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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네이밍, 황교안 대표의 민부론의 허점, 강력한 문민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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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네이밍, 황교안 대표의 민부론의 허점, 강력한 문민통제
  • 오시영
  • 승인 2019.09.27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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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오시영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이름은 상징이다. 까닭에 이름 짓기, Naming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래서 아이가 태어나면 작명가를 찾아 좋은 이름을 지으려 애쓰는 것은 모든 부모의 공통된 심리이다. 기업도 말할 것 없다. 사업 번창을 희망하는 모든 이는 기업 상호를 좋은 이름으로 갖기 위해 머리를 쥐어짠다. 결국, 이름은 부르기 쉬워야 하고, 발성이 밝아야 하며, 뜻이 명료하며 기억하기 쉬워야 한다. 정치인들로서는 자신의 정치적 주장을 명료하게 하려고 멋진 구호를 선점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 즉 주장하고자 하는 쟁점을 한 마디, 한 문장으로 명료하게 표현할 수 있는 네이밍에 특출한 재능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부족한 자신의 능력을 보완하기 위하여 능력 있는 전문 카피라이터를 활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리 이름이 좋아도 내용이 빈약하면 속 빈 강정처럼 금방 들통이 나게 마련이다. 지금, 이 순간 인터넷으로 연결된 현대사회는 참으로 신기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모든 사회적 이슈는 순식간에 집단 지성의 탑 쌓기로 진실과 거짓이 규명된다. 어떤 쟁점이 이슈화되면 모든 벽돌 같은 지성들이 모여 기초를 놓고 탑을 쌓기 시작한다. 더러는 낡고 부실한 벽돌이 섞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불량벽돌은 집단 지성의 자정 노력을 통해 걸러지고, 튼실한 벽돌만이 높고 높은 진실의 탑을 쌓는다. 다른 한쪽에서는 불량벽돌들끼리 진실의 탑과는 반대되는 거짓의 탑이 쌓인다.

진실의 탑과 거짓의 탑은 그 높이가 같다. 무지한 자의 눈에는 탑의 높이만이 문제가 되지만 지혜로운 자에는 탑의 튼실함을 꿰뚫는 혜안이 있다. 거짓의 탑은 높이 쌓을수록 무너지기 쉽다. 하지만 거짓의 탑을 쌓는 이들은 자신들의 거짓이 절대 드러나지 않을 것이라거나,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착각에 사로잡혀 내일 무너질 탑을 더욱 높이 쌓으려 발버둥 치는 속성이 있다. 필자는 “‘어떻게’가 없는 무엇을!” 외치는 자를 신뢰하지 않는다. “어떻게”를 통해 과정과 결과를 설명하지 못하는 “무엇을”은 거짓이거나 우매한 선동일 개연성이 높다. 그럴싸한 약발을 치지만,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데이터에 근거한 미래예측이 배제된 “무엇을”은 신뢰할 수 없는 거짓말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지난 22일 자유한국당의 경제정책으로 민부론(民富論)을 발표하였다. 그 요지는 “민간과 시장의 경쟁력을 최대화”하겠다는 것이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을 차명하여 백성이 부자가 되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민이 어떻게 부자가 될 것인지 그 방법을 제시하여야 한다. 제목과 내용의 일치를 통해 네이밍의 극대화를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제목은 민부론인데, 내용은 특정계층부론(特定階層富論)이어서 불일치하다. “대한민국 경제, 급성 심근경색에 걸렸다.”는 그의 결론은 옳다. 하지만 그것은 경제의 양극화로 인하여 상위 계층 5%의 소득이 모든 국민의 30% 이상의 소득을 올리고 있고, 소득 상위 10%의 국민이 전 국민의 45% 가까운 소득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즉 상위 소득 한 명이 10명 몫의 절반을 가져감으로써 하위 소득 계층의 빈곤이 가속화되고 있다. 그러려면 하위 소득 계층의 소득을 높이는 방안을 제시하여야 하는데, 오히려 최저임금제를 일시적으로 정지시키거나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민부론이 아닌 민빈론(民貧論)을 옹호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심각한 천민 사회주의가 대한민국을 중독시키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민간과 시장의 경쟁력을 일으킬 심폐소생술이 시급하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우리가 경제선진국이라고 평가하고 있는 네덜란드나 덴마크 같은 나라는 우리나라가 따라갈 수 없는 사회주의 경제정책을 도입하여 실시하고 있음에도 우리의 3만불 국민소득보다 두 배나 높은 7만불 가까운 국민소득을 올리고 있다. 우리나라가 복지 국가를 지향하면서 그들 나라가 취하고 있는 사회주의 경제정책을 우리나라의 자유 시장경제정책에 접목함으로써 말 그대로 민부론의 실천적 이행이 있어야 함에도 이러한 정책을 단순 이분법적 논리로 선악의 경계를 짓는 것은 참으로 문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교조적 기독관에 사로잡히면 모든 것을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 단절론에 의해 사물의 가치를 평가하기 쉽다. 검은색과 하얀색 사이에는 수많은 색이 존재한다. 모든 색을 배제하면 하얀색이 되지만, 모든 색을 합하면 검은색이 된다. 그런데 이 세상에 하얀색과 검은색만이 존재하는 것인 양 흑백논리에 몰입하게 되면 잘못을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처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극단적 순혈주의나 극단적 순수주의에 사로잡히면 이 세상에 제대로 명함을 내밀며 살 사람이 존재할 수 없게 만든다. 모든 사람은 결점이 있게 마련이고, 살아가는 과정에 잘못이 있기 마련이다. 요즘 조국 법무부 장관의 임명을 둘러싼 여야 간 대립은 진보의 허물이 쟁점이 되고 있다. 진보는 깨끗해야 한다는 당위는 옳은 말이다. 아니 보수도 깨끗해야 한다는 당위 역시 옳은 말이다. 하지만 진보는 자신의 더러움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깨끗함을 향해 현실적 문제들을 개선하고 변화시켜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기에 반성하는 마음가짐이 있는 것이다.

황교안 대표는 “2030년 1인당 국민소득 5만 달러, 가구당 연간 소득 1억 원, 중산층 비중 70% 달성”이라는 경제 정책 전환 목표를 제시하였다. 그런데 자신들이 집권할 것으로 예상하는 2022년에서 2030년까지는 불과 8년이 채 되지 않은 기간이다. 이 기간에 3만 1천 달러 정도의 국민소득을 5만 달러로 성장시키려면 적어도 매년 6% 정도의 경제 성장을 이룩하여야 한다. 세계적인 경제 침체로 인한 성장률 둔화, 미‧중 무역 갈등으로 인한 경제 강대국들의 불안한 경제 운영, 일본의 수출 규제로 인한 대외 여건 악화, 갈수록 강화되고 있는 보호무역주의 정책의 확대 등으로 인하여 세계 경제 상황은 결코 녹록지 않다. 그런데 갑자기 경제성장률을 위와 같이 밑도 끝도 없이 지금의 두 배 이상 끌어 올리겠다는 것은 전혀 가당치도 않다. 명백한 거짓말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0.1%의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리려면 적어도 6조 원가량의 재정 적자 정책이 이루어져야 한다. 저렇게 두 배 이상의 경제성장을 달성하려면 매년 100조 원 이상의 재정적자가 이루어져야 하고, 이는 고스란히 국민 부담의 빚으로 남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망국적인 부동산투기가 활성화(?)되고, 서민경제를 뿌리째 흔드는 인플레정책을 통해 거품경제를 극대화(?)하는 고질병의 바이러스를 몸에 투여하여야 한다.

“정부의 과보호에서 벗어나 자유경쟁으로 기업과 개인의 활력을 높이겠다.”는 기업우대의 경제정책은 말은 그럴싸하지만, 세계화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경쟁력 약한 기업들의 줄도산을 가져올 수도 있는 위험한 정책이다. 물론 대기업들이야 살아남겠지만, 지금도 대기업의 유동성(예금 현금) 보유율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고, 사내 유보금을 어디에 써야 할지 투자처를 찾지 못해 서민들의 호주머니가 고갈되어가고 있는 현상을 더욱 가속화하겠다는 것으로, 빈익빈 부익부를 심화시켜 소수의 부자에게 국가 경제를 통째로 먹잇감으로 내놓겠다는 것 다름 아니다. 이는 민부론이 아니라 민빈론의 실천적 방향 제시일 뿐이다. 필자가 황교안 대표의 민부론을 신뢰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러한 무분별한 경제지표의 제시는 국민들에게 경제적 환상을 안겨주게 될 뿐 구체적이고 실천적으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객관적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황교안 대표는 “문재인 정권의 반시장, 반기업 정책이 우리 기업 환경을 파괴했다.”고 강변하고 있지만, 이는 여태 전 정부의 잘못된 정책으로 인한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르게 하기 위한 정책일 뿐 결코 기업 환경을 파괴한 것이 아니다.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 시절 우리 경제의 양극화가 더 극심해졌다는 구체적 경제지표들이 이러한 근거를 잘 제시해 준다. 우리의 경제 규모로 볼 때 지금 경제 수술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부자 망하기”가 되고 말 위험한 개연성마저 있다. 여야가 다투고 정쟁만을 일삼을 것이 아니라, 서로 머리를 맞대고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하는 까닭이다. 태풍 타파가 남해안을 휩쓸고 돼지 열병이 축산농가에 비상벨을 울리고 있는 이때에도 여전히 정쟁만을 일삼고 있는 정치권은 참으로 국리민복에는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닌가 싶어 우려스럽다.

거기에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검찰의 패스트트랙 관련법안 방해 혐의로 국회선진화법 위반 범죄사실에 대한 검찰의 소환에 대해 문희상 국회의장에 대한 자기 당의 고소사건(의원 사보임 결정이 잘못되었고, 임이자 의원에 대한 성추행이 있었다는 고소사건)에 대해 먼저 수사를 받으면 자신도 가서 받겠다는 “조건부 소환 불응”을 주장하고 있다. 검찰이 자체적인 수사계획에 맞춰 수사하겠다고 소환했는데, 피소환자가 다른 사람을 수사하지 않으면 수사받지 않겠다고 억지를 부리는 것이 과연 가당키나 한 일인가 싶다. 어디 그뿐인가. 자기 아들과 딸에 대한 대학 부정입학 관련 수사가 코앞에 닥쳐오자, 문재인 대통령의 딸과 아들의 비위사실 및 조국 법무부 장관에 대한 자녀 대학원 입학 의혹에 대한 수사와 함께 자신과 황교안 대표의 자녀들 입시 부정 의혹에 대한 특검을 같이 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모든 요구와 반대가 모두 조건부이다. 조건부 행위는 현재 효력이 발생하지 않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시급을 다투는 사안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조건을 제시하는 것을 법률상 불능이라고 한다. 판사로서 누구보다 법률적 불능 개념을 잘 이해하고 있을 나경원 원내대표의 조건 주장은 스스로 법을 이행하지 않겠다는 반합법적 행위라고 할 수밖에 없다.

조국 법무부 장관에 대한 사모펀드 관련 수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어 가고 있다. 그 뒤에 숨어 있는 익성펀드의 실체가 어느 정도 드러나고, 사모펀드의 기본 속성인 자금 동원을 통한 기업인수 및 우회상장 시도 등이 점차 드러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돈 놓고 돈 먹기” 놀이를 하려던 비위 사실들이 어느 정도 밝혀지고 있다. 하지만 검찰의 정경심 조국 장관 부인에 대한 공범 혐의 역시 생각과 달리 쉽게 연결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법률가인 필자의 판단은 그러하다. 완전한 수사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의 판단이라 섣부른 판단일 수도 있지만, 현재까지 공개된 수사 내용에 대한 전문가적 평가는 그러하다. 그렇다면 조국 법무부 장관의 관련 혐의 역시 인정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평가된다.

조국 장관의 평검사와의 대화를 필두로 검찰 조직에 대한 문민 통제정책이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대한민국의 검찰은 너무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국가기관이 되어버렸다.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수사권과 기소권의 독점기관이 되어 이를 통제할 장치가 마땅치 않은 상황에 놓여 있다. 올바른 것은 아니었지만, 박근혜 정권까지만 해도 국정원과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검찰의 목줄을 쥐고 있었지만, 이제 정상적인 청와대는 국정원의 국내 정치 관여 금지를 통한 검찰에 대한 견제기능을 배제하였고, 민정수석실 역시 그러한 비정상적인 검찰 통제를 스스로 해제하였다. 그러다 보니 유일한 수사권 및 기소권을 가진 검찰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이에 대한 문민정부의 민간통제가 비검찰의 법무부 장관에 의한 검찰 통제이다. 패스트트랙 법안의 하나인 공수처법안이 통과되어야 하는 당위이기도 하다. 검찰의 마지막 저항(?)이 윤석열 검찰총장에 의해 전개되고 있는 양상이다. 하지만 임명직 국가기관인 검찰은 국민의 투표를 통해 선출된 대통령과 그 휘하의 법무부 장관의 지휘 통제에 복종해야 할 의무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검찰에 대한 문민 통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널뛰고 있는 검찰에 대한 정상적 통제를 강력하게 시행하여야 한다. 국민의 선출에 의해 국민으로부터 권한을 합법적으로 위임받은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반으로서, 국가원수로서 그러한 권한을 행사해야 한다.

가을이 어느 사이에 우리 곁으로 다가와 있다. 가을 햇살이 따스하고, 열매 익어가는 향내가 달콤하다. 왜 인간들만이 지옥 아닌 지옥을 만들며 탐욕의 감옥에 갇혀 발악 아닌 발악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눈을 들어 맑고 푸른 가을하늘을 쳐다보자. 얼마나 눈부신가?

오시영 전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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