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위안부 할머니들의 일본국 상대 손해배상소송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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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위안부 할머니들의 일본국 상대 손해배상소송에 대한 단상
  • 오시영
  • 승인 2019.11.15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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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오시영
전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세상에는 되는 것도 많고 안 되는 것도 많다. 안 되기를 바랄 때 되면 그것도 골치 아픈 일이고, 되기를 바랄 때 안 되면 그 역시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되기를 바라는 것이 되고, 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되지 않으면 가장 좋겠지만, 그것이야말로 그대로 되지 않는 게 세상이치이다. 그러기에 되지 않기를 바라며 노력하고, 반대로 되기를 바라며 노력한다. 어제 대학수능시험이 치러졌다. 수십만 학생이 동일한 문제로 시험을 보았다. 출제위원들이야 공정한 출제과정을 쳐서 시험문제를 출제했다고 소신껏 말하겠지만, 출제위원이 낸 문제가 다는 아니기에 그 출제과정에서부터 불공정은 존재한다. 출제된 문제를 풀지 못하였다고 학생이 어리석거나 무식한 것도 아니고, 그 문제를 다 풀었다고 해서 그 학생이 반드시 지혜롭고 유식한 것도 아니다. 단지 확률의 게임에 의해 그럴 개연성이 높은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닌 게 세상이다.

공사장 높은 곳에서 추락사고가 종종 발생하는 경우를 우리는 경험한다. 그 높은 곳에서 추락하는 사람에게는 단 하나, 자신을 매다는 생명줄이 없었을 뿐이었는데, 그로 인해 한 사람의 귀중한 생명이 스러진다. 그 운명의 생명줄 하나 있고 없음이 저 수십만 학생을 줄 세우는 수능과 무슨 상관관계가 있을까? 그 하루를 위해 12년 동안 전력투구하며 수십만 학생들 자신은 물론이고, 그 부모들과 가족, 선생님들과 교육당국, 학원 및 출판계 등 수많은 이해집단들이 얽히고설켜 삶을 갉아먹고 감성과 이성을 황폐하게 만들어온 것은 아닐까 하는 슬픈 질문이 쇄도해 온다. 저 많은 아이들이 수능 1점을 더 받아 대학의 당락이 결정되고, 운명의 집단화를 거쳐 집단속 일원이 된 다음, 그 다음 펼쳐질 그들의 세상은 과연 어떠할까? 그러한 갈등 없이 다들 무망한 삶을 살아가더라도 별로 달라질 것이 없겠다는 생각마저 들기도 한다.

우리는 잊히지 않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21세기는 어느 누구도 잊혀지지 않게 만든다. 배우 윤정희 씨는 알츠하이머병을 앓으면서 스스로를 서서히 잊어가고 있는데, 스스로 잊혀져가는 주인공을 수많은 관객들은 잊지 못하는 세상, 우리는 그러한 모순 속에 살아가고 있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잊었는데도 이 세상에서 잊히지 않고, 세상이 주인공을 잊어줄 때 잊히지는 세상을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 무한한 전자기록의 시대는 어느 누구도 잊히지 못하게 강제 아닌 강제를 하고 있다. 잊히지 않게 할수록 돈이 되는 세상, 그 기억의 공간 속에서 모두 기억의 파편들이 되어 존재하지 않는 가공의 시간속을 유영하고 있다.

이틀 전,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소위 한일 위안부 소송 첫 재판을 시작하였다. 3년 전인 201612월에 제기된 위안부 할머니들의 일본국 정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소송이 드디어 3년 만에 첫 변론이 시작된 것이다. 현재 일본제품불매운동으로 상징되는 한일 무역분쟁의 발단이 소위 징용공(徵用工)이라 불리는, 일제 강점기 일본 기업들에게 강제 징용된 한국인 근로자들에 대한 손해배상문제였다면, 새롭게 시작된 소위 한일 위안부 소송은 일본 정부에 의해 자행된 한국인 젊은 여자들에 대한 성노예사건에 대한 불법적 책임을 묻는 소송이다. 전자가 일본 전범기업을 상대로 한 순전한 사인(私人)들 사이의 민사소송이었다면 후자는 일본국이라는 국가를 상대로 하는 소송이라는 점에서 그 여파는 훨씬 크다고 하겠다.

위 소송의 첫 재판이 소장 접수 후 3년 만에 열리게 된 것은 소위 주권면제를 내세워 소송서류를 송달받기를 거부한 일본 정부의 소송지연정책 때문이었다. 민사재판은 쌍방심리주의를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소송서류 및 변론기일소환장이 도달되어야만 적법하게 개시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절차상의 하자로 재판 자체를 진행할 수 없다. 대석주의(對席主意) 내지 2당사자대립주의를 취하고 있는 민사소송에서 송달 절차가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 사건의 첫 번째 쟁점은 일본에서 주장하고 있는 주권면제의 인정 여부이다. 사법부가 재판을 하기 위해서는 첫째는 재판권이 있는가, 둘째는 관할권이 있는가 여부가 먼저 규명되어야 한다. 재판권이라 함은 우리나라 사법부가 해당 사건에 대하여 국가주권에 의해 재판을 할 수 있는 권리를 보유하고 있는가의 문제이고, 관할권이라 함은 재판권이 인정될 경우 어느 법원으로 하여금 재판을 구체적으로 진행하도록 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주권면제는 국가면제라고도 하는데, 모든 국가는 각각 고유의 주권을 가지고 있고 그 주권은 대등하다고 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다른 나라의 주권에 복종해야 할 의무가 없으므로 모든 국가는 다른 나라의 재판을 받을 의무가 없는 권리를 말한다.

이러한 국가주권론은 19세기까지는 국제적으로 통용되어서 국가를 민형사소송의 피고 또는 피고인으로 삼아 재판할 수 없다는 국제법상의 관행이 생겨났다. 그러나 두 차례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독일이나 일본 등과 같은 전범국가들에 대한 형사처벌과 전쟁피해에 대한 민사소송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국가주권 또는 주권면제는 절대적 면제주의(absolute immunity)와 상대적 면제주의(relative or restrictive immunity)로 재판권 면제의 범위를 달리 취급하게 되었다. 즉 국가기관이 공인격의 지위에서 한 행위에 대하여는 주권면제가 되지만 사인격의 지위에서 한 행위에 대하여는 면제되지 않으며, 국가만이 할 수 있는 행위가 아니라 사인도 할 수 있는 행위인 경우에도 역시 면제되지 않으며, 그 행위가 주권적 활동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사법적(私法的 ) 행위에 불과한 경우 역시 면제되지 않는다는 상대적 면제주의가 일반적 국제법원칙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우리 대법원도 국제관습법에 의하면 국가의 주권적 행위는 다른 국가의 재판권으로부터 면제되는 것이 원칙이라 할 것이나, 국가의 사법적 행위까지 다른 국가의 재판권으로부터 면제된다는 것이 오늘날의 국제법이나 국제관례라고 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나라 영토 내에서 행하여진 외국의 사법적 행위가 주권적 활동에 속하는 것이거나 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서 이에 대한 재판권의 행사가 외국의 주권적 활동에 대한 부당한 간섭이 될 우려가 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외국의 사법적 행위에 대하여는 당해 국가를 피고로 하여 우리나라의 법원이 재판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판시(대법원 1998. 12. 17. 선고 9739216 전원합의체 판결)함으로써 미군부대에서 근무하다가 부당해고된 근로자가 미국을 상대로 한 해고무효소송에서 미국을 피고로 인정하여 재판한 결과 미국의 책임을 물었다.

일본국은 일본국이나 일본군이 공식적으로 우리 한국 여성을 위안부로 강제동원한 사실이 없다며 위 위안부 할머니들이 제기한 일본국의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를 부정하고 있다. 나아가 위와 같은 주장에 앞서 위 사건은 주권면제 대상이기 때문에 아예 재판 자체가 열려서는 안 된다는, 즉 우리나라 법원에 재판권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할머니들은 일본국 정부의 위안부 강제동원 등의 불법행위는 국가가 공적으로 수행하는 행위에 포함되지 않아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되므로 상대적 면제주의 원칙에 의해 우리나라에 재판권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사한 선례로 2012년 경 이탈리아 사법부가 2차세계대전 당시 독일국이 이탈리아 국민들을 강제노동에 동원하여 피해를 주었다며 강제노동피해자손해배상소송을 강행하여 피해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린 적이 있었는데, 독일국이 이에 불복하여 국제사법재판소로 사건을 가져갔고, 국제사법재판소는 독일국의 주장을 받아들여 이탈리아 사법부의 판결을 무효화시킨 사례가 있다. 일본은 이런 선례를 내세우며 재판권 자체를 부인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이탈리아 사건의 경우는 강제징용에 대한 것이고, 우리나라 사건의 경우는 전쟁성노예피해에 대한 것으로 본질적 차이가 있다. 즉 우리나라의 경우는 일본국, 즉 어느 국가라도 성노예피해자들을 동원하는 일이 국가권한으로 인정되는 공법적 행위라고 볼 수 없으므로 만일 국가가 그런 행위를 하였다면 이는 사인간의 불법행위처럼 당연히 국가주권 면제 대상이 될 수 없어 우리나라 재판권에 복종해야 한다는 결론을 도출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일본국은 우리나라 법원의 재판서류를 송달받지 않음으로써 절차적 정당성을 부정하려 한다. 이에 대해 우리나라 사법부는 헤이그협약 중 송달관련 협약을 근거로 외교적 송달방법으로 일본국 정부에 소송서류를 송달하려 하였으나, 일본 외무성이 이를 전달하기를 거부하여 결국 교부송달(직접송달)이 이루어지지 않자,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며 공시송달이라는 방법을 통해 송달절차를 밟았다. 공시송달이라 함은 송달장소가 불명한 자에 대하여 송달받을 자가 송달서류의 내용을 현실적으로 알 수 없더라도 법률상 안 것으로 인정하여 송달의 효력을 부여하는 제도로서 우리 대법원은 대법원 홈페이지 공고란의 게시를 통해 공시송달을 인정하고 있다. 공시송달이 이루어지게 되면 송달절차는 적법하게 인정되어 실질적 본안(사건 자체)에 대한 심리를 할 수 있고, 증거 등이 제출되면 법원은 판결을 할 수 있게 된다.

우리 사법부가 공시송달을 강행한 것을 보면 상대적 면제주의에 의해 우리나라에 재판권이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재판권의 유무는 가장 먼저 심리해야 할 소송요건에 대한 심판이기 때문에 송달 이전에도 판단되어야 할 사항이다. 즉 재판권이 없으면 관할권 자체도 생기지 않아 재판 자체를 진행할 수 없는데, 이처럼 공시송달을 통해 재판을 진행하는 것은 재판권에 대한 심증이 형성되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이제 피해자 할머니들은 일본국이 전쟁성노예 사건을 어떻게 획책하고 집행하였는지, 일본 정부가 얼마나 개입하였는지 등에 대한 증거를 제출하여 재판을 진행하면 될 것이다. 만일 사법부의 판결이 내려진다면 그 자체만으로 법원 판결을 통해 귀중한 역사적 증거자료가 될 것이라 보인다. 물론 우리 사법부의 판결이 내려진 후 실재로 강제집행을 할 수 있을 것인지는 여전히 숙제로 남는다. 왜냐하면 우리 판결로는 일본국에서 강제집행을 직접 할 수 없기 때문에 일본 법원(재판소)으로부터 강제집행을 인정한다.”는 별도의 강제집행판결을 추가로 받아내어야 하는데, 이 과정 또한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신일철이나 미쓰비시 등 일본 전범 강제징용자들에 대한 피해배상책임을 인정한 우리 법원의 판결이 원인이 되어 지금 우리는 심각한 한일무역분쟁에 빠져 있다. 만일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재판이 진행되어 판결이 선고된다면 더 큰 갈등이 야기될 것으로 보인다. 강제징용 배상판결에도 이 정도의 반발을 보인 일본국이 그보다 도덕적, 윤리적, 사회적, 정치적으로 더 큰 비난에 직면하게 될 전쟁성노예피해자들에 대한 판결에 어떠한 반응을 보일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역사바로세우기의 일환이고, 전쟁가해자들에 대한 국제적 사실 규명 및 책임추궁, 무엇보다도 피해자 할머니들의 신원을 풀어주어야 한다는 당위 앞에서 우리는 사법부의 재판진행절차에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우리 국민의 관심도에 따라 우리 사법부나 정부의 정당성이 더 확보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본인을 제외한 누구도 잊지 않는 기억 공고화의 시대, 그로 인해 잊힌 기억조차 언제나 시도 때도 없이 소환되어 재 각인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까닭에 아무리 부정해도 기록은 진실을 밝히고, 아무리 아니라 해도 진실은 진실로 남는다. 패스트트랙 사건으로 형사 고발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위안부할머니들에 대한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순간 서울남부지방검찰청에 소환되어 수사를 받았다.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기록되고 저장된 그 날의 국회 내 CCTV 및 방송 화면, 그리고 국민의 기억은 진실의 퍼즐을 맞출 것이다. 잊으려 해도 잊히지 않는 세상에서 소환되어 비난받을 행위를 자제하며 사는 것, 그게 우리의 숙제가 되어버렸다. , 숙제하자, 제발 좀 잊히고 싶다고 발버둥 치는 무리 사이로 1984년 조지 오웰의 대형카메라는 더욱 선명하게 우리를 촬영하고 있다. 무섭고 두려운 세상이다.

오시영 전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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