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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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窓
  • 법률저널
  • 승인 2005.11.25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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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교수/변호사/시인

명분과 순필

 

낙엽이 지고 있다. 가을이면 어김없이 여름내내 푸르름을 자랑해오다가 가을이면 어김없이 지고 마는 나뭇잎, 사람들은 전국의 산야를 온갖 예쁜 색으로 물들이는 형형색색의 단풍을 보며 아름답다고 탄성을 자아낸다. 우리가 사는 곳이 금수강산임을 절감한다. 하지만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이들의 마음속에 낙엽이 죽어가고 있음에 경건한 묵념을 보내는 이들이 얼마나 있을까? 낙엽은 죽어가고 있는 나뭇잎이다. 제 스스로 죽어가면서 인간에게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나뭇잎의 마지막 헌신을 생각한다. 얼마 전 한 청년이 사고를 당하여 식물인간이 되었고, 그의 장기가 여섯 명의 불치의 환자를 살렸다는 보도가 전해졌다. 그 청년도 죽어가면서 많은 이들에게 기쁨과 아름다움을 선사하였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오늘은 국정원 도청 사건으로 시끄럽다. 두 명의 전직국정원장이 불법도청사건과 관련하여 구속되었다. 도청에 관련되어 수사 받아 오던 이수일 국정원 제2차장이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는 비극적인 소식이 전해져온다. 왜 그는 자살을 택해야 했을까?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수치스러움도 한 몫을 했을 것이다. 국가를 위해 한 일이라며 별 죄의식 없이 다반사로 행해졌던 도청이 이렇게 큰 국가적범죄가 되어 지탄을 받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국정원 제8국이 정관계 및 재계 및 시민단체 등 수천명에 대한 조직적인 불법도청을 감행했고, 그 도청자료가 국정 전반에 영향을 미치게 사용되었던 모양이다. 한쪽에서는 진실을 규명하여 처벌해야 한다고 야단이고, 다른 한쪽은 이를 정략적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야단이다.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와 관련하여 난자 제공 여성들에게 대가성 금전을 지급했다는 사실이 폭로되면서 세상이 시끄럽다. 연구원 중의 일부 여성이 난자를 제공했다는 윤리적 문제를 들어 비난하는 목소리도 점차 높아져가고 있다. 그들 중에는 순수한 윤리적 잣대에 의한 비판자들도 있겠지만 그들의 연구업적을 시기해서 비판하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이를 계기로 다른 한편에서는 스스로 난자를 기증하겠다는 여성들이 줄을 잇고, 이를 체계적으로 조직화하려는 사회적 운동까지 일어나고 있다. 헤겔의 정반합의 운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곳, 바로 대한민국의 오늘이다.


명분이 횡행하는 나라는 슬픈 나라이다. 명분을 사용하는 주체가 강자이어도 슬프고 약자이어도 슬프다. 강자가 명분을 내세우며 약자를 몰아 부칠 때는 약자는 정말이지 설 땅을 잃는다. 죽음조차도 허용되지 않는 극한상황에 내몰리게 되고 약자는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모든 것을 다 가진 자가 명분에서마저 우위에 서게 된다면 어찌 약자가 견디어낼 수 있겠는가 말이다. 반면에 약자가 명분을 내세울 때 그 저항 역시 처절하다. 살아남기 위해 마지막 남은 하나, 명분을 방패삼아 강자의 짓눌러옴에 저항하며 투쟁하고 발악한다. 절대절명의 순간을 버티어 내기 위해서, 아니 먼 미래를 내다보며 명분을 내세운다.


하지만 오늘 목숨 걸고 싸우고자 했던, 정당하다고 확신하며 모든 것을 걸었던 명분은 모르긴 몰라도 30년쯤 세월이 흐르고 나면 얼마나 허무맹랑한 짓거리였는지 대부분 스스로 밝혀지고 만다. 명분으로 세상을 막으려는 자는 결국 도도한 역사의 물결 앞에서 휩쓸려가고, 세상을 시끄럽게 했다가 결국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됨을 깨닫는다. 아마 그때쯤에는 30년 전에 명분을 내세우며 모든 것을 걸었던 이는 제 스스로 세월 앞에 노인이 되어 초라하니 거울 앞에 서 있거나 죽은 자가 되어 아무 말이 없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제 이익을 감추기 위해 내세웠던 명분이란 반드시 퇴색하기 마련이다.


전교조 교사들의 불법투쟁을 보면서 십년 세월에 저렇게 본말전도의 길을 걸을 수도 있구나 싶어 안타까울 뿐이다. 교육개혁, 참교육지향이라는 초심의 아름다움은 어디로 갔는지 찾아볼 수가 없다. 그들의 사리에도 맞지 않고 과격하기만한 무모한 투쟁을 보면서 그들 역시 명분으로 얻은 힘을 헛된 명분으로 잃어가고 있구나 싶을 뿐이다. 어디 전교조 뿐인가? 대량살상무기제조를 막겠다며 이라크를 침공한 미국의 부시정권이 이라크 민간인들을 향해 생화학무기인 백린을 사용하여 사람들의 살이 타들어가고 썩어 들어가게 했다니, 어찌 그 침공의 명분이 정당화될 수 있겠는가? 취임 이래 최저 수준의 국민지지를 받고 있고, 50% 이상의 미국민들이 이라크 침공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는 여론조사결과가 재미있다. 불과 2년만에 바뀌어버린 명분싸움이다. 그렇게 열렬히 지지했던 자들의 함성은 몇 년이 못가 그 명분 때문에 스스로 발목을 잡히고, 누워서 뱉은 침을 제 얼굴에 뒤짚어 쓸 뿐이다.


언제나 새로운 명분은 과거의 명분을 뒤엎으려 하지만, 언젠가 제 스스로 또 다른 명분 앞에 설 자리를 잃게 되는 것이다. 명분에 집착하다가 실리를 놓쳐 버린 자들, 順必의 참된 가치를 제대로 모르는 자들이 사회지도층, 힘센 자들 속에 많이 포진되어 있음은 슬픈 일이다. 가진 자들이 명분을 내세우며 그들의 욕심을 포장하고, 온갖 감언이설로 자신들을 선전하고 있다. 국민들이 사회지도층에 대한 불신의 비율이 8할을 넘어섰다는 여론조사결과가 온 마음을 사로잡는다.

 
명분과 실리가 교차하며 어지러운 세상, 죽어가는 낙엽을 보며 아름답다고 감탄하는 생명과 죽음이 공존하는 세상에서, 그래도 봄이 오면 꽃이 피려니, 순필의 오늘을 조용하고 겸손하게 살아가는 지혜가 무엇보다도 필요하지 않겠는가. 우리 모두 향내 나는 낙엽이 될 수는 없을까, 여섯 명을 살리는 죽음을 맞을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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