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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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02.10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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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어디서 무엇을 하는가?

 

오시영 숭실대 법대교수/변호사/시인

 

종교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인간의 영혼을 담보로 만들어낸 가장 커다란 사기인가 아니면 현세 이후의 영원한 내세에 대한 신의 약속인가? 인류 역사는 종교의 역사였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원시미개시대부터 신에 대해 제사를 지내온 것이 인류의 역사이고, 최첨단과학문명시대인 오늘날도 신에 대한 제사가 더욱 더 커다란 인간의 숙제가 되어가고 있다.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무함마드(마호메트)를 풍자한 서구 언론 만평에 반발한 이슬람권의 항의가 수그러들 줄을 모르고, 이에 역반발한 서구 사회의 반격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켜 살상과 방화 및 폭동이 연일 끊이지 않고 있다.


하버드 대학의 새무엘 헌팅턴이 1992년 포린 어페어즈(Foreign Affairs)에 “문명의 충돌”이라는 글을 처음으로 게재한 이후 1996년에 그의 저서 “문명의 충돌 - 세계 질서의 재편”에서 냉전이 종식된 국제정치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문명간의 충돌이 될 것이라고 예상한 이래 문명의 충돌이란 문제가 국제사회에서 커다란 문제가 되어가고 있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미국 중심의 세계자유무역기구를 통한 세계화, 통일화의 물결 속에서 점차 불이익을 받는 정도가 심각해지고 있는 개도국, 특히 9ㆍ11 테러 이후 미국의 이라크 침공 등으로 이슬람권과 기독교권 국가 사이에 상당히 심각한 갈등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미국의 부시 정권은 나름대로는 세계민주화 및 자유화라는 보편적 인류가치의 실현을 목적으로 세계경찰국가로서의 임무 수행을 자임하고 있지만, 그 가치 실현의 대상이 되고 있는 국가들은 자존심을 상하였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경제적, 문화적 박탈감이라는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비롯한 중남미국가들의 반발도 심각한 수준에 이르러 있고, 유교 문명을 중심으로 한 중국 등 아시아권의 경제적 성장과 함께 점차 미국과 대립각을 세워가고 있다. 특히 오일 달러의 축적에 따라 국력신장의 계기를 맞고 있는 중동산유국들이 이라크 침공 및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둘러싸고 미국과 이해관계를 달리 하고 갈등양상을 겪던 중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무함마드가 폭탄을 단 터번을 쓰고 있는 모습을 포함한 모두 12편의 만평을 덴마크 신문 윌란스포스텐이 게재한 것이 이슬람권을 자극하여 전세계 무슬림들의 집단적인 반발을 불러왔고, 이에 대해 서방언론이 다시 무함마드를 비하하는 듯한 만평을 약올리듯 게재하자 이슬람권의 항의시위가 격화되면서 급기야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상당하고, 대사관 공격 및 방화 등 심각한 대립양상을 가져오기에 이르렀다.


우리는 종교를 통해 현세에서 마음의 평화를 얻고, 사랑이 말라버린 현대사회에서 사랑을 배우고 실천하며, 죽은 후 내세에 대한 영원불멸의 신념을 배우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종교의 긍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종교의 교조적인 가르침이 극단적 원리주의에 빠지게 되면 자기 종교만이 유일한 종교라는 절대가치에 사로잡히게 되고, 다른 종교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게 됨으로써 충돌이 발생할 수밖에 없게 된다. 멀리는 십자군 전쟁에서부터 최근의 이라크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이르기까지 그 전쟁의 배경 속에는 서로 화합할 수 없는 가치의 다름이 버티고 있다.

 

이슬람과 기독교의 뿌리는 원래는 하나였다고 한다. 아브라함의 적자인 이삭의 후손과 서자인 이스마엘의 후손들이 이스라엘과 아랍권의 먼 조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모두 하나님의 자손이라는 자부심이 강하다 보니, 이스라엘 민족은 여호와를 자신들의 종교적 최고가치로 믿게 되었고, 아랍권은 알라신을 최고가치로 섬기게 되었다고 한다.

 

두 종교 모두 사랑을 가르치고 내세를 가르치고 선하게 살 것을 가르치고 있다. 그렇지만 그 본질, 사랑의 실천이라는 그 최소한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에는 엄청난 현실적 괴리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서로의 관습과 문화적 가치가 다르고, 생활풍속이 다르다 보니 각기 일정한 지역을 중심으로 한 독립적 삶을 살 때는 별 충돌이 없었으나, 세계화라는 국제교류시대에 이르러서는 서로 다름이 선과 악의 개념이 될 수밖에 없고, 사사건건 부딪히는 가치관의 차이는 구체적 삶의 형태에서 부딪히게 되고 새로운 갈등을 증폭할 수밖에 없게 되었던 것이다. 기독교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조금씩 변화하여 왔고, 현대의 보편적 가치관으로 변화해 왔지만, 이슬람교는 7세기에 만들어진 마호메트의 순수한 코란의 정신을 여전히 간직하려는 원리주의가 지배적이기 때문에 시대의 변화에 대처하지 못한 채 지금 21세기에도 7세기의 가치관을 유지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7세기의 순수와 21세기의 현실이 공존하는 세상, 그것이 지금 문명충돌의 우려로 전세계가 전전긍긍하고 있는 오늘의 현실이다.

 

서로 다른 가치관이 인터넷 문화를 통해, 세계 유수의 언론매체의 취재전쟁을 통해, 세계화의 물결에 의한 국제무역의 분쟁을 통해, 통신과 운송시설의 발달에 따른 부단한 대인접촉을 통해 계속 부딪힐 수밖에 없는 상태에서, 각국의 국가이익지상주의가 서로를 포용하기 보다는 이익을 얻어내기 위해 공격할 수밖에 없는 대상으로 삼다보니 국가와 민족, 종교 사이에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지금이라도 서로 인류보편의 가치관인 상호존중과 양보를 통해 신뢰회복의 기회를 가져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핵무기가 동원되는 마지막 십자군전쟁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왜 종교가 필요한가? 신의 이름을 내세우며 전쟁을 즐기려는 종교지도자, 정치지도자들에게 되묻고 싶을 뿐이다. 왜 당신은 종교를 당신의 사유물로 타락시키는가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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