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아베의 어리석음, 우리는 일본에 반드시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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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아베의 어리석음, 우리는 일본에 반드시 이긴다
  • 오시영
  • 승인 2019.07.12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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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전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일본의 반도체 부품에 대한 수출 규제는 우리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게 한다. 정신과 물질은 분리되어 있으면서 결합되어 있다. 유기적이면서 독자적이다. 그 동안 편한 것에 취해 잊고 있었던 나와 우리, 국가와 민족에 대해 깊이 생각케 한다. 외세의 침탈은 무력적이거나 문화적 방법 중 어느 하나를 취하거나 아니면 두 가지를 모두 취하여 이루어진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무력적이라고 해서 더 잔인하거나 문화적이라고 해서 덜 잔인하거나 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외세의 침입은 어느 방법이든 결국 결과는 잔인하다는 점을 우리는 명심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일본으로부터 임진왜란(1592년), 정유재란(1597년), 한일합병(1910년) 등 세 번의 큰 침탈을 당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은 걸출한 이순신 장군이 있어 왜구를 물리칠 수 있었지만, 한일합병은 을사오적의 발호와 소위 지배계급으로 분류되었던 일부 매국노들의 매국행위에 의해 우리 조국이 병탄되는 고통을 당해야 했다. 하지만 우리는 끊임없는 독립운동을 통해 마침내 독립하였다. 이제 네 번째 일본의 경제적 압박이 우리에게 가해지려 한다.

세 번째 왜구 침략은 외척의 발호와 조선 왕조의 몰락으로 민초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허무하게 우리가 지고 말았다. 대원군은 쇄국정책을 통해서라도 조선을 지키려 하였지만 결국 실패로 끝났다. 지금 우리는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을 시대에 뒤떨어진 고립정책이라고 비난하지만, 당시 경제적 힘이 없었던 조선으로서는 그나마 취할 수 있었던 유일한 정책이었음을 우리는 이해할 필요가 있다. 21대 임금 영조는 아들 사도세자를 두주에 가둬 죽이지만, 사도세자의 아들은 22대 정조 임금으로 즉위하게 된다. 정조(1776-1800년 재위)의 개혁정책은 어느 정도 왕권을 강화하지만 급작스러운 죽음으로 순조가 즉위하게 되고, 그가 죽은 후 손자인 어린 헌종이 24대 임금으로 즉위하지만 후사가 없이 죽게 된다. 그리하여 먼 친척인 철종(헌종의 11촌으로, 사도세자의 둘째 아들인 은언군의 손자, 예전에 강화도령이라는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이 즉위하지만 이 역시 자식이 없이 죽고 만다. 그러다 보니 사도세자의 셋째 아들인 은산군의 증손자인 고종이 26대 임금으로 취임하게 된다. 취임 당시 고종의 나이는 불과 열한 살에 불과하여 그 아버지인 흥선 대원군이 섭정을 하였으나, 결국 외척인 민씨 일가의 발호 및 최익현으로 상징되는 양반 세력의 저항으로 물러난 후 나약한 고종의 조선은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비운의 왕세자 사도세자는 자신은 왕이 되지 못한 채 아버지 영조에 의해 죽임을 당했지만, 그의 세 아들 중 장자가 정조(제22대), 손자가 순조(제23대), 고손자가 헌종(제24대)으로 즉위하였고, 헌종에서 대가 끊기자 다시 둘째 아들인 은언군의 손자가 철종(제25대)으로, 그의 대가 끊기자 다시 셋째 아들인 은신군의 고손자가 고종(제26대), 헌손자가 순종(제27대, 마지막 조선 임금)이 되었으니, 6명의 임금이 그의 직계 후손으로 역사 속 주인공인 것은 분명하다. 이처럼 장자 상속을 원칙으로 하던 조선시대 임금의 양위가 임금의 단명으로 어린 왕세자가 즉위하거나 대가 끊겨 힘없이 퇴락한 왕손에게 왕위가 양위되다 보니 그 어린 임금이 즉위하더라도 주변에 권력을 행사할 뒷배가 없어 외척 및 사대부 등의 권력 행사가 도를 넘어섰던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 임금은 단순히 자신들의 권력과 이권을 챙겨주는 뒷배경이었을 뿐이었고, 그들의 안중에는 국가와 민족, 백성을 평안케 하고자 하는 진정한 의도가 없었으니, 그들은 을사오적으로 상징되는 매국노가 되어 일본의 한일병탄에 앞장 서는 민족의 반역자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한 뿌리의 연속선에서 이승만 보수정권이 친일파를 제대로 발본색원하여 제거하지 않은 정치판이 오늘에 이르러 보수세력으로 자리잡게 된 한 배경이 되었음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다.

일본은 지난 4일부터 불화수소, 레지스트, 불화 폴리이미드 등 반도체·디스플레이 부품의 한국 수출에 대해 일본 정부 허가를 받도록 수출 규제를 실행에 옮겼다. 우리 기획재정부는 같은 날 “일본 수출규제 관련 부품·소재·장비 관계 차관회의”를 개최하여 일본 수출 규제 대상 3개 품목과 추가 제재 가능 품목에 대한 국산화를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고 밝혔고,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7일 일본 아베 정권에 대해 이러한 수출 규제는 WTO체제에 맞지 않다며 철회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였으나 일본 경제산업성은 이를 거부하였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일 30개 대기업 총수들과 수출규제 간담회를 개최하여 향후 대책 등을 논의하였다.

일본은 메이지유신(1868년)에서 성공하여 조선에 비해 경제화, 무력화에 앞서나가게 되면서 1975년 운요호와 제이정묘호를 부산에 강제로 입항시켜 무력적 시위를 하였으며, 강화도 초지진에 다시 침입하였다. 우리 조선군은 포격을 가하며 저항하였으나 결국 당시 현대화된 일본군에게 패배하였고, 일본군은 영종진에서 방화, 살인, 약탈 후 퇴각하였는데, 자신들의 불법침입을 무시한 채 조선군이 자신들을 포격하였다는 핑계를 내세워 1876년 2월 27일 불평등조약인 조일수호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조선식민지화의 첫 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이후 일본은 영일전쟁 후 영일동맹 체결하고, 청일전쟁과 러일전쟁(1904년)에서 각각 승리한 후 을사5적(학부대신 이완용, 내부대신 이지용, 외부대신 박제순, 군부대신 이근택, 농상공부대신 권중현)의 찬성으로 고종황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을사늑약(1905년)을 체결하기에 이르렀다. 을사오적은 한일합병(1910년) 후 모두 일본정부로부터 일본 작위와 상금을 받아 영원히 매국노의 이름을 얻게 되었다. 당시로서는 최고의 영예였겠지만,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한 영원한 역적으로 기록된 수치와 불명예를 얻게 된 것이다. 불쌍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은 운요호사건 이후 체결된 조일수호조약 이후 한국 경제를 약탈하기 시작하였고, 특히 조선의 쌀을 강제 착취하는 대신 비싼 면직을 수입케 하여 한국경제를 피폐하게 만들었고, 경인지역에서는 쌀값이 7배나 폭등하는 물가고를 겪게 하여 조선 경제를 말살하였다. 이렇게 시작된 대일본적자는 이후에도 계속되었고, 1965년 한일조약체결 이후 54년 동안에 무려 6046억 달러(708조원)에 이르고 있다. 이처럼 엄청난 경제적 이익을 얻고 있는 일본은 우리 한국이 어느 정도 대외적 경제력을 인정받고 자신들을 추격하게 되자 위협감을 느낀 나머지 위와 같은 수출규제라는 독약을 꺼내들었지만, 결국 이는 부메랑이 되어 일본경제를 폭망하게 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 틀림없다. 한국을 조선말기 고종황제 때의 조선으로 착각하고, 을사5적이 어딘가에 존재할 것으로 착각한 악수 중의 악수를 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아베 총리는 태생적으로 전범의 후손이다. 아베 총리의 아버지 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郞)는 일본 외상을 지냈고, 할아버지 아베 간(安倍寬, 1894∼1946)은 전쟁광이었던 장인 기시 노부스케의 후광으로 의원에 당선되었다. 젊은 시절 카미가제 특공대로 출전하기 위해 훈련을 받았으며, 나중에 대동아전쟁을 반대하였다고는 하지만 53세로 젊어 사망하였다. 아베는 오랫동안 일본 전쟁의 중심에 있었던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1896-1987)를 좋아하였고 따랐다. 아베의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는 진주만 공습 시 군수성 차관으로 도조 총리를 도와 전시 경제를 책임졌으며 패전 직후 A급 전범으로 기소되었지만 맥아더 장군의 미군정청 일본인 인재 활용 정책에 따라 사형을 면한 후 구사일생으로 복권되어 일본 정계의 전면에 나섬으로써 오늘날 아베 총리의 정치적 발판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기시 노부스케는 자신의 일기장과 같은 단상록에 “A급 전범 7명에 대한 사형선고는 사실을 왜곡한 일방적 편견에 가득 차 있으며 난폭한 판결”이라고 기록하거나 “대동아전쟁을 일본의 침략전쟁이라고 전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라는 기록을 남겼을 정도로 자신들의 제2차 세계대전(대동아전쟁)을 통한 한국, 중국 등에 대한 침략전쟁을 부정하는 자기모순의 정치인이었던 것이다.

이런 외할아버지의 억지스런 전쟁 부정 영향을 가장 많이 받고 자란 아베 신조(安倍晋三)는 스스로 “나는 아베 신타로의 아들이지만 기시 노부스케의 DNA를 이어받았다.”고 공언하였다. 이처럼 전쟁광이던 외조부의 정치적 후광과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아베 총리는 어떻게든 한국에 대한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려는 생각에 골몰하였던 것이고, 일본에서 태어나 친일성향을 강하게 지닌 이명박 전 대통령과 일본군 출신으로 친일파였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에 마지막까지 해결되지 않고 있던 위안부 문제를 10억 엔이라는 정체불명의 돈을 주고 불가역적 합의로 어물쩍 넘기려 하였던 것이다. 잔꾀 중의 잔꾀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후 한국 대법원이 그렇게 부정하고 싶었던 일본의 식민침탈의 위법성을 판결로 남기고 미쓰비시와 신일본제철의 강제징용자들에 대한 배상판결을 근거로 이들 일본 기업에 대한 강제집행을 실시함으로써 전세계적으로 일본의 극악무도한 무력침탈행위를 객관화하자 개인적·국가적으로 분개한 나머지 이성을 잃고 위와 같이 불화수소, 레지스트, 불화 폴리이미드 등 반도체·디스플레이 부품에 대한 수출 규제를 통해 한국 반도체 산업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리고 있는 것이다. 아베 총리는 이러한 수출 규제를 통해 한국 경제를 어렵게 함으로써 한국 내 보수층의 경제난국 불안의식을 촉발시켜 “좌파 정권의 몰락”을 유도하여 문재인 정권을 무너뜨리고 보수정권 수립을 통해 친일정부를 세우려는 장기적 계획을 획책하고 있다. 즉 문재인 정권에 의해 촉발된 일본의 강제침탈행위에 대한 세계적 부각은 결국 자신이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기시 노부스케 외할아버지의 전쟁행위를 모욕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결국 아베 신조 자신에 대한 부정이 되는 것을 참을 수 없어 하는 것이다. 완전히 개인적 성향에 기초하여 한국과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지난 호에서도 밝혔듯이 일본 총경제력이 우리의 세 배인 것은 맞다. 하지만 인구 비율을 감안하면 거의 1대 1로 우리의 힘이 부족하지 않다. 더군다나 우리는 메모리반도체의 최대 생산국으로 일본의 부품에 비해 최종적 칼날을 우리가 겨눌 수 있는 최후 무기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조선말 세계열강의 침탈에 대해 “만민공동회”를 열어 저항하였고, 1907년에는 국채보상운동을 전개하였으며, 1919년에는 3·1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97년 아이엠에프 때는 금모으기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이번 일본의 수출규제 사태에 대해 우리 국민들은 일본상품 불매운동, 일본여행 자제운동으로 서서히 깨어나고 있다. 우리 문재인 정부도 조심스럽게 외교적 대응책을 시사하고 있지만, 외교적 해결이 되지 않으면 강력한 경제적 대응조치를 취하겠다고 일본 정부에 대해 엄중 경고하였다. 아베 정권의 이번 21일 참의원 선거에서의 결과에 따라 수출 규제 사태가 장기화될 것인지 여부가 결정될 것이다. 만일 참의원 선거에서 아베 정권이 승리한다면 그들의 국내 정당성은 강화될 것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궤도를 수정할 것이다.

우리 정부와 국민은 이번 사태를 면밀히 주시하고, 장기계획과 단기계획을 확실히 세울 필요가 있다. 이번 사태를 통해 일본 부품에 전적으로 의존해 왔던 삼성전자와 SK반도체는 깊이 반성해야 한다.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하청체제를 무시하고 육성하지 않은 벌을 받고 있는 셈이다. 그렇게 정부나 민간단체 및 중소기업들이 부품생산업체를 육성해야 한다고 강조했음에도 눈앞의 이익에 함몰되어 부품생산업체를 쥐어짜거나 하청구조의 왜곡을 통해 단기이익에 골몰해 왔던 자신들을 스스로 되돌아보는 성찰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정부와 대기업들은 이번 사태를 거울삼아 자체적인 부품생산업체를 육성하고, 수입선 다변화를 도모하는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겠다.

우리 국민은 위기에 강하다. 단결하는 힘이 있다. 물론 친일 매국하고자 하는 을사오적의 피를 물려받은 자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조선말과 지금의 대한민국은 너무나 다르다. 우리는 약하지 않다. 우리 대한민국은 강하다. 우리 대한국민은 참을성이 많고, 단결력이 강하며, 무엇보다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심이 뜨겁다. 일본에게는 절대 지지 않는다는 자부심이 우리에게는 충만하다. 이강인의 U20월드컵축구에서 우리 한국은 일본을 무너뜨리지 않았는가? 슛, 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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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ㅋ 2019-07-14 06:48:14
중간까지 읽어보다가 편향글이라 패스합니다.

한스 2019-07-12 20:33:54
멋진 글. 동감합니다. 우리 국군도 정비 잘해서 초후의 승자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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