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제도는 목적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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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제도는 목적이 될 수 없다
  • 안혜성 기자
  • 승인 2019.10.18 11:05
  •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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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저널=안혜성 기자] 최근 일본 사법시험 결과가 발표됐다. 수험전문지 기자로서 일본 로스쿨 입시나 사법시험, 예비시험 시행 현황 등은 매년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부분이다.

일본 로스쿨 제도는 한국과 운영 방식 등 면에서 여러 가지 차이점이 있긴 하지만 제도 도입 배경이나 시기, 사회·경제·문화적 유사성 등을 고려하면 우리 법조양성제도의 발전을 위한 정면교사(正面敎師), 반면교사(反面敎師)의 구실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일본은 한국에 5년 앞선 2004년 로스쿨을 도입했고 한국이 사법시험과 변호사시험을 병행한 것과 같이 구 사법시험과 신 사법시험을 병행하다 2012년부터 로스쿨 체제를 기본 전제로 하는 신 사법시험에 의해서만 법조인을 선발하고 있다. 다만 사법시험의 폐지와 함께 로스쿨에 진학하지 않으면 법조인이 될 수 있는 길이 완전히 차단된 한국과 달리 일본은 구 사법시험의 폐지와 동시에 예비시험 제도를 실시, 로스쿨에 진학하지 않아도 신 사법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길을 열어뒀다.

문제는 로스쿨은 갈수록 인기가 떨어지는 반면 예비시험은 승승장구하는 본말전도(本末顚倒 )가 일어나는 점이다. 로스쿨 제도 도입 초기 7만 2800여명에 달했던 로스쿨 지원자 규모는 올해 9117명까지 감소했다. 이들 중 올해 실제로 로스쿨에 입학한 인원은 1862명이었다. 74개교에 달했던 로스쿨도 지원자 감소로 인한 재정난 등이 심각해지면서 폐교 및 모집정지가 이어져 현재는 36개교까지 줄어들었다.

이에 반해 예비시험은 첫 시행인 2011년 6,477명이 지원한 후 매년 지속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2014년 처음으로 1만 명을 넘어섰고 지난해에도 전년대비 568명이 증가한 13,746명이 지원하며 인기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본 무대인 사법시험 결과면에서도 예비시험 출신의 성과가 두드러진다. 올 사법시험에서 로스쿨을 수료한 합격자는 1187명으로 이들의 합격률은 29.09%를 기록했다. 이 중 법학부 출신 등을 대상으로 하는 기수자 코스 출신(2년)의 합격률만 보면 40.01%까지 높아지지만 법학비전공자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미수자 코스(3년)는 15.64%로 매우 저조했다. 반면 예비시험 출신은 385명의 응시자 중 315명이 최종합격, 무려 81.82%의 합격률을 나타냈다.

이같은 일본 법조양성제도의 현황은 우리 로스쿨이 우회로 도입을 결사반대 하는 근거로 종종 제시되곤 한다. 사법시험을 존치해 로스쿨과 이원적으로 운영하자는 주장에도, 예비시험을 도입해 로스쿨 출신과 같은 출구로 배출하자는 주장에도 같은 논리가 등장했다.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우회로가 생기면 로스쿨이 망한다”는 이야기다.

수년간 일본 로스쿨 운영 현황을 지켜본 입장에서 우회로가 생기면 로스쿨이 망한다는 전제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일본 로스쿨이 겪는 위기는 예비시험이 있기 때문이 아니다. 막대한 돈과 시간을 들이고도 합격이 보장되지 않는 점, 어렵게 합격을 했는데도 극심한 취업난으로 인해 기대한 수준의 부와 지위를 얻을 수 없는 점 등이 일본 로스쿨 인기 하락의 근본적인 이유다. 일본 정부가 연간 법조인 배출 규모를 대폭 줄이고, 로스쿨 간 통·폐합 등을 유도해 사법시험 합격률 상승을 도모하면서 로스쿨 지원자 수 감축폭이 줄어들다가 올해 입시에서 처음으로 소폭이나마 지원자와 입학자 수 모두 반등한 것을 보라.

우리나라에 예비시험이 도입되면 현재와 같이 유일한 법조인 배출 창구라는 독점적 지위에서 얻는 이익과 권력을 일부 포기해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로스쿨이 망할 리 없다. 오히려 더 다양한 계층의, 다양한 경험을 갖춘 인재들이 법조계로 진입할 기회가 될 수 있다. 일본의 예비시험 결과에서 보듯이 예비시험 합격은 바늘구멍 뚫기나 마찬가지로 어려운 길이 될 것이고 당연히 예비시험 보다 상대적으로 수월한 길을 선택하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또 예비시험과의 경쟁을 통해 로스쿨의 교육 여건이 좋아진다면 질 좋은 교육을 받기 위해 로스쿨 진학을 선택하는 이들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경제적 여건이 좋지 않거나 생업을 포기할 수 없어 로스쿨에 진학할 수 없는 이들도 법조인의 꿈을 이룰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제도는 수단이지 결코 목적이 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우회로가 생기면 로스쿨이 망한다”는 주장이야말로 본말전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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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진 2019-11-12 06:29:53
"경제적 여건이 좋지 않거나 생업을 포기할 수 없어 로스쿨에 진학할 수 없는 이들도 법조인의 꿈을 이룰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제도는 수단이지 결코 목적이 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우회로가 생기면 로스쿨이 망한다”는 주장이야말로 본말전도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오신환 의원 후원해야 할 듯.

출처 : 법률저널(http://www.lec.co.kr)

ㅇㅇ 2019-11-04 12:11:33
로스쿨 망하든 말든 지들사정이지 수험생입장에선 예비시험 도입되면 좋은거 아닌가? 기득권만 로스쿨제도 찬성할듯. 대가리에 총맞아서 서민이 연 천만원씩 꼬라박냐 ㅠ

ㅇㅇ 2019-10-21 11:41:04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참기자님!

고형 2019-10-21 02:28:24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경쟁없이 스스로 개선할리없는 로스쿨이란거 다 아는 사실입니다...!로스쿨이 있는 한 공정성을 말할수 없다는 거 다아는 현실입니다..! 사법시험 예비시험으로 가는건 거부할수 없는 정의 입니다 !!

논리 2019-10-20 19:22:06
논거가... 너무 ㅋ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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