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랑개비 검찰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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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랑개비 검찰시보
  • 노영희
  • 승인 2006.07.27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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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희 연수원생ㆍ36기


“제가 차 속에 혼자 앉아있었는데 전남편이 차 유리를 깨고 들어와 저를 때리고 협박했습니다.”


“전, 그날 거기에 간 적도 없고, 전처의 소식도 전혀 모릅니다.”


일반적으로 시보에게 배당되는 사건은 자백을 하거나 정형적인 간단한 사건들이다. 처음 내게 배당된 상해사건도 겉으로는 그렇게 보였다. 기록도 얇고, 피해자와 가해자가 있는···. 그런데, 기록을 검토해보았더니 점점 이상했다. 피해자인 전처는 전남편에게 맞았다고 하고, 피의자인 전남편은 그런 사실이 전혀 없다고 극구 부인이다.


“오랫동안 남편의 학대를 받으며 힘들게 살아왔었어요, 남편의 폭력성향은 상상을 초월해요, 남편이 주거침입을 하여 접근금지 신청까지 했었구요, 사건이 있던 날은 남편의 접근금지 명령이 만료되는 날이었어요, 계속해서 나를 미행해왔었어요, 제가 제 남편 얼굴을 몰라보겠어요? 이번 일로 내가 무슨 해코지를 또 당하게 될지 몰라요, 대질만은 절대 못 해요···.”


조그마한 몸집의 피해자는 부들부들 떨면서 흥분하여 말하였다.


확신이 섰다. 전남편이 부인하는 것이로군! 이 불쌍한 아주머니를···, 정말 폭력남편은 전부 사라져야 해. 정의감이 불끈 솟아오른다.


피의자를 불렀다. 너무 착해 보이는 크고 선한 눈빛, 조용한 몸가짐의 예의바른 아저씨.


“사이가 나빠서가 아니라 채무가 너무 많아서 전처와 위장 이혼을 하면서 모든 재산을 전처 명의로 돌려놓았기 때문에 지금 경제적으로 매우 곤란한 지경에 빠져있습니다. 전처에게 남자가 생기면서 많이 힘들어졌고요, 전처가 아이들에게도 나쁜 말을 하여 아이들과의 사이를 이간질하는 것이 마음 아픕니다. 전처는 힘들 때마다 나를 찾고 도움을 요청하더니, 갑자기 자신을 주거침입으로 신고하고 접근금지 명령까지 받아내는 등 이해 못할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입만 열면 모두 거짓말을 합니다.”


아, 이럴 수가····, 결국 피해자가 거짓말을 하는 건가? 남편을 무고하고 있는 것인가? 이렇게 착한 남자를? 나는 계속해서 헷갈리기 시작했다.


더욱이 피해자의 진술을 조목조목 파고드니 앞뒤가 안 맞는 것도 많이 있다. 차에 앉아있던 위치, 흉기를 휘둘렀다는 장소, 방식, 그 당시 증거품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묻자 경찰에서 버리라고 했다(경찰에 확인해보니 그런적 없다는 경찰의 진술)는 등, 게다가 전남편이 너무 무서워 대질에 절대 응할 수 없다고 하면서도 전남편에게 보낸 문자 내용은 전혀, 전남편을 무서워하는 사람의 것이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한 욕 투성이다.


피의자는 일관적으로 차분히 부인한다. 수사기관에서 요구하는 모든 자료를 잘도 갖고 온다. 피해자는 가져오겠다고 하고는 그 어떤 증거도 가지고 오지 않는다.


모든 심증은 피해자가 무고하는 것으로 굳어졌지만 만전을 기한다는 측면에서 ‘거짓말탐지기검사’를 받도록 권유했다. 피해자, 피의자 모두 검사 받는 것에 동의하였다. 한편으로는 피해자가 거짓말하는 것으로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나보다. 실수로라도 피의자가 거짓말하는 것으로 나오면 어떻게 하지? 차분하니까 잘 통과하겠지? 부끄럽게도 나는 이미 마음속으로 피의자의 편이었다. 아마 피해자가 조사 받으러 오면서 길고 긴 손톱에 진한 파란색 매니큐어만 바르지 않았더라면, 아니 주렁주렁 금붙이를 달고 오지만 않았더라도 좀 더 객관적이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든 것은 검사를 받기로 한 날 끝났다. “이 검사의 신뢰도는 매우 높고 정확합니다.”라는 검사관의 설명에, 피해자는 차분하게 검사를 받았고 피의자는 못 받겠다고 버티었다. 검사를 안 받는다고 하는 것은 혐의 있는 사람으로 비춰질 수 있다고 말을 해주어도 자신은 절대 검사를 못 받겠다고 한다. 이유를 물었더니, 그냥 받기 싫단다. 피의자신문조서를 4회나 작성했다. 그래도 피의자는 끝까지 부인한다. 사정도해보고, 협박도 해보고, 회유도 해보고··· 모든 노력이 무위로 돌아갈 즈음, 결국 나는 상해 공소장을 작성하기 시작하였다. “피고인 OOO는 O. O. ~~~”

 

힘겨운 검찰시보를 막 끝내고 난 2년차 연수생으로서 나는 아직도 갈팡질팡 중심을 못 잡는 팔랑개비 같다. 피의자가 이렇게 말하면 이렇게 휘둘리고, 저렇게 말하면 또 저렇게 휘둘리고····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피의자는 천의 얼굴을 가진 거짓말쟁이였을까? 아님 너무나도 전처를 사랑한 나머지 모든 죄를 뒤집어쓰기로 결심한 순교자였을까?


차라리, 나이가 너무 많아 검사에 임용될 수 없는 것이 고맙게 여겨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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