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 중 임신했다면 남편과 혈연관계 없어도 친생자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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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 중 임신했다면 남편과 혈연관계 없어도 친생자 추정”
  • 안혜성 기자
  • 승인 2019.10.24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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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전원합의체 “혈연관계 유무는 친생추정 기준 아니야”
‘제3자 정자 사용한 인공수정’ 및 ‘혼외 임신’ 모두 친생추정

[법률저널=안혜성 기자] 혼인 중에 임신을 했다면 제3자의 정자를 사용한 인공수정에 의한 임신이든 혼외 관계를 통한 임신이든 무관하게 남편의 친생자로 추정된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내려졌다.

원고 A와 아내 B는 혼인신고를 마친 법률상 부부다. A의 무정자증으로 자녀가 생기지 않자 제3자로부터 정자를 제공받아 자녀를 갖기로 하고 1993년경 인공수정을 통해 C(피고1)를 출산, A와 B의 자녀로 출생신고를 마쳤다. 이후 B는 1997년경 혼외 관계를 통해 D(피고2)를 출산했으며 원고 A는 D를 자신과 B의 자녀로 출생신고 했다.

원고 A와 B는 2013년경 부부갈등으로 협의이혼을 신청했다가 취하했으나 다시 이혼소송을 하면서 상호간 이혼조정이 성립됐다. 이 과정에서 피고 C와 D는 A와 B가 다투면서 자신들이 친자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비로소 사정을 알게 됐다.

원고 A는 같은 해 피고들을 상대로 친생자관계 부존재확인을 구하는 소를 제기했으며 1심 소송과정에서 유전자 검사를 실시한 결과 A와 피고 C, D 사이에 혈연관계가 없다는 점이 확인됐다.

이 사건에서의 쟁점은 C와 관련해 ‘제3자의 정자를 사용한 인공수정에 남편이 동의해 출생한 자녀에게도 민법 제844조 제1항의 친생추정이 인정되는지’와 D에 대해서는 부부 사이의 동거의 결여를 친생추정의 예외로 판단한 기존 대법원 판례(대법원 1983. 7. 12. 선고 82므59 전원합의체 판결)를 확장해 ‘유전자형 배치의 경우에도 친생자 추정의 예외를 인정할 수 있을지’다.

민법 제844조 제1항은 ‘아내가 혼인 중에 임신한 자녀는 남편의 자녀로 추정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친생자로 추정되는 자녀에 대해서는 친생부인의 사유가 있음을 안 날로부터 2년 내에(민법 제847조 제1항) ‘친생부인의 소’에 의해서만(민법 제846조) 친생 관계를 해소할 수 있다.

만약 친생자로 추정되지 않는 자녀의 경우, 예를 들어 기존 대법원 판례 입장과 같이 “부부의 한쪽이 장기간에 걸쳐 해외에 나가 있거나 사실상의 이혼으로 부부가 별거하고 있는 겨우 등 동서의 결여로 처가 부의 자를 포태할 수 없는 것이 외관상 명백한 사정이 있는 경우”와 같이 친생추정의 예외가 인정되는 경우에는 제소기간의 제한 없이 ‘친생자관계 부존재 확인의 소’를 통해 관계를 정리할 수 있다.
 

즉, 피고 C, D와 원고 A 사이에 친생추정이 부정된다면 A는 이 사건 친생자관계 부존재 확인의 소를 통해 친생자 관계를 부정할 수 있지만, 친생추정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친생부인의 소를 제기할 수 있는 제소기간 2년이 경과됐다면 C, D가 A의 친생자가 아님이 명백히 드러났다고 하더라도 친생자 관계가 확정되는 상황이다.

대법원은 지난 23일 “아내가 혼인 중 남편의 동의를 받아 제3자의 정자를 사용한 인공수정으로 자녀를 출산한 경우에도 친생추정 규정을 적용해 그 자녀를 남편의 친생자로 추정하는 것이 타당하고, 아내가 혼인 중 임신해 출산한 자녀라면 유전자 검사 등을 통해 남편과 혈연관계가 없다는 점이 밝혀졌더라도 여전히 남편의 자녀로 추정된다”며 C와 D 모두에게 친생자 추정을 인정했다.

먼저 제3자의 정자를 사용한 인공수정으로 출산한 자녀의 친생추정에 대해 “친생추정의 문언과 체계, 민법이 혼인 중 출생한 자녀의 법적 지위에 관해 친생추정 규정을 두고 있는 기본적인 입법 취지와 연혁,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혼인과 가족제도 등에 비추어 인공수정 자녀에 대해서도 친생추정 규정을 적용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또 인공수정 자녀의 복리나 인공수정 자녀와 부부가 실질적인 친가관계의 모습을 형성·유지하고 있으며 사회적으로 보더라도 인공수정 자녀가 부부의 자녀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현실 등도 고려했다.

친생추정이 적용되므로 특히 남편의 동의가 있는 경우 친생부인의 소 제기 자체가 허용되지 않는다고 봤다. 대법원은 “남편의 동의는 인공수정 자녀에 대해 친생추정 규정을 적용하는 주요한 근거가 되므로 남편이 나중에 자신의 동의를 번복하고 친생부인의 소를 제기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전했다.

혼인 중 아내가 임신해 출산한 자녀가 남편과 혈연관계가 없다는 점이 밝혀진 경우에 대해서도 대법원은 “혈연관계 유무를 기준으로 친생추정 규정이 미치는 범위를 정하는 것은 민법 규정의 문언에 배치될 뿐만 아니라 친생추정 규정을 친자관계의 설정과 관련된 기본 규정으로 삼고 있는 민법의 취지와 체계가 반한다”며 친생추정이 미친다고 판단했다.

혈연관계 유무를 기준으로 친생추정 규정의 효력이 미치는 범위를 정하게 되면 제3자가 가정 내부의 내밀한 영역에 깊숙이 관여하는 결과를 피할 수 없다는 점에서 헌법과 친생추정 규정의 취지에 반하고, 법리적으로도 혈연관계 유무는 친생추정을 번복할 수 있는 사유가 될 수 있을 뿐 친생추정이 미치지 않는 사유는 될 수 없다는 게 대법원의 설명이다.

이 사건의 경우 원고 A와 피고 D 사이에 혈연관계가 없다는 사정은 친생부인의 소를 이유 있게 하는 근거나 그와 같은 사정을 알게 된 날로부터 2년간 허용되는 친생부인의 소의 제소기간의 기산점의 기준이 될 수는 있지만 친생추정이 처음부터 미치지 않도록 하는 사유는 아니라는 것.

이에 대해 대법원은 “혈연관계가 없다는 점을 친생추정이 미치지 않는 전제사실로 보는 것은 원고적격과 제소기간의 제한을 두고 있는 친생부인의 소의 존재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으로 민법 해석상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부연했다.

권순일, 노정희, 김상환 대법관은 인공수정 문제에 대해서는 결론적으로는 다수의견과 같지만 논리 구성을 달리하고, 혈연관계가 없는 사례에 대해서는 사회적 친자관계 형성 여부에 따라 친생추정의 예외를 인정해야 한다는 별개의견을 제시했다.

이들 대법관은 인공수정 자녀의 친자관계는 민법상 친생추정 규정이 적용되기 때문이 아니라 ‘남편과 아내의 합치된 의사와 시술에 대한 동의’를 근거로 인정돼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친생부인의 소제기가 허용되지 않는다는 결론도 다수의견과 일치했으나 그 이유로는 “남편과 아내의 합치된 의사와 시술에 대한 동의를 사후적으로 번복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에 대한 헌법적 결단과 친자관계에 대한 민법의 기본질서 및 선량한 풍속에 반해 허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들었다.

남편과 혈연관계가 없는 경우는 ‘자녀의 복리’라는 관점에서 단순히 혈연관계가 없음이 증명된 것을 넘어 사회적 친자관계가 형성되지 않았거나 파탄된 경우 친생추정의 예외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회적 친자관계가 형성되지 않거나 파탄된 경우에는 친생추정 제도를 통해 보호하고자 하는 이익이 존재하지 않고, 생부가 자녀를 양육하는 등 실질적으로 친자관계를 형성해 왔거나 그러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개연성이 높을 때는 오히려 친생추정 규정을 제한하는 게 자녀의 복리에 보다 부합한다는 지적이다.

김재형 대법관은 인공수정 사례의 경우 ‘남편의 동의’를 강조하는 별개 의견을, 혈연관계가 없는 사례에 대해서는 친생추정의 예외를 인정하는 반대 의견을 나타냈다. 김 대법관은 “인공수정과 친자관계를 규율하는 입법이 없고, 혈연관계가 존재하는 것이 명백한 경우와 혈연관계가 부존재하는 것이 명백한 경우는 그 규율을 같이 할 수 없으며 아내 측에 보조생식 방법이 적용된 경우에는 별도의 법리로 해석·확정돼야 하므로 아내가 혼인 중 ‘남편의 동의’를 받아 ‘제3자 제공 정자’로 인공수정 해 자녀를 출산한 이 사건과 같은 유형에 한정해 친생추정 규정이 적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혈연관계가 없는 사례에 대해서는 “혼인에 대한 사회 인식, 혼인 형태 등이 크게 변화하고 과학적 친자감정이 가능하게 되는 등 상황 변화로 ‘동거의 결여’는 친생추정의 예외를 인정하는 합리적인 판단 기준으로 기능하기 어려워졌다”며 “종래 대법원 판례가 판단 기준으로 삼고 있는 ‘외관상 명백한 사정’의 의미를 현재의 상황에 맞춰 확대해석할 필요가 있다. 동거의 결여 뿐 아니라 아내가 남편의 자녀를 임신할 수 없었던 것이 외관상 명백하다고 볼 수 있는 다른 사정도 포함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견해를 보였다.

이번 판결에 대해 대법원은 “인공수정 자녀의 신분관계 역시 다른 친생자와 마찬가지로 조속히 확정되도록 함으로써 새로운 임신·출산의 모습을 둘러싼 친자관계 및 가족관계의 법적 안정을 확보하고 오랜 기간 유지된 가족관계에 대한 신뢰보호 필요성, 혼인과 가족생활에 대한 자율적 결정권 보장, 사생활 보호의 필요성 등을 감안할 때 혈연관계만을 기준으로 친생추정 규정의 적용범위를 정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는 의의를 전했다.

별개의견 및 반대의견에 대해서도 “현행 친생부인의 소의 원고적격과 제소기간이 너무 제한적이어서 입법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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