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은하영웅전설과 AI법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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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은하영웅전설과 AI법조인
  • 안혜성 기자
  • 승인 2019.08.30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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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저널=안혜성 기자] 은하영웅전설은 만화책과 게임,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진 유명한 SF소설로 국내에도 꽤나 많은 매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는 작품이다.

큰 줄거리는 먼 미래 드넓은 우주를 배경으로 은하제국의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과 자유행성동맹의 양 웬리라는 두 명의 천재 전략가의 성장과 대립을 다루고 있다. 이 중 라인하르트는 반짝이는 황금빛 머리칼과 푸른 얼음빛 눈동자를 가진 미남이자 가장 소중히 여기는 존재를 빼앗겨야 했던 아픔을 가진 인물로 높은 인기를 끌었다. 외모 면에서는 평범하게 묘사돼 있지만 양 웬리도 굉장히 매력적인 인물이다. 경제적 사정으로 인해 역사가의 꿈 대신 군인을 택한 양 웬리는 매사에 느슨하고 허점도 많지만 중요한 순간에 카리스마와 천재성을 발휘한다.

라인하르트와 양 웬리는 각각 전제군주제와 공화제를 대표하는 인물이기도 한데, 때문에 처음 은하영웅전설을 접했을 때 학창시절에 배웠던 국가체제에 관한 이론들을 자연스럽게 떠올렸다.

라인하르트는 500여년을 이어오면서 잔뜩 곪고 썩은 골덴바움 왕조를 무너트리고 황제의 자리에 올라 로엔그람 왕조를 건국한다. 그는 천재적인 지략과 함께 인재를 발굴하고 활용할 줄 아는 역량도 지니고 있다. 청렴하고 공명정대하며 그토록 큰 권력을 가진 자로서는 드물게 관대한 성품도 보여준다. 그가 다스리는 은하제국은 불완전한 존재인 인간이 구현할 수 있는 체제 중에서는 매우 이상적인 형태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반면 자유행성동맹은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불합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권력과 이익에 눈이 먼 권력자들과 그들에게 선동돼 진실을 보지 못하고 정의를 찾지 못하는 국민들을 비롯해 고구마 백 개를 물도 없이 먹은 듯 답답한 마음이 드는 온갖 부조리들. 하지만 양 웬리는 야망이 없는 인물이었고, 아무리 큰 문제가 있고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되더라도 그 선택을 국민들이 스스로 했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기에 자유행성동맹의 문제점들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고 그런 문제들로 인해 많은 고난을 겪으면서도 체제에 순응했다.

이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아주 오랜만에 떠올렸던 단어가 ‘철인정치’다. 플라톤이 저서 ‘국가’를 통해 가장 이상적인 정치 형태로 꼽은 ‘지혜로운 자의 통치’와 라인하르트에 의한 전제군주정이 근접하지 않은가 말이다. 물론 전제군주정에는 한계가 있다. 골덴바움 왕조가 그랬고 실제 역사 속 수많은 나라의 흥망성쇠에서 보듯이 영웅의 자손들이라고 해서 꼭 영웅이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세습군주제가 아니라 선거군주제로 적임자를 선출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방식으로는 결국 자유행성동맹과 비슷한 문제가 발생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로봇, 인공지능에 의한 통치는 어떨까? 인공지능에는 ‘우리가 남이 아닌’ 존재가 없고 감정도 없으니 사사로움 없이 공정할 것이고, 가장 좋은 결과를 내면서도 효율적인 방식으로 국정을 운영할 수 있지 않을까. 판사나 검사, 변호사는 어떤가. 학연도 지연도 혈연도 없는 인공지능이 판사, 검사, 변호사의 역할을 대신하게 된다면 억울한 사람 없이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판결이 내려질 수 있을까. 몇 년이나 결론을 내지 못하고 질질 끌어 결국 승소를 한다고 해도 상처만 남게 되는 사례도 없어질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불가능한 망상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인공지능의 활용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최근 일본에서는 인공지능이 사법시험 문제의 60%를 예측했다고 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고, 한국에서는 29일 변호사와 인공지능이 계약서를 검토하는 대결이 벌어졌다.

정말 언젠가 인공지능이 인간 법조인들을 대체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물론 이는 법조계만 겪게 될 일은 아니다.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가치와 역량은 무엇인지 깊은 고민이 필요한 때다. 은하영웅전설을 읽을 때는 라인하르트에게 마음이 더 끌렸지만 이 질문에 대해서만큼은 양 웬리의 대답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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