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백마’탄 지도자와 ‘백마’탄 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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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백마’탄 지도자와 ‘백마’탄 왕자
  • 신희섭
  • 승인 2019.10.25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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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br>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2019년 10월 16일.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위원장 사진을 여러 장 보도했다. 특이한 것은 백마를 타고 눈이 내린 백두산을 올랐다는 점이다.

‘백마’탄 지도자.’ 21세기 대한민국 사람들에게는 낯선 풍경이다. 우리에게 더 친숙한 것은 ‘백마’탄 왕자일 것이다. 동화 속에만 있는 ‘선함’과 ‘해피엔딩’을 보장하는.

김정은 위원장이 설산인 백두산을 백마를 타고 오른 이유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그는 중대한 정책 전환 전 마다 백두산을 올랐다. 그리고 크게 두 방향으로 신호를 보내왔다. 국내와 해외. 실제 이번에도 ‘백마’를 탄 지도자는 ‘자력갱생’을 대내외에 천명했다.

2019년 10월 23일. 백두산 산행 후 첫 번째 행보가 나왔다. 금강산을 방문한 것이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김 위원장은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지는 너절한 남측 시설들을 남측의 관계부문과 합의해 싹 들어내도록 하고 금강산의 자연경관에 어울리는 현대적인 봉사시설들을 우리 식으로 새로 건설하여야 한다.”고 지시했다.

북한 메시지는 바로 대외적인 반응을 불러왔다. 우선 20년이 넘은 금강산 관광 사업 좌초에 대한 우려다. 이에 더해서 북한의 독자 개발이나 중국과의 개발 협력에 대한 걱정과 남북관계경색의 기정사실화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신중론도 제기되고 있다. 이전처럼 북한의 대남 대미 ‘신호보내기’라는 관점에서 냉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외교적 신호로 볼 때 북한의 대남신호는 단순하고 명확하다. 최근 ‘무중계-무관중’ 축구경기의 연장선상이다. 남한 홀대론 혹은 남한 배제-압박 병행론. 최선희 외무성부상까지 대동해 보낸 북한의 대미신호도 직설적이다. 관광사업에서 만이라도 대북 제재를 해제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간의 외교노선과는 결을 달리할 수 있는 요인들도 있다. 첫째, 10월 16일 ‘백마’탄 지도자의 퍼포먼스 이후 북한정부는 언론 매체를 통해 자력갱생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후세인(이라크)과 카다피(리비아)사례는 ‘서구 제국주의에 대한 항복=죽음’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제재에도 불구하고 버티는 이란과 러시아가 자신들의 미래라는 것이다.

둘째, 김정은 위원장이 금강산 관련 지시를 내리면서 ‘선임자’를 언급한 부분이다. 그는 실제 “손쉽게 관광지나 내주고 앉아서 득을 보려고 했던 선임자들의 잘못된 정책으로 금강산이 10여 년간 방치돼 땅이 아깝다. 국력이 여릴 적에 남에게 의존하려 했던 선임자들의 의존정책이 매우 잘못됐다.”고 발언했다. 여기서 선임자는 넓게 보면 자신의 아버지를 지칭할 수 있다. 북한은 김일성과 김정일을 각각 수령과 영도자로 규정하고 이들 수령을 ‘무오류’론으로 치장한다. 이는 북한 정치체제의 특성이다. 정당을 중심으로 하는 다른 사회주의체제와 달리 북한식 ‘가족정권체제(Family regime)’에서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통치의 근간인 정당성 논리를 제시한다. 따라서 이들은 무오류여야 한다. 만약 선대에 오류가 있다고 하면 가족체제 유지의 명분이 약해진다.

대한민국에는 김정은 위원장에 대해 극단적인 반감을 가지는 이들이 많다. 한편으로 김정은 위원장을 신뢰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외교가 통할 여지가 있다는 보는 이들도 제법 된다. 또한 김정은 보다는 북한을 둘러싼 대외환경을 신뢰하고 이를 통해서 장기적으로 북한을 다루어야 한다는 이들도 있다.

김정은 위원장 ‘개인’에 대한 입장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번 금강산 건은 한 가지를 확인시켜주었다. 그는 신뢰할만한 지도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2018년 9월 평양선언에서 금강산 관광 재개를 약속했고 2019년 1월 초에도 조건 없는 사업 재개를 재확인했다. 그간 국제적인 상황 변화가 있다고 하지만 지도자가 그것을 모르고 평양선언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북한이 낙관적 기대에 기초해 운영되는 체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실망스럽겠지만 ‘백마탄 지도자’가 동화속의 ‘백마탄 왕자’는 아니다. ‘선함’도 없고 ‘해피엔딩’의 기대도 없다. 그렇다고 이 지도자가 그저 할아버지 시절의 향수만을 불러내는 “어린” 지도자도 아니다. 미사일외교로 미국을 회담장에 불러낸 것을 보라. 그리고 북미 정상회담을 이용해 한 번도 만나준 적이 없던 시진핑 주석마저 불러낸 것을 보라.

그렇다면 김정은과 그 참모들이 만들고자 한 ‘백마탄 지도자’의 큰 그림은 무엇일까? 이들은 시한을 좀 더 길게 보았을 가능성이 높다. 현재 북한관련 모든 키는 미국이 쥐고 있다. 대북제재의 조타수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김정은 정부에게 트럼프 정부는 중요하지만 예측가능성이 너무 떨어진다. 탄핵과 재선이란 암초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대통령에게는 중국, 이란, 시리아 문제가 첩첩산중이라 북한문제는 정책 우선순위에서 많이 밀려있다. 중개자 역할을 하는 대한민국도 조국 사태로 북한문제는 뒷전이었다. 게다가 이제는 국내적 갈등 봉합과 4월 총선이 기다리고 있다. 중국은 미국과 통상, 환율, 기술 모든 분야에서 혈전을 치루고 있다. 게다가 홍콩문제도 심각하니 제 코가 석자다. 러시아는 여전히 제재를 받고 있다. 북한에 관심은 있지만 쓸 수 있는 가용자원이 별로 없다. 새로운 왕을 맞이한 일본은 북한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 유럽은 신생정당들 판이라 북한과의 외교에 관심을 가질 상황이 못 된다.

국제관계 판에서 볼 때 북한은 미사일이라도 쏴야 누군가 “아 북한이 있었구나!” 할 판이다.

외교가 생존수단이 되어버린 북한이 외부로부터 지원을 기대할 수 없다면 세울 수 있는 방안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자력갱생을 통해서 내부 결속을 도모한다. 이 과정에서 모든 외부세계는 언제든지 적대국 꼬리표를 달 수 있다. 또한 혹독한 내부변화를 위해서라면 선임자들과도 결별할 수 있다. 심지어 자신의 부모라도. 둘째, 소소한 외부 지원이라도 최대한 압박해서 얻어낸다. 땅굴을 파고 오래 버티려면 작은 공기구멍을 최대한 많이 만들어야 한다.

‘백마를 탄 지도자’ 김정은에게 추위가 다가오고 있다. 장기 설계도를 짰어도 곤궁한 북한이 다가오는 겨울을 버티기는 힘들다. 따라서 북한은 2탄, 3탄의 강경한 메시지를 보낼 것이다. 대한민국과 국제사회가 원칙대로 하면 할수록 더 강력한 메시지를 쥐어짜낼 것이다. 북한의 죄 없는 주민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겠지만 한 가지는 명확히 기억해야 한다. 자승자박(自繩自縛).

자신이 매었으니 반드시 자신이 풀어야한다. 그것이 신뢰를 잃은 지도자의 운명이다.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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