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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지정학은 결정론적이어야 할까? : 『21세기 미국의 패권과 지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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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지정학은 결정론적이어야 할까? : 『21세기 미국의 패권과 지정학』
  • 신희섭
  • 승인 2019.06.21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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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21세기는 미국의 세기이며 이 체제는 오래 지속될 것이다.” 이 명제는 참일 확률이 높다. 우리는 간단한 두 가지 방법으로 이 명제를 검증할 수 있다. 첫 번째는 미국을 대체할 수 있는 국가를 상상해보는 것이다. 두 번째는 미국이 주저앉을 가능성을 고려하는 것이다. 논리적으로 보면 첫 번째 방법은 미국의 능력을 넘어서는 문제이고 두 번째 방법은 미국에 집중하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볼 때 미국을 넘어설만한 국가는 눈에 띄지 않는다. 단일 국가로는 거의 유일하게 중국을 떠올려볼 수 있지만 중국이 미국만한 국가가 되기에는 여러 장애물이 있다. 그런데 미국을 넘어서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미국을 넘어서려면 국력(power)만으로는 안 된다. 리더십과 함께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통치이데올로기가 필요하다.

리더십차원에서 간단히 몇 가지만 보아도 중국은 미국을 넘어설 수 없다. 11개의 항모전단으로 구성된 전 세계 바다에 대한 완전한 해양통제력. 30개가 넘는 동맹(alliance)국가와 이 보다 더 많은 제휴관계(alignment)에 있는 국가들과 140개나 되는 미국 군사시설을 가진 국가들. 전 세계 무역 결제의 1/2을 차지하는 달러의 거래화폐로서 위상. 미국 대학들과 싱크 탱크의 지식과 규범의 헤게모니. 미래를 이야기할 수 있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라는 통치 이데올로기.

위의 조건들에서 미국을 대체할 국가는 없다. 집단적으로도 이는 불가능해 보인다. 유럽연합을 보라.

두 번째 조건은 어떤가! 미국은 자살골을 넣을 국가가 아니다. 미국은 모든 분야에서 현재도 앞서고 있지만 미래 대비에서도 가장 앞선다.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지지자들을 들어 부정해볼 수 있지만 이들은 미국을 이끄는 주류세력은 아니다.

지금까지 이야기를 들으면서 친미어천가를 부르자는 것이냐고 반문할 수 있다. 지나침은 항상 견제를 부르는 법이니까. 그렇다. 지나치게 미국의 편을 들 필요는 없다. 하지만 객관적 상황분석을 무시해서도 안 된다.

그런데 학문의 영역에서는 이야기가 좀 다르다. “21세기는 미국의 세기이며 이 체제는 오래 지속될 것이다.”라는 명확해 보이는 명제가 참인지를 학문적으로 ‘검증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여기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 그 중 최근 관심을 많이 받는 것이 지정학이다.

지정학이 관심을 불러 모으는 이유는 명확하다. 매우 가시적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직관을 건드린다. 요즘 표현을 빌리자면 ‘답정너(답은 이미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다.

지정학을 통한 설명은 구체적이고 우리가 아는 얘기가 나오기 때문에 재미있다. 또한 그만큼 위험하기도 하다. 자칫하면 결정론으로 곤두박질친다. 지리와 관련된 요인은 변화가 크지 않기 때문에 설명력과 예측가능성이 높다고 확신하게 된다. 확신에 찰수록 결정론의 유혹은 강하다.

이때 결정론을 경계하면서 최대한 객관성을 가지려는 자세가 중요하다. 이 지점에서 학자와 점성술사는 구분된다.

한국에도 지정학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작년에 번역되어 베스트셀러가 된 책이 있다. 『21세기 미국의 패권과 지정학』이다. 이 책은 지정학을 입문하려는 사람들에게 좋은 책이다. 우선 재미있다. 어디 가서 써먹기도 좋다. 과거 인류 역사의 구체적인 사례들, 현재진행중인 기술적인 사안들, 그리고 뚜렷한 미래 예측이란 3박자까지 모두 맞는다.

원제목은 더욱 흥미롭다. The Accidental Superpower. accidental 즉 “우연하다는” 것이다. 제목이 명시하듯이 이 책의 핵심적 주장은 두 가지다. 첫째 주장. 미국은 지정학적으로 우연한 조건에서 패권국가가 되었다. 둘째 주장. 우연한 조건에서 패권이 된 미국은 이제 국제 관리자에서 손을 뗄 것이다.

논리는 이렇다. 미국은 미시시피 강을 필두로 한 ‘운송체계’, ‘원양항해기술’, ‘산업화와 기술발전’을 거치면서 “우연하게” 패권국가의 위치에 놓였다. 과거 이집트, 포르투갈과 스페인, 영국과 독일도 강대국의 반열에 올랐지만 위의 3가지 요인들의 가장 큰 혜택은 미국에게 돌아왔다. 1차 대전과 2차 대전에서 직접 참화를 겪지 않으면서 폭발적 경제성장을 한 미국은 패권국가가 되었다. 고령화와 생산가능인구라는 조건에서도 선진국 중 유일하게 미국만 미래가 있다.

두 번째 미래 예측의 논리. 지리라는 신(god)은 미국에게 3가지 자유를 선물했다. 첫째, 동부의 막대한 농업 지대와 ‘식량’의 자유. 둘째, 태평양과 대서양이라는 거대한 바다와 캐나다와 멕시코가 강대국이 될 확률이 없는 ‘안보’의 자유. 셋째, 유일하게 다른 국가들이 필요했던 에너지 분야에서 셰일혁명에 의한 ‘에너지’의 자유. 완벽하게 축복받은 미국이 계속 전세계 질서 관리를 위해 손에 피를 묻힐 이유가 무엇이 있겠는가!

저자인 피터 자이한이 예측하는 미래는 단순 명확하며 암울하다. 미국 없는 세상은 무질서 그 자체다. 미국이 보호해주던 해양안보와 동맹구조가 사라지면서 각 지역 국가들은 지금까지와 다른 안보경쟁으로 나갈 것이다. 후속편인 『셰일혁명과 미국 없는 세계』에서는 셰일로 자유로워진 미국이 세계질서운영에서 빠졌을 때 유럽, 중동, 아시아에서 총 3개의 전쟁이 벌어진다고 더욱 구체적인 예언을 한다.

재미있고 강력한 역사적 사례들과 전문적인 지식으로 무장한 주장들을 듣다 보면 어느새 미래에 와있는 느낌을 받는다. 그런데 미국이 고립주의전통에 따라 국제질서를 이탈한다고 전제한 순간부터 이 책은 묵시록(Apocalypse)이 되어 버린다. 캐나다의 앨버타의 독립추진과 멕시코의 마약전쟁강화에서 이주의 어려움과 테러리즘이 강화까지. 페이지를 가득 채운 구체적인 지표들은 수정공(crystal ball)을 돌려 비관적 미래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잠깐 심호흡을 하고 다시 몇 가지 질문을 던져본다. 과연 미국은 그렇게 쉽게 국제질서에서 이탈할 수 있는지. 기존에 미국이 만든 제도들이 과연 아무런 구속 장치도 못되는지. 지리 결정론과 기술 결정론에 더해 인구학까지 동원한 현란한 예측이 과연 인간을 어느 정도까지 예측해낼 수 있는지. 흥미로운 질문들이 줄줄이 쏟아진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이 던진 화두는 유용하다.

지정학은 지리, 시간, 인간으로 얽힌 함수다. 그런데 지리는 시간과 인간에 의해 규정된다. 또한 시간은 기술에 의해서 상대적인 것으로 변화한다. 그래서 그 미래를 예단하는 것은 어렵다. 그런데 인간은 더 어렵다. ‘가치’와 ‘심리’라는 주관적인 요인에 영향을 받는 인간은 어디로 튈지 모른다. 그러니 지정학은 미래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하지만 결정론적일 수는 없다. 지정학이 결정론적이었다면 인간의 역사가 이리 복잡했겠는가! 그런 점에서 지정학은 흥미로운 지적 자극제(galvanizer)다. 결정론으로의 유혹 속에서도 변화를 설명해보고 싶다는.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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