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장애인’ 김동산씨의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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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장애인’ 김동산씨의 경우
  • 송기춘
  • 승인 2019.09.27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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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춘 전북대학교 <br>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송기춘 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동산(가명)씨는 장애인 시설에 사는 나이 63세의 남자이다. 다른 장애인 시설에서 이곳으로 10여 년 전에 왔다. 어느 날 전에 살던 토○○라는 시설에서 점심을 먹고 쉬는데 시설장이 차에 타라고 해서 탔더니 몇 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이 이곳이었다. 멀리 거대한 산줄기가 흐르고 이따금씩 마을 주민이 농사일로 지나가는 것 말고는 다른 사람들을 만나기도 쉽지 않은 곳이다. 와서 사과나무, 블루베리 밭을 일구고 농사를 지었다. 몇 천 평 사과밭을 ‘직업훈련’이라며 돌봤지만 수확한 사과는 몇 개 먹지 못하였다. 통장에 있는 돈도 얼마 되지 않는다. 통장은 목사라는 사람이 관리했다. 김씨가 장애인 시설에 거주하지만, 그의 장애는 그리 심각한 정도가 아니다. 다리가 불편해서 지팡이를 짚고 다니고 때로 손이 떨리는 증상이 나타난다. 장기 두는 것을 좋아하고 글을 읽는 것도 불편함이 없다. 장사 일을 거들며 산 적도 있다고 한다. 어떤 연유로 장애인 시설에 들어왔는지까지 상세하게 듣지는 못했지만, 이 사람을 만나 얘기를 나누면서 들었던 생각은, ‘왜 이 사람이 여기서 살고 있나’ 하는 것이었다. 자신이 가진 불편함을 보완하고 도움을 조금 받으면, 자기 마음대로 살고 싶은 곳에서 살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본래 ‘장애’란 누군가의 몸이나 정신에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은 저마다 불편한 곳이 있기 마련이고, 이 불편함을 나름 극복하고 보완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눈이 불편하면 손쉽게 안경이라는 보조수단을 이용해서 그 불편함을 극복하기 때문에 우리는 눈의 웬만한 불편함을 의식하지 않는다. 다리가 불편한 것도 마찬가지이다. 지팡이나 휠체어를 이용하면 어느 곳에도 갈 수 있다. 다만, 휠체어가 전진할 수 없는 계단이나 턱을 만나면 그 어려움이 장애로 인식되는 것이다. 장애란 누군가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적 환경 때문에 비로소 겪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장애란 어떤 사람의 몸과 정신을 기준으로 하여 그에 미치지 못하는 상태가 아니라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불편함이 제대로 시정 또는 보완될 수 없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비로소 겪게 되는 것이다. 장애를 겪는 사람이라고 하여 특별할 리 없다. 필요한 도움을 받으면 살고 싶은 곳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는 것이다.

몇 년 전 가톨릭교회 교황이 우리나라를 방문했을 때 꽃동네를 찾은 적이 있다. 그 때 장애인단체에서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장애인들을 집단으로 수용한 곳이 어찌 칭찬의 대상일 수 있는가, 시설에서 벗어나 자기 삶을 자신이 결정해야 하는데 장애인 집단거주시설이야말로 장애인 인권을 침해하는 곳이라는 이유다. 장애인의 ‘탈시설’이야말로 오늘날 절실한 인권의 요청이다.

얼마 전 김씨는 이곳에 같이 사는 다른 사람과 함께 부근 도시에 나가 산 적이 있다. 자립을 위한 체험과정이다. 도시에 나가 많은 것들을 보고 경험했다. 그 때 시내에서 만난 그의 얼굴에 화색이 가득했다. 생활에 어려움도 없다고 했다. 주변에 시설에서 살다가 나와 독립한 사람들이 여럿 있어 도움도 많이 받는다 했다. 그는 다시 시설로 돌아왔다. 자신의 경험을 다른 사람들에게 얘기하고 자립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물론 이곳에 사는 사람이 모두 혼자 알아서 살 수 있는 사람들은 아니다. 그렇지만 몇은 혼자서 생활이 가능하다. 다른 몇은 두 명 정도 짝을 이뤄 서로 도우며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이 사람들이 스스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필요한 것을 제공하는 일이다. 보조서비스가 필요하면 그 사람에게 적절한 시간 동안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하면 된다.

시설에 살다가 자립하면 자립에 필요한 보조금을 준다. 그런데 혼자 살기로 하면 자립이고, 두 사람이 살면 자립이 아니라고 한다. 마음에 맞는 친구끼리 사는 게 왜 자립이 아니란 말인가. 장애인이 둘이 살면 장애인의 주거형태 가운데 공동생활 가정(이것은 소규모 시설이다!)에 해당하기 때문에 자립이 아니라는 것인데, 자립을 하더라도 맘에 맞는 친구끼리 의지하며 살아가면 안 될 이유가 있는가? 친구와 함께 사는 방식을 택하는 것도 이미 독립된 사람이 하는 것인데 말이다. 이 또한 장애를 가진 사람에 대한 차별적인 사고의 일단이다.

송기춘 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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