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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02.17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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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남자, 실존의 부재

 

오시영 숭실대 법대교수/변호사/시인

 

영화 “왕의 남자”가 관객 1,000만명을 넘어서서, 한국 영화 역대 관객 기록을 세운 “태극기 휘날리며”의 관객수를 갱신하려는 듯 계속 항진 중이다. 이렇게 많은 관객이 볼 수 있는 영화가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스크린 쿼터 사수를 위한 한국 영화인들의 릴레이 시위 또한 계속되고 있다. 최근 들어 한국 영화의 스크린 점유율이 60%를 넘고 있다. 이는 할리우드 영화가 판을 치는 세계 영화시장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관객 점유율이다. 이러한 점유율을 문화예술국가라고 자부하는 프랑스에서조차 신기한 현상으로 보아 연구대상으로 삼고 있을 정도라고 한다.


왕의 남자, 공길은 여장 남자광대이다. 왕조실록에도 그 이름이 올라 있다는 광대 공길, 그녀, 아니 그에게 깊이 빠져든 연산군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어떻게 보면 절대군주시대의 왕은 연애라는 감정을 몰랐지 않았을까 싶다. 손만 내밀면 모든 여자가 자기 여자가 될 수 있는 지체에 있었으니, 어찌 한 여자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었을까? 까닭에 성적 쾌락을 얻기 위하여 남색을 즐기거나 신하들의 아내를 취하거나 하는 등 기행을 하지 않았을까? 구약성경도 이스라엘의 왕 다윗이 그의 신하 우레아의 처 밧세바를 취하기 위해 우레아를 전쟁터로 내보내 적에게 죽임을 당하도록 계책을 취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다윗 왕은 밧세바를 통해 얻은 아들 솔로몬을 이스라엘의 3대 왕으로 왕권을 승계해 주고 있다. 솔로몬이 다윗 왕의 열세번째 아들이라는, 정처 소생이 아니라는 열세 속에서도 형들의 왕위계승권을 물리치고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어머니 밧세바의 묘략이 있었음을 성경은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가슴을 설레게 만들어주는 여자, 진정 자신이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여자를 위해 모든 여자들에게 권태롭고 무미건조함을 느껴온 왕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기록에 의하면 장녹수는 예종의 둘째 아들인 제안대군의 몸종으로 제안대군의 家奴와 혼인하여 자식까지 두었으나 가무에 능한 것이 연산군의 눈에 띄어 내명부 종3품인 淑容까지 되었으며, 연산군의 총애를 받아 그의 오라비니들과 어울려 米穀을 불법거래 하는 등 국가재정을 문란케 하였다가 중종반정 때 연산군과 함께 처형되었다고 한다. 어쩌면 역사는 승리자들의 것이기에, 중종반정에서 승리한 신하들은 연산군을 최대한의 폭군으로 기록하였을지도 모른다. 실제 폭군이었을 것이다. 그가 성군이었다면 감히 반란의 역적모의를 신하들이 꿈꾸지 못했을 것이므로......


그렇다면 조선의 왕, 최고 권력을 행사하며 무소불위했던 연산군이 어찌 자식까지 둔, 당시로서는 천하디 천한 신분인 여종 장녹수를 그토록 열렬히 사랑하게 되었을까? 그 속에는 진정한 사랑에 대한 갈증을 녹여주는 무엇인가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성종의 서자출신인 연산군, 그의 어머니 폐비 윤씨가 사약을 받고 죽음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 연산군은 비교적 어진 정치를 했던 것으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전국에 암행어사를 파견하여 지방의 탐관오리를 벌하였고, 별시문과를 실시하여 많은 인재를 뽑았으며, 군세를 정비하여 변방지역의 안정을 도모하였다고 한다. 지금으로 치면 공무원의 부정부패를 막고 천하의 영재를 얻기 위해 노력하였으며 국가안보를 튼튼히 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 폐비윤씨사사사건을 알고 무오사화를 일으켜 많은 신하들을 사사하였고, 간신 임사홍의 농간에 의해 더더욱 총기를 잃고 주색잡기에 몰두하였다고 한다. 신하들이 그를 비방한다는 말을 전해 듣고 愼言牌라는 패쪽을 차고 다니도록 하여 말조심을 시킬 정도에 이르렀다고 한다. 興淸樂이라 불리운 수많은 왕의 여자들, 그 후 흥청망청이라는 말이 생겨났다고 한다.


왕의 남자는 어떻게 보면 동성애를 다룬 영화일 수도 있다. 궁내에 수많은 미녀들을 두고서도 남자 광대를 사랑하고, 당숙인 제안대군의 여자였다는 천비 출신의 장녹수를 사랑하는 연산군의 심리 깊은 곳에는 외로움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미루어 짐작해 본다.


지금도 우리 사회에는 외로운 사람들이 넘쳐나고 있다. 수많은 독거노인들이 외로이 방치되고 있고, 수많은 사람들과 부딪치는 조직 사회 속에서도 모두가 적일 수밖에 없는 경쟁시대로 내몰리고 있다. 더불어 살아가기보다는 나 혼자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에 골몰한 사람들이 넘쳐나고 있다. 웬만한 기업의 채용시험은 수백대 일을 넘는 것이 다반사다. 선택되지 못하는 수많은 외로운 사람들, 직장에서, 가정에서, 학교에서, 심지어는 종교단체에서조차도 소외되는 수많은 사람들, 그 사람들 모두는 어쩌면 연산군의 외로운 마음일 수도 있다. 한 인간, 왕위를 벗어던진 한 존재로서의 연산을 들여다보면 나약하고 심약한 사람임이 투명하게 보인다. 사실관계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영화 왕의 남자에서 공길은 마지막에 남자 광대 장생과 함께 줄타기를 한다. 왕의 총애를 받았던 공길 역시 왕에 대한 연민과 함께 자신이 정을 줄 다른 사랑이 필요했던 것이다. 영화 마지막에서 타던 줄을 반동하며 하늘 높이 솟아오르는 두 사람, 인생이라는 게 원래 외줄타기가 아니던가?


왕의 남자 마지막 장면에는 이기주의로 가득한 미국도, 한국도, 스크린 쿼터도 없었다.  왕도 없고, 왕의 남자도 없고, 오직 인간 실존의 외로움만이 화면 가득 넘치고 있었다, 거기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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