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판사 1년을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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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판사 1년을 마치며
  • 법률저널 편집부
  • 승인 2006.01.06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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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숙 부산지법 예비판사

 

2006년 새해가 밝았네요. 제가 법원에 들어온지도 어느덧 1년이 다 되어갑니다. 처음 법원에 들어와 서툴고 낯설어서 무지 고생했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그렇다고 지금도 그다지 잘하는 거 같지는 않지만...^^;;) 이제 조금만 있으면 2년차 예비판사가 된다니 세월이 정말 빨리도 지나가네요.


제가 법원에 들어와 가장 힘들었던 것은 바로 판결문을 쓰는 일이었습니다. 원, 피고 양쪽이 서로 자기가 진실하다고 피 튀기며 싸우는데 직접증거는 하나도 없고 양쪽 모두 그럴싸한 간접증거를 가지고 있을 때...


정말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럽더군요. 표현이 너무 거친가요? 그렇지만 그것이 정말 저의 솔직한 마음이랍니다. 언젠가부터 옆머리에 흰 머리칼이 하나 둘 눈에 띄기 시작하고 머리카락도 많이 빠지고...에궁...


진실은 하나일텐데 둘 다 자기가 진실이라고 싸우고 누구 말이 진짜인지 모르겠는데 결론을 내려야 하는 그 고통...
물론 똑같은 사건기록을 놓고 수차례 보다보면 약간은 이 사람이 더 진실한 거 같다, 거짓말 하는 저쪽은 어딘지 모르게 약간은 표가 난다는 것 정도를 파악하게는 됩니다. 신기하게도 처음엔 그렇게 꽉 막혀 있던 것들이 한 대여섯번 기록을 꼼꼼히 보고 나면 뭔가 결정을 할 만한 건덕지가 생기더라구요. 또한 아직까지 경험이 일천한 제가 모든 사건을 전적으로 결정하여 판결문을 쓰지는 않습니다. 참 다행스러운 일이지요.^^;;


법원에서는 사건이 재판부별로 먼저 배당되고 다시 그 재판부에서 판사들에게 분배가 됩니다. 자기에게 배당된 사건을 주심사건이라고 하는데 판결문에 보면 재판장인 부장판사, 좌, 우배석 판사들의 이름이 모두 나오지만 그 중 한명이 주심판사로서 그 사건을 치밀하게 검토하고 부장님과 의논한 뒤에 결론을 내린 것이랍니다.


저 역시도 훌륭하신 부장님을 통해 많은 지도편달을 받고 있죠. 저와 똑같은 자료들을 보시지만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시는 능력은 정말 엄청 나시더라구요. 역시 많은 사건을 접하고 당사자들을 만나면서 쌓인, 세월이 준 내공이 아닐까 싶습니다.

 

수험생 여러분들껜 너무 먼 남의 나라 이야기 같은가요? 저도 그렇게 느낀 적이 있었답니다. 세월이 화살과 같이 흘러 지금 제가 이 자리에 있듯이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들도 저와 같은 처절한(?!!) 고통에 몸부림치실 날이 곧 다가올 겁니다.


얼마전에 부산법조 애중회 모임이 있었습니다. 애중회(愛重會)란 기독법조인들의 모임인데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모임이라는 뜻입니다. 그때 어느 부장판사님이 손지열 대법관님이 부장판사님 시절이 쓰신 기도문을 읽어 주셨습니다.


어찌나 한 구절 한 구절이 마음에 와 닿던지...그 기도문을 들으며 저렇게 훌륭하신 분도 판결문을 쓰실 때 나와 같은 고민을 하시는구나 하는 생각에 용기를 가지게 되었지요. 손지열 대법관님의 기도문을 소개하며 저의 글을 마칠까 합니다.


모두들 파이팅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부족한 저에게 인간사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법관의 직분을 허락하셨음을 감사합니다. 제 자신의 부족함과 무지함을 아오니, 모든 판단을 저에게 맡기지 마옵시고, 아버지께서 친히 판단하시되 저를 심부름꾼으로만 삼아 주시옵소서.


사람들을 재판하는 자리에 나아갈 때에 저의 마음은 심히 두렵고 떨립니다. 기도하는 중에 담대함을 얻게 하시고, 믿음으로 용기를 얻게 하옵소서.


저의 마음가짐을 호수처럼 잔잔하게 하시고, 저의 양심을 거울처럼 깨끗하게 하소서. 저의 온 마음이 선과 정의와 진리만으로 가득하기를 원하나이다. 부정한 청탁이나 부당한 간섭을 받는 일이 없도록 주께서 지켜 주시옵소서. 혹 유혹과 시험을 받을 때에는 주의 이름으로 단호히 물리칠 수 있게 하옵소서.


복잡하게 얽힌 인간들의 일을 올바르게 재판하는 일이 너무나 어렵습니다. 간절히 비오니 주의 지혜와 총명으로 저의 우둔함을 채워 주시옵소서. 한건이라도 잘못된 재판을 행할까, 한 사람이라도 억울한 사람으로 만들까 심히 두렵나이다. 저의 지혜가 도저히 당하지 못할 때에 주 앞에 엎드리겠사오니, 주께서 옳은 길을 가르쳐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아는 인간의 법은 너무나 부족하고 잘못된 것이 많습니다. 모든 법의 원천이 되는 주님의 법을 늘 사모하고 그 법의 인도를 받게 하옵소서. 실정법을 해석하고 적용할 때에 언제나 주님의 영원한 법을 등대삼아 그 법을 지향하게 하옵소서.


정의를 사랑하고 불의를 미워하는 마음이 불같게 하옵소서. 참과 거짓을 분명히 가르는 정교한 잣대를 허락하소서. 현실과의 적당한 타협과 미지근한 판단으로 옳음과 그름을 흐리게 하는 일이 없게 하옵소서.


사람들을 재판하고 다스릴 때에 사랑의 마음이 앞서도록 하옵소서. 죄를 미워하되 죄인을 미워하지 않게 하옵소서. 서로 미워하고 싸우는 사람들에게 이해와 양보와 사랑의 법을 전하여 그들로 하여금 화목하게 할 수 능력을 허락하옵소서. 항상 따뜻한 마음씨와 겸손한 태도를 가질 수 있게 하시고, 행여 오만한 언어 행동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이 없도록 주께서 붙들어 주시옵소서.


특히 가난한 자의 어려움과 억눌린 자의 아픔을 돌아보는 법관이 되게 하옵소서. 강한 자, 부유한 자에게는 도움의 손이 많으나, 약한 자, 가난한 자에게는 저 외에 도울 자가 없음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억울한 사람들의 호소를 외면하지 않고 끝까지 들어 주는 넓은 아량을 허락하옵소서.


아무리 하찮은 사건이라도 당사자의 자유와 권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임을 늘 마음에 간직하고, 하나하나의 재판에 최선을 다하고 신중에 신중을 더하게 하옵소서. 재판하는 자의 편리와 안일을 위하여 재판받는 사람들의 이익을 가볍게 처리하는 일이 없게 하옵소서.


바라옵건대 항상 겸손한 마음, 기도하는 마음으로 공의와 사랑을 실천하는 선한 법관이 되게 하옵소서, 사람보다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오늘보다는 역사의 긴 날을 내다보는 지혜로운 재판관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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