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권력정치와 한일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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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권력정치와 한일관계
  • 신희섭
  • 승인 2019.07.12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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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G20에서 휴전하기로 한 미중 간 무역전쟁이 재개되었다고 가정해보자. 중국에 잘못이 하나도 없는데 미국이 중국의 힘을 꺾기 위해 예방적인 무역전쟁에 다시 돌입한 것이다. 이 상황에서 중국 정부가 다음 3가지 조치를 취했다면 우리 한국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첫째, 국제여론을 동원해서 미국 조치의 부당성을 알리고 국제‘사회’의 양심을 이끌어내 미국이 조치를 철회하게 한다. 둘째, 이러한 조치가 자유무역규범에 위배되는 것이니 WTO에 제소한다. 셋째, 중국 기업들을 불러 모아서 지금 상황이 어떤 것인지 알아보고 이에 대한 기업들의 대비책이 무엇이지를 묻는다. 그리고 정부는 20년이나 30년 뒤에 사용할 수 있는 해결책을 제시한다.

만약 중국이 미국의 부당한 행동에 대해 위와 같은 3가지 전략으로 대응한다면 우리는 중국에 대해 안타까워하기는커녕 냉소를 내볼 것이다. 그리고 이런 조치를 내린 시진핑 주석을 ‘정의로운’ 리더라고 평가하지도 않을 것이다. 객관적인 관찰자 입장에서 우리는 중국이 힘의 논리에 무지하다고 질책할 것이다. 또한 위의 3가지 방안들이 지나치게 이상적이거나 장기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할 수도 있다.

그렇다. 우리 한국이 중국을 안타까워한다고 해서 미국이 권력과 국가이익차원의 결정을 번복하지 않을 것이다. WTO는 제소과정을 거쳐도 2년에서 3년간의 시간이 필요하다. 수입선 다변화와 국산화를 하는 과정은 장기적인 방안일 뿐이다. 그때까지 중국기업들은 이 전쟁에서 몰살당할 수도 있다. 그러니 우리는 이런 도덕과 정의에 기초한 정책을 제시한 시진핑의 리더십을 존경하지 않을 것이다. 왜? 이곳은 냉엄한 ‘권력’정치의 세계니까!

얼마 전까지 한국은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을 지켜보던 관객이었다. 그런데 지금 한국은 일본에 무역보복을 당하는 직접적인 희생자가 되었다. 일본이 무엇을 명분으로 제시하든 무자비한 권력 정치세계로 들어온 것이 사실이다. 국내정치의 ‘도덕’과 ‘윤리’의 기준이 무시되는 국제정치의 ‘현실’ 말이다. 1905년 제국 일본의 데자뷰.

일본의 비열함을 비난하고 더 나가 일본 제품 불매운동을 하자는 이들도 있다. 우리 정부가 외교적으로 대비를 못했다고 비판하는 이들도 있다. 어느 쪽이나 이 상황은 불편할 뿐 아니라 갑갑하다. 그리고 현재 상황이 불편하고 갑갑한 이유도 명확하다. 권력. 무엇을 하고 못하고가 결정되는 권력을 직접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냉정한 진실은 불편하다. 그런데 권력은 무자비할 만큼 정확히 진실을 보여준다.

일본의 명분이 무엇인지가 이번 사태의 본질은 아니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권력’이다. 일본은 미국을 상대로는 이런 조치를 취하지 못한다. 또한 일본은 중국을 상대로도 이런 조치를 취하기 어렵다. 그런데 한국에는 한다. 이것이 현 상황의 냉정한 진실이다.

국제정치학을 현대적으로 정립한 한스 모겐소 교수는 국제정치의 본질은 권력에 있다고 했다. 또한 국가운영(statecraft)을 하는 지도자는 상대의 입장에서 먼저 상황을 파악하라고 했다. 일본이 얼마나 옹졸한지 그리고 과거 일본의 만행을 상기하기 이전에 일본이 지금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를 따져보는 것이 중요하다. 문제를 해결하겠다면 말이다.

일본은 '쇠락하고 있는 강국(declining power)'이다. 그래서 일본은 자꾸 과거 일본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특히 일본 우파들에게 일본제국은 오랜 노스탤지어이다. 1980년대 미국에게 얻어맞고 2000년대 중국에게 추월당한 신세가 된 일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강국이다. 다만 상대적인 국력에서 미국과 중국을 따라갈 수 없는.

그런 일본에게 한국은 딱 좋은 먹잇감이다. 한국에게는 안타깝지만, 일본 정부는 권력을 보여줌으로써 한국에게 까불지 말라고 큰 소리 칠 수 있다. 한편으로 미국과 중국에게는 할 수 없는 무역보복을 한국에 함으로서 자신들이 아직도 강국임을 내부적으로 확인할 수도 있다. 쇠락하는 강국을 똘똘 뭉치게 할 수 있는 바로 그 권력 정치를 통해서 말이다. 게다가 한국은 1950년대 이후 미국이 짠 일본중심의 아시아 경제권에서 발전하였다. 일본과 연계된 발전모델로 성장한 한국에 대해 일본은 쓸 수 있는 카드도 무궁무진하다.

이 상황에서 정말 걱정되는 것은 일본이 완전히 권력정치로 돌입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전쟁이 외교의 끝이었다. 지금 무역 보복이 다른 형태의 전쟁이라면 이 또한 외교의 끝이 될 수 있다. 총칼이 아닌 다른 버전의 이 전쟁에서 일본이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한국에게 외교를 접고 오로지 권력만을 보여주겠다면 이것은 심각한 문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방안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권력은 냉정한 진실이다.

모겐소 교수는 국가운영방책(statecraft)의 비책으로 ‘이중도덕’을 제안했다. 지도자가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개인 자격으로서 가지는 도덕과는 다른 도덕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신중성(prudence)’ 즉 권력정치를 면밀히 파악하고 권력에 기초하여 전략을 만들어내는 정치지도자로서의 도덕관이 필요하다.

일본이 권력을 보여주겠다고 작심한 것이 가장 문제라면 우리 정부가 이 상황을 권력이 아니라 도덕과 정의의 문제로 보고 대처하려는 것은 더 큰 문제다. 1592년 임진왜란, 1905년 을사늑약에서도 일본은 있는 그대로의 권력을 보여주지 않았던가!

권력이 펄떡 펄떡 살아 숨 쉬는 국제정치에서 강자는 권력을 말한다. 반면 약자는 정의에 의지한다. 그런데 약자의 정의가 정말 의미가 있을 때는 데자뷰가 없도록 대비가 되어 있을 때다. 2019년. 한국은 일본에 대해 얼마나 대비가 되어 있는가!

지금은 냉혹한 권력을 똑바로 직시할 때다. 그리고 권력에 기초해 대책을 만들어야 할 때이다. 그것이 진정한 리더십(statecraft)이 아닐까!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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