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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제도와 제도 운영을 둘러싼 논쟁과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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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제도와 제도 운영을 둘러싼 논쟁과 투쟁
  • 신희섭
  • 승인 2019.09.06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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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베리타스법학원전임
신희섭 정치학 박사/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베리타스법학원전임

개강을 했다. 방학을 보내고 한 학기를 시작하기 위해 찾아간 학교. 그런데 가는 길에 변화가 있었다. 캠퍼스 근처에 있는 사거리들에 신호등이 생긴 것이다. 그 전에 점멸등이 있던 자리에.

양쪽에서 오는 차들 눈치를 보고 최대한 공격적으로 차를 집어넣어야 건널 수 있었던 사거리 교차로가 바뀌었다. 신호등 덕분에 1분가량 기다렸다 길을 건넜다. 자주 다니던 도로가 낯설었지만 한 편으로는 이해가 됐다. 이 도로를 다니는 차량이 많아진 것이고 그만큼 사고 위험이 높아진 것이다. 기다리는 시간과 사고위험성간 맞교환.

우리 주변에는 이런 사소한 변화들이 많다. 규정들이 달라지고 그에 따라 적응을 해야 하는. 사회내 사람들의 행동양식을 변화시켜서 원하는 결과를 얻어 내는 이러한 것들을 ‘제도(institution)’라고 한다. 사회과학적으로 제도란 ‘기대의 안정화(stabilization of expectation)’이다. 추상적인 정의라 간단히 정리 하자면 우리가 무엇을 하고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한 기대가 작동하는 것이다. 가족 제도, 법 규칙, 선거결과를 만들어 내는 선거제도, 조직을 운영하는 절차 등이 모두 제도에 들어간다.

이런 제도들은 인간들 간의 관계를 규칙화해준다. 보행자방향을 우측통행으로 바꾼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버스번호에 따라 줄을 서서 기다리는 광역버스들이나 마을버스도 좋은 사례다. 지하철에서 먼저 내리고 다음에 타는 것처럼 이런 제도들은 상호간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문화, 관습, 관행, 절차, 규칙, 규범, 원칙, 법. 이들은 이름도 다르고 추상성에서 차이가 있다. 하지만 이 모든 제도들은 구성원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고 그래서 변화한다.

그런 점에서 정치는 제도를 둘러싼 투쟁과 협력의 과정이다. 국내정치의 선거제도가 대표적이다. 국제정치도 마찬가지다. 무정부상태에서 국가들 간의 관계를 조율하고 이익을 구체화하기 위해 많은 제도들이 만들어져 왔다. 동맹과 집단안보에서 통상과 환율문제를 다루기 위한 브레튼우즈 체제 그리고 국내정치에서 사법부에는 미치지는 못하지만 국제사법재판소(ICJ)도 있다.

정치적으로 볼 때 제도를 만들고 변경하는 것은 중요하다. 이때 제도 구성에서는 두 가지가 핵심이다. 첫째, 누가 제도를 구성하는지와 둘째, 제도와 규칙을 결정하는 방식.

권력투쟁이 발전한다는 다른 말이 ‘제도화’다. 더 체계적인 제도들을 구성하여 개인간, 집단간, 국가간의 투쟁을 다룰 수 있다면 이것은 제도화가 된 것이다. 이는 과거의 적나라한 권력 투쟁방식에서 벗어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니 정치가 제도화될수록 사람들의 관심은 ‘누가 제도를 디자인하는 데 참여’하며 ‘어떤 방식으로 결정되었는지’로 전환된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제도구성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단지 자신들의 정치적 대표에게 표를 던져 줌으로서 간접적으로만 제도구성에 참여한다.

제도가 구성되거나 변경되면 많은 이들은 이 제도가 규칙적으로 작동해 ‘상대적으로’ 공정하기를 바란다. 모든 이들이 제도의 혜택을 동등하게 보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측가능성이 심각하게 깨지는 것을 바라지는 않는다. 여기서 사회적 정의감이 만들어지고 공동체에 대한 정당성의 최소한 합의가 구성된다. 구성원들에게 완벽하지는 않아도 적당히 만족하고 살 수 있는 심리적인 위안을 주는 것이다.

그런데 제도의 공정성에 대한 기대감이 깨지면 사람들은 허망해진다. 누군가 제도를 무시하고 사회적 경쟁에서 우위에 서거나, 누군가 제도를 악용하여 사회적으로 특별한 가치를 선취할 때 그렇다. 이것은 사회적 제도 디자인과 구성에 직접 참여하지 못하는 대다수 시민들을 불편하게 하고 분노하게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공동체 정당성 자체를 부정하게 만든다.

최근 법무장관후보자를 둘러싼 논쟁은 한국의 제도운영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전임 정권이 제도를 무시한 것에 대한 시민들의 거부로 이번 정부가 탄생했다. 따라서 이번 정부는 제도 운영의 투명성과 운영자의 도덕성을 더욱 강하게 요구받았다. 그런데 법을 다루어야 하는 법무부장관이 되려는 법학교수인 후보자와 그 가족들이 법이란 제도를 이용한 방식이 묵묵히 법을 지키며 살아온 일반 시민들의 삶의 방식과는 많이 달랐다. 그러자 후보자의 자진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들이 여러 방향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도덕성문제, 공정성문제, 향후 대선후보가능성과 자격 문제 등등.

실제 후보자가 어느 상황까지 인지하였는지 그리고 주도적으로 제도를 활용하고자 했는지는 더 밝혀져야 한다. 또한 후보자 개인의 도덕성과 이번 정부에 요구하는 도덕성 기준이 어느 정도 일치하는지는 보는 시민들마다 조금씩 편차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 도덕성이라는 주관적인 기준은 잠깐 옆으로 미루어두자. 이 보다는 한국이라는 공동체가 사용하는 제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현 사태를 객관적으로 보는데 유용하다.

제도를 직접적으로 구성하지 못하지만 그런대로 만족하면서 살고 있는 시민들에게 사회수혜 계층 누군가가 제도의 빈곳을 활용하거나 제도를 악용하는 것은 중대한 일이다. 이것은 자신이 권력을 실제로 가지지 못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또한 현존하는 정치 ‘권력’과 국가의 주권과 정당성을 만들어내는 시민 ‘권력’이 불일치한다는 인식을 강화하는 일이다. 더 나가 주권자인 시민들에게 실망을 안겨주는 것은 공동체 운영의 정당성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이번 정부가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정치체제 차원에서 전체에서 말이다.

진보-보수라는 기준에 따라 현 정부에 대한 지지 수준이 다른 상황에서 이번 사안을 바라보는 관점들에도 각기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후보자가 의도하지 않았고 그리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는 시각도 있고, 너무 여러 가지 사안들이 유사하게 얽혀있어 의도가 의심되는 후보자가 법무부장관이 되는 것은 너무 심하다는 시각도 있다. 정부에 대한 지지도나 장관후보자에 대한 개인적 호오를 넘어 제도구성과 운영이라는 차원에서 볼 때 이번 사안은 한국 정치에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과연 진보를 표방하는 세력은 한국 정치 제도와 그 운영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에 관해서 말이다. 이 질문은 다시 보수 세력에게도 똑같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한 개인의 도덕성이 아니라 제도와 제도적인 정당성을 둘러싼 논쟁과 투쟁을 하고 있는 중이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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