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문화-정치 투쟁’ 관점에서 보는 홍콩사태
상태바
신희섭의 정치학-‘문화-정치 투쟁’ 관점에서 보는 홍콩사태
  • 신희섭
  • 승인 2019.11.15 09: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br>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2019년 11월 11일. 홍콩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시민단체 ‘민간인권전선’의 얀 호 라이 부의장이 한국에서 ‘홍콩 민주주의’라는 주제로 간담회를 가졌다. 주장의 핵심은 1987년 ‘민주화’를 이룬 한국은 홍콩과 ‘민주화’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어 홍콩문제를 충분히 이해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현 홍콩 사태는 특정 정책반대(송환법 반대)에서 정치체제변화(홍콩 민주화)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그가 바라는 ‘홍콩의 민주화’ 노력은 성공할까? 홍콩시민들에게는 아쉽겠지만 성공가능성은 대단히 낮다. 우선 민주화의 실험장인 한국에서도 홍콩문제에 대한 관심은 그리 높지 않다. 몇몇 대학의 학생들이 지지하지만 사회적 호응은 미미하다. 21세기 민주주의의 수호자를 자임한 미국도, 과거 식민지 모국인 영국도, 국제사회를 이루는 다른 국가들처럼 그저 팔짱만 끼고 있다.

이런 와중에 홍콩 사태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지난 6월에 시작된 시위는 5개월을 넘었다. 시위가 격화되면서 내전을 방불케 하고 있다. 11월 13일 시위는 시가전에 가까웠다.

중국 정부의 강경한 개입이 이 사태를 더 어둡게 만들고 있다. 중국중앙정부는 10월 28일부터 열린 19기 중앙위원회 4차 전체회의(19기 4중전회)에서 중국 사회주의 체제 유지와 당 권위강화를 결정하였다. ‘일국양제’로 운영 중인 홍콩을 봐줄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이후의 사태는 ‘강대강’ 대립의 연속이다. 중국중앙정부의 강경정책결정. 그 지시를 따르는 홍콩정부. 긴급법 발동. 15세 소녀 의문사. 민간인권전선의 의장인 지미 샴에 대한 쇠망치 테러. 비무장시위자에 대한 실탄사격. 시민들의 분노. 내전에 준하는 거리 투쟁.

극단으로 치닫는 홍콩 사태에 대해 얀 호 라이 부의장의 바람대로 민주화로 결말지어지기를 바라는 낙관론이 있다. 반면에 제 2의 천안문 사태가 될 것이라는 비관론도 있다. 대부분의 미래예측처럼 홍콩사태의 미래도 시위대에 발사된 최루탄과 같다. 뿌옇고 고통스럽다.

이 사태의 미래를 체계적으로 예상해보기 위해서는 이 사태의 원인을 단순화할 필요가 있다. 특히 구조적이고 거시적인 조망이 필요하다. 이 사태가 송환법이라는 특정 사건에서 시작했지만 홍콩의 체제 유지라는 거시적 차원으로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 홍콩 문제의 원인은 크게 3가지로 분석해 볼 수 있다. 첫째, 역사적 요인이다. 항구도시 홍콩은 중국 근대화의 고통을 상징한다. 남경조약으로 영국으로 넘어간 이후 홍콩인들은 중국과 다른 역사를 살아왔다. 특히 중국이 1949년 공산화된 이후에는 완전히 다른 길을 걸었다. '영국식 체제 vs. 사회주의 체제‘로.

둘째, 이런 식민지의 역사와 자본주의 궤적을 가진 홍콩은 중국과는 다른 정체성과 문화를 가지고 있다. 홍콩은 홍콩만의 정체성이 있다. 한족 중심의 중국은 민족주의를 중심으로 국가를 운영한다. 1978년 개혁 개방 이후 포기된 마르크스주의노선을 민족주의가 대체하고 있는 중국과 달리 홍콩은 홍콩인이라는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홍콩인들은 ‘본토주의’를 강조하면서 중국인이나 한족과 다른 ‘광동인’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1997년 중국으로 홍콩이 반환된 이후에도 홍콩은 완전히 중국화되지 않고 홍콩만의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하고자 애쓰고 있다. 반면에 중국 정부는 이 작은 도시를 중국화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광둥어대신에 표준어를 쓰게 하고 있다. 또한 친중국계열의 자본가들을 중심으로 친중국화를 추진하고 있다. 홍콩배우들이 빠르게 표준어를 쓰면서 연기하고 있는 것을 보라.

공산당의 억압적인 중국화는 홍콩의 정체성과 충돌한다. 이는 1997년 홍콩반환에서 합의한 대로 일국양제(一國兩制, One country, two systems: 한 국가 안에 경제운용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병행할 수 있다는 원칙)와 항인치항(港人治港: 홍콩인이 홍콩을 통치한다는 원칙)의 원칙을 무시하는 것이다. 핵심은 두 가지에 있다. 첫째,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이 더 민주주의적인 제도들이 무시되고 있다. 홍콩인들이 볼 때는 자신들이 사용해왔던 영국식 제도가 중국식 제도 보다 우월하다. 홍콩과 본토의 1인당 국민소득차이를 보라. 둘째, 문화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더 열위의 문화가 더 우위의 문화에게 자신들을 받아들이라고 강요하는 것이다. 홍콩인들이 ‘미개하다’고 본토인들을 무시하는 것이나 본토인들이 홍콩인들을 ‘천박한’ 자본주의자들이라고 비판하는 것을 보라.

셋째, 정치적 요인이다. 위의 잠재적인 불만들은 결국 정치적 결정에 의해서 발화되었다. 민족주의가 강한 중국은 ‘하나의 중국(One China policy)’안으로 홍콩과 대만을 흡수하고자 한다. ‘치욕의 100년’을 끝내고 ‘중국 몽’을 실현하는 것만이 비민주주의 체제인 중국이 중국인들에게 줄 수 있는 정치적 선물이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이러한 민족주의와 집단주의적 사고가 홍콩에 대한 자치권의 약화로 이어진 것이다. 여기에 경제‘정책적 차별’이 기름을 끼얹는 것이다. 홍콩의 중국화에 따라 금융의 중개지로서 홍콩의 중요도는 약화되고 있다. 또한 중국인들과 중국기업들이 홍콩경제를 주도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은 집값상승과 임대료 상승으로 이어지면서 홍콩 본토인들을 밖으로 내몰고 있다. 친중국계 기업들의 표준어 사용자 위주의 고용정책은 그렇지 않아도 살기 어려운 홍콩 청년들을 좌절시킨다.

상황을 비관으로 모는 것은 중국 중앙정부가 홍콩에게 양보를 할 여지가 없다는 점이다. 중국공산당의 최대한의 양보는 홍콩 자치를 명분으로 하여 홍콩 정부가 시위대가 요구하는 몇 가지를 들어주고 타협하는 것이다. 중국 공산당 결정과는 별개의 논리로.

그간 중국 공산당은 정치적 시위에 대해 양보한 전례가 없다. 중국공산당에게 양보는 체제붕괴로 이어질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홍콩보다 더 큰 티베트와 신장위구르 문제가 뒤에 버티고 있다. 고로 홍콩시위대의 요구가 ‘중국 권위주의 체제 부정과 민주주의 구축’으로 간다면 이것은 중국공산당에게는 생사의 문제가 될 것이다.

이 지점에서 민주화의 성공여부를 가늠하게 하는 정치적 조건이 두 가지 있다. 첫째, ‘구심점’이다. 홍콩의 시위가 정책거부에서 체제거부로 넘어가려면 구심점이 되는 대안의 정치세력과 조직이 필요하다. 그런데 홍콩 시위는 이러한 구심점이 없다. 이 조건은 둘째 조건인 ‘외부 지지확보’ 가능성과 연결된다. 인구 380만 명의 홍콩이 14억 짜리 인구의 중국에 대해 민주주의를 관철하려면 혼자서는 안 된다. 중국내의 동조자들과 해외 지지자들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둘째 조건 역시 홍콩에 우호적이지 않다. 중국 본토인들에게 홍콩은 그저 작은 섬에 불과하다. 한족과 공산당원들이 홍콩 때문에 민주주의를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구심점 부족은 해외의 지지 마저 이끌기 어렵게 한다. 특히 중국과 무역관계로 엮여있는 국가들 입장에서, 결과를 알기 어려운 홍콩민주화 요구에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21세기 민주주의의 수호자인 미국의 어정쩡한 태도를 보라.

구조적 관점에서 볼 때 홍콩 사태의 미래는 낙관적이지 않다. 지금 시점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은 시위대와 홍콩 정부가 타협하여 홍콩 경찰의 강경진압에 대해 조사하고 홍콩시의 대중 교통운영을 정상화하는 정도가 될 것이다. 그리고 홍콩 선거제도에 부분적인 수정을 가하는 것이다. 하지만 내년 1월 ‘대만 총통선거’라는 변수와 함께 ‘미중간의 무역-환율-기술 분쟁’이라는 변수가 있다. 홍콩시민들은 여기서 일말의 희망을 찾겠지만 국제정치의 ‘힘의 논리’상 그 마저도 낙관적이지 않다.

홍콩의 미래는 최루탄 속에 있다. 연기가 깨끗이 걷히고 나더라도 고통스러울 것이다.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