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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한국에서 민족주의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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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한국에서 민족주의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 신희섭
  • 승인 2019.08.02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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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br>​​​​​​​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여러분은 같은 성능이라고 할 때 한국 메이커의 자동차와 일본 메이커의 자동차 중 한국 메이커의 자동차의 가격이 500만 원쯤 더 비싸다면 어떤 차를 사겠습니까?” 대학에서 정치학을 가르칠 때 한 번씩 묻는 질문이다. 중형차를 예로 들어 성능이 같다고 전제하고 한국 메이커의 자동차 가격이 3,500만원이고 일본 메이커의 자동차 가격이 3,000만원이라고 하면 어떤 차를 사겠는지를 물어보곤 한다.

결과가 어떨 것 같은가? 이 질문에 제법 많은 사람들이 한국 차를 사겠다고 손을 든다. 아마도 대학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질문해도 그 결과는 유사하게 나올 것이다. 성능차이가 크지 않다면 한국 메이커에 좀 더 돈을 들이는 것이 납득 못할 바는 아니다. ‘신토불이’라는 민족주의가 끼어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른 질문을 해보면 재미있는 결과가 나온다. “여러분은 같은 성능이라고 할 때 만약 한국 메이커의 자동차와 독일 벤츠 중에서 한국 자동차가 500만 원쯤 더 비싸다면 어떤 차를 사겠는가?”

이 질문의 결과는 어떨 것 같은가? 이 질문에 한국 메이커를 사겠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저 없이 한국 차를 버린다. 이유야 여러 가지로 해석되겠지만 이 두 가지 질문으로 보고 싶었던 것은 명확하다. 한국의 민족주의가 향하는 방향이다.

만약 민족주의 소비자라면 비교가 되는 차가 어느 나라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선택은 국산이어야 한다. 성능이 같다고 전제할 때 민족을 위해 돈을 좀 더 지불할 수 있다. 왜? 민족주의라는 감정이 작동하니까!

단순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내릴 수 있는 민족주의에 대한 결론. 많은 한국인들에게 일본 차는 NO지만 독일 차는 OK이다. 그렇다. 그저 일본이 싫은 것이다.

다시 단순화의 비판을 감수하고 내릴 수 있는 결론. 한국의 민족주의는 우리는 무엇을 지향하는가의 ‘긍정적 특징’보다 일본은 절대 안 된다는 ‘부정적 특징’이 강하다. 원래 민족주의자체가 ‘우리’의 결속을 위해 ‘적’을 강조한다. 게다가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독립을 위해 민족주의를 배웠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한국은 동아시아 국가들처럼 ‘시원적 민족주의(primodial nationalism)’를 차용했다.

‘시원적’ 민족주의는 역사, 혈통, 언어의 동일성을 강조한다. 반면에 자신의 주관적인 선택 즉 자신의 조국을 어디로 둘 것인지를 선택하는 것을 강조하는 민족주의를 ‘근대적’ 민족주의라고 한다. 미국이 영국에서 독립할 때 사용하기 시작한 민족주의로 영국, 프랑스와 같은 서유럽 국가들이 유럽에서 국가를 만들 때 사용한 민족주의이다. 반면에 낙후된 환경에서 근대 통일국가를 이루고 강대국을 만들고자 한 프로이센과 이를 모방한 메이지 일본이 선택한 민족주의가 시원적 민족주의이다. 과거의 영광과 피의 순수성. 이것이 시원적 민족주의를 만들어낸 이들이 강조한 바이다. ‘프로이센 ⇨ 메이지 일본 ⇨ 조선’의 한국 민족주의의 계보에서 한국 역시 ‘과거’의 영광과 피의 순수성을 강조한다.

문득 질문이 하나 생긴다. 과연 한국인들에게 민족주의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유럽에서 민족주의는 국가주의와 군국주의의 동의어이다. 민족주의가 1차 대전과 2차 대전을 불러일으킨 주범이라는 인식 때문에 민족주의는 지금도 터부시되는 용어다. 특히 유럽연합이라는 통합을 지향하는 이들에게 민족주의는 지나친 국수주의거나 나치주의일 뿐이다.

그렇다면 한국에서도 민족주의의 반대는 ‘평화주의’이거나 동아시아 ‘지역공동체주의’인가? 그렇지 않다. 한국의 맥락에서 민족주의의 반대말은 좀 다른 데 있다. 매국. 더 나가 친일. ‘민족주의의 거부 = 국가주의 거부 = 매국 = 친일’의 자연스러운 프레임이 작동하는 것이다.

민감한 문제이니 이론적으로 정확히 정리해보자. 민족주의의 반대는 ‘민족단위’를 강조하지 않는 보편주의입장이다. 국가주의의 반대편에 무정부주의가 있다면, 충성의 주체를 민족으로 두지 않은 반대 입장에서는 더 큰 공동체와 보편적인 인류애를 강조한다. 자유주의의 보편주의.

한일관계가 꼬여있다. 한국 사법부의 판결에 이은 일본의 보복과 한-일 행정부의 외교배제 그리고 민간의 민족주의간 대립 속에서 한일관계가 꼬여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와 여당은 불패카드인 ‘민족주의’를 꼭 틀어잡았다. 그래서 국산 반도체에 들어갈 일본산 제품을 중국산 제품으로 대체한 것을 아무렇지 않게 여긴다. 물론 장기적으로는 국산화를 한다는 명분하에.

오해하지 마시라. 민족주의가 곧 국가주의는 아니다.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힘들지만 민족주의자가 아니어도 애국자는 될 수 있다. 그리고 민족주의 자체가 나쁜 것만도 아니다. 민족주의는 소외된 이들에게 민족이라는 공동체 의식을 심어준다. 그리고 사회 내 에너지를 결집하기 좋은 자원이다. 계급도 종교도 뛰어넘게 만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려되는 부분은 우리의 민족주의라는 것이 전적으로 배일주의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 프레임이 작동하면 다른 것을 못 보게 만든다. 민족주의자 아니면 ‘매국과 친일’이란 논리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냉정한 ‘전략’과 이보다 더 중요한 미래를 향한 ‘철학’을 거부하게 하는 것이다. 역사와 피의 순수성만을 강조하는 그래서 과거에만 매달려있는 민족주의는 상호주의라는 ‘전략’과 미래에 대한 ‘철학’을 무가치하게 만든다. 이런 경우 그 끝은 명확하다. 누군가는 피를 흘려야 한다.

한일관계의 파국. 그 너머 파탄. 과연 이것이 21세기 4차 산업혁명시대와 네트워크 경제 시대를 살아가는 자세일까. 한국도 일본도 모두 정치가 없고 철학이 없다. 민족 깃발만이 나부끼는 이 상황에서 우리는 과거의 노스탤지어로만 살아갈 것인가!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베리타스 법학원 전임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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