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학전문대학원 논의에 관한 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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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학전문대학원 논의에 관한 소감
  • 법률저널 편집부
  • 승인 2005.06.07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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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재 형  서울대 법대 교수

 

이 글은 대법원 사법제도비교연구회(당시 회장 이강국 대법관) 제5회 연구발표회에서 지정토론한 내용을 다듬은 것이다. 그런데 2004년 12월에 발간한 ‘사법개혁과 세계의 사법제도[Ⅰ]’에 위 토론문이 누락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서 2004년 4월 교수회의를 개최하여 충분한 여건이 갖추어질 것을 전제로 로스쿨 논의에 찬성하면서 구체적인 조건을 상세히 열거하였고 특히 “법학부를 유지”하기로 의견을 모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도 언론에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교수회의에서 학부를 폐지하기로 합의하였다고 보도되었다. 현재 사법개혁추진위원회에서 로스쿨에 관한 구체적인 시안을 작성하고 있으나,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다. 현재의 로스쿨 도입논의는 이론적이고 건설적인 논의라기보다는 지극히 정치적인 문제로 변질되고 있다. 한편 필자가 주장한 분할채점제는 법무부에서 이번 사법시험부터 채택하기로 하였다. 앞만 보고 질주하는 말 안장에서 내려 무엇을 위한 로스쿨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볼 것을 촉구하는 의미에서 이 글을 게재한다. 필자 註


1. 법학전문대학원, 즉 로스쿨(Law School) 문제는 법과대학이나 법조계 차원의 문제만이 아니라 국민적 관심사이다. 이는 우리 나라의 법조인력양성 시스템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에 관하여 1995년경부터 여러 차례 논란을 거듭했고, 사회적으로도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이른바 고시열풍이나 변호사수급문제의 해결책이 법과대학 체제를 버리고 로스쿨 체제로 전환하는 것인지에 관하여는 다시 한번 성찰해보아야 한다.

 

2. 법학전문대학원은 다양한 배경을 가진 법률가를 양성하는데 중요한 의미가 있다. 법학은 다른 학문을 먼저 공부한 사람이 해야 한다고 한다. 과연 그러한가? 법학을 공부하다가 경제학, 사회학 등 다른 학문을 공부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고, 여러 분야의 학문을 병행하여 공부할 수도 있다. 폭 넓은 지식이 필요하다면, 법학과 인접학문을 공부하는 다양한 모델 또는 법학교육방법을 제시하거나, 커리큘럼을 조정하는 것으로도 가능하다. 한편 법률가 증원을 위하여 로스쿨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법률가를 증원하기 위해서는 현행 사법시험을 법률가자격시험 또는 변호사자격시험으로 전환하거나 합격비율을 대폭 높이는 방법으로도 충분하다.

 

사례를 놓고 토론을 하거나 문답 방식(Socratic method)으로 진행하는 법학교육방법은 법과대학에서도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다. 사례를 통한 교육이 법적 사고를 증진하는 데 매우 좋은 방법임에는 틀림없다고 생각하지만, 그것만이 법적 사고를 증진하는 최상의 방법은 아니다. 종래 우리 대학에서 판례를 이용한 사례공부가 거의 행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에서 유래한 case method가 더 크게 보이는 것이다. 오히려 사례공부와 이론공부를 병행하는 것이 법적 사유를 깊게 하는데 더 나은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법학교육의 세계화라는 구호와 함께 로스쿨이 대안으로 등장하였으나, 이는 우리 나라에서 풍미하고 있는 미국화(americanization)의 한 현상으로 파악할 수 있다. 미국을 제외한 유럽 등 대부분의 국가에서 법과대학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독일이나 프랑스에서도 법학교육개혁이 논의되고 있지만 미국식의 로스쿨 체제를 도입하는 것은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미국화와 세계화를 혼동하여서는 안 된다.

 

법학은 가장 오래된 학문의 하나이고, 매우 광범위한 내용을 가지고 있다. 법학전문대학원에서 2년 또는 3년 동안 법률공부를 마치는 것보다는 학부과정에서부터 오랫동안 법학을 다양한 방식으로 공부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법학전문대학원을 도입하더라도 졸업 후 실무연수 역할을 할 로펌 등이 태부족이다. 아니,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과는 상황이 판이하게 다르다. 이것이 미국의 로스쿨이 우리 나라에 그대로 정착할 수 없는 이유이다.

 

3. 로스쿨을 도입하는 대학은 학부과정으로 법과대학을 둘 수 없도록 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는 국가가 단체를 규제하겠다는 시각의 발로이다. 학부를 둘 것인지, 아닌지는 대학이 알아서 결정할 문제이다. 단체에 대한 국가의 통제는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 대학의 자치는 보장되어야 한다. 더군다나 사립대학에 대해서도 로스쿨을 인가하는 조건으로 법과대학을 없애라고 통제하는 것은 아무런 정당성이 없다.

 

물론 로스쿨을 도입하면서 법과대학을 폐지하지 않는다면 로스쿨에서 우수한 학생들을 유치하기 힘들 것이다. 법과대학을 병존시키고 사법시험체제를 그대로 둔 상태에서 대학원 과정인 법학전문대학원을 도입한다면, 법학전문대학원은 이른바 마이너 리그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 그리하여 로스쿨 논의과정이 진전됨에 따라 법과대학 체제와 사법시험 제도의 개편이 중요한 문제로 등장하였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 법학전문대학원을 도입하더라도 이는 소수에 그칠 것이고 많은 대학에서 법과대학이 존속할 것이다. 그런데 법학전문대학원 수료생에게만 변호사자격시험 응시자격을 부여하고 법과대학 졸업생에게는 응시자격을 박탈한다면, 이는 형평성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고 헌법상의 평등권을 침해하는 것일 수 있다.

 

법학전문대학원을 도입한다면, 학생수가 500명은 되어야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한다. 그에 따른 교육공간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법학전문대학원의 교수도 100명 정도는 되어야만 성공적인 운영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이는 미국의 유수한 로스쿨과 비슷한 인원이다. 로스쿨을 도입하면서 학생수를 규제하려는 것은 국가우월주의의 산물이다. 다양한 법학교육을 위해서도 학생수를 규제하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러한 문제에 관해서도 세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4. 법학전문대학원을 도입할 경우에 법과대학을 유지할 필요가 없다는 시각이 타당한지는 검증을 필요로 한다. 법학전문대학원이 우리나라에서도 적합한지 의문이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급격한 학제개편으로 인한 부작용을 막을 필요가 있다. 교육정책이나 학문정책은 실패했을 경우에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을 수 있기 때문에, 학제를 개편하는 문제는 가급적 보수적으로 결정해야 한다. 법학전문대학원을 도입하려면, 법과대학 체제도 유지하여 두 제도 사이에 경쟁을 유도하여 우월한 제도가 살아남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이 방안이 법학교육의 다양성 확보에 더욱 부합한다. 사회적으로 법학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고, 학생들이 법학교육을 받기를 원한다. 이러한 수요를 충족시켜 주는 것이 법과대학이다. 이러한 의미에서도 법과대학을 유지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5. 현재 대학이 고시학원화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으나, 이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에 기인한다. 법과대학 학생들이 고시나 보고 법학도 학문이냐고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그러나 실무가가 되기 위해서는 사법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이론은 실무와 뗄래야 뗄 수가 없는 것이다.

 

문제를 법학교육에 한정하더라도 문제의 근원이 법과대학체제에 있다기보다는 사법시험제도에 있다고 본다. 시스템을 바꾸는 것은 화려한 것처럼 보이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실질적인 교육내용이다. 우리 나라에서 법조양성 시스템을 법학전문대학원으로 전환하기에 앞서, ‘법과대학 발전- 사법시험제도 개선-사법연수원 개편’에 노력했더라면, 더욱 많은 성과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첫째, 법과대학에 대한 대폭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미국의 로스쿨에서는 개설 교과목당 조교를 두기도 하고, 독일의 법과대학에는 교수 개인별로 조교가 4~8명, 비서 1명이 딸려 있다. 우리 나라 법과대학에서는 교수 혼자서 연구와 교육을 맡아 일을 하고 있다. 교수에 대한 연구조교 등을 확충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연구를 보조할 조교를 두려면 공간이 필요하다. 교수가 사용하는 공간은 현재대로도 괜찮지만, 바로 옆에 조교나 비서를 둘 수 있도록 좀더 넓은 공간을 확보해 주어야 한다. 이것은 학문후속세대에 대한 배려라는 의미에서도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서울대 법학도서관의 장서는 하버드 로스쿨의 16분의 1밖에 안 된다. 다른 대학도 장서의 부족을 여실히 느끼고 있을 것이다. 교육방법을 개선하는 실질적인 노력도 중요하다.

 

법과대학의 문제는 학생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교수·대학·정부를 포함한 교육제공자에게 있는 것이다. 학생을 바꾸려고 할 것이 아니라 교육방법과 내용을 바꾸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둘째, 법과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해도 1차시험에서 떨어지는데, 이것은 불필요한 소모이다. 사법시험에서 객관식 시험인 1차시험을 폐지하여야 한다. 그 대신 법과대학 졸업생(또는 7학기 이상 수료하고 일정한 학점을 이수한 학생)에 한하여 사법시험 응시자격을 부여한다. 사법시험 1차를 법과대학 졸업시험으로 대체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와 같이 하면 다른 학문분야에서도 훨씬 적은 학생들을 고시생으로 빼앗길 것이고, 법과대학의 교육도 정상화될 것이다. 적어도 1차시험에 한번만 합격하면 1차를 더 이상 보지 않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1차 시험을 존속시키더라도 선택과목 등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한편 2차시험 응시생이 많아짐에 따라 채점에 어려움이 따르고 있다. 답안지를 나누어 채점하는 방식, 이른바 분할채점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셋째, 사법연수원의 교육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 판결문, 공소장 작성과 실무수습 중심으로 개편하고 현행의 전공과목은 가급적 폐지하는 방식으로 개선하여야 한다. 사법연수원에서 지나치게 많은 것을 가르치려고 할 필요는 없다. 실무중심의 교육을 철저히 하는 것이 사법연수원의 설립취지에 부합한다.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다음에 실무를 하면서 전문분야를 터득하도록 하거나 대학원에서 전문분야를 계속 공부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그리고 실무가가 된 다음에도 법조인 계속 교육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6. 로스쿨은 뜨거운 감자와 같은 문제일지는 모르지만, 이른바 본질적인 문제인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누가 어떻게 가르칠 것인지 여부이다. 현재의 법과대학 체제를 유지하면서 그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 없이 로스쿨로 방향전환을 하여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대법원, 법무부, 변호사협회, 법과대학이 공동으로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언제까지 서로를 믿지 못하고 경계하면서 자신의 영역을 지키기 위한 소모적인 작업을 계속할 것인가?

 

본 기고글은 필자가 법률신문에 기고한 것으로 필자와 법률신문의 양해를 얻어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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