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학생의 질문과 전문가의 질문
상태바
[기고] 학생의 질문과 전문가의 질문
  • 유기환
  • 승인 2019.08.26 10:45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유기환 동아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10기
(前 KBS 아나운서, 前 한국경제TV 기자)

“…오늘 수업은 이것으로 마칩니다. 질문 있는 사람?” 교수님의 물음에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30년 넘게 살면서 사실 저 말에 진짜 질문을 하는 사람을 본 적은 거의 없다. 최소한, 학생 신분으로 질문하는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다. 이쯤 되면 사실상 저 말을 하는 발화자 역시 실제 질문을 받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의례적인 마무리 멘트 정도로 생각하는 게 아닐까 싶다. 마치 아나운서로서 라디오 뉴스를 할 때 마지막에 붙이는 시그널 같은 느낌이다. …의 현재 날씨는 ㅇㅇ도, 습도는 ㅇㅇ%입니다. 정오뉴스를 마칩니다. 아나운서 유기환이었습니다. KBS. 기계적으로 하는 이 말은 사실 신호다. 라디오 뉴스 마무리 시간은 1초 이상 오차가 발생하면 안 되기 때문에 시간에 딱 맞추기 위해 늘 같은 멘트를 쓴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 아나운서가 멘트를 끝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KBS’ 라는 단어가 신호다. 이제 내 할 말은 다 끝났고, 광고를 내보내라는 신호. 표지. 수업 말미에 하는 ‘질문’이라는 단어는 내게 딱 이 KBS 표지 같은 느낌이다. 수업 끝났다. 그만 졸고 짐 챙겨라.

그런데 이 질문이라는 것, 전문가에게는 매우 중요하다. 이번 여름 한국예탁결제원에서 실무수습을 마쳤다. 마지막 시간, 백승재 전 대한변호사협회 부협회장께서 변호사로서의 자세에 대해 강의했다. 강의 내용보다는 인품과 태도에 감탄한 시간이었다. 자랑하지 않으면서 자신을 드러내는 우아한 자태가 인상적이었다. 이것이 전문가의 풍모인가 싶었다. 그 전문가가 말하길, “전문가인가 아닌가는 어떻게 질문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한다. 하다못해 서류 복사를 지시받더라도, 군말 없이 복사하러 가는 것은, 물론 오만상을 찌푸리고 투덜거리면서 하는 것 보다는 낫지만, 전문가의 자세는 아니라는 것이다. 전문가라면 왜 이걸 복사해야 하는지, 몇 부나 해야 하는지, 어떤 식으로 정리가 필요한지, 그 외에 신경 써야 할 부분이 있는지 물어봐야 한다는 것이다. 알기 쉽게 서류 복사 일을 예로 들었지만 결국 변호사라는 전문가로서, 디테일하게 질문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렷다.

스물다섯. 대학 졸업도 하기 전에 입사하게 된 경제방송 기자 시절, 나는 이 부분이 굉장히 어려웠다. 단순히 경찰서 취재를 해도 어려울 판에, 기업이나 정부부처 사람들을 상대로 대체 뭘 질문해야 하는지, 시청자들은 뭘 궁금해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였다. 회사 전체에서 막내인데다가 졸업도 못했다 보니, 선배 기자들은 나를 ‘고졸 기자’라고 놀리기 일쑤였다. 그러다 한 선배가 말했다. “그냥 네가 맞게 이해한 건지 계속 물어봐.” 얼핏 듣기에 별 것 아닌 조언이지만, 그게 기자의 본질이었고 전부였다. 기자는 정보를 전달하는 사람이다. 어떤 정보를 전달해야 하는가. 시청자들이 궁금해 하는 정보다. 그게 무엇인가? 글쎄, 그건 개별적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하겠지만, 확실한 건 내가 모르는 건 시청자들도 당연히 모를 것이란 점이다. (방송 뉴스의 시청자는 초등학교 고학년 수준으로 상정한다) 그러니까 내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물어보고, 쉽게 풀어쓰면 좋은 기사가 나오게 된다. ‘팩트 체크’란 걸 단순한 사실 확인으로 인식하면 너무 광범위하고 어려워진다. ‘내가 이해한 게 사실에 부합하는가.’ 이게 팩트 체크다. 이걸 깨닫고 몇 달 지난 뒤, 자연스럽게 ‘고졸 기자’ 라는 별명은 사라졌다.

동아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우인 황가람 작가의 <혼자 떠나도 괜찮을까?>는 저자가 잘 다니던 대기업을 퇴사한 후, 남편의 동행 없이 혼자 떠난 세계일주에서 겪은 일들을 기술한 책이다. 여행에서 그녀가 받는 질문들은, 관심을 가장한 오지랖이 태반이다. “여자 혼자 그 나이에 여행 다니면 어떻게 하니? 언제 철들고 언제 결혼할래?” 지나가던 30대 남자, 50대의 아주머니 할 것 없이 다 비슷하고 무례한 질문들을 던졌다. 그런데 나 역시 이런 불필요하고 예의 없는 질문을 한 적이 없는가? 하고 성찰해보면 선뜻 대답하기 어렵다. 우리는 평소에 무엇을 질문할 때, 그것이 청자에게 어떻게 다가올지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뭐, 좋다. 그것이 일상생활에서라면 그냥 조금 무례한 사람,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꼰대’가 되고 말면 그만이다. 그런데 전문가로서의 우리가 그런 생각 없는 질문을 한다면? 커리어에 치명적일 수 있다.

“타사의 경우에는 ……이라는 시스템을 도입하여 차량 위험 감지 센서를 백미러에도 달아놓았는데, 이 시스템은 …을 적용하여 장점이 많습니다. 왜 A사의 이번 신차에는 그 기능이 없습니까?” 기자로 재직하던 시절, A사의 신차발표를 위한 기자간담회에서 한 기자가 한 질문이다. 이 질문이 던져진 상황에서 나는 문득 허재 전 농구감독이 중국 기자로부터 “왜 중국 국기에 대해 경례를 하지 않습니까?”라는 질문을 들었을 때 욕설을 날린 뒤 박차고 나간 장면이 떠올랐다. 남의 신차 발표회에 와서 다른 브랜드에 있는 기능이 왜 없냐는 질문이라니. 무례한 건 둘째 치고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괜히 옆에 앉아있는 내 얼굴이 다 화끈거렸다. 그래서 별로 궁금하지도 않던 차별화 전략 같은 것을 질문하며 그 질문을 덮어버렸다.

그런데 이런 경험은 만국 공통인가 보다. 대만의 유명한 방송인이자 작가인 추스잉의 저서 <펭귄이 말해도 당신보다 낫겠다>를 보면 비슷한 일화가 나온다. 어떤 기자가 기업 CEO에게 질문을 했다. “……TA와 농도의 관계 때문에 리텐션(retention)과 ROI가 고정된 숫자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오래 투자할수록 회원들의 리텐션과 ROI가 현저히 하락합니다. 그럴 때는 다른 경로에서 TA에게 접근하는 한편 지속적인 상품 검수를 통해 리텐션과 ROI를 유지시켜야 합니다. (중략) 기존의 TA 사용 체험이 유지된다는 전제하에 제품을 성장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이런 딜레마가 닥친다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얼핏 대단한 얘기 같지만, 결국 위 자동차전문잡지 기자와 다를 바가 없다. ‘무엇’을 질문해야 하는지 파악하지 못한 질문일 뿐이다. 참고로, 이 일화에서 CEO는 이렇게 답했다. “아는 게 아주 많으신 것 같은데, 직접 분석해보시죠. 그 질문에 대한 답도 알고 계실 것 같은데요.”

이처럼 전문가로서 ‘무엇’을 질문해야하는지 판단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그러면 이를 위해 사전에 철저히 자료를 리서치하고 분석하고 검증하여 준비해야 하냐고? 물론 그래야 하고, 그래야 좋겠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나는 잘 모른다.’는 것을 인정한 뒤에 질문해야 한다는 것이다. ‘래리 킹 라이브’로 유명한 래리킹의 <대화의 신>이란 책에서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한 시청자가 물었다. 만약 기존 진행자가 사고를 당해 갑자기 전혀 모르는 분야의 인터뷰 방송을 진행하게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래리 킹은 솔직하게 자기 상황을 설명하고 방송에 들어가겠다고 답했다. 즉, ‘나는 갑자기 투입됐고, 이 분야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고 질문을 하겠다는 얘기다. 현명한 태도다. 괜히 모르는데 아는 척했다가는 위에 언급했던 중국 기자처럼 차지게 욕이나 한 바가지 먹게 될 테니까.

예탁결제원 실무수습 중에, 유무상 KB증권 부장은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건 관련해서 변호사를 선임했는데, 아니 그 변호사가 정말 시도 때도 없이 전화해서 이게 맞는지, 이게 이렇게 이해한 게 맞는지 확인하더라. 그런데 자기가 몰라서 질문해놓고 왜 내가 그 통화한 부분에 대해서도 업무수행비를 줘야 하는지 모르겠더라.” 약간의 투덜거림 섞인 말이었지만, 그의 불만 부분은 차치하고 내용만 보면 바람직한 전문가로서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모르면 질문하라. 아는 척하지 말고, 모름을 인정하고 솔직하게 물어보라. 참고로 그와 계약한 변호사는 누구나 이름 들으면 아는 국내 최고의 로펌 중 한 곳의 소속이었다. 이렇듯 최고의 변호사도 모르는 건 모른다고 인정하고 질문한다. 아나운서로서 일할 때, 나 역시 모르는 건 모른다고 솔직하게 말하곤 했다. PD나 작가님, 아나운서 부장님들은 “진행자는 몰라도 아는 척을 해야 한다.”고 했지만,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모르는 것을 아는 척 해 봐야 결국엔 티가 난다고 생각했다. 물론 모르는 게 없는 쪽이 가장 좋겠지만, 변호사나 의사 같은 전문가 패널을 모셔놓고 모르는 걸 물어보는 게 뭐가 이상한가. 나는 당당했다. 전문가들이 수 분 동안 열심히 설명한 걸 나는 아주 단순화시켜서 물어보곤 했다. “변호사님, 이게 그러니까 …라고 이해하면 맞는 건가요?”

변호사로서의 질문은, 나는 아직 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미지의 영역이지만, 여러 법조인들이나 로스쿨 교수님들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다만 상상할 뿐이다. 기자나 아나운서가 그랬듯 변호사도 마찬가지리라. 전문가라면, 신중하게 그러나 솔직하게 질문을 해야 하리라, 하고 짐작해본다. 교재에 있는 사례들을 보면서 ‘이런 클라이언트가 오면 뭐라고 질문하지. 이런 경우에는 어떤 얘기를 해야 할까.’ 그 정도가 지금 내가 실제로 할 수 있는 것이고, 하나 더 추가한다면 학생으로서 질문하는 것 정도가 있겠다. 그래서 전문가로서의 질문의 예행연습으로, ‘이번학기에는 학생으로서라도 꼭 질문해보자.’ 작은 결심을 세웠다.

그런데 이렇게 결심을 했는데도 왜 수업시간만 되면 위축되는지. 이번학기 수업시간에도 교수님의 “질문 있는 사람?” 외침에 그저 시계만 바라보았다. 오늘도 나는 학생답게 겸손하게 고개 푹 숙이고 있다가 조용히 백팩을 등에 지고 열람실로 향했다. 다음 시간엔 꼭 질문해야지, 라는 기약 없는 다짐을 하면서.

유기환 동아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10기
(前 KBS 아나운서, 前 한국경제TV 기자)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지나가다 2019-09-11 21:34:24
모르는 걸 모른다고 인정하는 것. 알면서도 실천하기 참 힘든 것 같네요. ㅎ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