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19-11-19 18:03 (화)
강신업 변호사의 법과정치(132) / 자백 - 증거폭탄
상태바
강신업 변호사의 법과정치(132) / 자백 - 증거폭탄
  • 강신업
  • 승인 2019.10.10 18: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신업 변호사, 정치평론가
강신업 변호사, 정치평론가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범인임을 자백한 이춘재가 모방 범죄로 이미 종결된 8차 사건-1988년 9월 16일 태안읍 진안리에서 중학생 박 모양이 자신의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 이듬해 7월 22세 윤 모씨가 범인으로 체포되고 화성연쇄살인 사건의 모방범죄로 결론이 났다. 윤 씨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수감됐고 20년의 수감생활 후에 가석방으로 출소했다-을 본인이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이춘재의 자백이 사실이라면 윤 씨는 억울한 옥살이를 한 셈이 된다. 윤씨는 2003년 5월 시사저널과 진행한 옥중 인터뷰에서 “나는 8차 사건 범인이 아니다, 나처럼 돈도 없고 백도 없는 놈이 어디다 하소연하나. 그 때 나는 국선 변호인을 쓸 수밖에 없었다. 억울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윤 씨는 당시 항소이유서에서 “집에서 잠을 자고 있다가 경찰에 연행돼 혹독한 고문을 받고 잠을 자지 못한 상태에서 허위 자백을 했다”고 진술했다.

자, 그렇다면 누가 진범인가. 이춘재는 자신이 범인이라고 하고, 윤 씨는 자신은 범인이 아니라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윤 씨가 유죄 판단을 받은 결정적 증거가 수사기관에서 한 윤 씨의 자백이라는 사실이다. 당시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체모의 혈액형이나 체모 속에서 발견된 티타늄 성분은 윤 씨의 범행을 입증할 정황증거는 될지언정 유죄를 입증할 직접 증거가 되기 어렵다. 즉, 자백이 없었다면 법원은 윤 씨를 유죄로 판단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자백은 증거의 왕이라고 하지만 또 그만큼 위험한 증거다. 대중들이 갖는 오해는 고문을 받거나 정신 질환이 있지 않는 한 결백한 사람이 허위 자백을 할 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허위 자백을 하고 유죄판결을 받은 후 나중에 결백이 증명된 사례를 보면 사람들은 생각보다 쉽게 자신에게 불리한 자백을 한다. 피의자는 수사를 받는 도중 자백밖에 대안이 없다고 여길 때 자포자기 심정에서 자백을 한다. 피의자들은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며칠을 견디지 못하고 중대 범죄를 저질렀다고 허위 자백을 했다.

혹자는 윤씨가 1심 법정에서도 자백을 했다는 점을 들어 윤 씨 자백의 임의성에 문제가 없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자백은 한 번 하고 나면 번복하는 것 자체가 힘들다. 번복하면 중형을 선고 받을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검사와 판사 심지어 변호인들조차 자백은 확실한 유죄의 증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일단 자백이 있으면 이를 그대로 인정하려는 확증 편향을 보인다. 사실 인간은 모두 터널 시야와 확증 편향 같은 인지적 한계를 가지고 있는데, 그럼에도 수사나 재판을 담당하는 사람들은 피의자나 피고인의 자백의 진위를 판단함에 있어 오히려 근거 없는 자신감을 보인다. 때문에 사실 자백은 변론을 산산조각 내는 증거 폭탄의 역할을 하게 되고, 그 결과 무고한 시민들이 범죄자라는 누명을 쓴다. 자백의 위험성은 실제 1990년대 말 이후 미국에서 DNA 분석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살인과 강간 같은 가장 중대한 범죄를 저질렀다고 자백한 후 유죄판결을 받은 수백 명의 사람들이 결백하다는 사실이 증명된 데서도 분명하게 드러났다.

그렇다면 과연 화성 8차 사건의 진실은 무엇일까. 윤 씨의 말대로 잠을 재우지 않는 등의 강압수사에 의해 윤 씨가 하지도 않은 범죄를 저질렀다고 자백한 것일까. 그리고 이춘재의 말대로 진짜 범인은 이춘재일까. 윤 씨는 돈 없고 백도 없으니 변호인도 제대로 쓸 수 없었고 어떻게 자신을 방어해야 하는지 몰랐다고 한다. 윤 씨는 교도소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다고 한다. 청주교도소에서 윤 씨를 아는 수형자와 직원들 사이에서는 윤씨는 ‘무죄인데 억울하게 들어온 애’로 통했다고도 한다.

물론 그럼에도 윤 씨가 여전히 8차 사건의 범인일 수 있다. 이춘재의 자백은 소영웅주의의 발로이거나 수사 혼선을 노린 것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고아에 배우지 못한 윤 씨가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자포자기 심정으로 하지 않은 범죄를 자백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적어도 철저한 재조사는 꼭 필요하다. 진실을 규명하고 무너진 정의를 회복하는 일에는 시효가 있을 수 없다.

강신업 변호사, 정치평론가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