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
상태바
오시영의 세상의 창
  • 법률저널
  • 승인 2006.02.25 07: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시영 숭실대 법대교수/변호사/시인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하기

 

성경에는 주인이 여행을 떠나면서 종들에게 일정한 돈을 맡긴 뒤 여행을 마친 후 종들로부터 보고를 받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대부분의 종들은 각기 맡은 돈을 일정량 불려서 주인에게 돌려주지만, 그 중 한 명은 받은 돈을 땅속에 파묻어 잘 보관하고 있다가 그대로 되돌려주는데, 이에 대하여 게으른 종이라는 주인의 질책을 받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면서 주인은 그 종에게서 맡긴 돈을 빼앗아 이문을 많이 남긴 다른 종에게 건네주면서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가 큰 일에도 충성한다라고 가르치고 있다.


우리는 지극히 작은 일을 무심히 여긴다. 하지만 인생에서 성공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그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대만 제일의 갑부로 알려진 왕융칭 포모사 회장의 창업 당시의 일화는 이렇게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한 자가 어떻게 성공하는가를 우리에게 잘 보여주고 있다. 그는 어린 시절 너무 가난했고, 간신히 쌀가게를 차리기는 하였으나 좋은 장소에서 번듯한 가게를 차릴 수가 없어서 한쪽 외진 곳에서 볼품없는 작은 가게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는 당시로는 획기적인 판매방식인 배달판매 방식을 취하였는데, 보통 가정주부들이 쌀가게로 쌀을 사러 오던 방식에서 탈피하여 쌀을 사서 운반하기 힘들어하는 가정주부들을 위해 쌀을 배달해 주기 시작하면서, 그 집의 쌀독의 크기부터 시작해서, 가족 수에 이르기까지 지극히 작은 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여, 언제쯤이면 그 집의 쌀이 떨어지겠다는 것을 미리 예측하여 먼저 배달하는 방식을 택해 주부들로부터 호응을 얻기 시작하여 단골고객을 확보하게 됨으로써 사업성공의 발판을 삼았다는 것이다.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의 성공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극히 사소한 일을 등한시하여 성공을 그르치거나 실패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수많은 범죄자들의 경우, 보통은 아주 사소한 것에 대한 실수에서부터 비롯됨을 알 수 있다. 지금 우리 형사법 체계에 엄청난 회오리바람이 불어치고 있다. 범죄자의 인신구속이 인권보호라는 대명제 앞에 완화되면서 불구속상태에서 재판을 받는 비율이 엄청 높아지고 있다. 최근에 부자가 합동으로 열한 살 어린 여아를 유괴하여 성폭행하고 살해하는 후안무치의 끔찍한 범죄가 발생하였고, 그 범인은 그 전에도 네 살짜리 여아를 성추행하여 집행유예의 형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다고 한다. 앞선 범죄의 형량이 너무 가벼웠다는 비판이 일고 있고, 그 일을 계기로 하여 성범죄자에게 전자 족쇄를 채워 그가 언제 어디에 머물고 있는지 상시 감시체제를 갖추어야 한다는 입법론이 여론의 힘을 얻고 있다. 그런 한편으로 사형제도를 종신형제도로 바꾸어야 한다는 의견이 높아지고 있고, 현행 행형법을 대폭 개선하여 구금자들의 수형기간 동안의 인권을 최대한 보장하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대법원장은 화이트 칼라에 대한 법원의 형량이 지나치게 관용적이라며 공개적인 비판을 가하고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사법권의 독립에 대한 침해라며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문제는 범죄가 점차 다양화되고 지능화될 뿐만 아니라, 불특정 다수의 피해자를 양산하는 체제로 바뀌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병이라고 할 수 있는 정신질환상태의 범죄자들이 늘어나고 있고, 마약이나 환각제에 정신을 빼앗긴 자들에 의한 불특정 다수인에 대한 무차별적인 범죄, 성도착증세의 성범죄자들이 증가추세에 있다는 사실이다. 예전에는 음란물에 대한 접근성이 쉽지 않았지만, 인터넷의 발달과 디지털카메라의 보급으로 음란물에 대한 접근이 너무 용이하게 변해버렸다. 티브이에서조차 성인채널이라고 하여 하루 종일 섹스물을 방영하고 있고, 이를 신청하면 하루 종일 이를 볼 수 있도록 개방되어 있으니 더 이상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범죄는 더욱 더 극성을 부리고 있는데, 범행을 저지른 피의자의 인권은 더욱 보장받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아이러니, 이게 자유민주주의의 한계이다. 민주주의가 극단으로 치닫게 되면 중우정치에 빠지게 된다고 플라톤은 간파하였다. 다수의 의견이라는 명목으로 어리석은 의견이 세상을 지배하는 세상, 그게 바로 중우정치의 본보기이다. 우리 사회의 단면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민주주의라는 미명하에, 다수의 의견이라는 미명하에 아주 사적이고 이기적이며 부당한 일들이 공공연히 자행되고 있음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진정한 민주정치와 잘못된 중우정치의 경계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범죄에 빠져드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심리현상은, 처음에는 사소해 보여 무심히 접근하여 보는 것으로 만족하다가 점차 재미있다고 느끼게 되고, 결국 중독증상을 불러일으켜 그 허방에 빠져서 마침내 이를 행동으로 옮겨보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게 된다. 특히 성범죄와 마약 및 도박 범죄가 그러하다. 상습소매치기범들을 면담하다가 소매치기하는 순간 오르가즘에 버금가는 희열을 느낄 때가 있다는 실토를 들은 적이 있다.


한쪽에서는 역동적인 에너지가 넘쳐나는 사회, 다른 한쪽에서는 어둡고 음습한 어둠의 범죄가 횡행하고 있는 사회, 그게 우리가 함께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오늘의 세상이다. 범죄자들에게 조금 더 가족과 이웃, 그리고 사회가 관심을 기울이면 어느 정도 범죄를 줄일 수 있고, 사회는 더욱 더 밝아질 것이다.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하는 이들이 많은 사회, 그러한 성실한 사람들이 넘쳐나는 사회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