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수희 판사와 함께 나누는 ‘회복적 사법’ 이야기 (26)-지역기반 통합 형사조정센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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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희 판사와 함께 나누는 ‘회복적 사법’ 이야기 (26)-지역기반 통합 형사조정센터를 꿈꾸며
  • 임수희
  • 승인 2019.07.04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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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희 부장판사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

#1
“여보! 당장 112에 신고해! 이거 안 놔? 개새끼야!”

정씨한테 멱살을 잡힌 안씨가 다급하게 소리쳤습니다. 그리고서 멱살 잡힌 정씨의 손목을 잡고 떼어 내려고 세게 비틀었습니다.

“아아! 아주 적반하장이구만! 경찰? 그래, 얼른 불러!”

정씨도 아프다며 큰 소리를 지르자, 안씨의 아내가 두 남자 사이에 끼어들어 외칩니다.

“둘 다 이거 놓지 못해요? 자자, 놓으세요!”

일요일 아침에 동네 시끄럽게 싸움을 벌인 안씨와 정씨는 한 빌라 3층과 2층에 각각 세 들어 사는 사람들입니다.

302호에 안씨 부부가 아이 키우면서 벌써 3년 넘게 살고 있던 작은 빌라였는데, 얼마 전 정씨가 202호로 입주해 들어오면서 아래윗집 사이에 크고 작은 신경전이 벌어졌던 거지요. 정씨는 독신인데다가 밤일을 하고 아침이 다 돼서야 들어와 잠만 자고 다시 저녁에 나가는 식의 생활을 하고 있던 터라, 몇 세대 안사는 이 작은 빌라 사람들의 요구를 맞추지 못했거든요. 쓰레기 분리수거 날짜를 안 지키고 아무 때나 아무렇게나 내놓아 지저분하게 어지럽히기 일쑤였고, 공동청소비를 몇 달씩 밀려도 신경을 안 썼어요.

게다가 302호 안씨의 신경을 가장 거슬리게 한 것은, 그 작은 빌라에 한 세대당 한 대씩 겨우 세울 수 있게 마련된 주차장에 각 호별로 ‘주차자리’를 정해 놓고 있었는데, 새로 들어 온 202호 정씨가 그걸 무시하고 지키지 않았던 거였어요. 정씨 생각에는 이전 사람들끼리 정한 '주차자리‘ 같은 건 새로 들어 온 사람들과는 협의되지 않은 것이니 일방적으로 강요받을 수는 없다는 것이었죠.

그러던 어느 일요일 아침, 일 마치고 새벽에 들어 온 정씨가 302호 안씨네 ‘주차자리’에, 그것도 옆자리 선까지 넘어서 대충 차를 대버리고 잠들어 버렸는데, 전날 처가에 갔다가 아침에 돌아온 안씨네 가족이 주차를 하려고 보니, 떡하니 남의 자리에, 그것도 2대 자리에 걸쳐서 차를 세워 놓은 정씨 차를 보고서 결국 안씨가 불같이 화가 나 202호 문을 세게 두드리면서 그 사달이 나게 된 것이었어요.

잠결에 나온 정씨는 다짜고짜 안씨로부터 “개새끼”라고 욕을 듣자 화가 났고, 둘은 멱살 잡이를 하게 된 거지요.

“자자, 놓으시고요. 계속들 싸우실래요? 애 보는데 이러실래요? 여보, 당신도 좀 진정하고 그만 좀 하세요!”

안씨 아내가 말리고 나서자, 두 남자는 못이기는 척 서로 손을 풀었습니다.

“일단 112 신고를 하긴 했지만, 경찰로 갈 일은 아니고, 센터 가서 좀 얘기를 해 보면 어때요?” 안씨 아내가 제안을 했습니다.

두 남자가 아직 씩씩 대고 있는 사이, 순찰차를 타고 경찰관들이 도착을 했어요. 경찰관들은 두 남자를 분리시키고 상황을 파악했지요.

“두 분은 지금 서로 폭행 또는 상해, 그리고 모욕으로 쌍방이 입건될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여기 안씨 아내 분이, 우선 두 분이 센터 가서 좀 얘기를 해 보면 어떻겠냐고 하시니, 저희 생각에도 일단 그 기회를 먼저 가지시고 정식 입건 여부는 추후 판단하셔도 좋을 것 같은데, 어떠신가요?”

경찰은 기초적 조사와 신상 파악을 한 후 돌아갔고, 정씨는 일단 잠을 마저 잤습니다. 그리고 경찰 앞에서 약속했던 대로 며칠 후 일 쉬는 날 오후에 안씨와 함께 그 동네 구청 옆에 있는 <지역분쟁조정센터>를 방문했습니다.

<지역분쟁조정센터>에서는 경찰이 사건당일 접수해서 예약해 놓은 담당 조정가가 두 남자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물론 안씨는 아내와도 함께 갔기 때문에 담당 조정가는 정씨와 안씨 부부, 양쪽을 잘 상담했습니다. 그 조정가는 쌍방이 서로 상대방의 입장도 이해할 수 있게 하면서도 자기 측의 요구를 상대에게 잘 전달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어요. 그 간 한 빌라에서 살면서 서로 불만이었던 점들을 털어내고 잘 조율해서 향후 공동생활에 필요한 약속까지도 했지요. 그리고 멱살잡이 사건에 대해서도 서로 민, 형사상 문제 삼지 않기로 잘 화해를 했습니다. 대화와 조정을 마친 후 경찰에도 연락을 해서 그 사건은 불입건처리로 잘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2
“조사결과, 아무래도 피의자 홍씨에게 사기죄가 성립한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피의자 강씨 스스로도, 두 분이 처음에 한 1년은 정말 좋은 사이였고 사랑하셨다면서요. 결혼까지 염두에 두고 나중에 함께 살 것을 생각해서 흔쾌히 개업자금을 보태셨다면서요. 피의자 홍씨 가족이나 주변 지인들도 다들 강씨를 장차 결혼할 사람으로 알았는데, 결국 두 분 이별하시게 되면서 홍씨도 적잖이 상처받으신 거, 본인이 더 잘 아시구요. 돈 문제가 남았다고 해서 처음부터 사기를 치려고 했던 것으로 보기에는 증거가 부족합니다.

다만, 피의자 강씨가 피의자 홍씨 집에 몰래 들어간 것이나, 아무리 받을 돈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허락 없이 지갑을 뒤져서 함부로 돈을 꺼내 온 것은, 주거침입죄와 절도죄가 성립합니다. 아무리 전에 깊이 사랑하며 사귀었던 사이라 해도, 헤어진 후에 의사에 반해서 함부로 집에 들어가거나 그의 물건에 손대는 것이 정당화될 수는 없어요.“

검사의 말을 들은 피의자 강씨는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떨굽니다.

강씨는 결혼을 전제로 사귀었던 홍씨에게 개업자금을 대 주었는데, 헤어지게 된 후 홍씨가 돈을 돌려주지 않자, 알고 있던 비밀번호로 홍씨 집에 몰래 들어가 홍씨 지갑을 뒤져 돈을 꺼내 가지고 나왔고, 홍씨가 강씨를 형사고소하자, 강씨도 홍씨를 사기로 맞고소를 하여 둘 다 피의자가 돼 버린 겁니다.

그런데 경찰에서는 강씨만 주거침입과 절도로 검찰에 송치를 하고, 홍씨에 대해서는 무혐의로 송치를 하자, 강씨는 억울하다고 주장하면서 검찰 조사에 계속 응하였습니다. 사귀던 사이일 때 그런 식으로 늘 드나들던 홍씨 집이었고, 역시 사귀던 사이일 때는 네 돈 내 돈 없이 함께 썼었는데, 이제 와서 주거침입이라니, 절도라니, 무슨 법이 그런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겁니다.

검사님은 나의 억울함을 알아주겠지 하며 기대를 했는데, 이제 검사님마저도 경찰과 같은 얘기를 하니, 내가 뭔가 잘못 알았던 것일까, 법이란 것이 이런 것인가 하고 자포자기하는 마음이 생긴 것이었어요.

“하지만, 두 분이 한 때 좋은 사이였던 건 분명하시죠? 피의자 홍씨도 피의자 강씨에게 모질게 형사문제를 삼고 싶지는 않다는 의향을 비치고 계시고, 두 분이 돈 문제를 해결하셔야 하기도 하고요. 피의자 강씨가 민사소송도 고려 중이라고 하시니까요. 만약 두 분이 원하신다면 형사조정절차를 거칠 수 있는 기회를 드릴 수 있습니다. 센터에서 형사조정절차를 거치시면서 그 안에서 민사 돈 문제나 두 분 관계도 좀 함께 잘 정리하신다면 좋을 것 같긴 합니다. 맘 정리도 좀 하시구요. 어떠세요?”

경찰 단계에서는 자기의 행위가 범죄로 된다는 것을 잘 받아들일 수 없었던 피의자 강씨가 검사가 하는 말에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피의자 홍씨에게 사과할 기회를 갖고 싶고 다만 돈 문제는 꼭 해결을 받고 싶다고 했습니다. 피의자 홍씨도 대화로 원만히 관계를 정리하는 것에 동의를 했습니다. 검사는 관할 지역 내 <통합형사조정센터>에 두 사람을 인계해 주고 형사조정이 진행되는 동안 형사절차의 진행은 중지해 두었습니다.

#3
“피고인, 피해자 당사자들 뿐 아니라, 양쪽 부모님 각각의 감정을 잘 살펴서 섬세하게 다루며 예민하게 접근해야 하고, 각각 사전 세션을 충분히 진행해야 할 것 같습니다.”

회의를 진행하는 서팀장은 긴장으로 얼굴이 상기되었습니다.

<대화와 분쟁해결센터>의 사건관리팀을 맡고 있는 서팀장은 최근 법원에서 접수된 한 사건 때문에 특별한 팀을 구성했거든요. 조정가 두 사람뿐 아니라, 상담가, 사회복지사, 정신과 의사, 그리고 변호사. 그 첫 팀회의를 열어서, 앞으로 진행할 프로세스를 함께 설계해 보고 주의할 점들이나 그 밖의 챙겨야 할 것들을 체크하는 중이었어요.

우성이와 진희는 둘 다 정신지체 아이들인 같은 반 친구로 고등학교를 졸업해 지금은 20살인 상태였어요. 고등학교 한 반일 때부터 둘이 사귀었는데, 양쪽 부모님도 그 사실을 알고는 있었죠.

어느 날 둘이 진희네 집에서 함께 있다가, 우성이와 진희 사이에 성행위가 있었는데, 그에 대하여 후일 진희와 그 부모는 우성이를 성범죄로 고소를 하고, 수사결과 우성이는 성범죄로 기소가 됩니다.

우성이는 진희가 당시 “하지마!”라고 했던 말을 듣긴 했지만 원래 여자들은 그런 말을 하는 거라고 생각했고, 우성이 부모는 사귀는 아이들끼리 있을 수 있는 일인데 우성이나 진희가 둘 다 정신지체이다 보니 진희가 오해를 했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수사와 재판이 고통스럽게 이어지자, 우성이 부모는 내 자식은 잘못이 없는데 진희네 부모가 우성이를 모함해서 돈이라도 받아내려 하는가, 분을 내기까지 하였구요. 그러한 우성이와 우성이 부모의 태도로 인해 진희나 진희 부모는 더욱 상처를 받았습니다.

1심 재판에서 우성이에게 징역 3년의 유죄 판결이 내려지고, 판결문을 받아보고 나서야 비로소 우성이나 우성이 부모는 무조건 우성이에게 잘못이 없다고 할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항소심이 진행되자, 우성이 부모는 국선변호인을 통해 재판부에 피고인인 우성이가 정신이 온전치 못한 점을 감안해서 뒤늦게라도 사과할 마음을 내는 것에 대해 기회를 주실 것과 그로써 우성이와 피해자 진희는 물론, 서로간의 비난으로 상처와 고통을 입은 양 부모들 사이에 회복적 사법 프로세스를 거칠 수 있는 기회를 주실 것을 요청했습니다.

다행히 피해자 진희 측에서도 그 뜻을 받아들여, 항소심 재판은 중지해 두고, 재판부의 의뢰로 관할 지역 내에 있는 <대화와 분쟁해결센터>에 연계가 되어 서팀장이 이 사건을 관리하게 된 것이었어요. 서팀장은 이 특별한 사건을 위해 특별한 팀을 꾸려서 어떻게 회복적 사법 프로세스를 그 둘과 양 부모 사이에서 성공적으로 이루어 낼 수 있을까 의논 중인 거죠.

자, 여러분, 이 3개의 장면을 어떻게 보셨나요?

생소하시다구요?

네, 그러면 맞게 보신 겁니다. 모두 제 상상 속에서 나온 이야기들이니까요.

우리 현실에는 위와 같은 제도나 절차가 있지 않아요. #1의 <지역분쟁조정센터>나, #2의 <통합형사조정센터>, #3의 <대화와 분쟁해결센터>도 모두 한번 지어내 본 이름들이에요.

하지만 그것들의 성격은 모두, 지역 내에 거주민들의 생활과 밀착하여 존재하면서 경찰 단계든(경찰 전 단계도), 검찰 단계든, 법원 단계든(1심이든, 항소심이든), 형사절차의 어느 단계에서도 필요한 경우 이용할 수 있고, 전문적 역량을 갖춘 회복적 사법 프로세스 진행가들이 있으며, 관련 분쟁을 함께 처리할 수 있는 그런 통합적인 회복적 사법적 형사조정기관이라는 거죠.

이러한 지역기반의 통합적인 형사조정센터가 있다면, 그런 센터를 형사절차의 어떤 단계에서든 이용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된다면, 그러한 프로세스에서 역량있는 전문가에 의해 적정하고 바람직한 회복적 사법적인 결과를 낼 수 있다면, 어떨까요, 여러분?

어떤 점이 유익하고 어떤 점이 문제될까요? 기대되는 것과 걱정되는 것은 무엇이 있나요?

이런 꿈을 꾸어 보는 것이 장차 더 평화로운 사회로 가까이 가는 데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는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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