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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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窓
  • 법률저널
  • 승인 2005.12.09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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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와 구세군 자선남비 

 

요즘 고구마를 자주 먹는다. 한때 보리밥이 웰빙음식으로 유행이더니 지금은 고구마가 웰빙음식으로 유행이다. 고구마에 섬유질이 많아 다이어트 및 건강에 좋다는 소문이 자자해지면서 수요가 늘고 있다고 한다. 고구마와 보리밥, 1960년대를 상징하는 구황음식이다. 주식인 쌀이 귀했던 시절, 많은 이들은 고구마와 보리밥을 질리도록 먹어야 했다. 하지만 그때를 되돌아보면 얼음 얼기 직전의 시원한 동치미를 한 입 베어 물고, 동치미국물을 마시면서 가족들과 함께 한 이불 속에 다리를 넣고 아랫목에 옹기종기 둘러앉아 함께 먹었던 따끈따끈한 고구마 맛이야말로 아무리 맛있는 케이크나 과자로도 대체될 수 없는 맛이었음을 느끼게 된다. 쌀이 귀했던 시절, 먹거리가 귀했던 시절, 겨울밤 최대의 간식거리는 고구마였다.


어린 시절, 난방이 제대로 되지 않았던 주택구조 때문에 잠들기 전 머리맡에 놓아둔 물그릇의 물이 얼어붙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방안을 휘젓고 다니던 차가운 바람, 웃풍이 세다는 어른들의 말을 들으며, 문을 단단히 닫았는데 어디로 바람이 들어온단 말인가 하며 천장을 쳐다보기만 하다가, 철이 들어 그게 밖의 차가운 온도 때문에 방벽을 통해 방안 공기가 차가워지는 현상임을 알게 되면서 고개를 끄덕였던 기억이 새롭다. 그 때에는 추운 겨울이 있었지만, 따뜻한 고구마가 있었고, 시원한 동치미국물이 있었다. 아니 무엇보다도 한 이불 속에 발을 넣고, 오순도순 모여앉아 밤새워가며 이야기를 나누던 형제들의 사랑이 있었고, 이웃간의 밤마실이 있었다. 호호 하고 언 손을 불면서도 털장갑을 낀 채 눈덮힌 밤길을 걸어 이웃집으로 밤마실 가 테레비가 없던 시절, 라디오마저 귀하던 시절 밤새워 알콩달콩 이야기꽃을 피웠던 정나누던 즐거움이 새삼 그립다.


21세기 초반을 살아가는 우리, 평균적인 삶은 그 시절에 비할 바가 아니게 풍족해졌다. 냉난방시절이 잘 갖추어진 건물에서 한겨울에도 반소매로 살고 있다. 내복을 입으면 옷맵시가 나지 않는다며 추운 겨울에도 실내온도를 높이며 땀을 흘리고 있다. 세계의 유가는 배럴당 60달러를 웃돌며 우리의 경제를 압박하고 있지만, 이는 국가의 문제일 뿐 국민들은 이를 현실로 깊이 인식하지 못한다. 쌀은 국내생산량만으로도 국내소비를 다 하지 못할 정도로 남아도는데, 사람들은 쌀밥을 먹으려고 하지 않는다. 남아도는 쌀을 처치하지 못해 정부는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설상가상으로 WTO는 더 많은 쌀을 수입하라고 우리를 윽박지르고 있다. 궁지에 몰린 농민들은 시위대가 되어 국회의 쌀협상안 비준에 반대하며 이 추운 겨울에 가두시위를 벌리고 있다.


참으로 혼란스러운 세상이다. 절대물량은 남아도는데, 과도한 편재현상으로 나눔이 아름답지 못하다. 한쪽에서는 남아돌고, 한쪽에서는 부족해서 아우성이다. 하지만 남아도는 쪽에서는 부족한 자의 아픔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강 건너 불이기 때문이다. 구세군의 자선남비가 가지고 있는 상징성을 연말이 다 되어가면서 다시 한 번 절감한다. 구태의연하게 지난해, 지지난해와 똑 같은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온다. 하지만 그 구태의연한 구세군의 등장은  우리의 잠든 의식을 깨우는 소중한 상징이다.


난 2018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난 2018운동은 2018년에 세상이 바뀐다는, 내가 바뀌자는 운동이 아니다. 暖 2018운동은 에너지관리공단이 전개하고 있는 겨울철 실내온도 유지운동이다. 실내온도를 18도 내지 20도의 범위내로 제한하고, 실내에서 두껍게 옷을 입자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기름을 절약할 수 있어 국가경제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적정한 실내온도 유지를 통해 건강도 좋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공공기관의 실내적정온도는 19.3도이고, 영국 프랑스 등도 19도이다. 그런데 얼마 전 국내 대형건물들의 실내온도를 조사한 바에 의하면 평균 22.4도에 이른다고 한다. 실내온도를 20도로 낮추면 2조원 이상을 절약할 수 있다는 것이 에너지관리공단의 판단이다. 오래전 첫 직장에 취직을 하고 첫 월급을 타던 날, 부모님 내복을 재래시장에서 고르며 얼마나 의기양양했는지 모른다. 아들의 첫월급선물로 내복을 받아드신 어머니의 환하게 웃던 모습이 떠오른다. 내복의 상징성, 한겨울의 따스함이다. 정이다. 사랑이다. 효도하는 마음이다. 하지만 실내온도가 올라가 내복을 입지 않는 세상은 그러한 따스함이, 내밀한 사랑이 소멸해버린 삭막한 세상이다. 이는 결코 논리의 비약이 아니며, 우리의 삶이 그렇게 변해버린 눈앞의 현실이다.


엠비시방송 피디수첩의 배아줄기세포에 대한 방송이 세밑을 시끄럽게 하고 있다. 황우석박사죽이기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경악을 금할 수 없다. 하지만 그 덕에 난자제공하겠다는 용감한 여성들이 천명을 넘어섰다는 보도를 접하면서 이 기회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기를 바랄 뿐이다. 검경의 수사권조정문제로 권력기관의 힘겨루기가 팽팽하다. 하지만 이를 통해 국민들에 대한 올바른 인권보장과 범죄에 대한 수사체계가 갖추어질 수 있다면 이 역시 전화위복이 아니겠는가? 몇십년만의 폭설로 수많은 비닐하우스가 무너져 내려 애써 가꾼 농작물이 얼어 죽게 되었다며 안타까워하는 농민의 마음을 어찌 달래줘야 할까?


모두의 겨울이 따뜻하기만을 비는, 간절한 기도밖에 할 수 없는 무력감이 미안할 뿐이다. 오늘은 내복을 껴입고, 목도리를 두르고, 장갑을 끼고 겨울동장군과 겨룰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출근길에 나서야겠다. 길거리에서 구세군 자선남비를 만나면 반드시 헌금하리라는 다짐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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