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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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
  • 법률저널
  • 승인 2006.02.03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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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교수/변호사/시인

 

미필적 고의범이 넘쳐나는 사회

 

음주만취의 운전자가 교통사고를 내어 애꿎은 30대 젊은 가장을 세 명이나 한꺼번에 사망케 했다는 보도를 접하면서 가슴이 답답해진다. 혼자 남아 어린 자녀들을 키워야 할 30대 홀어머니의 험난한 삶이 눈앞에 그대로 그려지니 어찌 답답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교통사고 발생 건수가 높은 나라가 우리나라이다. 다행히 통계수치에 의하면 차량 대수별 교통사고 건수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지만, 선진국의 교통사고율에 비하면 여전히 높은 수치이다. 한 가정이 파탄에 이르고, 자녀들이 졸지에 고아가 되거나 부양자를 잃게 되어 교육 및 양육에 많은 문제가 발생하게 되고, 이러한 비용은 고스란히 국가 내지 사회의 부담이 되고 있다.


법률가로서 항시 느끼는 것이지만,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은 많은 문제점이 있는 법이다. 빈번한 교통사고로 인하여 모든 국민이 전과자가 될 지경에 이르게 되자 할 수 없이 제정된 법이지만, 위 법에 의하면 보험에 가입한 운전자가 열 가지 특례조항에 해당되지 아니한 교통사고를 내더라도 사망사고가 아닌 경우에는 전혀 처벌하지 않는다. 열 가지 특례조항으로는 신호위반, 중앙선 침범, 제한속도 20킬로미터 초과, 철도건널목통과방법 위반, 횡단보도 보행자보호의무 위반, 무면허 운전, 음주운전, 인도돌진사건 등을 규정하고 있다.


위와 같은 위반사항이 있지 않은 사고의 경우 피해자가 죽지만 않으면 평생 불구가 되거나 식물인간이 되더라도 가해자는 전혀 처벌을 받지 않아 피해자에게 사과 한 마디 하지 아니하여도 무방하니 병원에 한 번 찾아가지 않는 몰염치한 행위에도 전혀 처벌의 잣대는 작용하지 못한다.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은 운전자의 구체적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경우에 따라서는 위 특례조항에 위반되는 행위를 하였더라도 오히려 상대방에게 더 큰 사고발생의 책임이 있을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지만, 위 법은 전혀 그러한 구체적 정황을 고려함이 없이 특례조항에 해당되느냐 여부만을 문제 삼아 처벌의 가부를 결정할 뿐이다.


범죄의 종류는 크게 나누면 과실범과 고의범으로 나눌 수 있다. 고의범은 적극적으로 범죄를 의도한 자에 대한 처벌로, 형벌은 원칙적으로 고의범에 한하여 처벌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에 반해 과실범은 범죄의 결과를 의욕 하지 않았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처벌하지 않지만, 그 결과가 중하여 그대로 묵과하는 것이 정책적으로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에 처벌하는 범죄로, 특별히 처벌하는 규정이 있어야만 처벌할 수 있다.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이나 상해 또는 재물손괴에 대한 처벌이 전형적인 과실범 처벌에 해당된다. 그런데 형법상 처벌하도록 되어 있는 과실치상죄에 대하여,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은 앞서 살펴본 위반사항에 해당되지 않으면 처벌을 감면하겠다는 특례조항을 규정하고 있다. 주먹으로 한 대 때려서 입힌 상해와 무거운 차체가 사람을 충격하여 입힌 상해를 비교해 볼 때 후자가 피해는 훨씬 큰데도 과실범이라는 이유로 교통사고처리특례법에 의하여 처벌받지 않으니, 피해자는 너무나 큰 피해를 입었음에도 가해자는 보험에 가입했다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전혀 양심의 가책도 받지 않고 처벌도 받지 않으니, 이러한 불공평이 세상에 어디에 또 있겠는가.


과실범과 고의범의 중간영역에 미필적 고의라는 것이 있다. 미필적 고의라 함은 고의처럼 결과를 적극적으로 의욕하지는 않지만 그러한 결과가 발생하더라도 할 수 없다라는 소극적  결과방치의 결과 피해가 발생하는 심리상태를 말한다. 미필적 고의에 대하는 보통의 고의범과 동일하게 처벌할 수 있다는 것이 형법상의 처벌원칙이다. 그렇다면 음주만취의 상태에서 운전을 하는 것은 교통사고가 발생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의욕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미필적 고의상태라고 하지 않을 수 없고, 반대차선에서 진행해 오는 차량이 있는 데도 중앙선을 침범하여 질주하거나 유턴하는 것 또한 반대차선의 진행차량과 충돌이 발생하여 교통사고를 유발하겠다는 미필적 고의가 있다고 볼 여지가 충분히 있다.


미필적 고의범이 넘쳐나고 있는 사회는 문제가 많은 사회이다. 사회생활부적응이나 불만이 많아지게 되면 미필적 고의의 심리상태가 되고 만다. 일종의 자포자기 상태가 되거나 정신적 패닉 상태가 되어 책임의식이 결여되게 되고, 자신의 행위가 사회에 어떠한 해악을 끼치는지를 고려하지 않는 도덕적 불감증상태에 이르게 된다. 그러니 모두들 들키지 않으면, 사고가 나지 않으면 된다는, 나더라도 나는 모르겠다 라는 기막힌 심리적 공황상태에 이르러 미필적 고의범이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염려스러울 뿐이다. 통계에 따르면 부자나라들의 정신질환자들과 자살율이 가난한 나라보다 훨씬 높다. 우리나라의 자살율이 OECD 국가 중에서 최고인 것은 통계가 말해주고 있다. 교통사고처리특례법에 의하더라도 가해자에 대하여 금고형은 아니더라도 벌금형 등의 처벌은 고려해야 할 때에 이르렀다고 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것이 돈이 들어오는 것이고, 제일 겁내는 것이 돈 빠져나가는 것 아니겠는가? 모두들 교통법규를 준수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자중자애의 귀한 삶이 아니겠는가. 벌금으로, 돈으로 교통사고를 줄여보자는 생각이 얼마나 유치한가마는 오죽하면 그런 생각까지 떠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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