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환생의 방식”, 조국 교수를 향한 한 마디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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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환생의 방식”, 조국 교수를 향한 한 마디 위로
  • 오시영
  • 승인 2019.10.18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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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전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오시영 전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대한민국은 지금 뻔뻔한 자들의 폭언으로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정글화 돼 가고 있다. 전혀 길이 보이지 않는다. 뻔뻔한 자들은 자신의 추접스러움을 잘 알지 못한다. 망각의 동물이어서인지, 아니면 뻔뻔함으로 체화되어 있어서인지는 내 알지 못하지만, 하여튼 은인자중할 줄 모르는 이들이 넘쳐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사회지도층이라는 이들이 수많은 범죄나 비위에 연루되어 있고, 그러한 사실들이 공공연한데도 불구하고 오로지 손가락은 자신이 아닌 밖으로만 향해져 있다. 자신의 가슴에 화살이 박혀 피를 철철 흘려도, 아픔을 호소해도 부족할 판인 것 같은데 어찌 감히 타인을 향해 잔인한 총질을 계속해 대는지 참으로 불가사의할 뿐이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이중적 행태가 도를 넘어서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아들에 대한 서울대 연구논문과정에서의 부정 개입문제, 딸아이의 성신여대 부정입학 의혹 및 부정 학점취득 의혹 문제, 자신이 조직위원장을 역임한 스페셜올림픽코리아(SCK)에 대한 박근혜 정권 당시의 과도한 정부지원 의혹, 자신이 밝힌 다운증후군 장애를 가진 딸아이가 과연 위 SOK라는 조직에서 자신의 뒤를 이어 이사라는 공직 수행 능력이 객관적으로 있는지 등등 많은 의혹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명쾌한 해명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조국 전 법무부장관에 대한 정치공세를 펼치는 것을 보면 왠지 형평성이 맞지 않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필자는 세상사 답답할 때면 시집이나 성경을 펼쳐 읽는 습관이 있다. 잠시 현실을 떠나 상상의 세계를 관조할 수 있어서이다. 젊어서는 20권이나 되는 “대망”을 펼쳐 읽기를 몇 번이나 하였는지 모른다. 인간이 인간의 길을 찾는다는 것이 참으로 힘든 세상이 되어 버렸다. 그러면서 문득 “가진 자의 몰락은 처절한 반항의 파괴과정이 필연적으로 동반”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하루살이와 거대한 공룡의 죽음은 다 같은 한 생명의 죽음일 테지만 그 저항의 후유증은 결코 같을 수가 없음도 깨닫는다. 임은정 부장검사의 “죽을 때까지 찌르니 죽을 수밖에”라는 조국 장관 사퇴에 대한 단상이 촌철살인이다. 결국 조국 법무부장관이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야당의 집요한 사퇴 요구 앞에, 검찰의 죽을 때까지 찌르려는 듯한 가족들에 대한 수사 앞에 사퇴하고 말았다. 서초동법조사거리를 촛불시민의 지지함성이 가득 메웠지만, 광화문에서는 반대자들의 여론 및 검찰의 송곳 앞에 물러서고 말았다.

한이나 시인의 “환생의 방식”이라는 시 한 편을 소개한다. “비단이 스쳐 바위가 닳는다는/ 한 겁, 한 생이/ 어떻게 고요히 저무는지/ 전생을 세어 본 적이 없다// 낙뢰가 모래밭에 날카롭게 내려 꽂혀/ 우루루 우루루 길 밖으로/ 어떻게 파도를 몰고 가는지/ 태풍의 향방을 쫓아가 본 적이 없다// 긴 울음처럼 멀리서 밀려오는 너울성 파도,// 수평선 너머를 바라보는 천리안,/ 고래 등에서 솟아오르는,// 난기류의 물살 시퍼런 목숨을 건너는 하루가/ 태풍이다/ 한 겁이다” (시집 ‘로리안 카페에서 쓴 편지’에 수록, 서정시학 간).

한 겁이라는 시간은 “천지가 개벽한 때부터 다음 개벽할 때까지 시간”이라는 불교의 가르침이다. 한 세상이 열렸다 닫히는 그 긴 시간이 한 겁이라는 시간이다. 한이나 시인은 저 시의 마지막에서 “하루가 한 겁”이라며 하루를 살아내는 인생이 얼마나 힘든 과정인지를 설파하고 있다. 부드러운 비단이 스쳐 바위가 닳는다니! 한 시인의 상상력은 저 시의 첫째 연에서 범인들의 상상력에 자물쇠를 채운다.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부드러운 비단결이 스쳐야 바위를 닳게 할 수 있을까? 저런 정성으로 일생을 살아가는 이들이 과연 이 세상에 존재하기는 하는 것일까? 그러면서 한이나 시인은 “난기류의 물살 시퍼런 목숨을 건너는 하루가 바로 한 겁의 삶”을 사는 것이라고 우리를 깨우친다. 한 시인은 한 겁, 한 생이 어떻게 저무는지 전생을 세어보지 못했지만, 벼락이 모래밭에 떨어져 태풍을 일으키고 파도를 몰아가는지 모르지만, 하루 삶 속에서 수평선 너머를 바라보는 심안의 천리안을 가지고 고래 등을 타고 앉아 있는 하루의 삶이 천지개벽의 한 겁과 맞먹을 만큼 힘들고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독자더러 좀 사람답게 살라고 속삭이고 있다.

조국이라는 인간은 어떤 인간일까? 윤석열 검찰총장은 조국의 비위사실을 밝혀내 그를 법의 심판대에 앉히기 위해 아들과 딸, 부인을 쥐 잡듯이 뒤졌다. 그의 가족들의 비위를 어떻게든 조국이라는 인간에게 엮으려고 끊임없이 시도하였다. 조국이 장관직을 물러서기 사흘 전 한겨레신문 하어영 기자는 윤석열 검찰총장이 김학의 전 법무부차관 관련 원주별장 성접대 주범으로 알려진 건설업자 윤중천 씨로부터 원주 별장에 몇 차례 초대받아 접대 받았다는 의혹이 있음에도 이를 검찰이 수사하지 않고 덮었다는 취지의 기사를 보도하였고, 이 기사로 인해 윤석열 총장이 곤란한 처지에 놓이고 말았다. 그런데 조국 법무부장관은 이와 같은 보도에 대해 자신을 향해 칼을 겨누고 있는 윤석열 총장을 옹호하며 “진실은 그런 사실이 없다.”는 것이니 이를 빨리 밝혀야 한다며, 이를 밝힘으로써 윤석열 총장을 의혹의 구렁텅이에서 건져내었다. 우리는 이 한 장면을 통해 조국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그 진면목을 알 수 있다. 권모술수를 부릴 줄 모른 채 형법학자로서 정의가 무엇인지 생각하며 올곧게 살아온 사람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웬만한 사람이라면 저런 상황에서 자신에 대한 칼날을 무디게 할 목적으로 윤석열 검찰총장을 더욱 옭죄는 비열성을 보일 수도 있지만, 가장 마지막 순간까지 “아닌 것은 아닌 것”이라며 진실을 밝히는 그의 정직함을 우리는 눈치 채야 한다는 것이다.

법무부장관으로 내정된 후 청문회 과정을 거쳐 장관으로 임명되어 공직을 수행해 온 지난 두 달 여 동안 대한민국은 “조국”으로 가득 차 있었다. 조국이라는 단어를 사랑하는 우리나라라는 의미로만 알고 지내던 대한민국 전 국민이 둘로 나뉘어 조국 수호와 조국 사퇴라는 정치적 구호로 갈려 혼란에 혼란을 거듭해 왔던 것이다. 대한민국은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진보는 깨끗해야 한다.”라는 명제에 갇혔고, “보수는 좀 더러워도 된다.”라는 너그러움으로 풀려나 있었다. 정부 수립 이후, 아니 경술국치 이후, 아니 조선시대 이래 보수는 이 나라의 지도세력이었고, 부유층이었고, 모든 것이 용서되는 계층이었다. “뭐 이 정도면 깨끗한 거지.”라는 자기면죄부가 공공연히 회자되던 나라였다. 이승만 정부 때도 그랬고, 박정희 정권 때도 그랬다. 전두환 정권 때나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 이르는 보수정권 내내 모든 것을 가졌고 누렸고, 호사한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김대중, 노무현 정권으로 상징되는 진보정권 시절, 역사 이래 최초로 진보세력에게 국가 권력을 내어 준 보수의 반발은 공룡의 죽음 직전 발악처럼 지축을 울리고 천지를 요동케 했던 것 또한 사실이다.

절치부심, 이명박 정권을 통해 다시 보수가 집권하였고, 이어 박근혜 정권 역시 순항하는 듯하였다. 최순실 사태가 갑자기 태블릿피시를 통해 드러나지 않았다면 박근혜 정권에 이은 또 다른 보수정권이 들어설 수 있었던 당시 상황이었다. 당시 보수를 지지하는 여론이 훨씬 높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위 “옥쇄파동”이라 명명된 김무성 당시 한나라당 대표의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반친박감별 저항으로 더불어민주당이 제1당이 되는 천우신조의 총선혁명이 일어났을 뿐만 아니라, 연이어 최순실 사태가 만천하에 드러남으로써 졸지에 국회권력에 이어 행정부권력까지 빼앗긴 후 거의 멘붕 상태에 빠져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2년여의 세월이 흐르면서 거대한 몸집의 보수가 다시 기지개를 켜기 시작하면서 진보를 옭죄기 시작했고, 그 첫 번째 성과가 어쩌면 “조국 장관의 사퇴”라고 할 수도 있다.

이제 윤석열 검찰총장은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였다. 조국 장관 낙마를 의도하였고, 그 목적은 가족들에 대한 집요한 수사압박으로 달성하였다. 조국 장관은 자녀들과 여러 지병으로 힘들어하고 있는 부인 곁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와 가족들이 장관 임명 전의 고요한 일상으로 돌아가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그의 점잖은 품성과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학문에 몰입함으로써 충분히 극복해 나갈 것으로 믿는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았으며 진보적 보수의 참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반대자들은 그를 위선자라거나 범죄자라며 계속해서 공격하겠지만, 결국 그가 위선자인지 여부는 윤석열 검찰총장의 그의 가족들에 대한 공소장으로 밝혀질 것이다. 아니 그의 공소장에 대한 법원의 판결로 밝혀질 것이다.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먼 훗날 그와 가족을 둘러싼 대부분의 혐의가 무혐의이거나 무죄로 판명될 것으로 예측된다. 법률가로서의 필자의 분석 결과이다.

그날, 어쩌면 조국 교수(필자가 알고 있는 그는 민정수석도 아니고 법무부장관도 아닌, 그냥 학문을 좋아하는 대학교수일 뿐이다)는 한이나 시인의 “환생의 방식”이라는 시처럼 “참 맑고 깨끗한 지성인”이었구나 하고, 우리 모두에게 선한 품성을 지닌 올곧은 지식인으로 환생할 것으로 믿는다. 아마 지금 그는 자신을 공격한 이들을 미워하기보다는 “자신의 부족함이 무엇이었는지 되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의 성품상 자신을 공격하는 타인에게 변명하기보다는 그들의 공격처럼 자신에게 어떤 부족함이 있는지 되돌아보는 방식의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난기류의 물살 시퍼런 목숨을 건너는 하루”가 우리 인간들에게 주어진 하루하루이다. 어디 조국 교수에게 국한된 문제이겠는가? 지금 그를 향해 무수한 비수를 찌르고 공격을 가해왔던 자유한국당 국회의원 60명은 공수처설치법 처리과정에서의 패스트트랙을 방해한, 소위 국회선진화법상의 폭력적 의회입법 방해죄로 기소 직전에 놓여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하루 속히 그들에 대한 수사를 마무리 지어야한다. 수사 중인 경찰로부터 사건을 조기 송치받은 이유가 “수사지연”이었지 않는가. 그렇다면 신속하게 수사하여 조국 교수의 부인 정경심 교수에 대한 “피의자 수사 생략 공소제기 방식”으로라도 60명의 혐의자들에 대해 공소를 제기하기 바란다. 대한민국 법을 위반하고 있는 이들이 저 60명의 국회의원들이다. 그들의 패스트트랙 반대를 위한 폭력적, 물리력 행사는 전 국민에게 생중계되었다. 수많은 증거들이 이미 수집되어 있을 것이고, 고소인들에 대한 참고인 수사도 이루어졌을 것이다. 증거가 충분할 것으로 판단된다. 그렇다면 하루 속히 기소해야 할 것 이외에 무슨 다른 방법이 있는가?

조국 교수 가족들에 대한 수사를 두고 선택적 정의라는 말이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필자는 이번 조국 교수 수사를 지켜보며 “선택적 부정의”라는 말을 사용해야 한다고 본다. 선택적 정의는 그 의미가 부정적일망정 긍정적으로 해석될 난독의 함정에 빠지게 한다. 따라서 명확하게 “선택적 부정의”라고 명명함으로써 오독을 불가능하게 해야 한다. 무엇보다 국회선진화법을 위반한 자들은 피선거권이 박탈된다. 그렇다면 다음 총선에 출마할 수가 없다. 그런데 선택적 부정의에 의해 검찰이 그들에 대해 기소를 지연시키면 그들이 다음 총선에 출마할 것이고 더러 당선되어 의정활동을 하게 되면 얼마나 부정의한 일이 일어나겠는가? 거기에다가 그들이 국회의원에 당선된 후 유죄가 확정되면 다시 보궐선거를 해야 하므로 국가예산이 또 얼마나 낭비되겠는가? 윤석열 총장이 정경심 교수에 대한 사모펀드 사건을 수사하여 얻게 될 공정한 주식투자로 인한 경제적 이익금보다 보궐선거에 들어가는 비용이 훨씬 더 클 것이다.

조국 교수에게 위 시를 읽어보시길 권한다. “시퍼런 목숨을 건너는 하루가 한 겁의 삶”이니, 오늘 하루 살아 있음에 감사하고, 마음의 평정심과 고요를 되찾기 바란다. 누구를 원망할 것도 없고 미워할 것도 없다. 당신의 사퇴에 지금 환호하는 이들에게 당신의 떳떳함을 먼 훗날 보여주기를 기대하며, “환생의 방식”을 고민해보시기 바란다. 당신에게는 당신이 사랑하는 자녀와 아내, 당신을 사랑하는 자녀와 아내가 있지 않은가? 그리고 서초동법조사거리를 가득 메운 촛불시민이 있지 않은가? 무엇보다 그 사거리에 위엄 있게 서 있는 수령 1,000년을 자랑하는 한 그루 향나무의 향기를 맡을 수 있기를 바란다. 향기롭지 않은가?

오시영 전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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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KJTKEL 2019-10-19 00:28:36
시 참 좋습니다..
사람이 살면서 억울할 일만큼은 없어야 할텐데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러야 조국 장관가족의 상처가 치유될 수 있을지 짐작도 못하겠습니다.
가족을 갈아만든 검찰개혁이라는 시대정신.
우리모두는 그에게 큰 빚을 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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