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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인식과 현실, 일본의 수출 규제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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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인식과 현실, 일본의 수출 규제에 대한 단상
  • 오시영
  • 승인 2019.07.05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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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전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인식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한다. 왜냐하면 인식은 과거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인식은 무형의 탑이다. 마치 퇴적물처럼 쌓여 형성된 인식은 현실을 재단하고 미래를 예측하려 한다. 인식은 맹목적이어서 좌표 설정의 신호를 외면한다. 아니 무시한다. 인식의 벽은 견고하여 로터리를 벗어나지 못한 채 개미 쳇바퀴 돌 듯 빙빙 돌기만 한다. 결국 인식은 관성에 스스로 얽매이는 까닭에 외부의 결정적 충격이 가해지지 않는 한 이탈을 꿈꾸지 못하는 인식의 법칙에 갇혀 있다. 인식은 스스로에게 정당성을 부여하는 속성이 있다. 따라서 한 번 형성된 인식은 쉽사리 바뀌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인식 밖 사물의 가치를 자신의 인식 체계 속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무리한 설득을 자행한다.

요즘처럼 인식의 벽에 갇혀 스스로 수감생활을 자청하는 이들이 넘쳐나는 사회가 역사상 있었을까 싶을 정도이다. 그 인식의 경계가 현실을 단절시킨다. 수많은 이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현대사회, 유기적 결합이 자아 상실의 경지에 이르렀음에도 인식의 벽이 더욱 높아지는 아이러니한 세상이다. 혼돈과 융합의 분리가 용이하지 않다. 현실은 새롭게 변화하고자 하는데, 변해가고 있는데, 인식은 과거에 머물다 보니 현실과 인식이 괴리현상을 보이고, 그로 인해 자아정체성이 흔들리고 혼란을 겪는 이들이 넘쳐난다. 이러한 인식의 공고함이 상대적으로 약한 젊은 층은 사회적 변화를 따라가며 현실을 직시하는, 현실에 적응하는 속도가 빠른 반면에 나이든 이들은 인식의 퇴적층에 숨통이 막혀 제대로 현실 변화를 수용하지 못하는 자기 혼란을 겪고 있다.

지난 6월 30일,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나라를 방문하였고, DMZ, 비무장지대를 방문하였다. 그곳, 비무장지대를 시찰한 후 남북 경계선 판문점과 판문각 사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 함께 손을 잡고 북한 경계로 넘어 갔다가 다시 남한 경계로 넘어왔다. 물론 이 양자의 만남을 주선한 문재인 대통령과의 3자 면담도 함께 이루어졌다. 남북미 3개국 정상이 만나는 세기의 현장을 세계인들이 티브이를 통해 지켜보았다. 싱가폴과 베트남 하노이에서의 1,2차 정상회담보다 긴 시간동안 북미 정상 간의 단독회담이 열렸다. 남북미 세 정상이 모두 회담 결과에 만족하였고,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새로운 만남을 갖기로 합의하였다. 이에 대해 일부 야당에서는 미북 정상회담에 직접 참여하지 않은 문재인 대통령을 두고 “객(客)”으로 전락하고 말았다고 비판을 가하기도 하지만, 6.25 종전 당사국인 북미 간에 정상외교를 하기로 한 것이어서 당연한 외교수순이었음을 격하시키기 위한 비난으로밖에 읽히지 않는다.

남북의 평화적 통일은 우리 모두가 지향해야 할 목표이다. 분단 전의 조선, 대한제국이 그 원형이기 때문이다. 그 통일을 향한 과정에 전쟁이나 테러 등 평화를 파괴하는 반통일행위가 발생해서는 안 된다. 이는 통일을 방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모두가 협력하여 선을 이룩해야 할 당위가 생기게 된다. 그 과정에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을 겪을 것이며, 좌절과 시련, 도전과 응전이 있겠는가? 인식은 남북분단의 시작으로부터 지금까지 남북 갈등 사건들로 점철되어 있고, 통일을 향한 구체적 행위가 필요한 현실은 그 인식의 벽을 뛰어넘어야 한다며 우리 인식의 경계를 허물고 있기 때문이다. 인식의 붕괴는 자기 정체성의 부정이나 상실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인식의 경계를 뛰어넘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기에 통일을 지향하며 구체적 현실세계를 주도하고 있는 문재인 정권에 대해 보수적 인식에 사로잡혀 있는 이들은 쉽게 동의하기 어려워한다. 나아가 그러한 현실을 두려워하며 반대하기조차 한다. 결국 인식과 현실의 불일치에서 빚어지는 갈등이다. 그렇지만 인식에만 사로잡혀 있어서는 결코 현실을 극복해 낼 수 없기에, 불일치에서 빚어지는 갈등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현실을, 아니 미래를 꿈꾸어야 한다.

일본 아베 정부가 한국인 강제징용자들에 대한 판결에서 패소한 일제징용회사의 한국 주재 법인에 대해 우리 법원이 재산 압류 및 강제집행을 허가하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그러면서 아베 일본 총리는 한일 간의 식민지배에 대한 보상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과 2015년 위안부 합의로 종결되었다면서, 새삼스레 한국 대법원이 일본 강제징용자(일본은 이를 징용공이라 부르며 자발적으로 직업을 얻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온 한국인이라는 정치적 프레임을 만들려 한다)들에 대한 배상 판결을 추가로 한 것은 위 협정을 위반한 것으로 “한국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 나라이기 때문에 이전까지의 수출 우대조치를 계속하여 보장할 수 없다.”라며, 우리에게 “약속을 지키지 않는 나라”라는 프레임을 덧씌우려 하고 있다. 그러면서 구체적으로 우리나라 수출 품목 1위 상품인 반도체 디스플레이 소재 중 일본 의존도가 절대적인 PR감광액, 불화수소, 불소 등 세 가지를 이달 4일부터 수출규제하겠다고 선언하였다. 그런데 이 부품들은 우리 정부에서 이미 절대적 일본 의존도 부품으로 분류하여 수입선 다변화를 모색하고 있던 품목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약 3개월 생산 분량의 부품만을 확보하고 있는 상태여서 일본의 수출규제가 계속되면 반도체 완제품 생산에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고 하겠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와 반도체 생산업체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장기적 계획으로 부품생산업체를 육성하기 위해 수조 원의 자금을 투입하여 자체 부품 개발에 박차를 가할 것이며, 수입선 다변화를 도모하겠다는 개선안을 내놓음과 동시에, 일본 정부의 이러한 수출 규제는 자유무역을 원칙으로 하고 있는 WTO체제에 반한다며 WTO(세계무역기구)에 제소하겠다는 법적 대응방침을 밝혔다. 경제적 원칙이 아닌 정치적 논리에 의한 수출 규제는 WTO원칙에 반하는 것이어서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WTO에서 승소할 가능성이 아주 높아 별로 걱정은 되지 않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애로를 겪어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우리 정부도 대일 수출을 규제하거나 여행 정책의 강화, 수입 관세 부과 등 다양한 대응책을 강구할 수도 있지만, 이는 일본과 같은 하책을 쓰는 것으로 바람직하지는 않다고 하겠다. 우리는 떳떳하게 대응해 나가면 될 것이다. 다만 정부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는 국민들이 스스로 일본 여행을 자제하거나 일본 제품 구입 등을 자제함으로써 정부와 보조를 맞춰나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우리 산업계도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일본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 대한 부품 의존도가 높은 품목에 대해서는 국산화에 매진하여 중소기업을 살리며 부가가치 창출에 힘을 기울이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이번 사태는 결국 “한일 간 자존심 전쟁”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대한민국 국력이 신장되어 일본에 이기지는 못 하더라도 지지는 않는다는 자신감의 발로라고 할 것이다. 2018년 국제통화기금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GDP가 1조 6500억 달러이고 일본이 5조 달러로 3배 정도 차이가 난다. 일본 인구가 약 1억2천7백만 명 정도로 우리의 2배 반 정도 되므로 국민 1인당 GDP는 일본인의 80% 수준에 이르러, 어느 정도 1대 1 경쟁이 가능한 경제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지난 이명박, 박근혜 정권 당시에는 이러한 경제력에도 불구하고 일본과 경쟁하는 대신 종래의 순치된 태도를 그대로 유지하여 왔고, 그러한 대표적 사례가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10억엔의 배상인지 보상인지 불투명한 돈을 받고 더 이상 문제를 제기하지 않기로 하는 불가역적 합의”를 하였던 것이다.

이에 대해 문재인 정부는 본의 아니게(대법원의 판결에 따른 것이므로) 대법원의 획기적 판결(정부 차원의 대일 배상금청구권과는 별도로 국민 개인의 배상청구권은 침해받을 수 없다)에 따라 일본 기업에 강제 징용당해 무보수 노동력을 착취당했던 징용자들이 미쓰비시나 신일철 같은 일본 대기업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승소하여 강제집행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징용자들은 당연히 우리 대법원 판결을 근거로 강제집행을 실시하려 하였고, 이에 대해 문재인 정부가 가타부타 이야기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즉 행정부는 사법부의 판결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장치가 전무한 것이다.

이러한 국가권력의 3권분립 정신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일본의 아베 정권은 우리 대법원 판결에 대해 문재인 정부가 나서지 않는다는 이유로 WTO 체제에 반하는 반도체 부품 수출에 제동을 걸려 하고 있다. 황당의 극치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로 인해 당장 우리 반도체 생산업체들이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하지만 길게 보면 일본의 피해가 더 클 여지가 훨씬 크다. 왜냐하면 우리가 부품 공급을 제대로 받지 못하여 전자 강국인 일본에 고품질의 반도체 완성품을 수출하지 못하면, 이를 바탕으로 컴퓨터, 티브이, 냉장고 및 핸드폰 등 수많은 전자제품을 생산 수출해 온 일본 전자업계가 더 큰 피해를 입게 될 것이고, 이러한 수급불균형은 중국과 대만 등의 반도체 수출 가격을 대폭 인상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되어 결국 일본이 더 큰 피해를 입게 되는 바보 일본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보수 언론이나 일부 기업의 지원을 받는 경제일간지 등이 문재인 정부로 하여금 일본 정부와 협상에 나서라 하지만, 이러한 협상을 지금 당장 실시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외교라는 게 타이밍이기 때문에 일본의 이러한 선제공격에 대해 우리 정부 또한 얼마 정도의 저력을 가지고 있음을 과시할 필요가 있고, 이로 인해 일본이 더 큰 피해를 볼 수도 있다는 반면교육을 철저히 각인시킬 필요가 있다. 시일이 걸리더라도 WTO 제소과정을 통해 일본의 부당성을 법적, 외교적으로 증명함으로써 다시는 이러한 비상식적인 대우를 우리나라에 하지 못하도록 경종을 울릴 필요성 또한 크다고 하겠다. 현재 대한민국 국력이 방탄소년단으로 상징되는 한류의 열기와 턱 밑까지 쫓아온 한국의 경제력, 남북 평화 체제 구축으로 나감으로써 여태 북한 위협을 가상의 적으로 상정한 뒤 일본 국민들의 안보 위기 의식 조장을 통한 정권 연장이라는 구태의연한 보수정권의 정권 연장 정책을 더 이상 쓸 수 없게 됨에 따라 일본 자민당 정권은 지금 커다란 딜레마에 봉착해 있다.

이러한 일본 자민당의 불안과 초조가 결국 앞서의 반도체 부품 수출 규제라는 황당한 정책 결정으로 이어지고, 이를 빌미로 일본 보수 세력의 결집을 통해 7월 21일 치러질 참의원 선거에서의 승리를 획책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정부가 이러한 일본 아베의 자민당 선거를 도와줄 필요가 전혀 없다. 따라서 참의원 선거가 끝날 때까지 협상이라든지 이런 외교적 노력을 경주할 필요가 없다. 오직 경제적 입장에서 부품의 국산화 정책을 어떻게 성공적으로 추진할 것인지, 부품 수입처의 다변화를 어떻게 도모할 것인지 등등 오히려 여태까지 누적되어 온 대일 무역 적자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모멘텀을 찾는 것이 더 지혜로운 행동이라 할 것이다. 이번 기회에 국민들도 일본 제품 불매운동까지는 아니더라도 일본 제품 구입의 신중한 자세, 일본 관광의 자제 등 정부 정책에 따라 합리적 행동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겠다.

일본 아베 정부는 지금 사면초가에 빠져 있다. 특히 북한의 비핵화 정책으로의 선회에 따라 북미정상이 연이어 만나면서 정상 간의 신뢰를 구축하는 중에 있고, 문재인 대통령이 이러한 평화 통일 정책으로의 중심축 역할을 견고하게 추진함에 따라 향후 일본이 예상하고 있는 “북한의 핵위협으로부터 일본 구출”이라는 아젠다가 무너져 내림에 따라 극심한 불안상태에 몰려 있다.

우리는 지혜로울 필요가 있다. 정부를 비판하면서 일본의 아베 정권을 도와줄 하등의 이유가 없다.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이 힘을 모아 이러한 대일 무역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공동의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일본의 인식은 “한국이 감히 일본에게?”하겠지만, 한국의 현실은 “우리 한국도 일본 너희에게 이 정도쯤은?”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현실이 인식을 고치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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