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중국과 러시아간 연대 : 경쟁적 권위주의 국가들의 결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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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중국과 러시아간 연대 : 경쟁적 권위주의 국가들의 결탁
  • 신희섭
  • 승인 2019.07.26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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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2019년 7월 23일 러시아 군용기가 독도 영공을 침범했다. 당연히 한국은 발칵 뒤집어졌다. 방공식별구역도 아닌 영공을 침범당했다. 게다가 러시아 조기경보기가 지나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중국까지 합류했다.

찔러보기 전략. 러시아와 중국은 합동군사훈련 중 찔러보기 전략을 썼다. 그런데 대한민국에게 이것은 그저 찔리는 정도가 아니다. 헤비급 복서의 잽을 한방 맞은 느낌이랄까! 북한 핵 문제의 교착과 일본과의 무역 분쟁으로 외교적 곤경에 처한 한국정부에게 중국과 러시아의 안보 도전까지 이어졌으니 한국이 느끼는 펀치의 강도는 강력하기 그지없다.

여기서는 중국과 러시아가 “왜” 찔러보기를 했는지에 집중하지 않을 것이다. 너무나 많은 이들의 분석이 이어질 것일 뿐 아니라 분석에 특별한 것이 있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전략적으로 볼 때 가장 약한 고리를 찔러 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게다가 중국과 러시아의 친밀감을 강조하면서 미국에 같은 목소리를 내는 연성균형전략(soft balancing strategy)으로 이만한 것이 없을 테니 말이다. 2005년 시작한 peace mission부터 중국과 러시아는 군사훈련을 계속해오면서 미국에 일관된 저항의 신호를 보내왔다. 이번 사건은 그 연장선상에서 한국-미국-일본으로 이어진 고리를 찔러보면 미국의 이 지역에서의 안보의지와 동맹들의 결속력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더 분석해야 할 것은 ‘왜?’보다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이다. 만약 중국과 러시아가 이번 달 말에 예정된 군사훈련 때 다시 도발하여 좀 더 깊숙이 찌른다면. 이것이 진짜 문제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미국에 의향을 타진해야 한다. 그럼 미국은 지역적으로는 일본과의 관계 속에 판을 고려해 보아야 하고 세계적으로는 중동질서에 대한 전략(미국의 이란과 시리아에 대한 압박과 그에 따른 러시아와 중국의 이란과의 밀착가능성)도 계산에 넣어야 한다. 만약 미국이 중동 때문에 한국을 자제시키거나 역으로 한국을 중심으로 중-러의 찔러보기에 강력하게 대응하라고 요구한다면? 한국은 어떤 경우나 당황스러울 것이다. 1930년대 독일이 했던 것처럼 중국과 러시아가 한-미-일의 관계에서 가장 약한 고리인 한국을 계속해서 찔러보기를 한다면? 그것이 가장 끔찍한 시나리오일 것이다.

이번 칼럼에서 보고 싶은 것은 다른 부분에 있다. 안보 이야기 말고 중국과 러시아의 국내정치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정치체제’를 이야기할 것이다.

‘경쟁적 권위주의’ 혹은 ‘선거권위주의’ ‘혼합체제.’ 최근 권위주의의 특이한 형태를 분석하기 위한 개념들이다. 이게 뭔 소린가.

권위주의가 진화하고 있다. 분석개념이 생겼다는 것은 분석할 대상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실제 권위주의 ‘정치체제’가 바뀌고 있다. 전통적으로 권위주의체제라고 하면 독재자인 지도자를 중심으로 하여 정치가 운영되는 체제다. 우스갯소리로 지도자가 암살당하면 끝나는 체제가 권위주의였다.

그런데 단순했던 권위주의 ‘체제’가 진화중이다. “우리아이가 달라졌어요!”의 정치적 버전. 권위주의 체제에서 선거를 하는 것이다. 야당들이 선거게임에 진입하여 여당과 경쟁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민주주의와 권위주의의 구분이 약해진다. 가장 단순한 민주주의의 정의는 “경쟁적인 선거를 통해서 정부를 구성하는 것”이다. 그런데 권위주의 체제에서도 경쟁적인 선거를 통해서 정부를 구성하고 있다. 러시아가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2000년대 들어와서 발전하고 있는 이 개념은 정치학적으로는 민주주의 이론가들에게 치명적이다. 자유민주주의가 확산될 것이고 장기적으로 권위주의 체제는 지탱하지 못할 것이라는 서구 민주주의이론가들의 가정과 확신을 깨기 때문이다. 경쟁을 하지만 여전히 권위주의라서 어느 정도 선거이후 결과가 보장된 체제들인 경쟁적 권위주의, 혹은 선거권위주의가 생기면서 ‘권위주의의 약화 = 민주주의로의 전환’이 아닐 수도 있게 된 것이다.

물론 중국은 경쟁적 권위주의에 해당하지 않는다. 복수정당도 경쟁적인 선거도 없다. 공산당 내 분파들이 경쟁을 하고는 있지만 러시아나 중앙아시아 국가들처럼 선거라는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아들이지는 않고 있다. 하지만 중국의 권위주의도 북한이나 아랍의 왕정 권위주의들과 비교하면 권력계승의 제도화에는 큰 차이가 있다.

그런데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국가들에서 보이는 ‘경쟁적 권위주의’의 특징이 있다. 자원이 많고 이것을 국영기업을 통해 판매함으로서 경제 실적을 높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제적 성과에 대한 자신감이 ‘선거’를 통해서 권위주의 체제의 정당성을 지속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한 것이기도 하다. ‘자원의 저주’라는 기름 많이 나는 중동의 왕정국가들과는 좀 다른 버전의 권위주의인 것이다.

‘경쟁적 권위주의’국가들. 그리고 좀 더 넓게 중국까지를 포함한 ‘제도화된 권위주의’국가들은 ‘경제성장’과 ‘권위주의체제 유지’를 맞교환한다. 잘살고 보는 것이 최우선이다. 그들에게 민주주의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이들 국가의 최대 아킬레스건이 여기에 있다. 경제가 나빠지면 답이 없다. 민주주의를 포기한 대가로 줄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런데 선거가 있어 자칫하면 정권교체도 가능하다. 그런데 경제는 성장만 한다는 확실한 보장이 없다. 그리고 바로 현재가 그렇다.

그래서? 이들 국가들은 돌파구가 필요하다. 과거의 향수를 자극하는 민족주의가 첫 번째 돌파구고 두 번째가 자국의 위상을 보여줄 수 있는 대외적인 갈등과 위협이다. 이 인과고리를 확대하면 왜 중국과 러시아가 군사적 협력을 강화하고 미국에 대한 강경정책을 펴는지 그리고 주변 국가들에 대해 군사적 위협을 가하는지에 대한 한 가지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그러면? ‘세계경제 상황 악화 → 러시아-중국의 경제실적 악화 → 지지율 확보를 위한 외부로 눈 돌리기 → 미국 견제와 주변국가 찔러 보기 혹은 압박하기’ 이런 고리가 자연스레 만들어진다. 한국입장에서 지정학만이 아니라 이들 국가들의 국내정치를 고려해야 하는 이유 되겠다.

이래저래 숙제가 더 생겼다. 아 짜증난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베리타스 법학원 전임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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