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회 외무고시 최고령 합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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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회 외무고시 최고령 합격기
  • 법률저널
  • 승인 2005.07.25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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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준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길 잃은 날의 지혜

 

○ 큰 것을 잃어버렸을 때는
“큰 것을 잃어버렸을 때는 작은 진실부터 살려 가십시오.”


확실히 나는 길을 잃었었다. 아니 길을 잃었다기보다는, 내 길이 앞에 보이는 상황에서 그저 망연자실 앞을 보면서 주저앉아 있었다고 하는 게 옳겠다. 내 길은 신기루처럼 아지랑이처럼 뿌옇게 보일 뿐이었다. 그래, 또 다음이구나, 아직 아니구나 라는 생각에 그저 지쳐갈 뿐이었다.


박노해 시인의 “길 잃은 날의 지혜”를 내가 접한 건 2003년 고시 공부가 한창인 가을 때, 우연이었다. 사람은 자신만의 눈으로 모든 걸 투영한다고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작은 감동으로 다가온 이 시는, 이후 아버지가 손수 써 주신 몇몇 성경 구절과 함께 내 책상에 항상 붙어 있었고, 내게 힘을 주었다. 올해 2차를 보고 나서 행시 2차를 치는 친구, 후배에게 이 시를 프린트해서 준 기억이 난다. 외시 1차, 2차를 아쉽게 떨어진 몇몇 후배들에게도 프린트해 주었다. 내게 힘을 주었다고, 너희들에게도 힘을 줄 것이라고.


나는 2001년 2차를 처음 치룬 이래, 올해까지 2차를 다섯 번 겪었다. 0.1점 차이로 떨어진 해도 있었다. 여태껏 모든 과목에서, 심지어 초시에서도 겪어보지 못한 과락을 2004년에 경제학에서 맞아보기도 했다. 나로서는 그 중간과정이 상실감 그 자체였다. 그렇다면 나에게 있어 “작은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갈거야. 그리고 외교관이 될거야.” 어렴풋이 기억이 나지만, 초등학교 6학년 때 내가 한 말이라고, 내가 떨어질 때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친구인 직장 5년차 내 친구가 술을 사주며 내게 해 준 말이다. 그 때 우린 얼치기였지만, 또렷이 기억한다고, 그때 우리끼리 말했던 꿈을 이루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너 뿐이라고, 네가 자랑스럽고 멋있다고. 그래서 힘내라고.


내게 있어 작은 진실은 어렸을 때부터 가져온 나의 꿈이었다. 재수를 해서 94년에 정외과에 입학을 하고, 입학해서는 술, 사람, 그리고 “철학학회”가 내 대학생활의 거의 전부를 차지했다. 96년부터 98년까지 육군 제 8사단에서 복무를 했다. 군대는 완전 반칙(?)이었다. 병장 2호봉 때까지 제대로 읽은 책은 한권도 없었고, 영어는 약간 과장해서 “danger”를 “당거”로 읽을 만큼 바보가 돼있었다. 제대해서 진로를 고민할 때 어렸을 때부터 꿈이 외교관이라는 내 말에 힘을 실어주는 선배들은 별로 없었다. 고시를 하려면 사시를 하라고, 같이 공부하자고, 지금은 검사 혹은 변호사인 친한 친구도 선배도 그런 말을 해주었다. 99년 가을에 본격적으로 외무고시를 위한 공부를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막연하게나마 가져왔던 꿈을 저버리기에는 난 너무 생각이 단순하고 어렸다.


어쨌거나 항상 나의 꿈을 일깨워준 주위 사람들에게 너무 감사할 뿐이다. 감사하고 싶은 사람이 너무 많다. 하느님께도 너무 감사할 뿐이다. 예전엔 2차 시험에 합격하면 “아 XX, 드디어 됐다.”이런 생각이 들 것만 같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에게도 꿈이 있을 줄 믿는다. 그 꿈이 정말 작은 것이든 거창한 것이든 그건 자신만이 항상 지니고 있는 소중한 진실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최고령 타이틀이 무엇이든 간에, 내 글이 자신만의 작은 꿈을 가진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희망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쓴다. 자신이 떨어졌음에도 항상 나를 응원해 주었던 내 동기, 후배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생각하며 이 글을 쓴다. 정말 어려운 글을 아무 생각 없이 흔쾌히 받아들였구나 하는 후회도 하면서.

 

○ 오늘 비록 앞이 안 보인다고
“오늘 비록 앞이 안 보인다고 그저 손 놓고 흘러가지 마십시오.”


이른바 “노장”이라고 부르는 분들이 공감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건 무엇보다 실패일 것이다. 실패에 이은 내 자신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일 것이다.


앞이 안 보였다. 2003년에 1차를 붙어서 마지막 유예를 받았기 때문에, 작년에 처음 PSAT라는 과목을 접하고, 올해 처음 시험을 봤다. 2004년에 노장들이 1차에서 대거 탈락했다는 우울한 얘기들이 떠돌았다. 올해 1월에 마지막 PSAT 실전 모의고사를 봤을 때, 난 그저 평균 언저리에서 맴돌 뿐이었다. 이승일/방재훈 선생님의 모의고사 수업을 들었는데, 너무 부족하다고 느낀 나는 이승일 선생님에게 조언을 구하고, 고맙게도 선생님은 나에게 집중강의 인터넷 강의를 열어주셨다. 시험보기 전까지 PSAT 때문에 전전긍긍했던 기억이 난다. 작년에 PSAT를 봤던 내 동기, 후배가 절대로 채점하지 말고 바로 2차에 매진하라는 조언을 해주었다. 그렇지만, 결과가 너무 두려워서, 1차 시험 후 방황을 했다. 담배는 늘고, 당구를 많이 치고, 스타크래프트도 많이 했다. 무엇보다, 시험을 빨리 포기하고 토익 준비를 해서, 나이 제한이 상대적으로 덜한 공기업에 원서를 낼까하는 생각이, 고민이 나를 괴롭혔다.


1차 시험 이후 올해 제일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인간만사새옹지마라고 했던가. 아이러니컬하게도, 여태까지 1차 시험 붙은 것 중에서 상대적으로 가장 많은 차이의 점수로 합격을 했다. 그저 쓴 웃음이 날 뿐이었다. 난 앞이 너무 불투명해서, “손 놓고” 그냥 나를 아무렇게나 세월에 맡긴 것이었다.


쪽팔렸다. 나를 응원해 주려고 술 사주고 용돈까지 가끔 쥐어줬던 친구들에게 보였던 꿈, 그걸 항상 되뇌었던 나는 이거밖에 안 되는 것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 마지막으로 해 볼게요 라고 부모님께 여자친구에게 친구들에게 몇 년간 말해왔던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몇 십일 남지 않은 시점에서 난 정말로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공부를 했다. 마음은 오히려 비우려고 노력했다. 이번에 떨어지면 다시 일 년을 초심으로 돌아가서 열심히 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붙은 건 “운”이었다. 고시 합격에서 실력은 전제고 나머지는 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실력이 됨에도 불구하고 내년을 기약해야 하는 많은 분들이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런 것 같다. 예전의 나는 실력이라는 전제가 없었다. 고시반에 몇 년간 있을 때, 주위의 선후배, 동기들이 항상 나는 “1순위”라고 치켜세웠다. 그렇지만 역시 자신을 제일 잘 아는 건 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표현은 나에게 가당치 않은 것이었다. 어쩌면, 그런 치켜세움에 늘 우쭐해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자신을 낮추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 속에서 난 어쩌면 그런 칭찬 속에서 자족하며 위안을 삼고 있었는지 모른다. 실패가 거듭되면서 난 조금이나마 겸손의 미덕을 깨달으려고 노력했다. 겸손은 결국 자신의 발전에 밑거름이 된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자신의 꿈이 있고, 그 꿈에 매진한다면, 운명은 자신의 손을 들어준다고 믿는다. 최선을 다했으면, 그래서 깨끗이 포기하는 거라면 또 다른 운명이 자신을 위로해줄 것이다. 그러나 중간에 손을 놓아버리는 건 자신의 꿈에 대한 변절이요, 배신이다. 그럼에도 나에게 합격의 영예를 준 하느님께 나의 운명에게 감사할 뿐이다.

 

○ 작은 일 작은 옳음 작은 차이 작은 진보
“작은 일 작은 옳음 작은 차이 작은 진보를 소중히 여기십시오.”


“작은 것 속에 이미 큰 길로 나가는 빛이 있고 큰 것은 작은 것들을 비추는 방편일 뿐입니다.”


고시든 연예든 내가 정말 좋아하는 야구든 “작은 것”을 놓치기 쉽다. 작은 것을 놓치면 결국 큰 것을 얻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돌이켜보건대, 초시든 재시든 삼시든 사시든 오시든, 작은 진보가 없다면 무의미한 것 같다. 작은 차이를 만들어 내지 못하면 중간에 지칠 뿐이다. 고시는 재시에 붙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고시생으로서 그렇게 훌륭한 위업(?)을 달성한 분들은 부지불식간에 작은 차이를 빨리 깨달아서 체화했기 때문에 짧은 기간에 합격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 있어 작은 차이는 별 것 아니었다. 실패를 인정하고 부족함을 인식하고 어떻게든 다음에 붙기 위해 작은 몸부림을 치는 것이었다. 2004년 경제학에서 보기 좋게 경제학에서 과락이 나왔을 때 충격 그 자체였다. 제 2외국어가 필수가 아니었던 예전에는 민법총칙과 정치학을 선택했었다. 민총은 사시 붙은 선배와 친구가 많이 도와주고 시험도 정말 잘 봤다고 생각했음에도 점수가 너무 안 나왔다. 제 2외국어가 상대적으로 높은 점수가 나오니, 제 2외국어를 꼭 선택하라던 선배들의 조언을 가벼이 흘려버린 내 만용이자 업보였다. 2004년에는 정말 변명거리가 하나도 없었다. 정말 실력이 부족해서 떨어졌다는 깨끗한 승복만 있을 뿐이었다. 패인은 무엇이었을까? 여태까지의 자신의 실력과 노하우를 믿고, 내 자신의 틀 속에 갇혀서 다양한 문제를 접근하지 않은 것이었다.


진단이 나왔으면 처방은 간단하다. 기출문제, 학교 모의고사/강평 문제를 많이 접하고, 교수님들의 특강을 들을 때도 초심으로 돌아가려고 노력했으며, 신림동 GS강의를 이용했다. 국제법은 안진우 선생님 강의, 경제학은 최병권, 김진욱 선생님 강의, 국제정치학은 1년간 공부를 거의 못하다가 막판에 신희섭 선생님의 강의를 들었다. 개인적으로 안진우 선생님은 정말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셨다. 나에게는 은사다.


외시에 있어 역시 큰 산은 영어다. 나같은 완전 무공해 순수 신토불이 토종 된장(세칭 순수 국내파)에게는 더욱 그렇다. 고시반에 있을 때는 영어 특기자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고, 정영한 선생님의 강의를 많이 들었다. 작년 여름에 통역대학원 학원 실전반에까지 찾아가서 조언을 구하고 강의를 듣고, 신림동 강의도 들었던 기억이 난다. 좋은 표현은 늘 정리해 두고 한 번이라도 더 보려고 노력했다. 좋은 문장은 통째로 외우려고 노력했다. 외시 공부하면서 영어 점수는 잘 안 오른다고 하는데, 나의 경우 이번 시험에 조금이나마 분명히 올랐다. 

 
고시생에게 작은 진보는 무엇일까? 자신이 좀 더 나아지고 있다는 믿음, 집에 가면서 오늘 하루 동안 공부한 것을 떠올리며 예전에 미처 몰랐던 알게 된 점, 알았지만 깊이가 얕았던 지식에 깊이를 더한 점에 조금이라도 뿌듯함을 느낄 수 있으면 그게 고시생에게는 작은 진보라고 생각한다. 고시는 “레고블록쌓기”라는 2004년 최연소 최다연 씨의 수기를 읽은 기억이 나는데, 공감이 가는 표현이다.

 

○ 희 망
“현실 속에 생활 속에 이미 와 있는 좋은 세상을 앞서 사는 희망이 되십시오.”


합격하니까 좋다. 다른 적당한 표현이 안 떠오른다. 미사여구 필요 없이 좋은 건 좋은 거다. 가족, 여자친구, 친구, 선후배 등 주위에서 너무 좋아해주셔서 더 좋다. 어떻게 보면 내 꿈에 있어 아직 중간과정에 있을 뿐인데, 그래도 일단 좋아하고 넘어가야겠다. 내가 좋아하는 모습을 솔직히 보여주는 것이 같은 꿈을 꾸고 있는 사람들에게 보다 자극이 되어서 보다 열심히 하는 계기가 된다면 난 더 좋아 할 것이다. 그래서 내가 아끼는 친구, 후배들이 나를 보고 조금이라도 더 열심히 해서 합격한다면 더욱 좋겠다.


희망은 “바랄 희”, “바랄 망” 두자로 되어있다. 사람에게 희망이 없다면, 바람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오늘 먹고 자고 싸고 울고 웃는 것도 역시 희망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희망이라는 것은 두 가지의 측면이 있다. 외부로 향한 나의 희망, 나로 향한 외부의 희망. 아직 난 이룬 것이 많지 않다. 다만 중간과정에서 나는 나의 꿈이었던 외교관의 길목에 들어서고 있고, 주위 사람들이 내게 가졌던 기대를 조금이나마 충족시켰다는 점에서 이룬 것이 없지는 않다. 나는 앞으로도 항상 희망을 안고 살고, 주위사람들의 희망이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거창한 뜻은 없다. 내 자신과 내 주위 분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노력할 뿐이다.


나에게 도움을 주셨던 모든 분들, 마음속으로 응원해 주셨던 모든 분들에게 감사합니다. 충분한 자격이 있음에도 아쉽게 실패의 고배를 마신 친구, 선후배에게 진심으로 응원을 보냅니다. 아울러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한 3서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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