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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상호의존’이란 권력과 경제생태계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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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상호의존’이란 권력과 경제생태계의 변화
  • 신희섭
  • 승인 2019.08.30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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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br>​​​​​​​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신희섭 정치학 박사 /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2006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가스공급을 금지했다. 러시아에서 우크라이나로 가는 가스관을 잠가 말을 듣지 않은 우크라이나를 한방 먹인 것이다. 과거 러시아 입장이었다면 군대를 보냈을 것이다. 그러나 군사력 사용에 따른 비용이 만만치 않은 상황에서 러시아는 새로운 무기를 들었다. 바로 가스였다.

힘의 논리인 ‘권력정치(power politics)’라는 단순한 관점에서 보면 러시아의 승리는 확실해보였다. 그렇지만 결과는 전혀 달랐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서 유럽으로 가는 가스관이 통과하는 나라다. 그들은 이 자원을 십분 활용했다. 유럽행 가스관의 가스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자 프랑스와 독일로 가는 가스공급은 불안정해졌다. 유럽 국가들의 항의가 빗발치기 시작했다. 결국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협의를 거쳐 우크라이나 행 가스관을 다시 열어주었다.

이 사건은 기존의 권력정치와는 다른 유형의 권력정치를 보여준다. 가스나 에너지 자원이라는 가용자원자체가 주는 권력 대신에 ‘관계가 만들어내는 힘’이 중요하게 된 것이다. 자유주의이론인 상호의존이론(interdependence theory)에서 말하는 상호의존이란 ‘관계’가 권력을 만들어낸 것이다. 앞의 사례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상호간에 영향을 주는 것이 ‘상호의존(interdependence)’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고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가스를 필요로 하지만 러시아는 유럽에 가스를 공급하기 위해서 우크라이나의 땅이 필요한 것이다.

상호의존이란 권력은 이렇게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상황에서 누가 더 절박한지에 의해 결정된다. 이 이론을 만든 로버트 커헤인과 조셉 나이의 개념대로 양자 간의 교류가 늘어난 상황인 ‘민감성(sensitiveness)’의 증대상황에서 ‘취약성(vulnerability)’이 권력을 만들어낸다. 이때 ‘취약성’이란 관계 변화를 시도했을 때 이 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취약성이 높다는 것은 변화에 적응하고 대처해 갈 수 없다는 것이다. 앞서 사례에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가스문제에서 취약할 것이라고 낙관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로 연결된 유럽행 가스관은 우크라이나의 취약성에 변화를 가져왔다.

상호의존에 따른 관계적 권력은 세계화로 칭해지는 국가 간의 혹은 초국가간의 관계가 확장된 시대환경을 반영한다. 세계화가 과거 부국강병의 논리가 지배하던 시대의 권력과는 다른 유형의 권력이 작동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한 걸음 더 나가면 과거의 권력자가 아닌 새로운 권력자의 등장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기존 강대국들이 상호의존상황에서도 취약성이 낮기 때문에 권력에는 큰 변동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한일관계가 더욱 극단화 되고 있다. 일본의 한국 반도체 소재에 대한 통제와 화이트리스트 삭제, 한국의 일본에 대한 화이트리스트삭제, 이후 한국의 독도방어훈련으로 이어지면서 한국과 일본은 전선을 무역에서 안보갈등까지 확대해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일본의 소재산업에 대한 장기적인 수입대체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한일 양국 모두 출혈 감내 정책을 선택한 것이다. 양국 모두 극단적으로는 한 팔을 내어줘도 상대에게 먼저 굴복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자세다.

이런 상황에서 표면적인 걱정은 한-일의 상호의존 상황에서 과연 누가 더 취약한지이다. 일본소재-한국중간재를 거쳐 최종재가 만들어지는 구조에서 과연 누가 더 버텨낼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한국과 일본이 경제적으로 촘촘하게 엮여있는 구조를 한국과 일본 모두 상대가 더 취약하다고 보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이 보다 더 큰 문제는 상호의존이 한-일 간에만 엮여있지 않다는 것이다. ‘글로벌 가치사슬(Global value chain)’이라는 글로벌 구조로 확장해서 보면 한국과 일본은 동아시아의 경제 네트워크 속에서 중국-대만과도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지역 경제를 넘어 미국과도 엮여있다. 단순히 생산네트워크만 보아도 그렇다. 일본의 소재- 한국의 중간재- 중국 제조-미국최종재와 같은 형태로 국가와 기업들이 빽빽하게 엮여 있다. 따라서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한국과 일본 중 누가 더 취약한지를 가려내기 어렵다.

경제 생태계로 표현되는 글로벌 가치 생태계라는 렌즈로 보면 현 상황은 한국에게 난감하다. 미국은 중국을 상대로 하여 무역전쟁과 기술전쟁과 통화전쟁을 하고 있다. 미국입장에서는 중국과 엮인 경제 생태계를 흔들어서 중국에게 본때를 보여주고자 한다. 이 맥락에 일본은 미국과 같은 배를 타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일본이 완전히 독자적으로 경제생태계를 흔드는 대한국경제보복을 결정하지는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일본도 미국과 공조하여 중국이 속한 지역경제 생태계를 바꾸고자 한다. 대만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것을 보라. 견제를 받는 중국은 ‘제조업 2025’를 내세우고 있지만 제조업만으로 경제생태계에서 버티기가 어렵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더 큰 경제 대국이 되기 위해서는 투자와 원조라는 또 다른 생태계를 만들 필요가 있다. 더 나가 위완화가 국제교환 화폐가 되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중국은 AIIB를 구축하고 아시아- 중동-아프리카로 이어지는 원조 프로그램들을 만들고 있다. 그리고 이들 국가들에게 위완화 결제를 강요하고 있다.

‘글로벌 가치 사슬’이라는 ‘지리경제(geoeconomy)’가 변화하고 있다. 내수시장이 작은 한국은 이러한 경제생태계의 변화에서 독자적인 생존이 어렵다. 또한 미국-일본이라는 두 국가를 배제하고 중국 중심의 경제 생태계 안으로 들어가기는 부담스럽다. 북한과의 협력을 통한 경제적 활로를 찾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이 큰 변화에 대처하기에는 역부족이다.

한국과 일본의 극단적 대립이 걱정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일본은 미국에 완전히 기울었고 이 추세는 계속될 것이다. 세계적인 차원과 지역적인 차원에서 미-일 vs. 중국의 대립이 강화되고 있다. 혹시 어물쩍하는 사이 한국만 미아가 되는 것은 아닐지.

지정학(geopolitics)에 이어 지경학(geoeconomics)까지 넘어야 할 산들이 한둘이 아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베리타스 법학원 전임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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