍼런 시민 권력이 중요한 것이다. 혼돈의 한국 정치 상황에도 어둠을 꿰뚫어 보는 우리 시민들의 ‘비판의식’과 우리의 ‘지속적인 요구’가 그래서 절실하다.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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