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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훈의 감정평가 산책 180 / 감정평가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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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훈의 감정평가 산책 180 / 감정평가 ‘작품’
  • 이용훈
  • 승인 2019.08.02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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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훈 감정평가사<br>
이용훈 감정평가사

중 1 둘째가 합격했다. 6번째 도전 만에. 첫 시험을 치르고 나온 둘째의 복기과정은 코믹했다. 시험장 나올 때는 ‘완벽했어요’ 외치고, 한 나절 지나니 ‘조리 시간이 조금 짧은 것도 같았다’ 한 발 빼더니, 하룻밤 자고나니 ‘떡갈비 색깔이 너무 연했어. 안 익었으면 어쩌지?’ 불안해했다. 그 후에도 한 번은 덜 익혔고, 한 번은 핵심 양념을 안 넣었고, 한 번은 제 시간 내에 제출을 못했다. 합격 당시에도 시간이 부족해 고명을 못 올렸다고 실토하니 가족들은 당연 탈락을 예상했다. 큰 실수를 덮을 수 있는 합격 사유는, 둘째가 아닌 같은 시험장 다른 응시자에게 있었다. 둘째보다 더 큰 실수를 한 사람이 많아서다. 한식조리사 실기 시험은 정해진 합격률이 있어 철저한 상대평가다. 완벽해서 합격하는 게 아니라 덜 부족해서 붙을 수 있는 시험이다.

차량 후미에 붙어 따라가다 보면, 앞 차량의 운전행태에서 운전자의 심리 상태가 묻어 나온다. 브레이크 등이 수시로 켜지면, 운전자가 얼마나 떨고 있는지 짐작된다. 앞 차 바로 붙어서 옆 차선으로 갈까 말까 촐싹대는 차는, 운전자가 빨리 가고 싶다고 안달내고 있는 것. 비상등을 줄곧 켜 놓고 가는 버스는, 끼어들기 금지구역 바로 앞까지 가서 끼어들어가겠다는 엄포를 표출한 것이다.

예술 창작의 결과물을 ‘작품’이라고 부르지만, 잘 꾸며진 일이나 훌륭하게 만들어졌다고 여겨지는 물건 등을 비유적으로 이를 때도 사용한다. ‘예술’도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창조하는 일에 목적을 두고 작품을 제작하는 모든 인간 활동과 그 산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지만, 어떤 재주나 능력이 탁월하여 아름답고 숭고해 보이는 경지에 이른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할 때 더 자주 활용된다. 작품은 상품과는 다르게 취급된다. 쉽게는 수제 햄버거와 패스트푸드의 차이. 직장인들에게는, 점심을 때우러 가는 집은 상품을 파는 집이고, ‘맛’을 보러 가서 줄까지 서는 집은 작품을 공급하는 창작공간이다.

감정평가법인에서 발급하는 컨설팅 보고서에서는, 표리부동인 생산물이 종종 있다. 표지 떼어내고 내용만 들여다보면, 그냥 감정평가서인데, 표지에 굳이 ‘이건 평가서 아닙니다.’라고 기재해서다. 감정평가서였다면 구속받았을 그 무언가를 회피하기 위함이다. 이런 게 작품이 될 리 없다. 영업실적이 최악인 회사가 요청한 ‘기업가치’ 보고서도 읽어보면, 부실하기 짝이 없다. 좋은 가격에 회사를 팔아 치우려는 모의인지, 이 회사에 투자해도 된다는 허위 청신호용인지, 그 무슨 꿍꿍이를 염두에 두고 의뢰하여 산출된 상품으로 대부분 드러난다. 작업자에게도 무슨 장인 정신을 기대하겠는가.

의도, 목적, 방향, 과정, 논리, 자료선택, 해석, 판단, 결정. 감정평가보고서가 작품이 될 때 거치는 각 단계다. 어느 것 하나 부족함 없이 이뤄질 때 상품을 뛰어넘어 작품이 된다. 내용연수 추정 보고서를 예로 들면, 생존곡선으로 수명을 추정할 때 주요 자산의 폐기 이력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1-2년 수명이 앞당겨지기도 하고 늘어나기도 한다. 자료선택과 해석의 단계에서 상품과 작품의 갈림길에 놓인다. 모텔의 영업이익과 통 임대료를 각각 가치로 환산할 업종환원율과 자본환원율 값은, 이를 혼용하는 순간 의도와 목적이 밝히 드러난다. 산출 값의 범위를 정해 놓은 평가라면, 의도, 목적, 방향 단계에서의 잠재된 ‘왜곡’이다. 과정, 논리, 자료선택에서는 왜곡이 ‘표출’되며 해석, 판단, 결정에서 왜곡이 ‘완성’돼 포장상태가 된다.

순수한 작업 동기, 군더더기 없는 논리, 합리적인 결론, 이것이 결합해 감정평가 ‘작품’이 생산된다. 맛 집 ‘작품’이 탄생하기까지의 장인의 수고만큼, 감정평가사도 좋은 보고서를 내는 일에 조금 더 신경 써야 한다. 두툼한 보고서라고 다 작품이랄 수 있겠는가. 여러 사람이 참고하는 샘플이 될 수도 있지만, 보관할 공간 잡아먹는 애물단지 서류에 불과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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