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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기침 한 번의 권위”가 무너진 막말주의, 이희호 여사의 명복을 빌며
오시영  |  sunwhisp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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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6.14  10:5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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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죽음은 남은 자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기준을 제시해 준다. 이희호 여사께서 지난 6월 10일 향년 96세로 운명하셨다. 제1세대 여성운동가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반자이자 정치적 동지로 일생 동안 민주와 평화의 길을 걸어온 선각자의 죽음 앞에 진정 애도를 표한다. 어쩌면 그의 죽음으로 민주화 1세대의 대미가 종식되는 느낌이다. 물론 아직도 백기완 선생을 비롯해 살아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분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3김으로 상징되던 시대의 마지막 종언이 박정희 시대의 종말에 이어 확인되는 순간이다. “하늘나라에 가서 우리 국민을 위해, 민족의 평화통일을 위해 기도하겠다.”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그리고 “동교동 사저를 대통령 사저 기념관으로 사용하도록 하고, 노벨평화상 상금은 대통령 기념사업을 위한 기금으로 사용하라.”는 말도 남겼다고 한다. 이희호 여사는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 “분단된 남북의 통일과 평화로운 조국 대한민국”을 그토록 염원하셨던 것은 우리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 마지막까지 헌신적이다.

남편인 김대중 전 대통령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납치와 투옥 속에서 천주교를 받아들였지만, 이희호 여사는 평생 기독교 신앙심을 지켜왔다. 종교가 달라 다투지 않느냐는 기자의 짓궂은 질문에 김 전 대통령께서는 “같은 하느님을 믿는 것이니 싸울 일이 없다.”고 답변하여 기자를 머쓱하게 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북한과 평화적 통일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북한을 적대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북한을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던 두 분의 따뜻한 심성은 결국 박정희 독재권력에 의해 “빨갱이 내지 공산주의자”라는 프레임에 갇힌 채 평생 고통을 받아 왔다. 하지만 그들 부부는 결코 자신의 정적을 향해 “보복이나 복수”라는 칼날을 들이대지 않았고 “화해와 용서”라는 보다 큰 가치로 대해 왔음은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물론 여전히 그들을 공산주의자라거나 빨갱이라고 부르는 이들이 적지 않은 듯하다. 그가 집권하면 북한에게 나라를 송두리째 갖다 바칠 것이라거나 무조건 퍼주기를 할 것이라며 좌파공산주의를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선동적 카피가 난무하고 있고, 그러한 프레임은 지금 문재인 정부로 이어져 확산되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 때나 노무현 대통령 때 그렇게 나라를 송두리째 가져다 바칠 것이라는 허언들이 지금 대한민국이 멀쩡히 북한을 압도하며 발전되어 온 것만으로도 거짓이었음이 스스로 증명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말은 유효한 듯 시중을, 온라인상을 떠돈다. 참으로 괴이한 생각들이 신념이라는 고정틀에 갇힌 채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

하여튼 이희호 여사의 죽음으로 민주화 1세대가 종결되었다. 하지만 그분들의 가치는 여전히 촛불혁명으로 이어져 나갈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2일 노르웨이를 국빈방문 중 “오슬로 포럼 연설”을 통해 “평화가 국민의 삶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때 국민들은 적극적으로 분단을 극복하고 평화를 이루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접경지역의 피해부터 우선 해결”되어야 하며, 동서독이 통일되기 전 접경위원회를 조직하여 동서독 경계의 화재, 홍수, 산사태 및 전염병과 수자원 오염문제를 해결했던 것처럼 남북 사이에도 접경위원회를 만들어 현재 남북미 비핵화 문제로 교착상태에 빠진 상황을 타개하는 방안으로 당장 실천 가능한 평화, 일상을 바꾸는 게 필요하다며 적극적 평화 구상을 제시하였다. 정치적 통일에 앞서 일종의 “생활통일”을 이룩하겠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리고 진정한 통일은 “깊은 이해와 신뢰”가 전제되어야 하는 것임을 밝혔다. 인사치레의 의례적인 교류가 아니라, 깊은 이해와 신뢰가 전제된 통일이 진정한 통일임을 밝힌 것이다. 실천적 생활통일을 통해 상호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정치적 통일에 기여할 것이라는 그의 발상의 전환에 공감한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나라 내부 갈등이 점점 커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 중심에는 “완고한 보수의 탐욕”이 존재하고 있음을 본다. 보수와 진보를 일도양단식으로 자를 수는 없다. 하지만 상층부 보수는 대부분 가진 자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상층부 보수는 오랜 세대에 걸쳐 부를 형성하였거나 기득권을 누려왔다. 그들이 가진 것으로 쌓은 성은 완고하다. 그들은 “기침 한 번”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해 온 “절대적 권위”를 누려왔다. 그런데 시대가 변하여 “기침 한 번”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은 세대가 왔다는 점이다. 자유한국당의 “막말주의”는 이러한 “기침 한 번의 권위가 무너진 위기에 대한 반발”에서 왔음을 본다. 아니라고 강변하겠지만, 필자의 눈에는 가장 큰 원인으로 보인다.

예전에 “기침 한 번”으로 굴종 복배하던 이들이 고개를 꼿꼿이 쳐들고 바른 소리를 하고 있으니 이를 참을 수 없는 것이다. “기침 한 번”으로 해결되지 않으면 “점잖은 척 하는 말”로 타이르고(?), “점잖은 척 하는 말”로 해결되지 않으면 “노기 띤 말”로 해결하려 하고, “노기 띤 말”로 해결되지 않으면 “사적 처형의 폭력”으로 해결하고, “사적 처형의 폭력”으로 해결되지 않으면 “공적 폭력”으로 해결하는 수순을 밟아왔던 것이 기득 보수층의 문제 해결 수순이었다. 이들의 의식 구조 속에는 “감히 아래 것들이!” 하는 DNA가 깊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이러한 구조는 대한민국 사회 전반에 걸쳐 있는 근본적인 구조적 문제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구조적 결함이 치유되어가고 있는 과정에 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한 인식일 것이다. 남녀평등, 상하평등, 성정체성평등, 계급타파에 따르는 직장내 평등, 지역평등, 학벌평등 등 기존의 모든 질서에서 나타나는 차별의 개선 내지 평등의 지향점으로 향하는 사회 구조의 재편성 과정에 나타나는 현상이 아닐까 싶다.

“-질”에는 다양한 사용처가 있지만, 보통 일부 명사 뒤에 붙어(접미사) 그 행위나 일을 낮잡는 의미의 명사를 만드는 말로 사용된다. 예를 들어 계집이라는 좋은 뜻에 질이 붙으면 계집질이 되어 나쁜 말로 바뀌는 것처럼 접미사 –질이 붙으면 대부분 부정적 언어로 바뀐다. 문재인 대통령의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3개국 국빈 방문과 관련하여 자유한국당 민경욱 대변인이 “불쏘시개 지펴 집구석 부엌 아궁이 있는 대로 달궈놓고는, 천렵질에 정신 팔린 사람마냥 나 홀로 냇가에 몸 담그러 떠난 격”이라는 논평이 “막말시비”에 휩싸여 있다. 천렵이라는 말은 냇가에서 고기를 잡는 일로 모든 사람들이 즐겨 하는 일이고, 휴가철이면 하고 싶어 하는 일로, 좋은 뜻의 단어이다. 하지만 여기에 “-질”이 붙게 되면 “고기잡이에 빠져 할 일을 하지 않은 것”이 되어 버려 부정적인 단어로 변하게 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익을 위해 북유럽 순방에 오른 것을 “천렵질”이라고 평가절하하며 마치 할 일 다 팽개치고 고기나 잡으며 계곡에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식으로 평가하는 것은 사실 대놓고 욕을 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는 천박한 표현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한 술 더 떠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아무 거나 막말이라는 게 막말”이라는 막말의 정의는 진짜 막말의 진수를 보여주는 막말이 되고 있다. 물론 그 전제되는 사실이 막말이 아닌 말을 막말이라고 하는 것이야말로 막말이라는 말은 옳은 말이다. 막말 아닌 말을 막말이라고 우기면 그것이 막말이 되니 말이다. 하지만 막말인 말을 막말이 아니라고 우기는 것은 진짜 막말 중의 막말이다. 막말인 말을 막말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 막말이 아닌 말을 막말이라고 말한다면서 그 말이야말로 막말이라고 우기는 것은 막말 중의 상막말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자유한국당이 막말 프레임에 갇혀 막말주의의 광풍에 휩쓸리고 있는 것은 자칭 보수 정당임을 내세우는 자유한국당의 “기침 한 번의 권위 붕괴”를 막을 수 있는 뾰족한 수단의 부재로 볼 수밖에 없다.

“기침 한 번”으로 해결되는 세상에서의 보수는 최대한 “자애로운 표정” 또는 “최대한 점잖은 미소”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었다. 그들 의식 속의 아래 것들이 알아서 기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들 의식 속의 아래 것들이 스스로 기고, 스스로 가져다 바치고, 스스로 아부아첨을 해 주었기 때문에 구태여 언성을 높이거나 표정을 바꾸거나 삿대질을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만에 하나 어떤 돌연변이가 있으면 사적 린치를 가하거나 공적 형벌을 통해 적절히 통제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세상이 변해서 그러한 “기침 한 번의 권위에 가치의 정당성을 묻는 질문자”들이 넘쳐나고 있다. 보수는 그 동안 “기침 한 번이라는 힘의 논리”에 젖어 “정당한 가치의 권위”를 키우지 못한 잘못을 범하였고, 지금 그러한 잘못된 가치에 대해 철저하게 응징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희호 여사의 빈소에 조문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그 분의 삶이, 그 분이 지향했던 가치가 많은 조문객들로부터 권위를 인정받고 있음의 반증이다. 가치가 숭고하고, 행함이 공익적이었다면 많은 조문객들이 자발적으로 빈소를 찾게 되어 있다. 그게 인지상정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 앞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죽음 앞에서 끝없이 조문행렬이 이어지는 까닭이다. 하지만 지금 보수의 중심인물들 중에서 그렇게 수많은 국민들의 눈물을 자아내게 하고, 감동케 하고, 자발적으로 존경의 마음을 표하게 하는 이들이 과연 얼마나 있으며 과연 누가 있는가? 오직 이해관계로 점철된 끼리끼리만 있을 뿐 아무런 이해관계 없이 따르는 이들의 진심이 과연 어느 정도인가 되돌아볼 일이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나 나경원 원내대표가 잘 되었으면 한다. 필자가 수없이 이야기해 왔듯이 건전한 보수는 반드시 필요하고, 그 힘 또한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기둥이 되어야 하므로 “기침 한 번의 권위에 걸맞은 행함의 헌신이 동반되는 삶”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 헌신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지난달 7일 택시노동조합간담회 등의 자리에서 “좌파세력은 제대로 돈 벌어본 적 없는 사람들”이라는 말을 확신에 차 내뱉었다. 이 말은 뒤집어 보면 “자신을 위해 돈을 벌어본 우파세력은 정당하다.”라는 의미가 숨어 있다. 이 말이 모든 것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보인다. 하지만 적어도 국민 모두를 위한 정치지도자가 되려면 자신의 돈벌이에 함몰되는 개인적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는, 돈을 벌지 못하더라도, 정의를 위한 핍박을 당하더라도 공익적 가치를 위해 헌신한 경험이 있어야 한다는 진리를 알지 못하는 우물 안 우파의 잘못을 스스로 자백한 것이나 진배없다. 모든 것이 거울처럼 반대이다.

자유한국당의 막말주의는 앞으로 더욱 거칠어질 것이다. 보수가 마지막으로 행사하던 “사적 린치”와 “공적 형벌권”의 상실로 인한 강제적 권위 회복이 불가능하게 됨에 따라 “도덕적 가치 없는 보수에 대한 무시 또는 멸시”를 합리적으로 해결해 나갈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이 가장 빠를 때다. 따라서 이러한 현실을 직시하고, 이럴 때일수록 “막말이 아닌 보수 원래의 기침 한 번의 권위 있는 점잖은 말과 행동의 복구”가 절실함을 인식해야 한다. 결코 늦은 게 아니다. 지금이라도 보수의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보수에게 패악질이나 막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오히려 막말은 “원래 보수가 저랬나? 우리가 속았었나?”하는 인식의 확장만을 가져올 것이기 때문에 지금부터라도 보수의 본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

거창한 변신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사소한 변화, 지금 손해 보더라도 길게 국민에게 이익이 되는 길을 택한다면 장차 재집권도 가능할 것이다. 2년이 지났지만 촛불혁명은 현재 진행형이다. 이를 성급히 막으려 하다 보니 “막말생산제조공장”이 되어 버려 더욱 민심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현실 진단을 빨리 받아들이기 바란다. 진심으로 자유한국당을 아끼는 마음에서 하는 말이다. 이희호 여사에 대한 조문정치가, 문재인 대통령의 북유럽 3개국 국빈방문이 전환의 키가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공전 중인 국회를 아무 조건 없이 통 크게 개원하라. 모든 국민이 자유한국당에 박수를 보낼 것이다. 국회에서 주장하고, 토론하고, 목표를 달성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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