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수험생을 위한 칼럼(48) : Once upon a time in my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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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수험생을 위한 칼럼(48) : Once upon a time in my life
  • 정명재
  • 승인 2019.07.30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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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재
(정명재 공무원 수험전략 연구소, 공무원 시험합격 8관왕 강사)

국민교육헌장을 암기하지 못하면 토씨[助詞] 하나 틀려도 집에 가지를 못했다. 통과할 때까지 무조건 암기를 해야 했기에 반복에 반복을 거듭하며 친구와 모의연습을 하고서야 안심이 되어 선생님께 달려가 시험을 보았다. 그래도 암기가 안 된 친구는 해가 지고서도 한참 뒤에야 교정을 나갈 수 있던 시절이 있었다.

대학입시를 위해 야간자율학습을 하던 3학년 교실에는 수학과 영어가 늘 화두였다. 그 중에서도 수학을 잘 했던 나는 수학을 어려워하는 친구들에게 짬을 내어 쉬운 풀이를 알려주곤 했는데 그 친구는 내게 핫도그를 사주며 고마움을 전하려 했다. 당시 하루 용돈으로 우리에게 사치(?)는 핫도그를 사먹는 거였다. 수학을 못하는 것은 이과생에게 치명적인 약점이었기에 정석의 풀이 외에 좀 더 쉬운 풀이를 연구하던 시절이었다. 훗날 이러한 연습을 꾸준히 한 덕분에 대학 다닐 때는 수학과외 선생으로 이름을 날리기도 하였다. 그리고 더 나중에는 수학 단과 교습소를 운영하기도 하였다. 핫도그에 맛 들여 친구들을 한두 명 가르치던 일이 아르바이트로 그리고 직업으로 이어질 줄은 당시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영어 선생님은 늘 자상하고 인자한 분이셨는데 몸이 안 좋아 새로 부임하는 선생님을 맞이하던 날, 교무실을 갔다 온 친구가 호들갑을 떤다. 엄청 무섭고 무표정의 선생님이라고 나이는 40대일 것이라 이야기한다. 첫 시간에 들어오셔서 엄청 긴장된 표정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시는데 나이는 20대 중반이며 숙제를 안 해오면 엄청난 체벌이 있을 것이라 경고했다. 그렇게 수업시간이 되었고 독해를 시켜 못 하면 엄청난 체벌을 가했다. 무서웠던 선생님이어서인지 아직도 그분의 이름이 기억난다. 전진해 선생님. 공교롭게도 이름처럼 엄청난 체벌은 교실을 가로지르며 전진하듯 이어졌다.

여동생의 장애와 조카의 장애는 자연스레 장애를 가진 친구들을 돕는 것으로 이어졌다. 7년 정도 봉사활동으로 그들에게 목욕 봉사와 가르치는 일을 하였다. 그들은 내게 살아가는 이유를 알게 해 주었고 나의 선생님이 되어 주었다. 내가 힘들 때 내가 외로울 때 내가 가진 것을 돌아보게 해 주는 것만으로도 봉사활동 기간은 내게 즐거운 시간으로 기억된다. 그렇게 누군가를 돕는 일과 일상을 번갈아가며 힘이 있고 능력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가진 것이 없는 이들에게는 가지고 싶은 것을 그리고 어려움에 처한 이들에게는 그들이 필요한 것을 해결해 주는 능력자가 되고 싶었다.

얼마 전, 시험이 끝나고 잠시 휴식을 즐기며 Once upon a time in America란 영화를 보았다. 인생영화라고 생각한다. 세르지오 네오네 감독의 유작(遺作)으로, 처음에는 이 영화를 7시간 가까운 분량으로 만들었지만 상업성이 없다는 투자자들이 2시간 분량으로 줄인 탓에 흥행에는 크게 성공하진 못했다. 그렇지만 이후 원본에 충실하게 다시 251분 분량으로 재편집하여 확장판으로 개봉되어 나는 이 영화를 3일에 걸쳐 아껴가며 감상하였고, 보는 내내 영화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누구에게나 옛날의 내가 있었을 것이기에 영화를 보는 동안 많은 생각으로 나의 인생을 반추(反芻)하는 시간이었다.

지난 금요일, 서울시 시험 합격자 발표가 있었는데 일반행정직 9급에 합격 하였다. 8번째 합격이다. 무슨 이유로 이렇게 자주 합격을 하는지를 묻는 경우가 종종 있다. 주말 내내 이 질문의 답을 생각하고 나의 지난날을 정리하였다. 공부를 왜 하는지와 공부를 왜 가르치는지를 그리고 지금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를 곰곰이 생각하였다. 어제가 있어 오늘을 이야기하고 오늘이 있어 내일을 꿈꾸는 것이다. 내가 지금 이토록 절박하게 살아가고 버티고 견디는 이유는 다름 아닌 어제의 내가 있어서 그러하다. 학력고사 세대이니 나이는 40대의 끝자락이다. 그리고 무조건 암기가 강요되는 시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 어릴 적부터 시험을 암기라고 생각하는 것에 작은 반감(反感)을 가진 나였기에 조금은 재미있고 조금은 쉬운 공부를 연구하고 싶었다. 나이가 한참 지나 절망의 끝자락에 이르러서야 이러한 꿈을 실천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고 지난 5년에 나의 젊음과 열정을 모두 쏟아 부었다. 내가 잘하는 일과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았지만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세상은 아무 이유 없이 불가능을 말하고 어려울 것이라고만 떠드니 나 혼자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내가 하는 일에 선뜻 동참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언제나 밤을 새우고 맞이하는 아침은 내 몫이었지만 한 번도 후회한 적은 없었다. 공무원 시험 합격 8관왕을 하는 동안은 내 인생에서 가장 재미있던 시간이었으니까. 노량진에 처음 들어와 여러 번의 사업 실패 후,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 그렇게 처음 세운 목표가 공무원 합격 9관왕이었다. 구도장원공(아홉 번 장원한 분) 이이(李珥) 선생님의 발자취를 따르고 싶었다. 이제, 5년이 되어 나와의 약속을 마무리할 시간이 다가온다.

선입견은 편견을 낳고 그 편견은 장벽을 세운다. 내가 보지 못하였고 내가 알지 못한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Once upon a time in my life.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늘 실패만 했다고 생각한 적도 많았다. 곤궁하고 어려운 가운데 지혜가 생기는 법이다. 실패와 좌절을 지니는 가운데 꿈을 꾸고 이루려고 하는 것처럼 나 역시 그러한 과정을 반복한 삶이다. 단지 먼저 시행착오를 경험하며 얻은 지식과 지혜를 필요한 누군가와 나누고픈 마음으로 선생이란 이름을 붙여주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시험 합격의 달인(達人)이 되려는 이유는 그저 내가 누군지를 알고 싶었고 나의 조카와 나의 동생을 생각하며 약자(弱者)가 더 이상 약자(弱者)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나의 보잘 것 없는 인생 스토리가 합격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선한 영향력으로 다가가길 바란다. 구도장원공 이이 선생님의 공부 문구 하나를 전한다. 금성옥진(金聲玉振 : 팔음(八音)을 합주할 때에 종을 쳐서 시작하고 마지막에 경을 치는 데서 유래), 절박한 심정으로 끝까지 가라. 시작할 때의 절박함을 끝까지 이어가라. 공부는 집중력을 끝까지 이어갈 수 있느냐의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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