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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업 변호사의 법과정치(124)-권력과 때의 함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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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업 변호사의 법과정치(124)-권력과 때의 함수
  • 강신업
  • 승인 2019.08.09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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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업 변호사, 정치평론가
강신업 변호사, ​​​​​정치평론가

유방이 세운 한나라 역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장량도, 소하도, 한신도 아닌 진평[陳平] 이다. 유방의 책사 장량은 한나라가 개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은퇴를 선언하고 초야에 숨어 화를 피하였고, 소하는 1등 공신으로 책봉되고 식읍 7000호를 받는 등 유방의 총애를 받았으나 만년에는 유방의 의심을 받아 불우한 생활을 보내다가 병사하였고, 한신은 끊임없이 유방의 의심을 받다가 토사구팽을 당하였지만, 진평은 놀라운 처세술로 권력게임에서 끝까지 살아남았다.

진평은 유방 곁을 지키면서도 장량이 보여준 지지(知止)의 철학을 몸소 실천하여 유방의 의심을 피하고 여후(呂后)가 권력을 휘두른 15년 동안 모욕을 견디고 기다려 여(呂)씨 일족을 일망타진하고 문경지치(文景之治)라 불리는 한문제(漢文帝)의 태평성대를 열게 한 인물이다. 한나라의 수많은 영웅호걸 중 진평이 눈에 띄는 점은 바로 그가 변절자라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때를 기다려 여후의 세력을 일망타진하고 한나라의 기틀을 잡았다는 점이다. 진평이 아니었다면 한나라는 진나라처럼 바로 망했거나 아니면 여씨의 나라가 되었을 것이다.

진평은 권력을 다루는 기술을 알고 그것을 몸소 실천한 보기 드문 예다. 권력을 향하는 자, 권력을 가진 자는 자칫 그 권력 때문에 죽는다. 화를 피하려면 나아갈 때와 물러설 때를 구별하고 놓아야 할 때와 잡아야 할 때를 알아야 한다. 권력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면 때론 불보다 강하게, 때론 물보다 부드럽게 상황에 대처해야 한다. 권력게임에서 상대를 이기기 위해선 때에 따라 나를 달리하고, 때에 따라 상대를 달리 대할 줄 알아야 한다.

무릇 권력을 지향하는 자는 실력을 갈고 닦으며 때를 기다려야 한다. 강태공[姜太公, 주나라 초기의 정치가이자 공신, 은나라 멸망에 공을 세웠으며 제나라 시조가 되었다. 본명 강상(姜尙)이다]이 곧은 낚시를 하며 80년을 기다리다 주문왕(周文王)을 만나 재상에 등용되어 뜻을 펼쳤던 것이나 제갈공명이 한촌에 묻혀 있다가 유비를 도와 천하를 삼분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철저한 준비가 있었기 때문이다. 때가 왔을 땐 머뭇거려서는 안 된다. 한신에게는 천하를 삼분할 절호의 기회가 있었다. 괴통은 항우와 유방이 팽팽하게 맞서던 때 “하늘이 주는 데도 받지 않으면 도리어 허물을 뒤집어쓰며 때가 왔는데도 과감하게 행동하지 않으면 도리어 재앙을 받는다”며 한신에게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를 건의했다. 그러나 사활을 건 괴통의 건의에도 불구하고 한신은 유방에 대한 의리 운운하며 괴통의 건의를 묵살했다. 괴통은 구천에게 목숨을 잃은 월나라의 문종(文宗)의 예까지 들어가며 집요하게 설득했지만 한신은 결국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항우나 유방에 맞설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던 한신은 이렇게 일생일대 한 번의 기회를 놓침으로써 다시는 기회를 잡지 못하고 유방에게 죽임을 당하고 3족이 멸하는 화를 입었다.

권력을 잡으려는 자는 준비하되 기회가 오면 독수리처럼 날아올라 권력을 잡아채야 한다. 권력을 간절히 추구하면서도 권력 속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권력을 떠나지도 못하는 것은 비극을 부를 뿐이다. 권력은 냉혹한 것이다. 그것은 얼음처럼 차서 주위를 꽁꽁 얼려버릴 수 있는 것이다. 권력은 위험한 것이다. 그것은 독가스 같아서 가까이만 가도 사람을 질식시킬 수 있는 것이다. 지금도 여의도에는 불빛을 향해 날아드는 불나방처럼 냉혹한 권력의 언저리를 돌고 있는 사람들로 넘친다. 문제는 그들 중 많은 수가 뚜렷한 주관이나 철학도 갖지 못한 채 혹시나 하며, 또 설마하며 그냥 여의도를 맴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어쩌면 그들은 권력욕이라는 올가미에 걸려 가망 없는 버둥거림을 계속하고 있을 뿐이다.

권력과 때는 함수관계에 있다. 때를 맞춘 자는 승리하고 때를 놓친 자는 패배한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은 것처럼, 때에 따라 나아가고 때에 맞춰 물러나면 권력을 얻을 수 있고, 권력을 지킬 수 있고, 권력에서 위태롭지 않을 수 있다. 권력은 타이밍의 기술이다.

강신업 변호사,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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